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

[MD 리뷰 대전] 사람답게 일하는 세상을 꿈꾸다

인문 권하는 사회 『우리는 왜 이렇게 오래, 열심히 일하는가?』

  • 페이스북
  • 트위터
  • 복사

사람과 세상을 이해하는 것이 인문학의 기본이다. 인문 교양 MD는 잘 살기 위해 책을 읽는다. 그리고 책으로 말한다. 브리핑은 거들 뿐.

003 1610 chY 11월호 MD 리뷰대전 김도훈 우리는 왜 표지 이미지.jpg

 

빚을 내서 학교를 다니는 건 물론, 졸업과 취업 등 쉽사리 넘기 힘든 험한 산이 한두 개가 아니다. 결혼과 출산, 육아는 말할 것도 없고. 청년과 노년은 물론 중년까지, 모두가 힘들기만 한 세상이 되어 버려 씁쓸하기만 하다. 모든 문제가 독립적으로 존재하진 않지만 특히 한국 사회에서는 노동의 문제가 심각하다. 일자리 부족은 물론이요, 일을 하더라도 고용의 불안정과 취약한 노동 조건에 시달리며 일한다. 국가는 “기업 하기 좋은 나라”라고 홍보하지만 정작 기업만 좋고 노동자는 힘든 게 현실이 아니던가. 노동시간 부문에서는 항상 세계 1위를 다투는 한국사회를 향해 이 책은 묻는다. “우리는 왜 이렇게 오래, 열심히 일하는가?”

 

저자는 일이 우리 삶을 장악하고 있는 현실에 반기를 들면서 두 가지 중요한 개념, 우리 삶을 지배해온 노동윤리와 가족윤리의 문제를 꼬집는다. “일하기 싫은 자는 먹지도 말라.” 오래 전부터 통용되어 온 말이지만 오늘날 더욱 그 힘을 발휘하고 있다. 과거에는 근면한 노동을 요구했던 노동윤리가 이제는 모두가 일을 해야만 한다는 요구로 변모한 것이다. 신자유주의와 포스트신자유주의 체제는 거의 모든 사람이 임금을 벌기 위해 일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오늘날 노동윤리는 모두에게 돌아갈 만큼 일자리가 충분히 많지 않다는 점은 아랑곳하지 않으면서 일을 즐기라고 말하는 데까지 이르렀다.


가족윤리는 어떤가? 사회적 재생산의 사유화된 장치인 가족 제도 속에서 남성노동자는 가족을 부양하고 여성노동자는 그런 책임이 없을 것이라는 전제가 암묵적으로, 혹은 명시적으로 통용되고 있다. 가족 제도는 “임금을 버는 이들의 임금을 벌지 않는 이들에 대한 사회관계”로 여겨진다. 동일한 일을 해도 성별에 따라 다른 임금을 받는 게 현실이다. 저자는 임금노동에 뛰어든 여성이 일터에서는 37.2% 임금 격차에 시달리고, 집에서는 남편보다 약 다섯 배 많은 가사 노동을 떠안는 현실을 지적한다. 현재의 자본주의 구조를 지탱하는 두 기둥, 노동윤리와 가족윤리라는 공고한 인식 아래 우리는 마치 야근과 과로가 특권인 마냥 일하고, 여성은 직장에서는 덜 받고 집에서는 아예 아무 것도 받지 못한 채 일하고 있는 것이다.

 

이 책이 노동윤리와 가족윤리의 민낯을 드러내면서 요구하는 건 두 가지다. 조건 없이 모두에게 지급되는 기본소득과 주 30시간 노동. 기본소득을 통해 “노동을 가장 고결한 소명이자 도덕적 의무로 보는 이데올로기를 거부”하고, 노동시간 단축을 통해 또 다른 삶의 가능성을 도모한다. 우리는 살기 위해 일하는 것이지 일하기 위해 사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확인하게 하는 중요한 요구이기도 하다. 이런 요구가 비현실적이라는 지적은 당연히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이렇게도 오래 일하고 있는 상황이 오히려 더 비현실적으로 보이는 건 나 뿐이랴. 더 이상 이렇게 오래 일할 수만은 없는 노릇이다. 일을 즐기라는 사회를 향해 노동의 의미를 되물으며 노동으로부터 인간을, 특히 여성을 해방시키는 담대한 변화를 상상해보자. 일보다 사람이 먼저니까.


