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학계에선 실제 치료 효과가 있는 것으로 인정받고 있다. 각종 질환 치료에도 쓰여서, 증상을 완화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한다. 일상에서도 이런 플라시보 효과는 접할 수 있다. 죽어가거나 죽어 있는 것도 살릴 수 있는 말의 힘도 있다. 된다, 된다, 된다, 는 긍정의 힘도 이에 해당한다 하겠다.
플라시보 효과를 볼 수 있다면, 그것을 기적이라는 말로 일컬어도 되겠다. 찰나처럼 스쳐가는 일상의 행복을 기적이라 일컫지 말라는 법이 없듯, 기적은 먼 곳에 있지 않다. 여기, 플라시보 효과를 보고 싶은, 플라시보 효과가 되고 싶은 남자가 있다.
아픈 이들의 희망으로 자리할 수 있다는 사실은 나의 희망을 부추겼다. 그리고 그렇게 무엇이 되고 싶은 순간 나는 우울증에서 놓여났다. 다.시.는. 자.살.을. 꿈.꾸.지. 않.게. 되.었.다. (p.134)
그로선, 달갑지 않은 인생 2막. 눈은 세상을 조금씩 잃어갔고, 숱한 좌절과 어려움이 닥쳤다. 하지만, 그 와중에 아이를 낳았고, 새로운 희망을 길어 올리고 있다. 최근 책도 펴냈다. 『5%의 기적』(이동우 지음|생각의 나무 펴냄). 스스로 목숨을 끊을 것도 생각했던 그는, 이제 스스로 희망의 증거가 되고자 한다. 이동우, 그 이름이 플라시보 효과가 되고 있다.
나는 그저 병에 걸려 아픈 사람인데 그것 외에는 아무것도 한 게 없는데 사람들은 내게서 희망을 보았다, 힘을 얻었다. 한 사람이 그냥 살 뿐인데 그게 다른 사람이 살아가는 동력으로 작용한다는 게 처음에는 믿기지 않았다. 그런데 살아보니 알겠다, 내가 그 희망이 되어보니 확실해졌다. (p.218)
지난 11월 22일, 서울 청량리 롯데시네마에서 열린 ‘아름다운 책 인터뷰’. 이동우씨가 자리에 섰다. 탤런트 소유진 씨 도움을 받아 자리에 함께 한 이동우씨의 ‘시각장애인으로서 살아가기, 희망 길어 올리기’를 중계한다.
두 사람은 고등학교 선후배로, 소유진씨는 이동우씨의 도우미 노릇을 톡톡히 하고 있단다. 이동우씨의 책이나 공연 등을 위한 자리라면, “생긴 것과 달리 털털하고 의리 있게”
나서서 도움을 주는 의리파란다.
망막색소변성증과 첫 대면한 2004년 3월 이후, 내게 일어난 가장 큰 변화는 이해의 폭이 넓어졌다는 것이다. 눈으로 세상을 볼 수 없게 되자 자연스레 이전에는 단 한 번도 경험할 수 없던 일들이 내게로 흘러들었다. (p.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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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유진씨는 이 책을 읽었는지, 읽었다면 어땠나?
“당연히 읽었다. 라디오(‘밤을 잊은 그대에게 소유진입니다’) 진행을 3년 정도 했는데, 오빠가 그 라디오에 게스트로 나왔다. 오빠가 아픈 걸 공개한 건 1년 정도 됐다. 그 전부터 일주일에 한 번씩 봐왔는데, 오빠가 모니터 화면을 언제부터인가 읽지 않더라. 책에도 있지만, 나는 오빠를 아니까, 이상하다 싶으면서도, 대신 ?어주곤 했다. 그러다 대본 욕심 부리지 말라고, PD한테 혼나고. (웃음) 첫 페이지를 열 때부터, 지우 표지 그림부터 눈물이 났다. 한 장 한 장 읽을 때마다, 오빠를 아니까, 눈물이 났다. 글 솜씨도 좋아서, 책을 펼쳐서 화장실도 안 가고 한 번에 다 읽었다. 작가로선 타고난 것 같다. 이 책, 무척 마음에 들고 지인들에게 적극 홍보하고 있다.”
이동우씨에게 ‘5%의 기적’이란 어떤 의미인가.
