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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무엇으로 사는가?

때로는 프로보다 아마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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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먹고사는 일 말고 미쳐 지내는 일이 하나쯤은 있어야 한다. 그저 취미라고 하기에는 보다 절실하지만 종교나 신념처럼 목숨 걸고 지켜야 할 무엇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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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_imagetoday

 

일제 강점기에 소년기를 보낸 지인의 아버님은 지금도 늘 당시를 회상하면서 아쉬워한다고 한다. 공부라면 누구보다 잘했고 못하는 과목이 없었지만 딱 한 과목 ‘창가’ 때문에 전교 1등을 놓쳤다는 것이다. 그때는 음악이라 하지 않고 창가라 했고 그 말뜻 그대로 노래를 부르는 시간이었다. 그리고 학교마다 합창반이 있어 서로 그 전통을 자랑삼기도 했다. 입시 때문에 합창반도 없어지고 합주부도 미술반도 하나둘 사라졌지만 ‘음악’ 시간에는 노래를 불렀고 ‘미술’ 시간에는 그림을 그렸다. 그러나 입시에 내신이 들어가면서부터 음악과 미술도 필기시험으로 우열을 가리는 것이 중요하게 되었고 그마저도 내신이 들어가지 않는 3학년이면 시간표에서 빠졌다.

 

아직도 일본의 중학교, 고등학교, 직장, 지역마다 크고 작은 아마추어 합창단과 밴드의 수가 헤아릴 수 없이 많다. 그렇게 통계를 좋아하는 일본이지만 이들 단체의 숫자를 정확하게 파악하기 힘들 정도라고 한다. 언젠가 하마마츠라는 작은 도시에서 열렸던 ‘전 일본 밴드 클리닉’이라는 행사를 참관하면서 아마추어 밴드 활동이 얼마나 활발한지 몸소 체험한 적이 있었다. 대한민국 못지않은 교육열에 대학 입시의 중압감 역시 크게 다를 바가 없는 일본에서 이렇듯 학교마다 밴드가 존재하고 그 관심과 열기가 뜨겁다는 것이 이해할 수 없었다. 역시나 일본에서도 밴드 활동으로 학업에 지장을 받을까 걱정하는 학부모들이 많았던지 이 문제를 논의하는 행사도 있었는데, 경험과 통계를 바탕으로 한 결론은 의외로 밴드 활동이 학업의욕을 고취하고 성적을 향상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는 것이었다.

 

싫든 좋든 지금의 우리 교육제도는 일본으로부터 비롯되었고 일본은 또한 영국의 교육제도를 받아들여 지금에 이르고 있다. 그러니 학교마다 합창반을 만들고 밴드부를 만든 것도 다 영국을 본받아 그렇게 했던 것이다. 영국의 아마추어 음악 활동의 전통과 수준을 가늠할 수 있는 예라면 세계 최고의 아카펠라 그룹으로 인정받고 있는 ‘킹스 싱어즈’의 경우를 들 수 있다. ‘킹스 싱어즈’의 멤버들은 이름처럼 캠브리지 대학교 킹스 컬리지의 합창반 출신으로 이루어져 있다. 취미를 직업으로 삼아 최고가 된 것이다. 그리고 영화 <브레스트 오프>는 대처 수상 시절 폐광과 실직의 아픔을 음악으로 이겨낸 탄광 노동자 밴드의 감동적인 이야기를 보여준다. 영국은 이처럼 사회 곳곳에서 아마추어 활동이 활발하기에 그 자부심 또한 대단하다. “노아의 방주는 아마추어가 만들었지만 타이타닉은 프로가 만들었다." 영국의 록그룹 에어로스미스의 스티븐 타일러가 자동차를 소개하는 BBC의 인기 프로그램 <탑기어>에 출연해서 한 말이다. 난생처음 배를 만든 노아는 홍수에도 견디는 튼튼한 배를 만들었지만, 세계 최고의 기술자들이 만든 초호화 여객선은 빙하에 깨져 가라앉고 말았다는 것이다.
             
미국 동부의 어느 작은 마을에 뉴욕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연주회가 있었다. 그런데 바로 다음 날 같은 장소에서 그 마을 고등학교 오케스트라의 연주회도 열릴 예정이라고 했다. 당연히 뉴욕 필의 연주회는 빈자리가 하나도 없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은 다음 날 연주회 역시 청중들로 객석이 가득 찼다는 것이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뉴욕 필의 연주회를 찾는 청중들은 대부분 편한 옷차림이었지만 아마추어 고등학생들의 연주회를 보러 온 청중들은 모두 정장 차림이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마치 무슨 중요한 의식이라도 치르는 것처럼 모두들 무척 진지한 모습으로 공연을 지켜보았다고 한다. 최소한 그들에게 있어서만큼은 뉴욕 필의 연주회보다 학생들의 연주회가 더 중요하고 뜻깊었던 모양이다.

 

일본에는 ‘오천인 합창제’가 있다. 해마다 합창을 좋아하는 사람 오천 명을 한 자리에 모아서 베토벤의 교향곡 9번 ‘합창’을 연습하여 연말에 오케스트라 반주로 연주하는 음악회이다. 지원하는 사람들 대부분은 아마추어 합창단에서 활동하는 사람들이고 다들 시간은 물론 적지 않은 비용까지 지불하면서도 앞 다투어 참여하려고 한다. 말이 오천 명이지 이들이 모두 한자리에 모여 한 목소리를 낸다는 것은 실로 머리카락이 쭈뼛 서는 감동이 아닐 수 없다. 나 혼자가 아니라 나와 생각이 같은 수많은 사람들이 함께 뜻있는 무엇인가를 해냈다는 성취감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을 것이다.

 

사람이 먹고사는 일 말고 미쳐 지내는 일이 하나쯤은 있어야 한다. 그저 취미라고 하기에는 보다 절실하지만 종교나 신념처럼 목숨 걸고 지켜야 할 무엇은 아니다. 살면서 늘 가까이하지 못하더라도 언제나 마음속 깊숙한 곳에 살아 있어 나도 모르게 꿈틀거리는 불씨가 바로 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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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홍승찬(한국예술종합학교 예술경영학 교수)

서울대학교 음악대학 작곡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 음악학과 석사 학위를 받은 뒤 서양음악학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현재 한국예술종합학교 예술경영전공 교수, (사)한국문화관광연구원 이사로 일하고 있으며 음악평론가로도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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