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재승이 만난 사람들] “한 달에 한 번 쓰던 엽서가 유일한 해방구” - 성공회대 신영복 석좌교수
지난 11월 23일 이화여대 언어교육관에서 열린 ‘정재승, 신영복 교수 특별대담 - 여럿이 함께 숲으로 가는 길’ 현장. 3백여 명의 관객이 자리를 메웠다. 매서운 추위가 닥친 저녁이었지만, 빈자리를 찾아보기 힘들었다. 10대부터 50대까지 다양한 사람들이 한 자리에 모여 ‘스승’을 기다렸다. 신영복 교수가 등장하자 뜨거운 박수가 쏟아졌다. 혼란과 좌절의 시기를 건너고 있는 젊은이들은 진지하게 듣고, 물었다. 스승의 답은 따스했다. 강의 말미, 사람들은 저마다의 가슴에 ‘숲으로 가는 길’을 새긴 듯했다. 이날 대담은 페이스북으로 생중계 되었다. 사회는 유정아 아나운서가 맡았다.
글ㆍ사진 정재승
2011.1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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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부터 시작된 '희망의 인문학 - 정재승이 만난 사람들‘이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마지막 인문학자는 성공회대 교수였다

지난 11월 23일 이화여대 언어교육관에서 열린 ‘정재승, 신영복 교수 특별대담 - 여럿이 함께 숲으로 가는 길’ 현장. 3백여 명의 관객이 자리를 메웠다. 매서운 추위가 닥친 저녁이었지만, 빈자리를 찾아보기 힘들었다. 10대부터 50대까지 다양한 사람들이 한 자리에 모여 ‘스승’을 기다렸다. 신영복 교수가 등장하자 뜨거운 박수가 쏟아졌다. 혼란과 좌절의 시기를 건너고 있는 젊은이들은 진지하게 듣고, 물었다. 스승의 답은 따스했다. 강의 말미, 사람들은 저마다의 가슴에 ‘숲으로 가는 길’을 새긴 듯했다. 이날 대담은 페이스북으로 생중계 되었다. 사회는 유정아 아나운서가 맡았다.

유정아 : 안녕하세요. 사회를 맡은 아나운서 유정아입니다. ‘희망의 인문학 - 세상을 보는 눈이 달라집니다’라는 주제로 카이스트 정재승 교수가 10분의 인문학자를 만나셨는데요. 인류학자 조한혜정 교수, 강신주 철학박사, 건축가 황두진, 사회학자 송호근, 물리학자 장회익, 그리고 10번째로 신영복 교수님을 만나 뵙게 되었습니다. 큰 자리다 보니 저는 도우미로 초대를 받았네요.

먼저 정재승 교수님을 소개해드릴께요. 책 『과학콘서트』로 큰 열풍을 몰고 오셨죠. 과학서적의 이전, 이후를 나눴다는 평을 받았는데요. 어려운 과학이라는 주제를 쉽고 재미있게 보여주셨습니다. 어떻게 보면 애매하고, 잘못된 정보를 바탕으로 막무가내식 주장이 만연하는 가운데 제대로 된 정보를 던져 준 과학자이기에 젊은이들의 멘토로 자리잡으신 게 아닌가 합니다. 정재승 교수 뜨거운 박수로 맞아주시기 바랍니다.

정재승 : 안녕하세요. 정재승입니다. 반갑습니다. ‘정재승이 만난 사람들’이라는 이름으로 10번째 인터뷰까지 왔습니다. 오늘은 정말 각별한 시간이 될텐데요. 바로 성공회대 신영복 교수님이 주인공이십니다. 간단하게 약력을 소개해드리고 모시겠습니다. 1941년 밀양에서 태어나셨고요. 서울대 경제학과, 대학원을 졸업하셨습니다. 숙명여대와 육군사관학교에서 경제학을 가르치시던 중 통일혁명단 사건으로 구속되셔서 무기징역을 선고받으셨습니다. 20년간 의 수감생활을 거치셨고 1988년 특별가석방 되신 후, 성공회대에서 사회과학부 교수로 계셨죠. 2006년 정년퇴임 하셨습니다. 지금은 석좌교수로 계십니다. 선생님의 책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은 우리에게 깊은 감동을 주었습니다. 지금도 나눔과 소통의 장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계신 우리시대의 스승 신영복 교수님 모시겠습니다.

