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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이 콜이 남긴 커리어의 유의미한 분기점, The Off-Season

제이 콜(J. Cole) <The Off-Seas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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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련한 스토리텔링의 <2014 Forest Hills Drive>만큼의 문학적 성취는 아닐지라도, 스포츠에서 다음 시즌을 준비하는 '오프 시즌'처럼 커리어에 유의미한 분기점이 될 수 있는 작품이다. (2021.06.23)


데뷔 14년 차를 맞아 제이 콜의 힙합 신 내 위상은 절정에 달했다. 다섯 장의 넘버원 앨범에 이어 신작 <The Off-Season>도 삽시간에 빌보드 싱글, 앨범 차트를 굴복시키며 그가 일으키는 여파를 체감시키는 중이다. 숱한 신의 강자들 사이에서도 그가 독자적인 존재로 칭송되는 데에는 수준 높은 음악도 음악이지만, 한결같이 의식적이고 성숙한 태도가 큰 몫을 한다. 푯값 1불짜리 '달러 앤드 어 드림' 투어와 빌보드 인터뷰 등을 통해 꾸준히 표해온 자신의 지지자들을 향한 경의는 강한 유대감을 조성했고, 이는 그의 팬들을 단순 팬을 넘어 충심 어린 추종자로 만들었다.

음악적으로도 트렌드세터의 이미지가 강한 카니예 웨스트나 드레이크의 경우와 달리 그는 자기 성찰적 메시지를 주무기로 흑인 사회에 긴밀한 공감대의 뿌리를 내리는 것이 특징이다. 붐뱁 프로덕션 위 자신의 인생사를 끄집어낸 <2014 Forest Hills Drive>의 서사는 리릭시스트로서 그의 정체성을 각인한 수작으로 남아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이러한 정직한 음악적 지향점에 '지루한 래퍼'라는 비판을 내리며 그의 한계를 결부하기도 했는데, 비슷한 위상의 여타 힙합 뮤지션과 비교해 뱅어의 성질을 띠지 않는 느긋한 템포와 깔끔하지만 정석 이상에 도달하지 않는 단조로운 프로덕션 탓이었을 것이다.

그의 여섯 번째 정규 앨범 <The Off-Season>은 그러나 첫인상에서부터 아티스트의 그러한 관습에서 벗어나려는 움직임이 엿보이는 작품이다. 우선 눈에 띄게 달라진 점은 프로덕션의 참여진이다. 이전에도 외부 조력자의 힘을 빌리지 않은 건 아니지만, 이번에는 셀프 프로듀싱의 고집을 더욱 내려놓고 과반수의 곡을 다른 비트메이커의 비트로 채워 편곡적 다양화를 꾀했다. 첫 트랙 '95 south'에서 드레이크 <Views>와 리아나 'Work' 등의 작품으로 유명한 프로듀서 보이원다(Boi-1da)가 주조한 호른 샘플이 호기로운 공간감을 그리고 나면 거장 팀버랜드에게 요청한 'Amari'가 명징한 플루트로 긴장감을 상승시키고, 엔딩 곡 'Hunger on hillside'가 주니어 파커의 'I wonder where our love has gone'을 발췌한 스트링 세션에 오토튠을 겹겹이 쌓아 끝을 우아하게 장식하는 식이다.

랩도 그에 맞춰 보다 활달한 에너지로 갑절의 듣는 맛을 안긴다. 2분 남짓의 짧은 길이에 일률적인 라이밍을 구사한 'Applying pressure'와 'Punchin' the clock'의 간소화가 안정적이다. 흡사 정규 앨범 수록곡보다 잘 짜인 프리스타일을 연상시키기도 해 얼핏 심심한 인상이 남지만, 다른 곡들에서는 또 하나의 호착(好着)이 뒤를 받치고 있다. 강화된 피쳐링진이 그것이다. 현대적인 감각을 살려줄 수 있는 젊고 트렌디한 래퍼를 끌어와 'Pride is the devil'의 침잠하는 기타 위 제이 콜의 속도감에 릴 베이비의 웅얼거림을, 'My life'의 강렬한 3연음 래핑에 21 새비지의 나른한 톤을 자연스럽게 배합했다.

중반부를 지나 더욱 깊어지는 메시지의 잔향도 변함없는 스토리텔러로서의 제이 콜 면모를 확인시키는 지점. 삶과 죽음, 자기반성 등 아티스트가 직접 피부로 느끼는 내용이 이번에도 텍스트를 차지한다. 히트곡 'Middle child'가 겹쳐가는 플로우에 변절하지 않는 자신을 멜로디로 표현한 '100 Mil'', '누구에게 죽임 당하지 않고 30대를 무사히 보냈다는 것에 감사하다'며 사멸에 대한 걱정과 한탄을 엮은 'Pride is the devil'의 메시지가 쌉싸름하다. 'Interlude'에서 관조한 총성과 마약의 참상은 날 선 시선으로 새겨지고, 살해된 친구를 연민하는 'Close'의 엄중한 문장도 감흥이 짙은 대목이다.

바스(Bas)와 블랙(6lack)의 코러스로 차분한 분위기를 머금은 'Let go my hand'를 음반의 베스트 트랙으로 꼽고 싶다. 커가는 아들을 바라보며 느낀 감정을 과거의 회상 속 자신과 연결 지은 이야기 전개가 과연 제이 콜답다. <The Off-Season>은 이렇듯 그의 강점을 견지하고 기존의 매너리즘은 탈피하는 시도가 성공한 결과다. 노련한 스토리텔링의 <2014 Forest Hills Drive>만큼의 문학적 성취는 아닐지라도, 스포츠에서 다음 시즌을 준비하는 '오프 시즌'처럼 커리어에 유의미한 분기점이 될 수 있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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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이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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