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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나비, 대중음악에 바치는 헌사

잔나비 <전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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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티지의 가치는 충분히 확인했으니, 전설의 그림자에 가리지 않으려면 스스로 전설이 되겠다는 포부를 가질 때다. (2019. 03.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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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설>은 스트리밍 시대의 라디오 골든 팝이다. ‘세련된 촌스러움’이란 수식처럼 더 잔잔하고 부드러우며 영롱한 감성의 복원이다. 아날로그의 가장 마지막 세대인 1992년생 잔나비가 닮고 싶은 전설은 과거 FM 라디오 속, 아련한 시그널과 정겨운 디제이가 안내하던 197-80년대의 대중음악이다. 레트로를 1980년대 힙합과 뉴웨이브, 시티팝으로 인식하는 최근 경향에서 여전히 흔한 시도는 아니다.

 

「주저하는 연인들을 위해」가 디지털 세대에게 호응하는 것은 낯선 매력 덕이다. ‘뜨거운 여름밤은 가고 남은 건 볼품없지만’을 이영훈과 이문세, 유재하의 문법으로 여리게 세공한 이 곡은 <응답하라 1988>, 아이유의 <꽃갈피>로만 알고 있던 1980년대 발라드를 친절히 소개한다. 가사를 인용하자면, 세련된 코드워크와 예쁜 멜로디가 ‘스윽 훑고’ 가면서 ‘긴 여운을’ 남기는 그 시절 좋은 노래다. 디지털 시대에 생소하고도 새로운, 오래된 감성의 힘을 발휘했다.

 

작품 전체로도 계승, 특히 1970년대 사색의 시대를 재해석하는 개념이 짙다. 차분한 건반의 주도 아래 후렴부로 감정을 고조하는 「나의 기쁨 나의 노래」에선 사이먼 앤 가펑클과 랜디 뉴먼을 쉽게 떠올릴 수 있다. 깔끔한 밴드 사운드와 스트링 세션을 거쳐 신비로운 코러스를 전개하는 「투게더!」 역시 1970년대 소프트 록 플레이리스트의 잔향으로 가득하다. 「우리 애는요」의 천진한 리듬은 엘튼 존과 워렌 제번의 이름 아래 있고 잔잔한 어쿠스틱 트랙 「신나는 잠」은 제임스 테일러를 닮았다.

 

여러 전설을 언급하는 과정에서 잔나비의 이름은 흐릿하다. 일관된 구성을 갖되 개별 곡의 밀도 역시 놓지 않았던 <Monkey Hotel>에 비해 메시지는 모호하고 선율의 감도도 낮다. 전체 앨범의 결은 돋보이나 기억에 남는 순간이 많지 않고 정적인 아우라만 부유한다. 결정력의 부재는 밴드보다 밴드가 닮고 싶어 하는 뮤지션의 이름을 떠올리게 한다.

 

「투게더!」는 더 치고 나가야 할 부분에서 팔세토(가성) 보컬이 나서고 「조이풀 조이풀」은 인상적인 도입부를 받치는 장치로 핵심 선율 대신 스트링 세션과 풍성한 코러스를 택한다. 차분한 기타 리프와 보컬 라인이 분위기를 형성하는데 그치는 「거울」, 밀도 있는 연주를 만들어두고 ‘넋두리’라 표현한 가벼운 보컬과 메시지를 배치한 「나쁜 꿈」도 단점을 공유한다. 추구하는 음악이 팀의 음악보다 앞서면서 개성이 약해졌다.

 

다행히 밴드는 좋은 곡을 쓸 수 있는 팀이다. 레퍼런스에 갇힌 여러 노래에 비해 장치 없이 멜로디와 메시지에 집중한 「주저하는 연인들을 위해」, 「꿈과 책과 힘과 벽」은 잔나비의 이름으로 오래 기억에 남는다. 한껏 부풀린 사운드 위 선 굵은 연주와 보컬을 각인하는 「전설」도 모범적이다.

 

앨범은 본인들을 음악의 길로 이끈 올드팝, 대중음악에 바치는 헌사다. 고전에 대한 존경과 레트로 마니아의 바람직한 자세가 어우러져 부모와 자녀가 함께 들을 수 있는, 몇 안 되는 요즘 음악의 지위를 확보했다. 빈티지의 가치는 충분히 확인했으니, 전설의 그림자에 가리지 않으려면 스스로 전설이 되겠다는 포부를 가질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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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이즘

이즘(www.izm.co.kr)은 음악 평론가 임진모를 주축으로 운영되는 대중음악 웹진이다. 2001년 8월에 오픈한 이래로 매주 가요, 팝, 영화음악에 대한 리뷰를 게재해 오고 있다. 초기에는 한국의 ‘올뮤직가이드’를 목표로 데이터베이스 구축에 힘썼으나 지금은 인터뷰와 리뷰 중심의 웹진에 비중을 두고 있다. 풍부한 자료가 구비된 음악 라이브러리와 필자 개개인의 관점이 살아 있는 비평 사이트를 동시에 추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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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나비>22,300원(19% +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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