신영복 : 반갑습니다. 오늘 두 분 양쪽에 계셔서 믿음직합니다. (웃음) 경험이 많은 분들이 계셔서, 제가 조리 없어도 잘 잡아주시리라 믿습니다. 또 어느 정도 준비된 청중들이실 것 같아요. 편한 마음으로 이야기 나누겠습니다.

정재승 : 젊은이들과 만날 기회가 많으시죠.
신영복 : 네, 자주 만나려고 해요.

정재승 : 젊음을 통째로 감옥에서 보내셨잖아요. 어느 곳에 ‘청춘은 감옥이었다’고 쓰기도 하셨는데요. 요즘 젊은이들 보시면 어떠세요.
신영복 : 지금 청년들도 감옥에 있는 것 같아요. 청년실업이나 지금 시대에 겪는 고통, 보이지 않는 감옥 같은 생활이죠. 그런 공감하는 부분이 있지 않을까 해서 오늘 나를 부르신 게 아닌가 해요.

청년시절 20년의 감옥생활, 인간에 대한 이해의 기간

정재승 : 그간 인문학분야 10분의 석학을 만나왔습니다. 지금 인문학은 어디에 와있고 나아갈 방향은 무엇이며, 어떤 질문을 던져야 하는가를 알아봤는데요. 어떻게 살아오셨고, 고민하는 것은 무엇인지, 편안하고 솔직하게 답해주시면 됩니다.
신영복 : 오늘 주제가 ‘희망의 인문학’이죠. 우리시대 고민해야 할 내용이 무엇인가를 봐야 할텐데요. 인문학은 인간에 대한 공부가 아닌가 해요. 청년시절을 감옥에서 보냈는데, 20대 후반부터 40대 후반까지요. 가장 중요한 시기를 감옥에 있던 셈이죠. 감옥에서 느꼈던 인간에 대한 이해, 그것이 우리가 천착해 있는 인문학적 내용과 같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정재승 : 선생님의 삶을 보다 잘 이해하려면, 통일혁명당을 조명해봐야 할 것 같은데요. 어떤 사건이었고, 왜 감옥에 가게 되셨나요.
신영복 : 제가 59학번이에요. (웃음) 몇 년 전에 서울대 가서 09학번 학생들과 만났어요. 59와 09의 만남이었죠. 50년의 세월차가 있더라고요. 물어보신 사건, 참 오래됐네요. 그때 상황을 여러분은 잘 모르실거에요. 대학 2학년 때 4.19가 있었고요. 3학년 때 5.16 군사혁명 이후로 학생들의 저항과 반대 분위기가 형성되었어요. 제가 학생서클 운동의 1세대입니다. 사실, 당시엔 통일혁명당이란 게 없었어요, 감옥에 들어간 후에 만들어졌다는 걸 들었죠. 아무튼 감옥에 가게 되고, 무기징역까지 받을 줄 전혀 몰랐죠. 중앙정보부에서 취조할 때도 자기들끼리 얘기 하더라고요 ‘3년, 5년일꺼야’ 라고요. 그런데 사형구형이라고 해서 깜짝 놀라기도 했어요. 저는 군사재판을 받았습니다. 현역으로 육군중위였기 때문이죠. 68년 김신조 사태가 일어났고, 푸에블로호가 원산 앞바다에서 나포(拿捕)되어 북한에 억류되기도 했죠. 또 삼선개헌, 한일회담, 독도문제가 거론되며 복잡한 상황이었죠. 정확하진 않지만, 당시 서울대 학생서클 간부 하나를 사형을 시켜야한다는 주장이 있었다고 해요.

정재승 : 아, 그러니까 통일혁명당이 존재하진 않았지만, 주요 간부라는 누명을 쓰신거네요.
신영복 : 사실, 문리대 정치과 선배 한 분이 관련이 있었어요. 북한에 다녀오고 간첩사건과 관련이 있었고요. 난 학생서클 1세대였고, 학생운동을 열심히 했죠.

정재승 : 당시에 150여명의 간첩단 사건 같은 게 나왔죠.
신영복 : 네.

정재승 : 어떻게 보면 억울한 상황으로 감옥에 가고, 무기징역까지 선고 받으신거네요.
신영복 : 여러 가지 생각이 참 많았죠. 조금씩 자기 문제를 사회적 관점, 역사적 관점으로 보게도 되었어요. 그러고 보니 역사적 격동기에 감옥에서 인생을 보낸 수많은 사람들이 있었더라고요. 나도 그 중 하나구나, 팔자구나 생각했죠.

