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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계의 다정함은 요괴에게도 필요하다

영화 <나츠메 우인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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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히는 것을 두려워 말라. 그동안 맺은 다정한 관계들이 잔잔한 물결을 이루어 세상을 바꾼다. (2018. 11.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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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애니메이션 <나츠메 우인장>의 한 장면

 


일본 애니메이션을 보는 즐거움은 ‘일본적인 것’의 만발이기 때문이다. 자연 풍경도 건축물도, 남주인공도 동물도 일본 속으로 곧잘 나를 데려간다. 영화관에서 여행 떠난 기분, 이거 괜찮다. 게다가 일본 문화에 자주 등장하는 ‘요괴’ 이야기라면, 2시간 동안 나는 일본인에게도 먼 세상을 다녀온 셈이다.
 
22권까지 번역되어 한국에서도 꽤 많은 판매고를 올린 <나츠메 우인장>은 요괴를 육안으로 볼 수 있는 소년, 나츠메 다카시를 둘러싼 이야기다. 외할머니 레이코가 유품으로 남긴 ‘우인장’에는 온갖 요괴들의 이름이 담겨 있다. 이 장부 때문에 발이 묶인 요괴들이 제발 자신의 이름을 돌려달라며 나츠메를 지속적으로 따라다닌다. 표적이 된 나츠메 곁에는 ‘야옹 선생’이라는 귀여우면서도 카리스마 넘치는 경호 고양이가 함께하지만, 천하무적 ‘야옹 선생’이 삼등분되어 세 마리 새끼고양이가 되는 변고를 겪기도 한다.
 
극장판 <나츠메 우인장>에 나오는 요괴들은 하나같이 기이한 모습이지만, 멋지다.(이렇게밖에 표현 못하는 나를 원망한다.) 그 모습 그대로 티셔츠에 프린트하고 싶은 마음이 들 정도로 독창적이다.
 
요괴들과 대결하기 좋아하고, 대결에서 지게 된 요괴의 이름을 모아 ‘우인장’에 기록하고 부하로 만들어버린 외할머니 레이코 때문에 특별한 삶을 살게 된 나츠메. 일찍이 세상을 떠난 부모에 대한 기억도 희미한 나츠메는 레이코를 알 턱이 없다. 우인장 하나로 비범한 소년이 되었지만 인간적인 온기와 가족에 대한 그리움이 마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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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괴들이 주로 살고 있는 ‘5번가 마을’에 자신을 거둔 아주머니 심부름으로 건너간 나츠메는 우연히 소녀 시절의 외할머니 레이코를 만난 적 있는 ‘종이 오리기 공예가’ 요리에 씨를 알게 되어 집에 초대된다. 그녀의 아들 무쿠오와도 인사를 나누게 되는데, 여기 요리에-무쿠오 모자간의 숨겨진 사연에서 <나츠메 우인장>의 정서가 고스란히 배어난다. 8년 전 아들 무쿠오는 산에서 사고로 세상을 떠났고, ‘가짜 무쿠오’가, 그러니까 요괴가 진짜 무쿠오를 대신해 어머니를 위해 살고 있었던 것.
 
이쯤 되면 ‘요괴’라고 부르기도 미안하다. 아무튼 인간의 다정함이 그립고 인간의 아픔을 위로하고 싶은 호기심이 넘치는 요괴가 있고 종이 틈으로는 보이지 않는 다른 세상이 보고 싶어 종이 오리기를 시작했다는 여인이 있다. 8년간 사는 동안 이 요괴-여인 모자는 애틋한 추억이 많다. 그러나 요괴라는 존재 자체가 영원할 수는 없으니, 떠나야만 한다. 인간의 모습으로 살았던 ‘가짜 무쿠오’는 떠나는 순간 어머니의 슬픔을 누가 달랠지 하는 안타까움과 자신이 잊힐 거라는 쓸쓸함을 고민하게 된다. 요괴지만 인간적이다. 요사스러울 만큼 인간적이다.

애니메이션 초반부에 나츠메의 친구 사사다가 웅변대회에 나가 전한 이야기가 가슴 찡하다. 잃어버린 물건을 찾으러 학교의 낡은 건물에서 헤매던 사사다는 그 물건을 주워준 요괴를 잊지 못한다. 웅변대회에서는 그를 차마 사람으로밖에 표현할 수 없는 사사다의 마지막 결구.
 
“형태가 있는 건 부서지고 기억이 사라진다. 그러나 그 경험 덕분에 다정함을 배웠고 주변 관계까지 조금씩 개선되었다. 낡은 건물이 사라진 빈터를 볼 때마다 그 사실을 깨닫는다.”
 
잊히는 것을 두려워 말라. 그동안 맺은 다정한 관계들이 잔잔한 물결을 이루어 세상을 바꾼다.
 
이름들이 기록된 우인장을 펼쳐 주문을 외우면 해당 글자가 허공을 떠돌다 요괴 속으로 스며든다. 이름하여 봉인 해제. 이름 글자가 망가지면 상처받고 존재감도 없어지는 요괴들. 이름 없인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는 게 사람 말고 또 있다.
 
일본의 애니메이션에서 귀신, 요괴, 정령은 거의 빠지지 않는 흥미로운 소재. 자연재해가 많은 곳에서 생기는, 운명은 거스를 수 없다는 인간적 각성이 낳은 문화일까. 인간의 힘으로 도저히 어찌할 수 없고 예측할 수 없는 세상을 요괴와 함께 건너가려는 것일지도. 인간도 요괴도 관계의 다정함을 내내 그리워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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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정은숙(마음산책 대표)

<마음산책> 대표. 출판 편집자로 살 수밖에 없다고, 그런 운명이라고 생각하는 사람. 일주일에 두세 번 영화관에서 마음을 세탁한다. 사소한 일에 감탄사 연발하여 ‘감동천하’란 별명을 얻었다. 몇 차례 예외를 빼고는 홀로 극장을 찾는다. 책 만들고 읽고 어루만지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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