이 책의 제목은 ‘5%의 기적입니다. 현재 남아 있는 제 시력을 뜻하는 말이기도 하지만, 우리가 그토록 갈구하는 사랑이나 희망 혹은 진실과 본질은 늘 눈에 보이지 않는다는 안타까움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수치이기도 합니다. (p.9~10)
“5%라는 수치는 잔존시력을 나타낸 것이다. 안타깝고 속상한 건, 5%의 잔존 시력은 1년 전에 휴먼다큐 <사랑>을 찍었을 때의 수치다. 병이 진행성이고, 다른 환자에 비해 조금 빠르다니, 지금은 조금 더 진행이 됐겠지. 내가 느끼기엔 2~3%? 어쨌든 5%라는 이야기를 하게 되는데, 5%로 유지되고 있는 것 같아서 숫자만 봐도 좋다. (웃음) 기적은 늘 척박하고 열악한 환경에서 갈구하게 된다. 난 참 알량한 거 같다. 궁지에 몰릴 때만 기적을 바라고.
곰곰이 생각해보면 태어난 것부터 기적이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사랑하는 모든 일상이 기적이 아닐까. 큰 걸 잃고 나니 기적이 뭔지 알겠더라. 상투적인 얘기지만, 세상이 아름답냐 아니냐를 떠나, 이 세상은 위험천만한 곳이다. 일어나서 잠 잘 때까지 위험에 노출돼 있다. 어느 순간이나 마찬가지다.
그런 거 다 피해서 우리가 살고 있잖나. 그게 기적이다. 예전에 시시하게 느껴졌던 일상이 기적이라고 느껴진다. 나는 기적을 누리고 있다. 여러 의미 있겠지만, 한 줄로 표현하기 어려웠다. 책 제목으로 눈길을 끌어야 했는데, 출판사와 생각을 나눠 ‘5%의 기적’으로 잡았다.”
5% 기적 읽으면서 한 부모 가장으로서도 감명을 받았다. 동료 연예인들의 반응은 어땠나.
“(동료들이) 기특하게 생각해줘서 고맙고, 책이 사랑을 받고 있어서 하루하루 놀랍다. 그런데 지인들이 실은 냉철한 독자는 아니다. 식구 같은 사람들이니까. 그래서 책을 멀리서 읽는, 서로 얼굴을 알지 못하는 분들의 생각이 중요하고 소중하다. 사람 욕심은 끝이 없는 거 같다. 책 나오는 것만으로도 역사적인 일이라 생각했다. 책을 손에 쥐는 순간을 꿈꿨고, 그 순간을 만났다. 책이 나가면서 좋다는 얘길 들으니까, 계속 잘 팔리라는 생각만 드는데, 요즘 그렇게 기쁜 날들의 연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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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포나 상실, 절망감이 컸을 것 같다. 어떻게 극복했고, 슬픔을 이기는 방법이 있다면.
그저 사랑밖에 답이 없다는 생각만이 나를 가득 채웠다. 사랑을 갖지 않고서는 1분 1초도 살지 못할 것 같았다. 사랑이 있어서 하는 게 아니라 사랑이 있어야 하니까 사랑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두드려야 문이 열리듯이. (p.157)
“요즘 소유진씨에게 특히 놀라고 있다. 이리 따뜻한 사람이었나 싶어서. (웃음) 우리 주변에 힘든 분들이 많은데, 나는 유진씨만큼 따뜻한 마음을 나눌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을 하게 된다.
병을 극복한 배경이나 계기를 묻곤 하신다. 딱 꼬집어서 한 가지의 사건을 말할 수 있다면 속 시원하겠는데, 사실 그렇지 않다. 책에 하모니카 얘기도 있는데, 딱 한 마디로 말하자면, 사랑이다. 요즘처럼 사랑하고 산 적이 없는 것 같다. 인류의 화두는 사랑이 아닐까. 사랑 얘기를 할 때, 빼놓지 않고 드리는 말씀이 있다.
입장, 처지 등에 따라 생각 다를 수 있지만, 부정할 수 없는 것은 사랑은 하나겠죠. 옛날 우화 중에 큰 코끼리를 만지는 시각장애인들끼리 싸우는 얘기가 있었는데, 사랑도 그런 게 아닐까. 내가 생각하는 사랑은 우선은 변하지 않는 것이다. 본질적인 사랑은 변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숭고한 사랑을 얘기할 때, 부모님의 자식에 대한 사랑을 1순위로 꼽는다. 이유는 뭘까. 내가 볼 때 변하지 않는, 한결 같은 사랑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사랑에 빠졌다, 는 식으로 얘기하고, 이별이 오고 헤어질 때, 사랑이 아니었다, 쟤는 사랑이 식었다, 고 표현한다. 나는 사랑이라는 말은 함부로 꺼?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참 사랑은 어렵다.