유정아 : 수많은 사람이 있지만, 그것이 나의 일이 되면, 사람을 피폐하게 만들고 인생을 다시 극복하지 못하게도 만들잖아요. 그런데, 어떻게 그런 청춘을 보내며 자기성찰적인 글이 나왔는지요.
정재승 : 정말요. 그런데도 피부가 너무 뽀야세요. 동안의 비결은 뭔가요 (웃음)

신영복 : (웃음) 당시 150명이 구속됐어요. 선배 후배들이 다 들어갔지요. 나는 후배들을 많이 데리고 들어온 선배입장이었기 때문에 죄책감, 미안함으로 고통스러웠어요. 나 자신의 문제보다 그것이 훨씬 고통스러웠죠. 또, 조용히 혼자 있을 땐 ‘사형이라니. 너무 빨리 죽는구나’ 이런 쓸쓸한 마음이 들었어요. 할 것도 참 많았는데 말이죠. 막상 무기로 감형이 되고 나서는 암담하기도 했어요. 끝이 보이지 않는 깜깜한 동굴로 걸어 들어가는 느낌이었어요. 용케 잘 걸어나왔죠.

1988년 첫 출간된 이래 지금까지 수많은 사람들의 가슴에 깊은 감동을 남기며 이 시대의 고전이 된 책


한 달에 한 번 쓸 수 있는 엽서, 정신의 해방구

정재승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은 대학생들이라면 한번쯤 읽었을텐데요. 가족들과 나눈 편지글입니다. 어떻게 그 글들을 쓰게 되셨는지요.
신영복 : 지금은 감옥이 많이 달라졌죠. 집필, 티비 시청도 되고요. 그때는 일체 집필도 허가되지 않고, 편지도 한 달에 한 번씩 엽서를 신청해서 쓸 수 있었어요. 교도관의 감시하에 썼고요. 생소한 감옥에 던져지니, 충격적인 생각들을 많이 했어요. 그 생각들을 어디다 좀 적었으면 했죠. 다 잊어버릴 것 같았거든요. 그래서 유일하게 기록이 허락되는 가족에게 보내는 편지에 쓴거에요. 아마 가족에게 보내는 편지에 그런 사색적인 내용을 쓴 사람은 없었겠죠.

정재승 : 굉장히 사색적이고, 산문이긴 하지만 시적이기도 해요. 그런 편지들을 받은 가족들의 반응은 어땠나요.
신영복 : 아직 정신적으로 무너지진 않았구나 하는 위로를 받았겠죠.

정재승 : 전 반대였을 것 같아요. 아니 점점 이상해지고 있구나. 이런... (웃음)
유정아 : 내지는 피부를 바늘로 찌르는 것 같은 느낌을 받을 것 같아요.

신영복 : 개인적으로 한 달에 한 번 밖에 못쓰기 때문에 한 달 내내 이 내용을 이렇게 쓰자 머릿속으로 정리를 했어요.
유정아 : 월간지 기고문이네요.
신영복 : 교정까지 완벽하게 끝냅니다. 20대라 머리가 명석했죠. 지금은 『엽서』라는 영인본이 나와 있죠. 그걸 보고 사람들이 말해요. ‘어떻게 고친 데가 하나도 없냐’고요.
유정아 : 그 속에서 퇴고를 다 하신거네요.
신영복 : 그렇죠.

정재승 : 교도관들의 반응은 어땠나요?
신영복 : 편지를 검열하는 건 보안과, 교무과에서 하는데 사실 조심스럽죠. 검열을 전제로 하니까요. 통과되지 않을 이야기는 안됐어요. 그렇게 했는데도, 보낸 편지가 없어진 게 상당했어요. 검열 과정에서 사라졌겠죠. 까다로운 검열관 때는 피해서 썼어요. 통과수위가 낮은 사람이 검열할 때 썼어요. 그랬는데도, 많은 독자들이 물어요. ‘국가보안법이나 통혁당 간부라는 사람의 서신에 비전투적인 글만 나오느냐’고요.

유정아 : 정재승 선생님은 어떤 부분이 가장 기억에 남으세요?
정재승 : 많은 분들이 꼽으시는 부분일거에요. 옆에 있는 동료들을 열덩어리로 느끼게 해 증오하게 만드는 여름에 대한 글이요. 생명, 계절의 변화에 주목하신 여러 부분 모두 인상적이었어요. 그 안에서 마치 득도하신 것 같았어요. 굉장한 분노와 억울함이 있었을텐데, 어떻게 밖에 있는 사람에게 평온함을 줄 정도로 사색의 심연으로 들어갈 수 있었을까. 정말 신기했어요. 문장을 한 번 쭉 읽어서는 잘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 있어요. 여러 번 읽고 상상을 해야 그려지는 책이었어요.
신영복 : 까다로운 자기검열을 하게 되어, 글 전달이 조금 어려울 수도 있겠어요. 저는 글을 읽다보면, 행간에 묻어 있던 사람들의 얼굴이 떠오릅니다. 지금은 거의 읽지 않습니다. 괴롭기도 해서요.

