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명처럼 언젠가 써야했던 소설 『리심』, 소설가 김탁환
“십 년 전부터 쓰고 싶었던 소설인데, 그때는 돈도 없고 공부할 양도 많기 때문에 능력이 안됐어요. 그래서 호시탐탐 기회만 노리고 있다가 3년 전쯤 이제는 써도 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2006.1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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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고지 삼천 매 분량의 장편 소설 『리심』을 출간한 김탁환을 만났다. 작가의 말에서 그가 밝힌 것처럼 『리심』은 그가 20년 동안 배우고 익힌 모든 것을 쏟아 부은 작품이며, 작가 김탁환에게 있어서 하나의 장이 끝남을 의미하는 작품이기도 하다.
『리심』은 스케일이 크다는 점, 역사에서 잊혀진 비범한 여인의 삶을 다룬다는 점에서 시선을 사로잡는다. 누구보다도 넓은 세상을 만났고, 많은 것을 보고 들었지만 조선을 벗어날 수 없었던 ‘리심’을 되살리려고 김탁환은 중세와 근대, 계몽과 신비, 동양과 서양, 제국과 식민지를 꼼꼼히 살폈고, 그녀의 발자취를 좇아 일본, 프랑스, 모로코로 답사를 떠났다.
운명처럼 언젠가 써야했던 소설 『리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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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어로 씌어진 리심과 빅토르 콜랭에 대한 자료는 찾는 데에는 20년 지기 정지용 박사의 도움이 컸다. 그밖에도 많은 전문가들의 도움을 받아 『리심』은 태어났다. “역사 소설 작가는 여러 전문가들과 산학 협동을 해야 합니다. 제가 산이고 여러 전문가들이 학이 되는 셈이죠. 서로 co-work를 하지 않았으면 작품 하나를 쓰는 데 엄청나게 시간을 많이 걸렸을 겁니다. 『방각본 살인사건』과 같은 ‘백탑파’ 시리즈도 안대회 선생과 정민 선생의 도움을 받지 못했다면 2~3년에 한 권씩 쓰는 것이 힘들었을 거예요.”
고전문학을 전공한 것이 큰 도움이 됐다. “소설을 쓰기 위해 필요한 답사는 예전에 대학원에 있을 때 했던 답사가 도움이 됐습니다.” 학교 다닐 때 같이 공부하던 동기들이 지금 연구자들과 교수가 되었다. “필요한 부분이 있으면 계속 찌르는 거죠. 예를 들어, 어떤 한문구절이 어디에서 나왔는지 잘 모르겠다, 친구들에게는 물어보면 단번에 대답이 나와요. 누구에게 물어보면 그것을 안다, 나의 노하우는 그것이죠.”
리심에 대해 씌어진 자료, 그녀가 남긴 글은 거의 남아있지 않다. 얼마 안 되는 기록들이 그녀가 빅토르 콜랭과 만나 사랑에 빠지고 일본과 프랑스와 모로코에 있었다는, 단편적인 사실만을 알려줄 뿐이다. 그녀가 왜 궁궐에 들어와 무희가 되었는지, 빅토르 콜랭과 왜 파리로 떠났는지, 떠나고 나서 그녀에게 어떤 일이 있었는지, 그녀가 무엇을 느꼈는지, 무엇에 절망했는지, 왜 조선으로 다시 돌아왔는지, 그리고 결국 죽음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는지. 이 모든 이야기의 빈 곳들은 그가 상상력으로 촘촘히 직조한 것들이다.
김탁환이라는 소설가 만들기
그는 해방 이후 고전문학을 전공한 사람 중 유일한 소설가이다. 어렸을 때부터 소설이라는 장르를 좋아했지만 소설가가 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그런 그가 소설을 쓰게 된 계기는 군복무였다. “스물여덟 살까지 나는 고전문학 연구자, 그 중에서도 대하소설 연구자가 될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소설 읽는 것을 좋아하긴 했지만 그건 취미였죠.” 그가 즐겨 읽었던 소설가들은 스티븐 킹, 존 그리샴, 무라카미 하루키. 스토리가 강한 소설을 쓰는 사람들이었다.
