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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죄자는 타고난 것일까, 만들어지는 것일까?

범죄의 역사란 인류의 역사와 늘 함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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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죄자는 타고나기보다는 만들어지는 것이라고 단정 지을 수는 없습니다. 한 사람이 범죄자가 되기까지 수많은 변인들이 영향을 미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분명히 말할 수 있는 것은 범죄자의 모든 것을 단순히 그 내면의 문제로만 돌릴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범죄자는 타고나는 것일까요, 만들어지는 것일까요? 이 질문을 두고 어느 누구도 100퍼센트 타고나는 것이라거나, 100퍼센트 만들어지는 것이라고 주장하기는 어렵겠죠. 그런데 사이코패스의 경우 소시오패스와 달리 비교적 타고나는 성향 때문이라는 설명을 들으면 타고나는 쪽에 가깝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물론 반대 의견도 만만치 않습니다. 유전의 영향으로 타고나는 성향도 분명 있긴 하지만, 이런 성향만으로는 범죄자가 되지 않는다고 합니다. 연구에 의하면 어떤 유전자는 과학이나 예술, 탐험 등의 분야에서 세계를 놀라게 할 만한 업적을 남기게 하는 사람에게서 발견되지만, 중독이나 범죄 등 심각한 문제를 유발하거나 자기 파괴적인 행동을 하는 사람에게서도 발견된다고 합니다. 결국 타고난 것은 동일해도 어떤 환경이냐에 따라 달라진다는 것입니다.


범죄자가 타고나는지, 아니면 환경에 따라서 만들어질 수 있는지 이 수수께끼 같은 질문은 철학자와 종교인, 예술가와 사상가를 비롯해 수많은 사람이 지금까지 던졌고, 지금도 던지고 있으며, 앞으로도 던질 질문입니다. 그중 한 명은 미국 스탠퍼드 대학의 사회심리학자 필립 짐바르도였습니다. 당시까지만 해도 대부분의 사람은 범죄자에게는 악한 천성이 있다고 믿어 의심치 않았습니다. 타고난다는 쪽이었죠. 그러나 짐바르도는 범죄자의 높은 재범률에 주목했습니다. 교도소라는 환경이 범죄자를 교화하기보다는 오히려 더 질 나쁜 범죄자로 만드는 것은 아닐까 의심한 것입니다.


그는 자신의 가설을 검증하기 위해 지역 신문에 ‘환경 조작에 따른 심리 변화’를 주제로 실험을 한다면서 참가자들을 모집하는 광고를 냈습니다. 실험은 총 2주 동안 진행될 예정이었고, 참가자들에게는 일당 15달러를 제시했습니다. 1970년대의 15달러는 지금으로 치면 80달러가 넘는다고 합니다. 게다가 무려 2주 동안이니, 어림잡아 계산해도 총 천 달러 이상을 벌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옵니다. 광고를 보고 모여든 사람은 70여 명이었습니다.



감옥 안에서 죄수와 간수 역할을 주었을 때


짐바르도는 스탠퍼드 대학의 한 건물에 진짜 감옥과 거의 흡사하게 모의 감옥을 만들고, 사람들을 그 안에서 생활하게 할 작정이었습니다. 감옥 안에서 죄수와 간수 역할을 주었을 때, 사람들이 실제로 어떻게 변화하는지 보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평범한 사람들이 범죄자가 되는지를 알아보는 실험이라고나 할까요? 만약 실험에 참여한 사람들이 악하게 행동했을 때, 그것이 감옥이라는 환경 때문이라고 결론 내리려면 참가자들을 선별해야 했습니다. 정신장애를 겪은 적이 없고, 과거에 범죄를 저지른 적이 없으며, 경제적 수준과 지능 및 건강 등에서 정상적이고 평범해야 했죠. 누가 봐도 범죄 성향을 갖고 있지 않다고 할 수 있어야 했습니다. 결국 24명이 최종 선발되었습니다. 이들 중 9명에게는 간수 역할, 또 다른 9명에게는 죄수 역할, 나머지 6명에게는 대기자라는 임무가 주어졌습니다.


