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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dass : 세상에 자신들의 발자국을 찍는 멋진 여성들

<월간 채널예스> 2019년 4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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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번역이 아니라는 조건에서 “존잘님” 이라고 옮기면 그럭저럭 통하지 않을까 싶지만 역시 5프로 정도 부족하다. (2019. 05. 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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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피아 아모루소의  『걸보스』  를 번역할 때 나를 가장 골치 아프게 한 단어는 badass 였다. 나는 이 단어를 이 책에서 처음 보았고, 처음엔 도무지 뜻을 파악할 수가 없다가 문맥을 파악하고 검색을 해본 후에야 어렴풋이 감을 잡았다. bad는 “나쁜”이고 ass는 “엉덩이”란 뜻이지만 이 두 단어가 결합하면 “끝내주게 멋진 사람”이 된다. 그저 멋진 사람이 아니라, 쿨하고 끼 있고 강인해야 하고 무엇보다 능력자여야 한다. 이 책의 주인공인 소피아 아모루소처럼 끼니를 때우기 위해 쓰레기통을 뒤지던 신세에서 1억 달러 이상의 매출을 기록한 온라인 쇼핑 업체 내스티 갤의 창립자이자 CEO 정도가 된다면 badass라는 칭호에 걸맞는 인물이라고 할 수 있겠다. 소피아의 인생 역전 스토리는 <걸보스>라는 드라마로 제작되어 넷플릭스에서 방영되기도 했다.


그렇다면 방구석에서 원문의 거침없는 문체를 어떻게 옮길까 고심하던 번역가는 이 단어를 어떻게 번역했을까.

 

“당신은 이 세상을 호령하게 될 것이고 그 과정에서 세상을 변화시킬지도 모른다. 당신은 최강자이다.” 이렇게 최강자라고 번역해놓고 아무래도 아쉬워 소심하게 괄호에 badass를 써 넣은 다음 “당신이 짱 먹는다” 라면 지금 보면 촌스러운 표현을 붙여 놓았지만 당연히 이 대안은 통과되지 않았다.


“소피아는 ‘badass bitch’ 이니까요” 라는 문장에서는 “소피아는 똘끼충만이니까요.” 라고 옮기긴 했는데 역시 원문을 병기해두었다. 똘끼충만 울트라 슈퍼 쿨 킹왕짱이어야 할 것 같지만 책에 유행어나 속어를 많이 쓸 수는 없으니 편집자의 판단에 맡기기로 했다.  


badass라는 단어를 숙지하고 난 후부터 이 단어가 미국 영어에서 수시로 등장하는 최고의 찬사임을 알게 되었다. 남녀 구분 없이 쓸 수 있는 표현이지만 첫만남을 걸보스로 했기 때문인지 이 단어와 어울리는 여성들에게 주목했다.

 

『나쁜 페미니스트』  의 록산 게이는 당연히 badass이고 제인 구달, 글로리아 스타이넘,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 같은 위인들도 badass라고 한다. 어번 딕셔너리에 길게 풀어 놓은 뜻을 보면 더욱 수긍하게 된다. “두려움 없이 자기다운 모습으로 세상을 변화시키는 사람으로 도덕적으로도 훌륭하다. 슈퍼 울트라 쿨하며 dumbass(찌질이, 바보)와 정확히 반대되는 사람이라 수 있다.” 행동 강령도 있다. 자만하지 않고 약한 자를 공격하지 않고 싸워야 할 때만 싸우며 스스로에게 철저하다.   


출판번역이 아니라는 조건에서 “존잘님” 이라고 옮기면 그럭저럭 통하지 않을까 싶지만 역시 5프로 정도 부족하다.  


여전히 성에 차는 번역어를 찾지 못한 채 언론과 방송과 출판계에서 주체적이고 걸출한 여성들을 보면 “저 사람도 badass로군” 이라고 혼잣말을 하기 시작했다. 개그우먼 김숙이라든가 범죄심리학자 이수정 교수님, 『예민해도 괜찮아』  의 이은의 변호사도 이 카테고리에 포함된다고 생각한다. 트위터에서는 소셜 클럽 울프를 경영하면서 광고계에서 여성의 목소리를 높이려는 김진아 크리에이터가 단연코 badass로 보인다. 팟캐스트 <영혼의 노숙자>의 셀럽 맷님도 쿨하고 멋진 badass이다.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의 김하나, 황선우 작가의 실력과 행보 또한 badass의 특징에 모두 들어맞는다.


이렇게 badass라는 단어를 멋진 여자들에게 적용하는 도중 나는 어떤 사람일까 생각하기도 한다. 나처럼 남들이 세워 놓은 규칙에 따르며 사는 소시민에 싸워야 할 때 싸우지 못하고 집에 와서 이불킥하며 혼자 구시렁거리기나 하는 나약한 인간은 절대 이 단어 근처에도 가지 못한다는 걸 기꺼이 인정한다. 할 수 없지. 이 시대의 “존잘님들” 근처에 어떤 식으로는 머무는 사람이라도 되면 어떨까.


그래도 나는 우리 시대의 대표 페미니스트 작가인 록산 게이의 책을 번역하는 번역자이며 언젠가 록산 게이가 트위터에서 내 이름을 언급해준 적도 있지 않은가. 나는 트위터의 매력 있는 여성들에게 응원을 보내는 트친이기도 하고, 이들이 나를 재미있어 해주기도 한다. 가끔은 욕심이 생겨서 이들과 절친한 친구가 되거나 생활 반경 안에 들어가고 싶기도 하다. 그러다 다시 한번 나의 특기라 할 수 있는 자기 객관화로 들어간다.


“badass”의 친구들은 어떤 특징을 갖고 있을까? 영화에서 주인공의 친구 역할을 한 배우들은 캐리 피셔, 주디 그리어, 조안 쿠삭 등으로 이들을 닮으려면 개성 있는 외모, 자신감 넘치는 태도, 촌철살인의 입담을 겸비한 씬 스틸러가 되어야 한다.


지루하고 무난한 안부 인사나 건네는 나는 “존잘님” 옆의 개성 있는 조연 캐릭터와도 전혀 닮지 않았다는 냉정한 현실을 받아들여야만 했다.


몇 년 전 역시 “badass ladies” 중 한 명인 외국 저자의 강연을 간 적이 있다. 그 책을 번역한 최고의 번역가 분과 아는 사이인 나는 인사를 하고 대화를 나누었고 어쩌다 보니 그 분 옆이자 앞에서 세 번째 자리에 앉게 되었다. 강연이 끝나고 나서 보니 그 행사를 어렵게 기획한 편집자 또한 나의 친구였다.


그날 집으로 오면서 인격과 실력을 겸비한, 세상에 자신들의 발자국을 찍고 있는 멋진 여성들의 지인 5이자 동창 6으로만 살아도 나쁘지 않다는 생각을 했다. 이들에게 자극 받다 보면 나도 조금은 닮아가기 때문이기도 하고, 이들은 자기의 길뿐만 아니라 다른 이들의 길까지 넓혀 주고 있는 진정 “badass” (울트라 킹왕짱 능력자)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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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노지양(번역가)

연세대학교 영문학과를 졸업하고 KBS와 EBS에서 라디오 방송 작가로 일했다. 전문번역가로 활동하며 《나쁜 페미니스트》, 《위험한 공주들》, 《마음에게 말 걸기》, 《스틸 미싱》, 《베를린을 그리다》, 《나는 그럭저럭 살지 않기로 했다》 등 60여 권의 책을 번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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