고리끼가 그랬듯이, 감옥생활은 나의 대학생활


정재승 : 책에 실린 에피소드 중, 감옥생활을 단적으로 나타내는 장면이 있다면 어떤 부분일까요.
신영복 : 감옥 20년을 나의 대학생활이라고 하는데요. 고리끼가 쓴 『나의 대학』이라는 책이 있어요. 고리끼의 학력은 초등 3학년이 전부였죠. 볼가강의 뱃사공 일을 도왔는데요. 배의 주방장이 독서를 하는 사람이었대요. 그게 책을 보게 된 시작이었죠. 그의 책 『나의 대학』은 해방 직후에 번역되었고, 대학 다닐 때 고서점을 다 뒤져 찾아냈어요. 볼가강 근처 노동자 합숙소에서 지낸 2~3년간의 시절을 ‘나의 대학시절’이라고 해요.

내가 보낸 20~30년도 그랬던 것 같아요. 갇혀 있는 세월이긴 했지만, 밖에 있었다면 절대로 만나지 못했을 여러 계층의 사람들을 만나고, 사회와 역사 그리고 인간에 대한 새로운 깨달음을 가질 수 있었으니까요.

정재승 : 그래서인지 관계와 소통에 주목하고 계신데요. 감옥 안과 밖의 관계, 소통은 어떻게 다른가요.
신영복 : 오늘의 주제가 ‘희망의 인문학’인데요. 근대 사회의 가장 큰 특징은 존재론적인 패러다임입니다. 자기의 주체성을 완강히 지키며 상대를 타자화시키고, 자연까지 대상화합니다. 이걸 청산하고 뛰어넘는 게 탈근대죠. 우리 시대가 당면한 과제라는 생각에서 관계론을 이야기하곤 하는데요. 인간적 관계를 가장 밀도 높게 경험한 게 감옥이 아닌가 합니다. 뜨거운 여름에는 칼 잠을 잡니다. 옆으로 누워서요. 수용인원이 많으니까요. 바로 옆 사람? 증오하게 돼요. 사실, 그 사람은 아무 죄가 없거든요. 인간적인 관계를 잘못 파악하는 경우도 참 많아요.

감방마다 버릇없는 친구가 있어요. ‘싸가지 없는’ 사람이 각 방마다 있어요. 그 사람 만기 기다리다 자기징역 다 간다는 말까지 있어요. ‘쟤 언제 나가지?’ 그러고 기다리는 거에요. 재미있는 건, 그 사람 나간 날은 참 행복한데 2~3일 지나면 또 그런 사람이 들어온다는 거죠.

유정아 : 자신의 복역기간을 짧게 느끼게 해주는 사람들일 수도 있네요.
신영복 : 그러니까 증오의 대상이 되는 사람이 결함이 없진 않지만, 몇 사람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겪으며 상황이 그런 사람을 만들어 내는구나라는 깨달음을 겪게 되었죠. 우리가 갖는 인간관계가 얼마나 잘못되는가 말이죠.

정재승 : 싸가지 없는 사람의 특징은 이기적인가요, 무례한가요.
신영복 : 그런 면도 없지 않죠. 한편 열악한 상황에서 다른 사람 배려하면 자기가 너무 힘들어요. 1차적 반응은 배타적 자기존재성으로 판단할 수밖에 없는 환경이기도 해요.

* 이 기사는 신영복 교수와 정재승 교수 대담 기사 중 전반부입니다. 전문은 아래에서 보실 수 있으며, 전문 기사에 댓글을 남겨 주신 분 중 추첨하여 예스 포인트를 드립니다.

