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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편집자란

내 글을 가장 먼저 보여주고 싶은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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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적으로 좋아해야 저자에 대해 더 잘 알고 싶어지고 그래야 일에 발을, 아니 마음을 제대로 담굴 수 있지 않겠는가. 저자들이란 족속은 겉으로는 센 척해도 대개 인정욕구 과잉에 자기 재능에 대해선 늘 불안한 법이다.

열한 권의 책을 펴냈으니 적지 않은 숫자의 출판사 편집자와 함께 일하면서 많은 것을 느끼고 배웠다. 오늘은 그 얘기를 조금.
 
맨 먼저 짚고 넘어가야 할 이야기. 간혹 편집자의 개입을 최소화하는 것을 미덕으로 여겨 말을 안 듣거나, 일부러 청개구리처럼 굴거나, 그의 자질을 무시하는 저자를 보는데 그것은 틀려먹었다. 편집자는 저자가 가질 수 있는 최고의 친구이자 파트너이며, 편집자는 가능한 모든 방법을 동원해서 저자를 도울 것이다. 그렇다면 그들이 도울 수 있도록 저자인 당신이 먼저 도와야 한다. 고집불통을 버리고 편집자의 말을 들어라. LISTEN TO THEM.
 
물론 이것도 어디까지나 ‘좋은’ 편집자, 를 전제로 하는 말이다. 세상에는 다양한 저자가 있듯 다양한 스타일의 편집자가 있다. 내가 생각하는 ‘좋은 편집자’는 별다른 게 아니다. ‘내 글을 가장 먼저 보여주고 싶어지는’ 편집자다. 나의 온갖 정념과 치부와 민망함이 다 들어간 날것의 글을 맨 먼저 쪼르르 어린아이처럼 달려가서 보여주고 싶은 사람이다. 나는 ‘평가하는’ 편집자보다 ‘질문하는’ 편집자를 좋아한다.
 
“왜 이 부분을 이런 형식으로 쓰셨어요?”
“이 인물은 어떻게 이럴 수 있었을까요?”
“이건 대체 뭐죠?”
 
하나하나 빨간펜 선생처럼 옳고 그름을 자의적으로 완결시켜 정리해버리기보다 원고에 대한 중립적인 어조의 질문들로 내가 다음에 무엇을 해야 할지 절로 알 수 있게 한다. 저 속 깊이 든 생각을 저자가 직접 끄집어내도록 하고, 알아서 수정할 수 있게 유도할 줄 아는 자가 실로 유능한 편집자다.
 
그렇다면 내게 있어서 ‘좋지 않은’ 편집자란? 딱 두 경우만 말하겠다. 하나는 저자를 진심으로 좋아하지 않는 편집자이다. 사람은 개인적 취향이라는 게 있기에 저자를 내심 싫어하거나 안 맞을 수는 있다. 편집자와 저자, 두 인간종만을 놓고 본다면 솔직히 성격 이상하고 나쁜 걸로 치자면 저자 쪽이 월등할 것이다. 그럼에도 부탁드린다. 최소한이라도 좋아할 수 있는 부분을 발견하는 노력 정도는 해주세요, 라고. 인간적으로 좋아해야 저자에 대해 더 잘 알고 싶어지고 그래야 일에 발을, 아니 마음을 제대로 담글 수 있지 않겠는가. 저자들이란 족속은 겉으로는 센 척해도 대개 인정욕구 과잉에 자기 재능에 대해선 늘 불안한 법이다. 그럴 때 ‘아 나를 정말 좋아해주는구나, 나를 위해서 저렇게 말해주는구나’라는 확신이 들어야 불끈, 열심히 해야지 하지, 겉으로 ‘선생님’이고 속으로는 진심으로 존중해주지 않는다는 것이 느껴지면 그것은 진정 고통이다. 다음으로는 편집자가 작가지망생인 경우. 이 역시도 한 개인이 무엇을 지향하든 자유지만, 예민한 저자의 입장에서는 ‘사실 나는 너보다 글을 더 잘 쓸 수 있어’라는 냉소나 ‘내가 지금 남의 글을 봐줘야 할 때가 아닌데’ 라는 절박감이 감지되면 곤란하다. 아닌 게 아니라 편집되면서 글은 어느새 편집자의 문체로 뒤바뀌어 있다.
 
현재 나는 스타일이 확연히 다른 두 명의 여성편집자와 오랜 기간에 걸쳐 호흡을 맞추며 일하고 있다. 한 명은 ‘채찍’형, 한 명은 ‘당근’형이다. 정말 달라도 너무 다르다. 그러나 딱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만약 그들이 다른 회사로 이직한다면 나는 언제라도 그 작업을 도중에 그만둘 것이다. 쓸데없이 비장하다고? 무슨 말씀. 이것은 출판계약서에 내가 추가조항으로 덧붙인 사안이다. 그만큼 내게 편집자는 중요하고 소중하다.

 

임경선의성실한작가생활.jpg

저와 빨간 실로 묶인 유능한 두 미녀 편집자들.
누가 ‘채찍’ 형이고 누가 ‘당근’ 형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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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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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ㆍ사진 | 임경선 (소설가)

『태도에 관하여』,『나의 남자』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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