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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언맨>, 소재에 눌리지 않을 수 있을까

자신의 색깔을 드러내는 작품이 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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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언맨>의 주인공 주홍빈도 이런 관점에서는 평범하다. 아버지와의 갈등, 옛 연인과의 관계가 준 상처. 모두에게 뾰족하게 날을 세우고 거칠게 구는 그의 이면에는 이런 사정이 있다. 독특한 것은, 그가 일반인과는 달리 정말로 ‘날’을 세운다는 점이다.

로맨스에 판타지를 차용하는 것은 이제 놀라운 일도 아니다. 타인의 마음속을 읽을 수 있는 소년이 있고(SBS <너의 목소리가 들려>), 귀신을 보고 그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여성도 있고(SBS <주군의 태양>), 누군가는 향을 피워 20년 전 과거로 돌아가기도 한다(tvN <나인: 아홉 번의 시간 여행>). 


여기 또 다른 판타지 드라마가 있다. 분노하면 몸에서 칼이 돋는 사나이, <아이언맨> 주홍빈(이동욱). 언뜻 들었을 때 이해하기 힘든 소재다. 동명의 영화와는 전혀 다른 소재를 차용한 이 드라마, 과연 독특한 소재에 눌리지 않고 자신의 매력을 뽐낼 수 있을까? 분노가 시대정신이랄 정도로 현대인들에게 화(Anger)는 일상적인 감정이 되었다. 영화, 연극, 심지어 CF까지 분노를 소재로 삼은 작품들이 범람하고, 드라마에도 분노조절장애를 가진 듯한 주인공들이 넘쳐흐른다. 이유도 뻔하다. 친구의 배신, 연인과의 다툼, 부모와의 갈등…. 


<아이언맨>의 주인공 주홍빈도 이런 관점에서는 평범하다. 아버지와의 갈등, 옛 연인과의 관계가 준 상처. 모두에게 뾰족하게 날을 세우고 거칠게 구는 그의 이면에는 이런 사정이 있다. 독특한 것은, 그가 일반인과는 달리 정말로 ‘날’을 세운다는 점이다. 화가 나면 주홍빈의 몸에는 삐죽하게 칼이 돋아나는데, 나무를 자를 수 있을 정도로 단단하고 날카롭단다. 참으로 특이하기 그지없다.

 

아이언맨.jpg

출처_ KBS


<아이언맨>이 시작 전부터 많은 시청자들의 우려를 산 이유도 이해할 법하다. 영화에 비해 사전제작기간이 짧은 드라마에서는 정교한 CG처리가 힘들고, 맨몸에 칼이 돋아나는 장면은 자칫 잘못하면 어설프기 그지없을 수 있으니까.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CG에 대한 걱정을 제외하면 내면의 상처가 물화(物化)한다는 설정 자체는 상당히 흥미롭다. 분노와 정신적 외상은 같은 뿌리를 공유한다는 것을 암시하는 것 같기도 하고, 칼날이 누구를 상처 입히는지 고민을 던질 수도 있을 터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시청자들에게 공감을 사고 이런 화두를 던지기 위해 드라마는 상당 부분 부담을 짊어져야 한다는 점이다. 먼저 내면의 상처를 칼이라는 형태로 드러낸 만큼 주홍빈의 절망과 슬픔은 시청자들에게 깊은 공감과 이해를 살 수 있어야 한다. 쉽게 말해 그의 분노에 타당한 이유가 제시되어야 하는 것. 몸에서 칼이 돋아난다는 독특한 소재에 눌리지 않기 위해서는 그 설정을 압도할 만한 강렬한 개연성이 존재해야 하지 않겠는가.


또한 타인을 상처 입히는 것이 제 상처이기도 한 그의 딜레마를 명확히 드러내야 한다. 굳이 몸에서 칼이 돋아난다는 소재를 차용한 데에는 여러 가지 의미가 있을 터다. 말한 것처럼 정신적 외상을 좀 더 극적으로 표현하기 위한 장치일 수도 있겠지만, 마치 <엑스맨>의 울버린―울버린의 클로는 손끝에서 나올 때마다 그의 살갗을 찢고 나온다―처럼 돋아나는 칼날이 타인 이전에 스스로를 상처 입힌다는 암시가 될 수도 있다.


당연히 그의 상처를 치유해줄 손세동(신세경)의 캐릭터도 매우 중요하다. 강렬한 개성을 뽐내고 있는 주홍빈에 비해 몰개성에 가까울 정도지만 결국 ‘아이언맨’ 주홍빈의 상처를 치유하고 소통의 가교가 되어 줄 캐릭터이기 때문이다. 1,2회 내내 주홍빈은 아버지 주장원(김갑수)와 동생 홍주(이주승)에게조차 서슬이 퍼렇고, 자신을 위해 헌신적으로 일하는 고비서(한정수)와 윤 여사(이미숙)에게도 곁을 내주지 않는다. 뻔한 일이지만 이런 홍빈을 변화시킬 것은 세동이다. 흔한 로맨틱 코미디와 다른 만큼 남녀주인공의 관계를 설명하는 데에도 색다른 설정이 필요하다. ‘칼이 돋아나는 남자’에게 손세동이 없어서는 안 되는 필연적 이유 같은 것 말이다. 과연 <아이언맨>이 다양한 허구적 상상력으로 시청자들을 설득할 수 있을까.


안타깝지만 <아이언맨>의 1,2회가 이런 기대를 충족시켰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주홍빈의 아픔은 사적인 차원에 머물러 있고, 그 사적인 이유조차 꼽아보자면 흔하디흔한 종류의 것들이다. 연인과의 결별, 그 과정에서 겪은 아버지와의 갈등, 배다른 동생으로 미루어 짐작할 수 있는 복잡한 가정사…. 이미 많은 드라마에서 다뤘던 것들이기에 특별히 눈에 띈다 말하기 힘들고, 주홍빈의 갑작스런 분노는 공감을 사기에 부족해 의아하기만 하다.

 

여주인공 손세동 역시 주홍빈에게 과거의 추억을 불러일으키는 독특한 냄새를 풍긴다는 것 이외엔 특기할만한 것이 없다. 물론 1,2회를 보고 드라마의 완성도를 논하기는 이르다. 다소 낯선 소재인 탓에 초반보다는 시청자들이 드라마의 흐름에 익숙해진 후반부에 뒷심을 발휘할 수도 있다. 김용수 PD의 연출은 언제나처럼 감각적이고, 바탕에 깔리는 OST도 제법 귀를 잡아끈다. 폭발할 만한 잠재력은 충분히 갖추고 있는 셈이다.


걸작이 되겠다는 강박에 시달리는 작품은 보기 힘들다. 가볍고 유치하고 뻔해도 좋다. 시청자들에게 자신의 색깔을 드러내는 작품이 되길, 소재의 독특함 이상으로 기억에 남는 작품이 되길 진심으로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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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김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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