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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다솔의 적당한 실례] 잠이 오지 않는 직업

<월간 채널예스> 2022년 9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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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같이 잠시 죽을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매혹적인 일인가. (2022.09.02)

언스플래쉬

나는 엄숙하고 단호하게, 작가를 '잠이 오지 않는 직업' 리스트에 추가하기를 요청하는 바이다. 사람들은 작가를 글 쓰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일면 동의하지만, 내가 겪어본 바로 작가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사람'과 거의 차이가 없다. 늦잠을 자고, 밥을 먹고, 책을 읽고, 손발을 비비 꼬고, 산책을 하고, 잠깐 요가를 한 뒤에 다시 낮잠을 자는 꼬락서니는 영락없는 백수의 모습이다. 미간에 살짝 잡힌 주름만이 마음 깊은 곳에 자리 잡은 근심을 암시한다. 시종일관 초점 없는 시야, 나지막한 신음은 웬만해서는 눈치채기 어렵다.

반짝이는 영감과 창작에 대한 동기는 핀란드의 천연 온천이나 일본 삿포로의 눈처럼 멀고 먼 이야기다. 그의 영혼은 그토록 무탈하고 고요한 일상에 머무른 적이 없다. 그 심연은 소리 없이 분리되어 미래로 떠밀려 가고 있다. 마감이라는 늪에 머리끝부터 천천히 잠식되어 천천히 마비되고 있다. 보이지 않는 타임 워치가 똑딱이는 소리가 심장 소리보다 크게 울렸다. 그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 시간이 흐른다고 생각하며, 아무것도 하지 않았으므로 아무것도 쓸 것이 없다는 자명한 결론에 도달한다.

그렇게 한 글자도 못 썼는데 잠이 올 리가 없다. 빈 화면을 앞에 두고 뜬눈으로 밤을 지새운다. 떠오르는 문장이 모두 지루하고 낡은 것으로만 느껴진다. 과거에 썼던 글들이 모래처럼 부서지고, 빈 화면이 폭포수처럼 쏟아지고, 미래는 폭풍우처럼 들이닥친다. 당장 이 글도 쓰기가 어려운데 앞으로는 어떤 걸 쓸 수 있을까, 눈앞에서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빈 문서가 휘몰아친다. 모든 것을 포기하고 산으로 숨어들고 싶다. 단순히 잠이 자고 싶다기보다 영면에 들고 싶다. 그렇게 온몸의 세포가 격동의 시간을 갖는데, 겉으로는 땀 한 방울 안 난다는 것이 개탄스러울 따름이다.

땀이란 숭고하고 투명하고 아름다운 것으로서, 몸의 독소를 밖으로 빼내어 줌과 동시에 해가 떨어지면 단잠이 들도록 도와준다. 그것이 글쓰기가 노동으로 느껴지지 않는 핵심적인 점이었다. 그렇다. 글을 아무리 열심히 써도 땀이 나지는 않는다. 한여름에 에어컨이 없는 방에서 글을 쓴다면 모를까. 찜질방에서 글을 쓴다면 모를까. 예로부터 나의 엄마, 청춘을 노동 운동에 바친 위대한 김 여사는 나에게 일하지 않는 자 먹지도 말라고 했다. 나는 매일같이 내가 밥을 먹을 자격이 있는지 없는지 판단할 수 없어 숟가락을 들었다 놓기를 반복했다.

어린 시절에 엄마가 일하는 공장에서 일손을 도울 때가 많았다. 주로 실밥을 따거나 다림질하는 단순 반복 노동이었다. 그런 작업은 머리와 마음이 복잡할수록 손에 잡히지 않았다. 같은 동작을 반복하며 몸에 새기듯이 일해야 했다. 오랜 시간 학습과 숙련을 거친 몸은 어느새 고도의 디테일을 한 번의 손짓으로도 구현할 수 있었고, 남들이 쉽게 따라 할 수 없는 몸이 되었다. 어제는 할 수 없었던 것을 오늘 할 수 있게 되면 성장한 기분이 들었다. 몸은 언제나처럼 같은 장소에서 같은 동작을 하고 있지만, 영혼과 마음은 원하는 어디로든 떠날 수 있었다.

일과가 끝나면 몸은 피곤했지만, 마음은 깨끗해진 기분이 들었다. 그런데 그러한 신성한 반복이 글에서는 종말과도 같은 것이었다. 동어 반복은 작가가 할 수 있는 최악의 것이었다. 어제의 나를 반복하는 것은 그 어떤 것보다 경계해야 할 일이었다. 매번 백지 앞에서 길을 헤매야 했다. 종일을 매달려도 개운한 느낌이 들지 않았다. 몸이 어디에 있어도 마음은 한곳에 결박된 듯 초조했다.

어쩌다 글을 잘 쓴 날도 있었다. 그런 날에도 우습게도 잠에 들지 못했다. 그것은 단순히 글 한 편을 완성해 낸 것이 아니라, 절대 할 수 없을 거라고 믿었던 나의 확신을 뒤집은 엄청난 사건이었다. 매번 빠짐없이 기적 같았다. 그 전까지는 세상에 없었던 것이 생겨나 있었으니 말이다. 그 결과물은 언제나 내가 예상했던 것과는 보기 좋게 엇나가 있었지만 나름의 모습대로 나를 놀라게 했다. 깜찍하고, 끔찍하게. 나는 나를 닮고 또 닮지 않은 그것을 읽고 또 읽느라 잠을 이루지 못했다.

매일같이 잠시 죽을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매혹적인 일인가. 제대로 죽어본 지가 너무 오래되고 있었다. 점점 더 헌것이 되어가고 있었다. 그때쯤 정신과를 찾았다. 생명에게 수면이 얼마나 중요한지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잠을 자는 동안 우리는 힘을 충전하고, 기억을 저장하고, 감정을 정돈한다. 그렇게 요즘 밤마다 내 손바닥에는 세 개의 알약이 놓인다. 그러면 잠이 들 수 있었다. 그러니 그것이 신이 아니면 무엇인가 하고 나는 생각하는 것이다. 내 몸의 1000분의 1도 안 되는 무언가가 나를 이렇게까지 도울 수 있다니 경이로웠다. 나는 신성한 마음으로 매일 같은 시각 같은 자리에서 같은 자세로 알약을 먹었다.

그런데 이제는 잠이 너무 많이 와서 문제였다. 쉴 새 없이 잠에 빠져들었다. 자고 또 잠들었다. 일어나면 금세 졸음이 몰려왔다. 요즘 내리는 비처럼, 끝을 모르고 쏟아졌다. 수면제를 먹었더니 이제 잠이 너무 많이 와서 탈이에요. 아무리 자도 졸려요. 의사에게 말하자 그가 대답했다. 

그 작은 것들이 그렇게 큰 영향력을 미칠까요? 

나는 갸우뚱했다. 

수면제 때문이 아닌가요? 

의사가 웃으며 말했다. 

다솔 씨가 많이 졸린 것 같은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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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양다솔(작가)

글쓰기 소상공인. 에세이 『가난해지지 않는 마음』의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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