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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엉덩이 주사를 맞는다고요?

엉덩이 주사는 맞을 이유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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엉덩이 주사의 효능은 엉덩이가 아픈 것뿐입니다. 맞을 필요가 없습니다. 어른도 대부분 마찬가지입니다. 드물게 엉덩이 주사로 항생제를 써야만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만, 흔한 질환으로 병원을 찾았을 때 맞을 이유는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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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를 바탕으로 결정을 내리는 것은 부모의 몫

 

지난 칼럼에서 해열제에 대해 썼습니다. 많은 분들이 관심을 가져 주셨습니다. 감사합니다. 웹사이트나 심지어 논문을 링크해가며 문의하신 분도 계신데 다 읽어보았지만 여전히 제 말이 맞습니다. 한 가지만 확실히 한다면 아이가 조금 열이 있어도 힘들어하지 않으면 해열제를 줄 필요가 없지 않는가 하는 질문입니다. 동의합니다. 요점은 힘든데 참고 있을 필요는 없다는 것입니다.

 

법원 앞에 가면 정의의 여신상이 있습니다. 저울을 들고 있지요. 저울은 공평무사의 상징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저는 가끔 저울이야말로 의료의 상징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합니다. 이야기를 하나 들려드릴게요. 한 아이가 있습니다. 착하고 공부도 잘 하는데 심장이 나빠요. 병이 중해져 뛰어 놀기는커녕 일상 생활도 제대로 못 합니다. 이대로 두면 오래지 않아 죽음을 맞게 될 것이 확실합니다. 수술을 하면 좋겠는데 위험이 큽니다. 수술 중에 죽게 될 가능성이 50%가 넘습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물론 결정은 부모가 내리는 것입니다(큰 아이라면 당사자의 의향도 중요하겠지요). 하지만 부모는 지식과 경험이 부족합니다. 그래서 의사가 필요합니다. 이상적인 상황이라면 의사는 모든 정보를 알려주고, 부모는 그 정보를 바탕으로 결정을 내립니다. 이렇게 내린 결정을 영어로는 ‘informed decision’이라고 합니다. 그래도 부모는 결정을 못 합니다. 너무 큰 것이 걸려 있기 때문이지요. 의사에게 조언을 구합니다. 이때 의사는 마음 속으로 저울을 꺼내 듭니다. 한쪽에는 이익을, 다른 한쪽에는 손해를 올려놓고 저울이 어디로 기우는지 지켜봅니다. 여기서 이익과 손해란 대부분 확정된 것이 아니라 미래에 속한 일입니다. 부정확하고 불확실합니다. 사실 의사도 어떻게 될지 모르죠. 다만 지식과 경험을 동원하여 환자 편에 서서 최대한 합리적인 판단을 내리려고 노력할 뿐입니다.

 

믿기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의사들은 모든 환자를 볼 때 마음 속으로 저울질을 합니다. 해열제를 주는 문제도 마찬가지입니다. 손해는 뭐가 있을까요? 약을 사야 하니까 돈이 들겠지요. 100% 안전한 약은 없으니 부작용이 생길 수도 있습니다. 약을 먹는 게 꺼림칙하다면 정신적인 손해가 있다고도 할 수 있겠습니다. 이익은? 열이 떨어지면 아이가 편합니다. 놀기도 하고 좀 먹을 수도 있게 됩니다. 부모도 한결 마음이 편하겠죠. 열이 지나치게 올랐을 때 생길 수 있는 탈수, 열성경련 등의 위험도 조금 줄어들 겁니다.

 

제가 글을 쓴 이유는 손해가 지나치게 부풀려져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되도록 약을 쓰지 말고 키우자는 데는 이견이 있을 수 없습니다. 하지만 필요할 때는 주저 없이 쓰는 지혜도 있어야 합니다. 해열제를 먹인다고 면역이 떨어지고, 건강하지 못한 아이로 자란다는 얘기는 아무런 근거가 없습니다. 근거 없는 믿음 때문에 아이를 고생시킬 필요는 없겠지요. 사실 아이가 열이 나서 힘들어 할 때 해열제를 주는 것은 아주 사소한 문제입니다. 사소한 문제에 지나치게 매달리지 마세요. 그러면 아이 키우기가 너무 힘들어집니다. 용법과 용량을 지키면 마음 편하게 먹여도 괜찮습니다. 그래도 못 믿겠다면? 앞서 말했듯 의사의 역할은 올바른 정보를 제공하는 것입니다. 정보를 바탕으로 결정을 내리는 것은 부모의 몫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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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한 질병에는 엉덩이 주사를 맞을 필요가 없다

 

오늘은 하지 말았으면 하는 일을 하나 말씀 드리고자 합니다. 바로 엉덩이 주사입니다. 아직도 엉덩이 주사를 주는 병원이 있다고 해서 깜짝 놀랐습니다. 왜 우리는 아프면 주사를 맞는 게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는 걸까요. 일단 주사에 대해 알아봅시다. 먹는 약이든 주사든 목표는 같습니다. 약물 성분을 혈액 속에 넣어주자는 것입니다. 약이 일단 혈액 속에 들어가야 피를 타고 온 몸을 순환하다 목표 장소에 도달하여 약효를 발휘할 수 있습니다. 먹는 약은 소화관에서 소화되어 아주 작은 약물 분자로 쪼개진 후, 흡수됩니다. 흡수되면 어디로 갈까요? 예, 혈관 속으로 들어갑니다. 근육 주사(엉덩이 주사)를 맞아도 약물이 근육으로 스며들어 결국 혈관 속으로 들어갑니다. 소위 ‘링겔’이라고 하는 정맥 주사는 약물을 아예 직접 혈관 속으로 넣어주는 것이고요.

