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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엄정화의 승리, 가수 엄정화의 건재 선언

엄정화 『The Cloud Dream Of The N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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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함없는 섹시 콘셉트와 퍼포먼스로 또 한 번 감탄을 자아낸 것도 그만의 한 방. 오직 엄정화이기에 가능한 결과물이다. (2018. 01.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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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박 8년 만의 가요계 복귀다. 2008년 YG와 합작한 EP <D.I.S.C.O> 이후 2016년 <The Cloud Dream of the Nine> 의 첫 번째 파트로 돌아오기까지 가수 엄정화의 흔적은 쉽게 찾을 수 없었다. 데뷔 이후 가장 길었던 공백은 건강상의 문제로 인한 것이었다. 갑상선암 수술 후 뜻하지 않은 성대 마비로 한동안 말하는 것조차 불가능했다는 그는 꾸준한 재활 치료와 연습을 거쳐 제자리로 돌아왔다. 고되고 불안했던 암흑기를 끝내는 쾌거다.

 

그사이 겪은 시련의 흔적은 앨범 곳곳에서 발견된다. 예의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미세하게 떨리며 숨이 많이 섞인 질감으로 바뀐 게 그 예다. 가수로서 치명적인 타격이지만, 앨범은 이를 애써 감추고 덮으려고 하지 않는다. 윤상이 속한 작곡 팀 원피스(OnePiece), 이민수, 켄지, 프라이머리와 수란 등 그를 위해 모인 드림팀은 현재의 보컬에 어울리는 정서, 스타일, 작법을 동원해 오늘의 엄정화를 그대로 조명했다. 과거와의 비교도 불사한 용감한 결정이다.

 

덕분에 엄정화의 스탠스는 탄탄하다. <Self Control>, <Prestige>로 이어지는 일렉트로닉 터치와 과거의 선명한 멜로디 사이에서 안정적인 절충안을 마련한 모양새다. 이는 <D.I.S.C.O>의 기획 의도와도 어느 정도 부합하나, 완성도 면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간다. 샤이니 종현과 함께한 「Oh yeah」, SM의 간판 작곡가 켄지가 도맡은 「So what」이 「Festival」의 활기를 기억하는 이들을 위한 것이라면, 날이 선 「Watch me move」, 「Photographer」는 최신 팝에 민감한 이를 겨냥한 것에 가깝다. 깔끔한 하우스 비트에 특유의 애수 어린 멜로디 라인을 접목해 화학작용을 일으키는 「버들숲」은 음반에서 가장 미래지향적인 수작이다.

 

오랜 팬과 신세대 대중을 동시에 공략하는 전략은 앨범의 타이틀곡 「Dreamer」와 「Ending credit」에서 특히 돋보인다. 엄정화의 시그니처인 서글픈 선율과 분명한 후렴, 몰아치는 댄스 비트의 조합에 세련된 전자음을 가미해 새로운 「배반의 장미」를 연출했다. 고유의 색깔을 잘 드러내면서 음향을 통해 신선도를 획득한 것이다. 스토리텔링에 힘을 준 「Ending credit」은 좀 더 각별하다. 래퍼 행주와 프라이머리가 쓴 가사에서 그는 ‘화려했었던 추억과 ‘영원할 것 같던 스토리’를 떠올리며 ‘한 편의 영화 주인공’ 같던 자신은 이제 없다고 말한다. 다른 가수가 불렀다면 이별 노래에 그쳤겠지만, 엄정화가 불러 남다른 무게감을 얻었다. 직접 가사를 쓴 발라드 「She」 역시 같은 맥락에서 의미가 깊다.

 

<The Cloud Dream of the Nine> 은 인간 엄정화의 승리이자 가수 엄정화의 건재 선언이다. 그는 “다시 노래할 수 없을까 봐” 두려워하던 지난날을 끝내 이겨냈고, 댄스 팝 가수로서 25년에 가까운 시간 동안 업계의 최전선에 머무르며 통산 열 번째 정규 앨범을 내놓았다. 트렌드와 개성을 잃지 않기 위해 민첩하게 움직인 덕이다. 여기에 2000년대 이후 앨범마다 유능한 뮤지션을 한데 모아 원하는 그림을 그리고자 했던 노력이 마침내 빛을 발했다. 변함없는 섹시 콘셉트와 퍼포먼스로 또 한 번 감탄을 자아낸 것도 그만의 한 방. 오직 엄정화이기에 가능한 결과물이다.

 

 


정민재(minjaej92@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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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이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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