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

[룸펜매뉴얼] 윤가은의 크리스마스 잘 보내는 법

뉴스레터 룸펜 (9) - 윤가은

  • 페이스북
  • 트위터
  • 복사

역시 최고는 어린 시절 흠뻑 빠져서 봤던 크리스마스 배경의 영화들을 다시 찾아보는 거다. 어른으로 자라는 동안 모른 척 마음 한구석에 치워 둔 나만의 오랜 꿈과 소원과 이야기들이 다시금 되살아나는 희열을 오롯이 느낄 수 있을 것이다. (2022.12.28)


작가가 전수하는 일상의 기술 '룸펜매뉴얼'
작가와 함께 다양한 HOW TO를 발견해 보세요.



다시 겨울이다. 시린 칼바람에 볼을 베일 때마다, 꽁꽁 얼어붙은 풍경들을 도처에서 마주할 때마다, 어쩐지 분하고 억울한 마음에 자꾸 울고 싶어지는 계절이지만... 아직은 괜찮다. 그래도 12월은 버틸 수 있다. 이 달의 끝엔, 무려, 크리스마스가 기다리고 있으니까! 

크리스마스를 정말 좋아한다. 아기 예수의 탄생을 믿고 안 믿고를 떠나, 이토록 매서운 날씨에 잠시나마 몸과 마음을 녹이고 한껏 들뜰 수 있는 축제가 있다는 게 매번 기쁘고 반가운 마음이다. 물론 자본주의를 등에 업고 나날이 상업화되어가는 이 외제 명절에 대한 여러 의심과 지탄의 목소리들도 일면 이해한다. 하지만 난 여전히 크리스마스야말로 외롭고 보잘 것 없는 이들을 위해 존재하는 기적의 날이라 믿고 있다. 잠시 힘겨운 일상에서 벗어나 인생을 송두리째 바꿀 만한 멋진 사건들을 마음껏 꿈꾸고 기대해 보는 마법 같은 날. <나 홀로 집에> 남겨졌지만 신나게 악당을 물리치고, <당신이 잠든 사이에> 슬그머니 사랑에 빠지고, 난데없이 <패밀리 맨>이 되어 진짜 삶으로 풍덩 뛰어드는, 그런 모험과 환상의 날 말이다. 영화를 너무 많이 본 거 아니냐고? 어차피 다 꾸며낸 이야기 아니냐고? 맞다. 결국 다 만들어진 이야기고, 내가 그런 영화들을 지나치게 많이 보긴 했다. 어쩌면 내가 평생 믿고 기다려 온 크리스마스는 할리우드 영화 속에나, 작가들이 만든 이야기에나 존재하는 신기루일지도. 아무렴 어떤가. 이렇게 사납고 황량한 겨울에 잠시나마 행복한 상상으로 따뜻한 시간을 보낼 수 있다면 그것도 천만다행이지. 그리고 이야기는 힘이 있다. 어떤 이야기들은 정말로 힘이 세서 오랫동안 보고 듣고 만지다 보면 어느새 진짜 현실이 되기도 한다. 마치 영화처럼.

그러므로 크리스마스를 잘 보내는 최고의 방법은 역시 영화와 함께하는 거라고, 이 연사 힘차게 외쳐 본다. 너무 뻔하고 시답잖은 답 아니냐고? 하지만 좋은 영화는 언제 어디에서나 우리를 조금은 구원하니까, 크리스마스에도 예외는 아닐 것이다. 아무래도 극장을 찾는 것이 가장 만족도가 크겠지만, 여러 OTT 플랫폼에 쏟아지는 비슷비슷한 최신 크리스마스 영화들도 이 시기엔 꽤 볼 만하다. 그러나 역시 최고는 어린 시절 흠뻑 빠져서 봤던 크리스마스 배경의 영화들을 다시 찾아보는 거다. 어른으로 자라는 동안 모른 척 마음 한구석에 치워 둔 나만의 오랜 꿈과 소원과 이야기들이 다시금 되살아나는 희열을 오롯이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좋아하는 크리스마스 영화에 나오는 여러 디테일을 현실로 가져와 보는 것도 꽤 즐거운 시간이 될 것이다. 올해 나는 <그렘린>의 기즈모가 들어있던 것과 같은 큰 리본이 달린 선물 상자들로 집안 곳곳을 장식했다. 물 건너 사는 어린 조카에겐 <34번가의 기적>의 주인공 소녀가 연상되는 빨간색 베레모를 산타의 선물로 위장해 보낼 예정이다. 이브엔 <세렌디피티>에 나온 디저트 '프로즌 핫 초콜릿'을 만들어 볼까 싶지만, 사실 요리엔 영 소질이 없는데... 그래도 괜찮다. 정확히 밤 10시 32분 59초부터 <해리 포터와 마법사의 돌>을 감상하기 시작할 거니까. 그러면 25일 자정으로 넘어갈 때 론 위즐리한테 크리스마스 인사를 받고 다 괜찮아지겠지. 역시 영화가 최고다. 모두 해피 크리스마스!



추천기사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이 기사가 마음에 드셨다면 아래 SNS 버튼을 눌러 추천해주세요.

독자 리뷰

(0개)

  • 독자 의견 이벤트

채널예스 독자 리뷰 혜택 안내

닫기

부분 인원 혜택 (YES포인트)
댓글왕 1 30,000원
우수 댓글상 11 10,000원
노력상 12 5,000원
 등록
더보기

글 | 윤가은(영화감독)

영화 만드는 사람. 좋아하는 게 많습니다. 단편영화 <손님>(2011), <콩나물>(2013), 장편영화 <우리들>(2016), <우리집>(2019)을 만들었습니다.

오늘의 책

산업의 흐름으로 반도체 읽기!

『현명한 반도체 투자』 우황제 저자의 신간. 반도체 산업 전문가이며 실전 투자가인 저자의 풍부한 산업 지식을 담아냈다. 다양한 용도로 쓰이는 반도체를 각 산업들의 흐름 속에서 읽어낸다. 성공적인 투자를 위한 산업별 분석과 기업의 투자 포인트로 기회를 만들어 보자.

가장 알맞은 시절에 전하는 행복 안부

기억하기 위해 기록하는 사람, 작가 김신지의 에세이. 지금 이 순간에 느낄 수 있는 작은 기쁨들, ‘제철 행복’에 관한 이야기를 전한다. 1년을 24절기에 맞추며 눈앞의 행복을 마주해보자. 그리고 행복의 순간을 하나씩 늘려보자. 제철의 모습을 놓치지 않는 것만으로도 행복은 우리 곁에 머무를 것이다.

2024년 런던국제도서전 화제작

실존하는 편지 가게 ‘글월’을 배경으로 한 힐링 소설. 사기를 당한 언니 때문에 꿈을 포기한 주인공. 편지 가게에서 점원으로 일하며, 모르는 이와 편지를 교환하는 펜팔 서비스를 통해 자신도 모르게 성장해나간다. 진실한 마음으로 쓴 편지가 주는 힘을 다시금 일깨워주는 소설.

나를 지키는 건 결국 나 자신

삶에서 가장 중요한 건 무엇일까? 물질적 부나 명예는 두 번째다. 첫째는 나 자신. 불확실한 세상에서 심리학은 나를 지키는 가장 확실한 무기다. 요즘 대세 심리학자 신고은이 돈, 일, 관계, 사랑에서 어려움을 겪는 현대인을 위해 따뜻한 책 한 권을 펴냈다.


문화지원프로젝트
PYCHYESWEB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