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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스트의 하루] 사랑의 인사 - 김민하

에세이스트의 하루 11편 – 김민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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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날 나를 바꾼 인사가, 딸아이 마음 밑자락에서 사랑으로 솟아나고 있다. (2021.0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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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오늘도 먹여 주시고 키워주셔서 감사합니다.”

일곱 살 첫째가 밤마다 잠들기 전 나에게 하는 말이다. 인사성 밝기로 소문난 딸은 늘 이런 식으로 마음을 전한다. 아파트 경비실 아저씨께는 ‘애쓰십니다’, 미화원께는 ‘수고 많으세요, 감사합니다’라며 매번 먼저 인사를 건넨다. 이제는 그들이 먼저 딸아이를 알아보고 사탕이나 음료를 건네주신다. 그런 장면을 볼 때면, 15년 전의 그분이 떠오르는 것이다.

대학 수업마다 발표는 많아지는데, 입을 열기는 갈수록 어려워졌다. 꿈은 기자라고 떠벌리고 다녔지만, 취재원을 만나는 것은 생각만 해도 등에서 식은땀이 흘렀다. 이런 성격으론 기자는커녕 신문사 옆 분식집 서빙도 못 할 판이었다. 성격 개조가 필요했다.

나를 모르는 사람에게 먼저 다가가기, 어렵지 않게 말을 걸기. 그 상대를 찾는 데 이틀이 걸렸으나, 먼저 다가가 말을 거는 데는 일주일이 더 넘게 걸렸다. 사회과학대 경비 아저씨였다. 얼굴의 연세보다 흰 머리의 연세가 더 많아 보였던 그는 늘 책을 보고 있었다. 이따금 복도를 다니며 쓰레기를 줍고 학생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무언가를 적곤 했다. 

  “...... 안녕하세요....?”

얼굴도 모르는 한 여학생이 인사를 건네자, 그는 조금 당황한 표정을 내보이곤 바로 옅게 웃으며 끄덕였다. 그 표정 탓에, 나는 큰 잘못이라도 한 기분이 들어 피하듯 2층 강의실로 뛰어갔다. 내 성격 개조 실험의 대상인 것을 눈치라도 챘을까, 한동안은 그를 피해 다녔다. 

 “저기, 안녕하세요?”

언제까지 피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졸업까지 이곳을 거의 매일 드나들어야 하니까. 죄를 지은 것도 아니고, 그저 인사만 하면 되는 것 아닌가. 조금 더 용기 내었다. 

 “네, 학생도 안녕하지요?”

뜻밖이었다. 인사만 하고 지나치려는 내게 지난번보다 농도가 짙어진 미소가 돌아왔다. 네, 하고 어색하게 웃었으나 얼굴과 다르게 마음의 어색함은 사라지고 있었다. 

그날 이후 나와 경비아저씨는 친구가 되었다. 적어도 내게는 그런 기분이었다. 편의점에서 커피를 살 때마다 피로회복 음료를 한 병씩 샀다. 아저씨는 늘 손사래를 쳤고, 그럴 때마다 나는 그의 왼손 옆에 갈색 병을 두고 기분 좋은 도망을 쳤다. 

추석을 이틀 앞둔 날, 수업이 끝나고 나가는 날 아저씨가 먼저 손짓으로 불렀다. 작은 비닐봉지를 건네주셨다. 내 엄지손가락만 한 조생귤이 열 개 남짓 들어있었다. ‘맛있어요, 그냥 먹어요’라며 내 품에 안겨 주고는 등 떠미는 바람에 감사하다는 말씀도 제대로 못 드렸다. 집에 가는 버스에서 귤을 까서 먹었는데, 이렇게나 맛있는 귤을 안 먹고 준 마음이 떠올라 괜히 눈가가 뜨거워졌다.

추석 연휴가 끝나고, 오랜만에 학교 가는 길에 사과 두 개를 챙겼다. 햇빛 가득 머금은 맛 좋은 안동 사과였다. ‘아저씨’하고 들어선 건물 정문에서 나는 멈칫하고 말았다. 아저씨라고 부르기엔 젊은 사람이 있었다. 여기 계시던 분은 어디 가신 건가요, 라는 질문에 그는 건조하게 대답했다.

“어디 편찮으시다고 하신 것 같아요.”

사과는 수업 시간 내내 가방 안에서 동글동글 굴렀다. 수업이 끝나고 나오면서 젊은 경비원에게 ‘안녕히 계세요’ 인사했으나, 그는 핸드폰을 보느라 내 인사를 듣지도 못했다. 귤을 건네준 손의 주름이 생각나는 바람에, 버스에서 하릴없이 소매만 적셨다.

십 년이 훌쩍 지난 지금의 나는 그때의 연습 덕분에 인사의 향기를 풍길 줄 아는 사람이 되었다. 경비원이나 미화원, 관리실 분들에게 스스럼없이 먼저 다가가 인사를 먼저 잘 건넨다. 그분들에게 열심히 인사를 드리는 게, 그날 아저씨에게 감사하다는 말을 전하지 못한 미안함을 조금씩 누그러뜨리는 나만의 방법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이런 나의 곁에서 딸아이가 자랐다. 말을 하지 못하던 순간부터 지켜봐 온 엄마의 인사가 아이 성장의 증거가 되어 지금 입 밖으로 행동으로 나온다. 오늘도 키워주시고 먹여 주셔서 감사하다는 아이에게, 잘 크고 인사 잘하는 아이로 자라줘서 고맙다고 웃어주었다. 젊은 날 나를 바꾼 인사가, 딸아이 마음 밑자락에서 사랑으로 솟아나고 있다. 




*김민하

일상의 널려있는 것들을 꿰어 글로 엮습니다. 삶의 모토는 '텍스트 근본주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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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김민하(나도, 에세이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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