결혼할 때, 상대가 뭐하는 사람인지, 어떤 환경인지, 키는 얼마고, 상대방을 그렇게 궁금해 한다. 나는 결혼을 상대가 아닌 자신을 따지는 행위여야 한다고 본다. 결혼하기 전에 내가 인격적으로 갖춰졌느냐, 내가 사람이 됐느냐를 먼저 따져야 한다는 거지. 사람들은 결혼하면, 결혼식만 생각하는데, 결혼은 결혼식이 아니라 결혼생활이 중요하다. 안다는 식으로 얘기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사실 변하지 않는 사람이 있을까. 변하기 마련이라서 사람이고. 요즘 들어 하는 얘기가 있다. 아내의 큰 사랑을 받고, 아내를 사랑하며, 요즘 평온하고 행복한 일상을 찾았지만, 나 또한 잘못을 저지를 수 있다. 또 다른 병이 내게 닥칠 수도 있다. 나도 카지노에서 도박할 수 있다. 여러 경우의 수를 열어놓고 산다. 인간이니까. 철학이 아무리 강건해도, 인간이니까.
지금 이 병에 걸렸을 때, 결혼한 지 100일도 안 된 상황이었다. 아내는 날 떠났어야 했고, 떠나겠다는 아내를 붙잡을 수 없어야 했다. 그런데 그러지 않았다. 아내를 통해 사랑을 배웠고, 가르침을 받았다. 그럼 아내는 훌륭한 사람인가. 사회적 지위 높고 돈 잘 버냐. 그렇지 않다. 하루하루 벌어서 먹고 살기 어렵다.”
나는 무슨 복을 타고나서 이런 사람을 만났을까. 저 여자는 나와 어떤 인연이기에 이렇게 보잘것없는 나를 이다지도 사랑하는가.… 아내의 사랑으로 열린 세상은 그날 이후 조금씩 내게로 흘러들었다. 그렇게 마주한 세상에서 나는 아내가 나와 지우 그리고 자기 자신을 지키기 위해 피곤을 떨치고 현관문을 열듯, 나의 병과 정면승부를 펼쳐야 내 사랑을 지킬 수 있음을 사무치게 깨달았다.… 물론 여전히 두렵고 고달파서 현관문 고리를 잡고 서성일 때도 있었다. 그러나 나는 이전과 달랐다. 행동하는 사랑은 나, 이동우가 시작한 인생 2막의 첫 거름이었다. (p.52~53)
“나는 그나마 육체적 고통이라지만, 통증이 있는 것도 아니다. 또 매니저가 늘 보호해주고 있으니까, 크게 불편한 것이 없다. 하지만 아내는 손수 운전해서 새벽 6시에 나가서 밤 10시 들어온다. 격무에 시달리면서 싫은 내색을 안 한다. 그렇다고 많이 배웠냐. 그렇지도 않다.
생각해보면, 나한테만 그런 사람이 아니다. 아내는 모든 사람에게 솔직하고 자신이 부족한 것을 늘 솔직하게 얘기한다. 남편이라 남다른 감정, 사랑이 있겠지만, 병을 극복한 계기를 말할 때마다 사랑을 이야기한다. 사랑을 이야기하다보면 아내를 이야기할 수밖에 없다.
책에도 썼지만, 이 책이 마치 모든 아내들의 필독서처럼 돼서, 원성을 많이 듣는다. 남편이 사서 아내에게 선물을 많이 한다는데… 그렇게 완벽한 사람이 어디 있겠나. 그래서 책에도 솔직하게 썼다. 엄청 싸웠다고. (웃음)”
만약 아내가 없었다면 또 내가 없었다면 나도 아내도 진짜 죽었을 것이다. 사랑 때문에 살아났느냐고? 위대한 사랑의 힘이 시련을 추억으로 만들었느냐고? 글쎄, 그건 잘 모르겠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아내가 있기에 내가 살기로 결심한 것이고, 내가 있기에 아내도 산 것이다. 나는 큰 소리로 외친다. 지금 여기, 나 이동우와 내 아내 김은숙은 살아 있다! (p.46)
하모니카를 배워서 부인, 지우 앞에서 공연할 목적으로 배우다가, 부인이 하모니카를 보고 “앵벌이 할 거냐”며 울분을 토하는 내용이 있다.
