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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승언 시인의 책장

당신의 책장 – 송승언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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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들은 평소 뭘 보고 듣고 읽을까? 언젠가 영감의 원천이 될지도 모를, 작가들의 요즘 보는 콘텐츠. (2024.02.14)


작가들은 평소 뭘 보고 듣고 읽을까?
언젠가 영감의 원천이 될지도 모를, 작가들의 요즘 보는 콘텐츠.



다큐멘터리 〈포크 호러의 황홀한 역사〉

키에르-라 재니스(Kier-La Janisse) 감독


고딕문학적 전통으로부터 출발한 영화들을 살피며 포크 호러의 특징을 탐색하는 다큐멘터리. 작품 소개나 장르 분석에 그치지 않고 역사적 맥락을 살펴 더 흥미롭다. 일례로 이 다큐멘터리는 대중문화 속 마녀가 현재의 위상을 갖게 된 것은 영미에서 여성 인권이 신장되던 시기와 관계가 없지 않다고 말하며, 급변하는 60년대의 세계 정세, 당대 지식인들에게 유행한 오컬트, 이단의 수장이었던 상류층 여성 등등을 연결 지어 바라보는 등 흥미로운 관점을 제공한다. 이는 필름 내에도 활용되는 여러 포크 음악을 들어오며 내가 막연히 기다려왔던 그런 인식이었다.




게임(인터랙티브 영화) 〈이모탈리티(IMMORTALITY)〉

샘 발로우(Sam Barlow) 개발 | 하프 머메이드(Half Mermaid) 배급


마리사 마르셀(Marissa Marcel)은 1968년부터 1999년까지 총 세 편의 미개봉 영화를 찍고서 사라져 버린 배우이다. 모두 분실 혹은 파기된 것으로 여겨졌던 그 영화들의 필름 뭉치가 2022년에 발견되었다. 〈이모탈리티〉는 그 필름 뭉치를 살피며 조각난 영화들을 복원하고, 영화 제작에 얽힌 비하인드를 살피며 사라진 배우의 그림자를 좇는 인터랙티브 영화다. M. G. 루이스의 불경스러운 고딕 소설 『몽크』(1796)를 각색한 영화 〈암브로시오(Ambrosio)〉를 복원하는 과정이 가장 흥미로웠음은 말할 것도 없다. 나는 샘 발로우의 작업들에 늘 흥미를 느낀다. 그것들은 전혀 게임이 아니고, 영화와도 조금 다른 것이다.




음반 <SAVED!>

크리스틴 헤이터 목사(Reverend Kristin Michael hayter)


링구아 이그노타(Lingua Ignota)로 활동했을 적에도 그랬지만, 크리스틴 헤이터의 음악은 ‘예술이란 일종의 폭력’이라는 의견에 가장 잘 부합하는 사례처럼 생각된다. 그 폭력이란 예술가 내면에 펼쳐진 지옥을 똑같은 강도로 경험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이 음반을 듣노라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이단 집회에 이끌려온 것만 같고, 터져 나오는 방언들 사이에서 나도 울고 춤추며 기도해야 할 것만 같다. 끔찍하고 아픈 동시에 황홀한 경험이다. 이 불경스러운 음반은 누구라도 들어야 하지만 아무나 들어서는 안 된다.




『지옥보다 더 아래』

김승일 저 | 아침달


저자는 자신이 경험하고 상상한 여러 사람과 장소에서 지옥을 찾는다. 돈 없는 한국인 여행객을 등쳐먹는 인도인 어린이에게서, 주말 외에는 텅텅 빈 채로 비좁은 서울 땅을 점유하고 있는 대형 종교 건물에서, 여러 사람들이 좋은 책이라고 여기는 막스 피카르트의 대표작에서. 예스24는 이 책을 ‘여행 에세이’로 분류해 두었다. 언젠가 우리가 가야 할 곳이 천국 아니면 지옥이며, 통념과 같이 우리의 인생이 여행이라고 본다면 맞는 분류다. 그리고 나처럼 모험을 좋아하는 이들이라면 아마도 천국 여행보다는 지옥 여행이 훨씬 더 즐겁긴 할 것이다. 내가 편집한 책이지만 뻔뻔하게도 추천한다. 솔직히 재밌으니까.




음반 <이공일삼 이공이일 서울>

팔황단


작년부터 친구들과 종종 산에 오른다. 언젠가부터 불어온 유행의 흐름에 편승한 것이기도 하고, 안타깝게도 그럴 나이가 되고야 만 것이기도 하다. 지난달에는 관악산에 올랐는데, 중턱을 넘어서니 온통 새하얬다. 우리에게는 아이젠도 없었는데. 우리는 수차례 넘어졌다.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상황이라서 즐거웠고, 팔황단이 떠올랐다. 성스러운 곡조가 인상적인 〈내려온 몸〉의 가사의 부분은 이렇다. “산 위에서 내려온 몸이 바위 사이에 걸려 있네요.” 간 사람 생각. 산 위에서 어떻게 정치 생각을 안 할 수가 있단 말인가? 〈중촌 산악회〉를 들으면서는 우리 산악회의 주제곡으로 삼으면 딱이겠다는 생각. 어쨌든 우리는 살아 있다. 아직까지는.



지옥보다 더 아래
지옥보다 더 아래
김승일 저
아침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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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송승언

1986년 강원도 원주에서 태어났다. 2011년 [현대문학] 신인 추천으로 등단했다. 박인환문학상을 수상했다. ‘작란(作亂)’ 동인으로 활동 중이다. 시집 『철과 오크』, 『사랑과 교육』 등을 펴냈다.

지옥보다 더 아래

<김승일> 저14,400원(10% + 5%)

지옥 같은 세상을 주유하는 이상한 오르페우스 김승일과 함께 떠나는 지옥 여행기 시인 김승일의 산문 『지옥보다 더 아래』가 아침달에서 출간됐다. 근작 『항상 조금 추운 극장』 등 세 권의 시집을 펴내며 한국 시단에 재기 넘치는 사유를 전해온 그가 이번에는 지옥을 떠돌며 보고 들은 것을 전하고자 한다. 그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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