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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로타이, 거친 외면에 묻힌 내면

슬로타이(slowthai) <TYR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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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핍을 양분 삼아 뻗어가는 뿌리에 어떠한 설득도 필요하지 않다. (2021.03.17)


충격적인 데뷔였다. 2019년, 모국의 브렉시트 정책을 비판한 첫 번째 앨범 <Nothing Great About Britain>으로 오피셜 차트 9위를 차지한 슬로타이는 영국 악센트로 내뱉는 날것의 플로와 날카로운 정치적 메시지로 순식간에 대중과 평단의 이목을 끌었다. 다만 머큐리 프라이즈 시상식에서 보리스 존슨 총리의 잘린 목 모형을 흔들며 논란을 일으키는 등 주목도와 비례하는 기괴한 행보는 그를 비난할 구실이 되었고, 슬로타이는 자신을 차분하게 돌아볼 시간을 갖는다. 그의 본명을 내세우며 거칠었던 외면에 묻힌 내면을 드러낸 두 번째 정규 <TYRON>이다.

짜임새부터 눈에 들어온다. 대문자와 소문자로만 적힌 제목으로 확실하게 영역을 나눈 앨범은 그를 대표했던 스타일, 힙합과 그라임으로 꾸려진 CD 1로 시작한다. 긴박한 샘플의 반복과 묵직한 비트로 구성된 '45 SMOKE'로 출발하는 슬로타이의 래핑은 곧 반주의 변화를 거쳐 광기를 표출하고 트랩이 가미되며 스켑타(Skepta)의 중독적인 훅이 지배하는 'CANCELLED'과 에이셉 라키(A$AP Rocky)의 'MAZZA'에서도 밀리지 않는 존재감을 발휘한다.

'VEX' 이후부터 CD 2 이전까지의 흡인력이 대단하다. 트랙 'WOT'은 짧은 플레이 타임 속 잘게 나눠진 신시사이저와 톤 다운된 목소리로 낮게 깔린 분위기를 형성한 뒤 몰아치는 랩이 돈이 아닌 음악을 통해 영원히 살아남고 싶은 다짐을 밝히는 'DEAD'까지 이어진다. 초조하게 소셜미디어, 나태, 고정관념 등에 대한 반감을 쏟아내는 전개가 다소 지칠 수 있지만 <TYRON>의 첫 파트는 곡마다 변주를 통해 쉴 틈 없이 긴장을 유지한다.

팽팽하게 당겨진 앨범은 'PLAY WITH FIRE'의 경쾌한 총성으로 끊어진다. 느슨한 박자 위로 '부정에서 찾은 긍정'이란 기존의 그와 다른 화두를 던지며 다음 페이지를 암시하고 자연스럽게 'i tried'로 연결된다. 보컬 소스와 로파이로 전달하는 슬로타이의 개인적 기록은 불행한 과거를 '다른 곳에 집중'해 벗어난 경험 'focus'를 지나 유기성을 획득하며 CD 2의 전반적인 서사를 가꿔간다. 노샘프턴 출신 아티스트의 절대 순탄하지 않았던 생애는 'push'로부터 스스로에 대한 믿음을 회복하고 항상 주변에 머무는 것들에게 감사를 표현하는 'nhs'까지 더해 처절하지만 따뜻하게 청자를 감싼다. 고단한 재생의 과정이 부드럽게 마음에 스며든다.

참여진의 활약도 두드러진다. 도미닉 파이크와 덴젤 커리의 후렴이 매력적인 'terms'와 공동 프로듀서 돔 메이커(Dom Maker), 제임스 블레이크가 선사하는 세상을 떠난 동생에 대한 추모곡 'feel away'는 공간을 가득 채우는 앰비언트 사운드로 몽환적이다.

어느 때보다 편안하지만 결국 분노와 절규로 귀결되는 마지막 트랙 'adhd'가 <TYRON>을 요약한다. 위로와 울분 등 어쩌면 일관되지 못하고 양분된 감정이 혼란스럽지만 이 또한 규정지을 수 없는 슬로타이. 아니 인간 타이론의 순수한 형태이다. 결핍을 양분 삼아 뻗어가는 뿌리에 어떠한 설득도 필요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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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이즘

이즘(www.izm.co.kr)은 음악 평론가 임진모를 주축으로 운영되는 대중음악 웹진이다. 2001년 8월에 오픈한 이래로 매주 가요, 팝, 영화음악에 대한 리뷰를 게재해 오고 있다. 초기에는 한국의 ‘올뮤직가이드’를 목표로 데이터베이스 구축에 힘썼으나 지금은 인터뷰와 리뷰 중심의 웹진에 비중을 두고 있다. 풍부한 자료가 구비된 음악 라이브러리와 필자 개개인의 관점이 살아 있는 비평 사이트를 동시에 추구하고 있다.

Slowthai (슬로타이) - TYR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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