나는 하모니카를 포기했다. 끔찍하게 나를 사랑하는 한 여자가 절망에 가득 차서 하지 말라고 울부짖는데 그게 뭐라고 고집하겠는가.… 그렇게 한 편의 콩트마냥 끝나버린 싱거운 나의 하모니카 도전기는 영원히 내 가슴속에 묻히고 말았다.… 하지만 하모니카 사건 이후로 나는 ‘다름’을 대립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는 서로 다르기 때문에 이전에 알지 못했던 것들을 깨닫고 무심하게 지나쳤던 진심을 바라보는 것이다. 식상하지만 사랑이 없다면 싸울 일도 없다. (p.67~68)
소유진씨의 낭독. “그런 지우가 어느 날부터 무턱대고 울기 시작했다. 엄마가 출근할 때도 울지 않던 아이가 세상이 떠나갈 듯 서럽게 울었다.… “아빠 눈 때문에 슬퍼. 아빠 눈이 아파서 나는 정말 슬퍼. 그래서 우는 거야.”… 지우가 내 눈 때문에 눈물을 흘린 것은 처음이었다. 아마도 어른들이 걱정하는 소리를 들은 모양이었다. 지우를 겨우 진정시키고 나니 이번에는 내가 울고 싶어졌다.… 그때 마치 나를 보는 지우의 표정이 생생하게 보이는 듯했다. 소리 내어 말은 안 했지만 ‘응, 아빠. 꼭 나를 지켜줘야 해. 나는 아빠가 있어서 무섭지 않아’라고 이야기하고 있었다.” (p.101~103)
“요즘 기대하고 있는 게 하나 있다. 얼마 전 소유진 씨한테 무척 예쁜 문자를 받았다. 읽고 싶은 책이 뭐냐고. 자기가 직접 녹음해서 읽어주고 싶다는 거다. 어쩜 그런 마음을 가질 수 있을까. 아내를 자랑했지만, 아내는 책을 녹음해서 들려주겠단 생각도 못하고 있는데. (웃음) 굉장히 고마웠다. 그래서 한 권을 이야기했는데, 계속 얘기하라는 거다. 그거 쉬운 게 아니거든. 여러분도 소중한 분에게 선물을 주고받겠지만, 지금까지 받은 선물 중에 가장 기억나는 선물 뭐냐고 물으면 1순위가 될 것 같다. 언제쯤 줄 건가?”
소유진 : “녹음실을 빌려서 녹음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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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분 친한데, 각자에게 하고 싶은 말.
이동우 : “소유진, 정말 욕심이 많은 친구다. 재능도 많고, 한참 일하면서 능력을 발휘할 시기다. 여배우의 삶이 그렇다. 정신없이 모든 에너지를 쏟아 일한 시즌이 지나면 외롭다. 유진씨가 그리 되지 않았으면 하는 생각에, 멋진 남자가 옆에 있으면 하는데, 만나는 남자마다 내가 보기엔 시원찮은 것 같다. (웃음) 그래서 기도에 가까운 기대를 하고 있다.”
소유진 : “나도 시집은 가야 하는데… 모르겠다. 어떤 남자 만나야 하는지. 너무 오래돼서. (웃음) 그냥 운명적으로 나타날 거라고 생각해서 기다리고 있다.”
이동우 : “그러다 내 꼴 난다. 결혼을 서른넷에 했다. 그전에 어느 날 정재환씨가 결혼을 할 거냐고 물었다. 내가 그랬다. 형님, 운명적인 사랑을 만났으면 좋겠다. 가소롭다는 듯이 쳐다보더니, 운명적인 만남이 어떤 거니, 어느 날 현관문을 열고 나갔는데, 이상형의 여자가 서 있을 것 같니, 그래서 결혼할 것 같니, 어떻게 노력해야 겠니, 그렇게 묻는 거다.”
