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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 딜런의 리메이크 앨범

밥 딜런(Bob Dylan) 〈Fallen Angel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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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은 어색하고 생소하고 낯선, 그러나 받아들일 수밖에 없게 하는 이러한 매력을 밥 딜런은 재해석들이 지층처럼 수 겹 쌓인 스탠다드 팝 넘버들로부터 새롭게 이끌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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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hadows In The Night>에 이어 밥 딜런은 스탠더드 팝으로의 진입을 계속해 나간다. 레퍼토리의 표본을 프랭크 시나트라로 잡은 것 또한 전작과 동일하다. 빙 크로스비, 글렌 밀러 등의 버전으로 녹음됐던 「Skylark」 단 한 곡을 제외한 전곡이 과거 프랭크 시나트라에 의해 불린 적 있다. 조니 머서, 해롤드 알렌, 조니 버크, 호기 카마이클과 같은 틴 팬 앨리 작가들의 이름이 밥 딜런의 작사, 작곡 크레디트에서 쏟아져 나오는 게 여전히 조금은 어색하게 다가온다마는, 뭐 아무렴 어떠랴. 작품이 좋은데 말이다. 아메리칸 송북 시절의 정가운데를 바라보는 밥 딜런에 대한 의구심을 음반은 자연스럽게 걷어낸다. 전작 <Shadows In The Night>가 그랬던 것처럼 훌륭하게.

 

앞선 작품과의 차이가 조금은 있다. 가벼운 기타 사운드가 공간의 전면과 후면을 가리지 않고 곡들 전반에서 더욱 분명하게 드러난다. 또한, 한정된 편곡 자원에서 이끌어냈던 풍성함은 다소 줄었다. 그 때문에 <Fallen Angels><Shadows In The Night>과 비교해 약간은 쉽고 가볍고 푸근하게 다가오기도 한다. 그러나 웅장한 오케스트레이션 기반의 스탠더드 팝 넘버들을 단출하고 건조하게 크기와 세기를 줄여 편곡해내는 접근 방식에는 큰 변화가 없다. 「Young at heart」, 「Maybe you’ll be there」의 도입부에 자리한 화려한 스트링과 「Polka dots and moonbeams」, 「All or nothing at all」를 장식하는 부피 큰 브라스, 「Nevertheless」의 솔로 구간을 맡은 클라리넷 등, 프랭크 시나트라의 보컬과 함께했던 오케스트라의 다양한 악기들은 스틸 페달 기타와 기타, 그리고 이따금씩 가볍게 등장하는 비올라와 혼으로 대체됐다. 깊은 울림과 부드러운 질감을 동반하는 프랭크 시나트라의 보컬과는 거리가 먼, 습기 없고 때로는 까끌까끌하기까지 하는 밥 딜런의 가창도 여전하다.

 

리메이크 작품이다 보니 결국 아티스트가 어떻게 곡을 해석해냈느냐에 해석의 초점이 모인다. 그리고 그 지점에서 이 앨범은 실로 높은 점수를 가져간다. 음반에서 프랭크 시나트라 (혹은 그 무렵의 스탠더드 팝, 재즈 아티스트들)의 컬러는 완벽히 지워진다. 여기에는 온전히 밥 딜런만이 서 있다. 오케스트라가 만들어준 스케일 큰 무대를, 스포트라이트가 비추는 빛을, 쓸쓸한 멜로디를, 그 안에서 구성된 주인공의 역할을 마치 당연히 자기 것인 양 여기며 프랭크 시나트라가 노래했던 것과는 달리 밥 딜런은 기타도 멀찍이, 스틸 페달 기타도 멀찍이, 드럼도 저 멀찍이 세워둔 채 무심하게 노래한다. 빈틈없이 사운드가 들어찼던 옛 악보를 넘기고 아티스트는 개개의 악기와 악기, 보컬 사이에 고요함과 황량함이 그득한, 다른 스타일을 빚어낸다. 밥 딜런의 「On a little street in Singapore」, 「Melancholy mood」, 「That old black magic」은 그렇게 완성된다. 일체의 동요 없이 마른 듯한 감정으로, 노래의 한가운데로부터 조금은 떨어진 위치에서 차분하게 곡에 시선을 던지는 모습을 천천히 들여다보자.

 

익히 알고 있던 스탠다드 팝 특유의 웅장한 분위기와는 다른 장엄한 분위기가 다가온다. 대규모의 관현악 소리는 더 이상 우리를 압도하지 못한다. 이들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으니. 그러나 이번에는 여러 악기가 대거 빠진, 곳곳의 빈자리가 우리를 압도한다. 점차 흐릿하게 공간 속으로 사라져 가는 음들의 움직임을 인지하면서부터 적막감이 생겨나고, 러닝 타임을 차례로 이어받아 가는 곡들을 계속 마주하면서 적막감의 연속에 진하게 스며든다. 이는 거부하기 어려운 매력이다. 조금은 어색하고 생소하고 낯선, 그러나 받아들일 수밖에 없게 하는 이러한 매력을 밥 딜런은 재해석들이 지층처럼 수 겹 쌓인 스탠다드 팝 넘버들로부터 새롭게 이끌어냈다. 노련한 싱어송라이터에게는 원형에의 무자비한 해체와 무분별한 접합이 필요치 않다. 남다른 시각이 또 하나의 멋진 음반을 만들어냈다.


2016/05 이수호 (howard19@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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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이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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