그는 소설보다 평론으로 먼저 데뷔를 했다. “그때 나는 한국 소설의 미래가 암담한 것이 몇 가지 측면이 있는데, 스토리가 너무 약하다는 점이 그 중 한가지라고 생각했어요. 그때까지 문학성이라는 것이 문체에만 있고 스토리에는 없다, 스토리는 누구나 만들 수 있다고 착각하는 사람들이 많았거든요.” 소설을 좋아하는 사람으로 그는 스토리가 강한 소설, 20대들의 문학청년들의 이야기가 아니라 어른들의 세계를 다룬 소설, 삼십 대, 사십 대, 오십 대들의 이야기를 썼으면 좋겠다고 평론을 썼다. “그런데 아무도 안 써요.(웃음)”
그러다 고향 진해에서 장교로 군 생활을 시작했다. “학교와 멀어지니까 아무도 공부하라는 사람도 없고, 시간은 많고. 대학원에 있을 때는 하루가 11시쯤 시작되어서 대충 있다가 저녁이면 술 마시다가 끝나는데 군대는 아침 일곱 시에 하루가 시작되거든요. 일곱 시 반에 출근해서 저녁 여섯 시에 퇴근. 해군 교관으로 생도들에게 국어를 가르치는데 수업이 일주일에 아홉 시간밖에 안 돼요. 그 나머지 시간은 근무지 이탈을 하면 안 되니까 계속 연구실에 가만히 앉아 있어야 했어요. 그때 연구실에서 도스토예프스키 같은 소설을 많이 읽었어요. 아마, 제 인생에서 가장 많이, 열심히 책을 읽던 때가 아닐까 합니다.”
그러다 어느 날부터 소설 읽기가 지겨워 쓰기 시작했다. 습작으로 쓴 단편들이 책 한 권 분량 정도가 되자 지도교수였던 양귀자 선생님께 보여드렸다. 그 때, 양귀자 선생님은 그에게 ‘소설가가 되라’고 했다. “선생님이 그러시는데, 제가 쓴 비평도 소설적이었대요. 분석은 별로 안하고, 몽상을 많이 하고, 문장은 계속 우기고. 감동 잘하는 영혼이니까 소설이 더 맞겠다고 하시더군요.” 그래서 고향인 진해를 배경으로 이야기를 쓰게 된다. 그 작품이 바로 첫 장편소설 『열두 마리 고래의 사랑이야기』다.
써도 써도 끝나지 않았던 『불멸의 이순신』
『불멸의 이순신』은 분량이 무려 원고지 사천오백 매이다. 처음부터 이렇게 길어질 것을 예상했던 것은 아니었다. 쓰다보니 사천오백 매라는 어마어마한 분량의 장편소설이 된 것이다. “2년 정도 습작을 했는데, 써도 써도 이야기가 끝이 안 나는 거예요. 이순신의 이야기니까 이순신이 죽어야 이야기가 끝나잖아요. 그런데 계절이 몇 번이나 바뀌었는데도 이순신이 죽으려면 한참이 남았죠.(웃음)”
제대 말 『불멸의 이순신』을 위해 답사를 다니면서 숱한 시행착오를 거쳐야 했다. 계획은 일주일이었지만 답사지에 가면 새로운 정보를 듣고, 좀더 많이 보고 싶다는, 제대로 보고 싶다는 욕심이 생겨 답사 기간과 비용은 고무줄처럼 늘어났다.
“답사를 하는데, 저 섬에 이순신이 배를 댔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당연히 들어가 보고 싶잖아요. 그런 데 하루에 배가 두 번 밖에 안 들어가고 오늘 배는 이미 다 떠났다. 그럼 하룻밤 자고 내일 들어가는 거죠. 숙박비에 배 빌리는 것에 돈이 들어가죠. 고생은 많이 했지만 답사를 제대로 배웠어요.”
『불멸의 이순신』이 한참 잘 써질 때는, 새벽 다섯 시까지 밤을 꼬박 새워 글을 썼다. 그렇게 밤을 새운 밤 한숨도 자지 못한 채 새벽 바닷가를 산책하면서 지금까지 써 온 이야기를 고민했다. “그렇게 이야기 때문에 혼자 새벽을 앓았던 때, 그 때가 제가 소설가가 된 지점이 아닐까 합니다.”