“나는 드라마틱한 인연을 꿈꾸었다. 그것도 아주 막연하게! 숱하게 보았던 로맨틱 코미디 영화처럼 어느 날 집 밖을 나가는데 현관 앞에 이상형의 여자가 “결혼해주세요.” 외치며 서 있을 거라고 기대했다. 대단한 착각이었다. 단물 쓴물 다 맛본 서른넷치곤 순진한 판타지. 나는 마음을 고쳐먹고 본격적으로 인연을 찾기로 결심했다. (p.28~29)
소유진 : “주변에 남자는 많다. 내 마음에 드는 사람이 없어서 그렇지. 농담이고. 연기에 열중했는데, 스캔들이 나고. (웃음) 활동할 때는 열심히 하지만, 친한 동료 통해서 자리는 많이 만들 수 있다. 소개팅 같이 어색한 자리가 아니더라도. 내가 준비가 안 돼서, 내가 부족한 게 있어서, 아직 못한 건 아닐까.”
소유진씨와 문자 주고받는다고 했는데, 문자 어떻게 확인하나.
“그런 질문, 전혀 조심할 필요 없다. 내가 쓰는 휴대폰은 문자 확대가 된다. 어마어마하게 커진다. 가장 크게 하면 보인다. 요즘 가장 자신 있게 볼 수 있는 게, 글자다. 물론 책에 있는 글자는 못 보지만. 얼마 전, 시각장애인용 휴대폰으로 바꿨다. 그런데, 그게 신청하면 오랫동안 기다려야 하고, 모든 시각장애인에게 돌아가는 게 아니다. 그게 안타깝다. 그 휴대폰은 문자가 오면 음성으로 읽어주고, 내가 보내는 문자도 음성으로 보낼 수 있다. 그렇게 주고받는다.”
병을 앓았을 때 자녀에게 유전되지 않을까, 불안감 없었는지.
“망막색소변성증을 줄여서, RP(Retinitis Pigmentosa)라고 하는데, 그 원인이 아직 정확하게 규명되지 않았다. 가족력이 있는 환자도 있는데, 그게 RP환자를 괴롭히는 요인이 되기도 한다. RP가 있는 미혼인 경우, 결혼이 안 되겠다 하고 포기하거나, 결혼을 해도 아이를 꿈꾸지 못하는 부부가 많다. 1%라도 유전 가능성이 있다면, 어느 부모가 용기를 내겠나. 그래서 나도 2년 간 아이를 입에 꺼내지 않았다. 사치, 허영이라는 생각을 각자 하고 있었던 것 같다.
그런데 어느 날, 다른 장애인이 자녀를 낳고, 그 자녀가 씩씩하게 잘 크는 모습을 봤다. 저 분들은 나보다 훨씬 더 어려운 환경인데, 어떻게 낳고 키울 수 있었을까, 궁금증이 생겼다. 그래서 관찰했는데, 결국은 용기더라. 우리 부부에겐 그런 용기가 없었던 거지. 의학적으로 규명도 안 된 건데, 부정적으로 생각하고, 처음부터 숨통을 죌 필요가 없겠? 싶었다. 조심스레 아내에게 얘기를 했다. 우리도 아이를 낳고 기를 수 있지 않겠나. 그래서 아이를 갖게 됐고, 지우는 유전 관계가 없다. 많이 감사하고, 지우 보면서 마음이 많이 놓인다.”
아이는 아이 자신이 제 운명으로 오는 거래. 그냥 우리는 그 길을 열어줄 뿐이고, 그렇게 따지면 우린 너무 건방 떠는 거야, 안 그래?… 눈부신 봄의 전령사인 양 파릇한 생명 사랑이가 우리에게로 왔다. (p.76~77)
“(한 관객이 이동우씨에게 아는 척을 했다. 이동우씨와 안면이 있는 분으로 그 인연을 설명했다.) 얼마 전, 북콘서트를 했는데, 김세희씨라고 관객 중 한 분이었다. 한쪽 눈을 잃었는데, 용기를 내서 그 자리에서 남자친구에게 청혼을 했다. 남자친구가 신사고 참 멋지더라. 무척 감동스럽고 프러포즈를 받아들였다. 정말 뭉클한 시간이었다. 결혼 날짜를 잡으면 사회를 봐주기로 했다. (박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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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자책을 배우기 시작했다. 아직 손으로 와 닿질 않는다. 휴먼다큐 <사랑>에서 점자를 배우고 있었는데, 지금 어느 정도 수준이고, 잘 배울 수 있는 방법이 있는지.
