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

하하하, 오해입니다

산책할 때 생각한다

  • 페이스북
  • 트위터
  • 복사

회사원은 시간을 자유롭게 쓰는 프리랜서가 좋아 보이고, 프리랜서는 정기적으로 월급을 받는 회사원이 좋아 보인다. (2019. 08. 22)

언스플래쉬.jpg

언스플래쉬

 

 

산책할 때 생각한다. 우리를 둘러싼 소소한 오해들에 대해서. 

 

원주에 있는 창작 레지던스에 머물 때, 시골 생활이 처음이라 내내 들떠있었다. 저녁을 먹고 작가들과 산책할 때 웬 새소리가 들렸다. “새가 우네. 선배, 이거 무슨 새가 우는 거예요?” 선배의 일갈. “개구리야!” 사람들이 와르르 웃었다. 개구리와 새 울음도 구별 못하다니 오해했다. (무식했나?) 서울에서 자란 나는 자연의 무자비함이나, 농사의 고됨, 순서에 맞게 꽃이 피고 지는 자연의 섭리에 무지했다. 시골 생활이 낭만적으로 보였다. 시골에서 자란 친구에게 농부들의 정직ㆍ성실한 생활을 찬미했더니 그의 대답. “농사는 형벌이야.” 오해했다.
 
산책할 때 생각한다.

 

얼마 전, 남편과 산책하는데 개구리 소리가 들렸다. 드디어 개구리군. ‘이제 좀 아는’ 나는 외쳤다. “우와, 개구리 우는 소리 좀 들어봐!” 나직이 건너오는 대꾸. “맹꽁이야.” 과연, 맹꽁이는 개구리와 달랐다. 좀 더 “매앵꼬옹― 매앵꼬옹”(?), 하고 울었다. 개구리를 새로, 맹꽁이를 개구리로, 오해했다. 이런 적도 있다. 일전에 남편이 뱉어놓은 곶감 씨앗을 아몬드인 줄 알고 냉큼 깨물어먹으려다… 이가 부러질 뻔 했다. 오해했다.

 

산책할 때 생각한다.

 

종일 소파에 누워 텔레비전 앞을 지키는 당신에게 게으르다고 핀잔을 주었다. “몸이 무거워. 참 무력하네.” 말하는 당신. 소파에 녹아 든 당신을 뒤로 하고 홀로 산책하는 길. 개구리도, 맹꽁이도, 새도 울지 않았다. 여름도 끝인가, 고개를 수그리고 걷다 깨달았다. 종일 소파에 파묻혀 일어나지 못하는 당신은 몸이 좋지 않은 게 아니라, 마음이 좋지 않았던 게 아닐까? 그러고 보니 얼굴에 우울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었다. 오해했다. 당신과 우울과 여름의 끝과 맹꽁이에 대해 생각하며 걷는데, 중년 남자 둘이 떠들며 걸어왔다. “그러니까 내 요지는, 돈이면 해결 안 되는 게 없다는 거야! 돈이면 대부분 문제가 다 해결돼. 돈이 다야. 정말이라니까?” 돈, 돈, 돈. 세 번의 ‘돈’ 소리가 나를 스쳐갔다. 잠깐 돈 생각(정확히, 돈 걱정)을 조금 하다, 돈이면 정말 다 해결이 될까 의심해 보았다. 아무래도… 아저씨? 오해하셨습니다. 
 
산책할 때 생각한다.

 

밖에서 보면, 오해하기 좋은 일에 대해. 방랑하는 자는 따뜻한 불빛 아래 사는 정주자가 좋아 보이고, 정주자는 방랑자의 분방한 생활이 좋아 보인다. 회사원은 시간을 자유롭게 쓰는 프리랜서가 좋아 보이고, 프리랜서는 정기적으로 월급을 받는 회사원이 좋아 보인다. 남자는 여자가 여자는 남자가, 아이는 어른이 어른은 아이가 좋아 보인다. 사장님은 직원이 직원은 사장님이 좋아 보인다. 도시생활자는 전원생활이, 전원생활자는 도시생활이 좋아 보인다. 오해다. 좋아 ‘보인다’는 것에 주목하자. 보이는 것은 실제와 다르다. 오해는 나 편하자고 하는 것, 생각이 가는대로 가보자고 떠나는 이기적인 산책이다. 실체를 보지 못하고, 테두리만 볼 때 일어나는 ‘작은 비극’이다. 테두리만 본다는 것― 그것은 쉽고 편하고, 자신만만하게 일어나는 실수다.

 

걷다 보면 마음은 정말이지 ‘마음대로’ 간다. 돈이나 사랑, 여름의 끝, 우울, 맹꽁이 소리 같은 것을 이끌고 간다. 종국엔 어디에 도착할까? 나만 있고, 나만 좋은 곳? 아니다. 실은 나도, 당신도 없는, 이상한 바다에 도착한다. 오해(海)? (썰렁해서 미안합니다)

 

 

배너_책읽아웃-띠배너.jpg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이 기사가 마음에 드셨다면 아래 SNS 버튼을 눌러 추천해주세요.

독자 리뷰

(1개)

  • 독자 의견 이벤트

채널예스 독자 리뷰 혜택 안내

닫기

부분 인원 혜택 (YES포인트)
댓글왕 1 30,000원
우수 댓글상 11 10,000원
노력상 12 5,000원
 등록
더보기

글 | 박연준(시인)

1980년 서울에서 태어나 동덕여대 문예창작과를 졸업했다. 2004년 중앙신인문학상에 시 '얼음을 주세요'가 당선되어 문단에 나왔다. 시집『속눈썹이 지르는 비명』『아버지는 나를 처제, 하고 불렀다』가 있고, 산문집『소란』을 냈다.

오늘의 책

산업의 흐름으로 반도체 읽기!

『현명한 반도체 투자』 우황제 저자의 신간. 반도체 산업 전문가이며 실전 투자가인 저자의 풍부한 산업 지식을 담아냈다. 다양한 용도로 쓰이는 반도체를 각 산업들의 흐름 속에서 읽어낸다. 성공적인 투자를 위한 산업별 분석과 기업의 투자 포인트로 기회를 만들어 보자.

가장 알맞은 시절에 전하는 행복 안부

기억하기 위해 기록하는 사람, 작가 김신지의 에세이. 지금 이 순간에 느낄 수 있는 작은 기쁨들, ‘제철 행복’에 관한 이야기를 전한다. 1년을 24절기에 맞추며 눈앞의 행복을 마주해보자. 그리고 행복의 순간을 하나씩 늘려보자. 제철의 모습을 놓치지 않는 것만으로도 행복은 우리 곁에 머무를 것이다.

2024년 런던국제도서전 화제작

실존하는 편지 가게 ‘글월’을 배경으로 한 힐링 소설. 사기를 당한 언니 때문에 꿈을 포기한 주인공. 편지 가게에서 점원으로 일하며, 모르는 이와 편지를 교환하는 펜팔 서비스를 통해 자신도 모르게 성장해나간다. 진실한 마음으로 쓴 편지가 주는 힘을 다시금 일깨워주는 소설.

나를 지키는 건 결국 나 자신

삶에서 가장 중요한 건 무엇일까? 물질적 부나 명예는 두 번째다. 첫째는 나 자신. 불확실한 세상에서 심리학은 나를 지키는 가장 확실한 무기다. 요즘 대세 심리학자 신고은이 돈, 일, 관계, 사랑에서 어려움을 겪는 현대인을 위해 따뜻한 책 한 권을 펴냈다.


문화지원프로젝트
PYCHYESWEB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