 

 

우리는 왜 이렇게 오래, 열심히 일하는가?케이시 윅스 저/제현주 역 | 동녘
끊임없이 일하도록 요구받는 동시에 언제나 불안감에 노출되어 있는 이들에게, 그리고 일을 일자리와 직업의 문제로 국한하지 않고 사회와 개인의 삶을 구축하는 근본적 축으로 조망하는 관점을 알고 싶은 이들에게, 그리고 더 나은 세상을 위한 대안을 구체적으로 고민하고 있는 이들 모두에게 일독을 권한다.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이 기사가 마음에 드셨다면 아래 SNS 버튼을 눌러 추천해주세요.

독자 리뷰

(1개)

  • 독자 의견 이벤트

채널예스 독자 리뷰 혜택 안내

닫기

부분 인원 혜택 (YES포인트)
댓글왕 1 30,000원
우수 댓글상 11 10,000원
노력상 12 5,000원
 등록
더보기

글 | 김도훈(문학 MD)

고성방가를 즐기는 딴따라 인생. 모든 차별과 폭력에 반대하며, 누구나 ‘사람답게’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을 꿈꾼다.

우리는 왜 이렇게 오래, 열심히 일하는가?

<케이시 윅스> 저/<제현주> 역16,200원(10% + 5%)

일을 넘어선 삶을 향한 대담한 요구 :조건 없는 기본소득, 주30시간 노동에서 시작하는 탈노동사회를 향한 전망 한국사회에서 역시 조건 없는 기본소득과 노동시간 단축은 중요한 의제로 떠오른 바 있다. 하지만 늘 이런 주장에 비판적인 논자들은 “현실적이지 않다”라는 말로 응대를 하곤 한다. 여기에 대해서는 ..

  • 카트
  • 리스트
  • 바로구매

오늘의 책

김기태라는 한국문학의 새로운 장르

2024년 가장 주목받는 신예 김기태 소설가의 첫 소설집. 젊은작가상, 이상문학상 등 작품성을 입증받은 그가 비관과 희망의 느슨한 사이에서 2020년대 세태의 윤리와 사랑, 개인과 사회를 세심하게 풀어냈다. 오늘날의 한국소설을 말할 때, 항상 거론될 이름과 작품들을 만나보시길.

제 17회 창비청소년문학상 수상작

제 17회 창비청소년문학상 수상작 『율의 시선』은 주인공 안율의 시선을 따라간다. 인간 관계는 수단이자 전략이라며 늘 땅만 보고 걷던 율이 '진짜 친구'의 눈을 바라보기까지. 율의 성장은 외로웠던 자신을, 그리고 타인을 진심으로 안아주는 데서 시작한다.

돈 없는 대한민국의 초상

GDP 10위권, 1인당 GDP는 3만 달러가 넘는 대한민국에 돈이 없다고? 사실이다. 돈이 없어 안정된 주거를 누리지 못하고, 결혼을 포기하고 아이를 낳지 않는다. 누구 탓일까? 우리가 만들어온 구조다. 수도권 집중, 낮은 노동 생산성, 능력주의를 지금이라도 고쳐야 한다.

잘 되는 장사의 모든 것

선진국에 비해 유독 자영업자의 비율이 높은 우리나라. 왜 대한민국 식당의 절반은 3년 안에 폐업할까? 잘 되는 가게에는 어떤 비결이 있을까? 장사 콘텐츠 조회수 1위 유튜버 장사 권프로가 알려주는 잘 되는 장사의 모든 것. 장사의 기본부터 실천법까지 저자만의 장사 노하우를 만나보자!


문화지원프로젝트
PYCHYESWEB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