 

약이 혈관 속에 들어갔다고 모든 일이 끝나는 게 아닙다. 약물이 혈관 속에 들어가면 피 속에서 약물의 농도, 즉 혈중농도가 올라가겠지요? 혈중농도가 아주 낮아도 약의 효과가 있을까요? 아닙니다. 혈중농도가 어느 정도 이상이 되어야 약의 효과가 나타납니다. 이걸 유효농도(치료농도)라고 합니다. 병이 나으려면 약물이 우리 몸 속에서 유효농도에 도달한 후 일정 기간 동안 유지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약물을 딱 한 번만 주면 유효농도에 도달했다가 금방 그 아래로 떨어져 버립니다. 그래서 유효농도 아래로 떨어지기 전에 다시 약을 투여해서 계속 유효농도보다 높게 유지시켜줘야 합니다. 며칠간 하루에 약을 2-3번씩 먹는 건 바로 이런 까닭입니다. 엉덩이에 주사 한 방 딱 맞으면 유효농도가 며칠씩 유지될까요? 아니지요. 그러니까 맞을 필요가 없는 겁니다. 효과를 보려면 하루 두세 번씩 며칠을 맞아야 하는데 그렇게 맞다 보면 엉덩이가 배겨나지 못할 겁니다.

 

병원에 감기나 설사 등 흔한 질환으로 갔을 때 엉덩이 주사로 줄 수 있는 약물은 크게 세 가지입니다. 일단 항생제. 이건 뭐 한 번 맞는 건 별 의미가 없죠. 항히스타민제. 역시 의미 없습니다. 항히스타민제는 먹는 약조차 감기에 굳이 줄 필요가 있는지 의문을 갖는 의사도 많습니다. 세 번째는 해열제. 이건 효과가 있을 수는 있는데 엉덩이 주사로 주는 것이 위험합니다.

 

먹는 해열제가 얼마든지 있고, 토해서 못 먹는 아이에게 쓰라고 항문에 쏙 넣어주는 좌약도 나와 있는데 굳이 위험을 무릅쓰고 주사를 줄 필요가 없지요. 결국 엉덩이 주사의 효능은 엉덩이가 아픈 것뿐입니다. 맞을 필요가 없습니다. 어른도 대부분 마찬가지입니다. 드물게 엉덩이 주사로 항생제를 써야만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만, 흔한 질환으로 병원을 찾았을 때 맞을 이유는 없습니다.

 

주사를 주지 않으면 아이들이 병원에 와서 울지 않습니다. 의사 입장에서는 진찰하기도 편하고 아이가 정작 크게 아플 때 조기에 발견할 수 있다는 이점도 있습니다. 부모 입장에서도 편하고, 아기도 편합니다. 드물게 주사 맞은 자리가 덧나거나 딱딱하게 뭉쳐서 오래 가는 수도 있습니다. 큰 문제는 아니지만 불필요한 걱정을 하게 됩니다. 요즘은 주사를 주는 병원이 크게 줄었는데, 아이가 좀 심하게 앓으면 부모가 졸라서 할 수 없이 주사를 주는 경우도 있다고 합니다. 걱정이 되는 심정은 이해합니다만 엉덩이 주사가 아무런 소용이 없다는 걸 아셨으면 좋겠습니다.

 

혹시 몰라서 덧붙입니다. 많은 백신(예방접종)과 성장 호르몬 등의 약물은 근육 주사를 해야 합니다. 이 약물들은 먹는 약으로 대체할 수 없으며 근육 주사의 효과가 충분히 연구되어 있습니다. 제 얘기는 흔한 질병으로 병원을 찾았을 때 주사를 맞을 필요가 없다는 뜻입니다. 정말, 정말 드물게 맞아야 하는 경우가 있다면 의사 선생님께서 잘 설명해 주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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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강병철(소아청소년과 전문의, 꿈꿀자유 서울의학서적 대표)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같은 대학에서 소아과 전문의가 되었다. 2005년 영국 왕립소아과학회의 ‘베이직 스페셜리스트Basic Specialist’ 자격을 취득했다. 현재 캐나다 밴쿠버에 거주하며 번역가이자 출판인으로 살고 있다. 도서출판 꿈꿀자유 서울의학서적의 대표이기도 하다. 옮긴 책으로 《원전, 죽음의 유혹》《살인단백질 이야기》《사랑하는 사람이 정신질환을 앓고 있을 때》《존스 홉킨스도 위험한 병원이었다》《제약회사들은 어떻게 우리 주머니를 털었나?》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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