김옥균, 홍종우, 리심과의 만남
1998년『불멸의 이순신』이 출간된 후, 그는 리심을 운명적으로 만나게 된다.
‘조선왕조 오백년’ 사극을 쓴 신봉승 선생이 『불멸의 이순신』을 읽고 그를 작업실로 초대했다. 신봉승 선생은 꼼꼼하게 답사를 다닌 흔적이 역력한 그의 작품을 칭찬했다. “그것은 굉장히 가치 있는 작업이고, 시키지도 않았는데 그렇게 하는 것을 보니 너는 이 길을 계속 가라, 그렇게 말씀해 주셨어요.”
그래서 자신이 잘 아는 조선시대부터 시작해 개화기로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나, 황진이』를 시작으로 ‘백탑파’ 시리즈까지, 16세기에서 19세기까지 내려오는 작업을 한 거죠. 그렇게 코스대로 밟아오니까 한 십 년이 걸렸네요.” 『리심』으로 개화기까지 내려온 그가 지금 작업하는 것은 해방공간의 이야기다. “나는 단군부터 현재까지 다 쓸 수 있는 작가가 되고 싶고, 그렇게 하고 있는 거죠. 『리심』은 나에게 필연이었어요.”
자기 삶의 근거를 스스로 만들어 간 여자, 리심
『리심』은 대부분의 조선 여성들이 규방만을 삶의 공간으로 받아들이던 시절, 최초로 일본, 프랑스, 아프리카까지 나아간 궁중 무희 리심과 그를 사랑한 프랑스 외교관 빅토르 콜랭의 이야기이다. 시대를 앞서나간 비운의 여성과 그를 사랑한 외국인. 얼마든지 달콤하고 화려하게, 낭만적으로 포장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는 의도적으로 낭만을 걷어냈다.
“파리가 멋있긴 했지만, 황인종들은 밖으로 나다니지도 못하고 원숭이 취급을 받는 것이 엄연한 현실이었어요. 그런 환경 속에서 살았던 리심의 삶이 낭만적이지만은 않았을 거예요. 그 당시 황인종인 조선 여자가 일본과 프랑스, 모로코에 갔을 때 어떤 취급을 받았는지 리얼하게 드러내고 싶었어요. 콜랭과 리심의 관계에서도 약간의 낭만은 어쩔 수 없었지만 현실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리심은 파리에서 외로웠고 조선에 돌아와서는 더 외로웠다. 파리에서는 단 한 명의 조선 여인이었고 조선에서는 일본과 프랑스, 모로코를 두루 돌아다니며 신문물을 보고 새로운 지식을 가진 단 한 명의 여성이었다. “리심은 자기와 같은 식으로 살아본 사람이 한 명도 없는 사람입니다. 전범이 없는 거예요. 리심은 철저하게 혼자였다는 거죠.”
자기 삶의 근거를 스스로 만들어갔던 여자, 고독하면서도 자긍심이 높은 여자가 바로 리심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녀의 삶은 비극으로 끝날 수밖에 없었다.
“삶에는 스스로 쟁취할 수 있는 게 있고 아무리 해도 안 되는 것이 있어요. 리심은 아무리 불어를 잘해도 프랑스 시민이 될 수 없고, 개화적인 사상을 가지고 있어도 조선에서는 성공할 수 없어요. 그게 리심의 비극이죠.” 시대는 그녀를 극한으로 내몬다. 전 세계를 돌아보고, 자유롭고 평등한 세상의 공기를 맛본 그녀를 다시 궁궐이라는 새장에 가두어 버리는 것이다. 그 극한에서 비극의 주인공이 그렇듯, 그녀는 영웅적인 죽음을 선택한다.
쓸 수 있는 것과 쓰고 싶은 것
『리심』 중에서 두 번째 권이 가장 쓰기 힘들었다. 3인칭으로 서술하던 1권, 3권과 달리 2권은 리심의 눈과 목소리로 이야기가 펼쳐진다. 중간에 서술방식을 바꾼다는 건은 대단한 모험이다. 그렇지만 거기에 대해 그는 이렇게 말했다. “소설가는 항상 쓸 수 있는 것을 쓰다가 갑자기 쓰고 싶은 것을 쓰게 돼요.” 쓸 수 있는 것과 쓰고 싶은 것은 다르다. 대부분의 사람들을 쓸 수 있는 것을 쓰지만 예술가는 쓰고 싶은 것을 쓰려고 하는 상승욕망이 있다. 쉽게 말하면 욕심을 낸다는 뜻이다.