간수에게는 어떠한 물리적 폭력도 사용하지 말 것을, 죄수에게는 간수의 말에 순종할 것을 요청했습니다. 이 외에는 어떤 특별한 규칙도 만들지 않았습니다. 참가자들 모두 일종의 실험임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2주 동안 재미있는 감옥 놀이를 할 수도 있었죠. 이후 죄수 역할을 맡은 사람들에게는 집으로 돌아가서 경찰이 검거하러 올 때까지 기다리라고 했고, 간수 역할을 맡은 사람들에게는 간수 복장(제복, 선글라스, 호루라기, 경찰봉)을 나눠주고 감옥에서 대기하게 했습니다.


실험 첫날, 연구자들은 지역 경찰의 협조를 얻어 죄수 역할 참가자들을 집에서 체포하는 상황을 연출했습니다. 경찰차에 태워 모의 감옥으로 데리고 온 후 옷을 완전히 벗기고 살충제를 뿌렸습니다. 그리고 원피스처럼 위아래로 뚫린 죄수복과 샌들을 제공했습니다. 속옷을 입지 못한 죄수들은 허전함을 느꼈습니다. 삭발의 효과를 내기 위해서 머리에 스타킹을 뒤집어쓰게 했으며, 오른발에는 체인을 채웠습니다. 그리고 죄수들은 이름이 아닌, 죄수복에 붙어 있는 번호로만 불린다는 것도 알려주었습니다.


두 번째 날, 한 죄수가 다른 죄수들을 부추겨서 폭동을 일으켰습니다. 간수들을 비웃고 모욕했습니다. 당황한 간수들은 죄수들에게 밀리면 안 된다는 생각에 소화기를 사용하여 죄수들을 진압했고 옷과 침대를 빼앗았습니다. 그리고 죄수들의 분열을 유도하기 위해 일부 죄수에게 옷과 침대를 돌려주고 음식을 주었고, 반나절 후에는 다시 다른 죄수들에게 똑같이 했습니다. 죄수들은 누군가가 간수에게 협조했다고 여겨 서로를 불신하기 시작했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일부 죄수는 시도 때도 없이 울거나 공격적인 성향을 보였습니다.


세 번째 날, 집단 탈옥의 가능성에 실험이 잠시 중단되기도 했으며, 이 사건으로 간수들은 더욱 심하게 죄수들을 괴롭히기 시작했습니다. 맨손으로 변기 청소를 시켰으며, 몇 시간 동안 팔굽혀펴기를 하게 했죠. 놀랍게도 죄수들은 말없이 복종했습니다. 네 번째 날, 다섯 번째 날, 시간이 갈수록 간수들의 학대는 더욱더 심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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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의 감옥은 실제 감옥처럼 꾸며졌고, 실험 참가자들은 점점 더 상황을 실제처럼 인식했다

이 실험의 결과는 매우 충격적이었습니다. 지극히 평범한 사람들을 모의 감옥에 넣고 단지 역할만 부여했을 뿐인데 이렇게까지 반응하다니! 간수는 정말 악랄해졌고, 죄수는 무기력을 경험했습니다. 간수의 통제를 벗어나기 위해 죄수들은 서로 협력했고, 이것이 깨졌을 에는 온갖 심리적 불안정을 경험했습니다.