“비장애인들도 엘리베이터 등에 있는 점자를 보고, 만져봤을 텐데, 점자가 굉장히 힘들다. 나도 두 달 정도 배우다가, 속 시원히 때려 쳤다. 이리 말씀 드리면, 전의를 꺾는 것 같아서 미안하긴 하나, 왜 이동우가 2개월 만에 포기했는지, 점자를 본격 배우면 알게 될 거다. 점자가 시각장애인들에게 절대적이긴 하나, 내가 배울 때 20명이 신청했는데, 2개월 정도 됐을 때, 나와 한 분이 남았다. 내가 포기하고 얼마 뒤, 나머지 한 분도 포기했다더라.
점자를 쓰는 건 쉽고, 편지도 쓸 수 있는데, 누가 읽겠나. 점자를 익히지 않는 시각장애인은 읽을 수도 없다. 어디서 많이 포기하느냐면, 읽는 게 안 된다. 시각장애인에게 정작 필요한 건, 읽는 거다. 그런데 읽는 건, 너무 어렵다. 점자를 읽으려면, 자는 시간에도 배위에 올려놓고 점자 위에 손가락을 대고 있어야할 정도라더라. 그렇게 어마어마하게 긴 시간을 투자해야 한다더라. 나는 점자 회의론자인데, 읽을 수 있게 돼도, 책을 읽고 싶어도, 내가 읽고 싶은 책이 나와 있질 않다. 복지관 등에서 내놓은 점자책이나 양서가 많긴 하나, 선택의 폭이 넓지 않다.
마지막으로 활용효용가치 떨어지는데, 그 빈자리 메우는 게 뭐냐. 요즘 컴퓨터 음성 프로그램이 기가 막히다. 그런 갈증을 해소시켜줄 수 있을 만큼 기술력이 돼 있다. 많은 콘텐츠가 있고, 단축키를 누르면 음악과 함께 신문도 읽을 수 있으니, 굳이 점자를 배우지 않아도 된다. 그래도 일단 해보라는 말씀은 드리고 싶다. 개인차가 있어서, 손끝 야무진 분들은 익히는 속도가 빠르다.”
나는 현재의 음성 컴퓨터 프로그램이 더 발전해서 점자보다 훨씬 더 보편적으로 사용될 테니 걱정할 것 없다고 스스로를 위로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책 읽어주는 자원봉사에 적극 참여했으면 좋겠다고 간절히 바랐다. (p.147)
딸 지우에게 정신적으로 남겨주고 알려주고 싶은 게 있는지.
“아이가 어땠으면 좋겠다, 그런 이야기를 많이 하는데, 솔직하게 물려줄 것도 없다. 지우가 이런 사람으로 성장했으면 좋겠다, 보다 태어난 대로 성장해줬으면 싶다. 태어나기 전부터 기도를 했다. 용기 있는, 스스로 용기를 낼 수 있는 사람이었으면 좋겠다고. 내 처지가 다른 아빠보다 불편한 점이 많아서 그런 기도를 했다. 하늘에서 그 기도를 들어줬는지, 지우가 쉼 없이 까불고, 넘어져도 울지도 않는다. 그렇게 용기 있는 사람으로 계속 커줬음 좋겠다.
또 지우를 생각하면 여러 생각이 많이 떠오르는데, 지우에게 뭔가 주고 싶다는 것보다, 지우를 생각하면서 마음을 잡는 게 있다. 멋진 아빠가 되고 싶다는 각오를 다진다. 내가 바로 서야 아이가 바로 설 것 같거든. 아내도 나도 부족한 사람이지만, 얼마든지 멋진 사람은 될 수 있거든. 솔직한 사람도 멋진 사람이 될 수 있고. 누군가를 미워하지 않고 하루하루 감사할 줄 아는 사람도 멋진 사람이고. 그런 멋진 사람이고 싶다.”
이변이 없는 한, 그는 세상의 빛을 마주하지 못하겠지만, 되레 그는 세상에 빛을 선사할 것이다. “이제 더 이상 기적을 바라지 않”는다고도 ??지만, 그는 매일 기적을 만들 것이다. 시력이 먼 대신, 마음의 눈은 더욱 먼 곳을 바라볼 수 있게 됐으니까.
내 삶의 변화는 “나는 시각장애인이다”라고 외쳤기 때문에 가능했다.… 그러고 보니 벌써 1년이 다 되어간다. 그 1년 동안 많은 일들이 펼쳐졌다. 나는 조금씩 나아가고 깊어지는 중이다. (p.246
채널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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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명욱
2015.1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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