“기록을 보면 리심이 파리와 마르세이유, 사하라 사막에 있을 때 뭔가를 썼다고 하거든요. 그것을 살리고 싶었어요. 리심의 한계와 리심의 편견과 리심의 선입견을 가지고 세상을 바라보고, 세상을 깨닫고, 후회하고 이런 것을 쓰고 싶었습니다. 그것이 최고의 경지라고 생각했으니까요.”
여성의 목소리로 1인칭 소설을 쓰는 것은 이미 『나, 황진이』에서 해본 경험이 있기 때문에 그렇기 힘들지 않았다. 문제는 리심이 간 곳에 그도 가야 한다는 것. 그래서 그는 『리심』을 영화화하기로 한 영화사를 찾아갔다.
“이건 규장각에서 자료 찾고 유학생들에게 부탁해서 책을 사와서 상상력으로 쓸 수 있는 소설이 아니다. 내가 가서 리심이 걸었던 길을 걷고, 리심이 앉았던 벤치에 가서 앉고 리심이 살았던 집에 가서 그 벽을 만져보고 이래야 쓸 수 있다고 말했어요. 그래서 영화사에서 취재경비를 대서 한 달 동안 일본, 파리, 마르세이유, 모로코, 사하라 사막을 돌았어요.”
답사의 과정에서 그가 가장 고민했던 것은 리심의 깨달음의 지점을 체크하는 것이라고 했다. 리심이 이걸 보면서 어떤 생각을 했을까, 조선에 있는 무엇과 닮았다고 생각했을까 그런 것을 유추해야 했다. “중세적인 것과 근대적인 것 사이에 낀 존재가 양쪽을 비교하는 감각, 그런 것을 만드는 것이 골치 아팠어요.”
스토리텔러에서 스토리디자이너를 꿈꾼다
많은 사람들이 그를 ‘역사 소설가’로 기억하지만 그는 ‘역사 소설’이라는 장르에 묶일 생각이 없다. 지금까지 그는 인물과 그 인물의 삶에 관심이 있어 그것을 소설로 써왔다.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인물이 있어요. 그 인물들을 이해하기 위해 자료들을 읽고 글을 쓰는 것, 그것이 나의 소설인 것 같습니다.”
예술가로 그는 형식 실험을 좋아하고, 앞으로도 계속 형식 실험을 할 생각이다. “쿤데라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이나 『농담』 같은 작품은 형식 실험을 한 소설이지만 그것을 몰라도 재미있고, 알면 더 재밌죠. 저도 그렇게 하고 싶어요. 미적인 체험을 주기 위해 계속 노력하는 것, 이것이 예술가의 운명이니까 형식 실험은 포기할 수 없는 거죠.”
이야기 창작자인 스토리텔러에서 한발 더 나아가 그는 이야기를 기획하는 스토리디자이너를 꿈꾼다. “스토리디자이너는 단순히 작품을 창작하는 것뿐만 아니라 전체를 관장하는 사람이에요. 이야기가 어떻게 기획되어서 독자에게 가는가, 그것을 연구하고 집행하는 하는 사람이죠. 이전의 소설가들이 창작자로서 스토리텔러에 충실했다면 앞으로는 기획력이 중요시되는 스토리디자이너로서의 자질이 더 필요할 겁니다.”
스토리 기획자로 가장 필요한 자질은 세상의 고민과 자신의 고민이 맞닿는 접점을 발견하는 것이라고 그는 말했다.
“스토리디자이너에 가장 걸 맞는 작가로 마이클 클라이튼이 있습니다. 마이클 클라이튼은 작품을 쓰기도 하지만 이그제큐티브 프로듀서로 'ER'도 만들죠. 나는 소설가고 시나리오도 쓰고, 내 작품으로 지금 ‘황진이’라는 드라마를 만들고 있지만 그런 스토리 제공자로서 기여하는 것뿐만 아니라 스토리 디자이너, 기획자로서 일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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