그러나 모의 감옥 실험은 심리학 실험으로서의 최소한의 요건도 갖추지 않았습니다. 가설도 명확하지 않았고, 통제 집단도 설정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한동안 심리학계에서는 주목받지 못한 실험이었습니다. 2003년 짐바르도의 은퇴와 함께 이 실험도 심리학사에서 주목받지 못하는 실험으로 묻힐 뻔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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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라크 아부그라이브 포로수용소에서 벌어진 포로 학대 사진은 세상에 큰 충격을 던져주었다

범죄자의 모든 것을 내면의 문제로만 돌릴 수는 없다

그런데 1년 후인 2004년, 전 세계는 이라크의 한 포로수용소에서 벌어진 미군과 영국군의 포로 학대 사건에 경악했습니다. 공개된 사진을 보면 한 이라크 포로는 시커먼 도사견 앞에 묶인 채 무력하게 있습니다. 다른 사진들은 더욱 충격적이었습니다. 사진 속에서 한 포로는 양손에 전깃줄을 잡고 봉투를 뒤집어쓴 채로 상자 위에 서 있었고, 미군은 상자에서 떨어지면 전기 충격을 가할 것이라면서 위협을 가하고 있었습니다. 또 다른 사진에서 포로들은 피라미드처럼 포개져 있었고, 포로들의 피부에는 영어 욕설이 적혀 있었습니다. 병사들이 발가벗은 포로들을 배경으로 기념 촬영을 한 사진도 있었습니다. 어떤 사진 속에는 포로들이 성행위를 연상시키는 자세를 취하고 있고, 미군 병사들이 손가락질하며 웃는 장면이 담겨 있었습니다.

짐바르도는 이 사건이 일어나자마자 모의 감옥 실험 홈페이지에 포로 학대 사진과 모의 감옥 실험 사진을 함께 실었습니다. 놀랍게도 두 사진은 연출된 것처럼 흡사했습니다. 포로를 학대하는 군인의 악랄함은 40년 전 스탠퍼드 대학의 지하실에서 이미 예견되었다고 주장하기에 충분했죠. 이 실험이 전 세계적인 관심을 받게 되자 ‘무엇이 선량한 사람을 악하게 만드는가’라는 부제를 붙여 『루시퍼 이펙트』라는 제목의 책을 출간했습니다. 이후로 그는 은퇴 전보다 더 바쁘고 더 유명한 심리학자가 되었습니다.

이 실험 결과만으로 범죄자는 타고나기보다는 만들어지는 것이라고 단정 지을 수는 없습니다. 한 사람이 범죄자가 되기까지 수많은 변인들이 영향을 미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분명히 말할 수 있는 것은 범죄자의 모든 것을 단순히 그 내면의 문제로만 돌릴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원래 사람이 악했다느니, 태어날 때부터 악마의 모습이 보였다느니 하는 식의 주장은 인류가 범죄에 무력하다는 주장으로 이어질 뿐입니다. 그래서 범죄심리학자들은 범죄자들이 죄를 저지르는 환경과 동기를 연구하고, 어떻게 해야 다시 죄를 짓지 않게 할 수 있을지 고민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한편으로 이들의 연구는 계속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범죄의 역사란 인류의 역사와 늘 함께했고, 앞으로도 그럴 것 같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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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심리학이 처음인데요강현식 저 | 한빛비즈
저자는 그간 심리학에 대한 대중의 기대에 어느 정도 부응하면서도 가능한 학문으로서의 심리학의 입장을 많이 담아내려고 노력했다. 심리학 핵심개념들을 간결하면서도 통찰력 있게 풀어주고, 독자의 쉬운 이해를 위해 가능한 한 많은 예시를 들고자 노력했다. 이를 위해 영화나 대중가요, 다큐멘터리 등 대중에게 친숙한 소재들을 이용해 심리학을 알려왔다. 흥미와 재미 위주가 아닌 보다 객관적이고 다양한 정보로 심리학에 대해 처음부터 제대로 알기를 원하는 사람들을 위해, 이 책은 두고두고 읽을 좋은 동반자가 되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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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강현식

‘누다심’이라는 필명으로 활동 중인 심리학 칼럼니스트로, 〈누다심의 심리학 아카데미〉를 운영하고 있다. 사람들에게 제대로 된 심리학을 쉽고 재미있게 알리겠다는 일념하에 다양한 주제로 글쓰기와 강연을 하고 있으며, 다양한 주제로 각종 모임과 집단 상담도 진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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