⇒ 신영복 대담 기사 전문 보기
#신영복 #정재승
13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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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기를

2012.03.20

의식이 얕은 저는 아마 선배가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을 선물해 주지 않았다면 신영복 교수님을 알지 못했을거에요 지금까지.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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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rtex42

2012.03.15

전문으로 읽어보니 훨씬 좋네요.
긴만큼 이야기가 많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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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는 낭만푸우

2012.03.14

신영복 선생님의 엽서는 영인본으로도 가지고 있지요.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은 고등학생 때 중학교 때 선생님께 선물을 받았는데 학부생 때 내내 많이 읽었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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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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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영복

우리 시대 대표적인 진보 지식인. 1941년 경상남도 밀양에서 출생했다. 서울대 경제학과와 대학원을 졸업한 후 숙명여대와 육군사관학교에서 경제학을 가르쳤다. 육사에서 교관으로 있던 엘리트 지식인이었던 신영복 교수는 1968년 통일혁명당 사건으로 무기징역형을 받고 대전 · 전주 교도소에서 20년간 복역하다가 1988년 8 ·15 특별 가석방으로 출소했다. 1976년부터 1988년까지 감옥에서 휴지와 봉함엽서 등에 깨알같이 쓴 가족에게 보냈던 편지들을 묶은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은 큰 고통 속에 있는 인간이 가슴 가장 깊은 곳에서 길어올린 진솔함으로 가득한 산문집이다. 1989년부터 성공회대학교에서 정치경제학, 한국사상사, 중국고전강독 등을 가르쳤고, 1998년 3월, 출소 10년만에 사면복권되었다. 1998년 5월 1일 성공회대학교 교수로 정식 임용되어 2007년 정년퇴임을 하고 석좌교수로 재직했다. 2014년 암 진단을 받고 투병하다 2016년 1월 15일, 향년 75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은 1968년 통혁당 사건으로 무기징역을 받은 저자가 20년 20일이라는 긴 수형 생활 속에서 제수, 형수, 부모님에게 보낸 서간을 엮은 책으로, 그 한편 한편이 유명한 명상록을 읽는 만큼이나 깊이가 있다. 그의 글 안에는 작은 것에 대한 소중함, 수형 생활 안에서 만난 크고 작은 일들과 단상, 가족에의 소중함 등이 정감어린 필치로 그려져 있다. '일요일 오후, 담요 털러 나가서 양지바른 곳의 모래 흙을 가만히 쓸어 보았더니 그 속에 벌써 눈록색의 풀싹이 솟아오르고 있었습니다. 봄은 무거운 옷을 벗을 수 있어서 행복하다던 소시민의 감상이 어쩌다 작은 풀싹에 맞는 이야기가 되었나 봅니다.'슬픔이 사람을 맑게 만드는 것인지 그가 바라보는 세상은 울타리 밖에 사는 우리보다 넓고 아름답다. 시인 김용택의 "아름다운 역사의 죄를 지은 이들이 내어놓은 감옥에서의 사색은 사람들을 해방시킨다"는 글귀가 공감되는 부분이다. '없는 사람이 살기는 겨울보다 여름이 낫다고 하지만 교도소의 우리들은 없이 살기는 더합니다만, 차라리 겨울을 택합니다. 왜냐하면...... 여름 징역은 자기의 바로 옆사람을 증오하게 한다는 사실 때문입니다. 모로 누워 칼잠을 자야 하는 좁은 잠자리는 옆사람을 단지 37도의 열덩어리로만 느끼게 합니다. 이것은 옆사람의 체온으로 추위를 이겨 나가는 겨울철의 원시적인 우정과는 극명한 대조를 이루는 형벌 중의 형벌입니다. 자기의 가장 가까이에 있는 사람을 미워한다는 사실, 자기의 가장 가까이에 있는 사람으로부터 미움받는다는 사실은 매우 불행한 일입니다.' 이렇듯, 수형 생활 중 자신이 직접 겪으면서 털어놓는 진솔한 이야기와 사색들은 경이로움을 자아낸다. 현실 사회주의가 무너져내린 뒤 자본의 전일적 지배가 강화되고 포스트모더니즘과 정보화의 물결이 넘실대는 이 세기말의 상황 속에서 그가 찾아낸 희망은 여전히 인간에 대한 애정과 믿음이다. 『나무야 나무야』에서 그는 '신발 한 켤레의 토지'에 서서도 푸르고 굳건하게 뻗어가고 있는 '남산의 소나무들'처럼 '메마른 땅을 지키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깊은 연민을 보낸다. '인간'의 입장에서 바라본 오늘의 자본주의문화에 대한 그의 시각은 냉엄하다. 사람들 사이의 관계는 사상한 채 상품미학에 매몰된 껍데기의 문화를 그는 통렬히 비판한다. 그리고 '정보'와 '가상공간'에 매달리는 오늘의 신세대 문화에 대해서도 그것이 지배구조의 말단에 하나의 칩(chip)으로 종속되는 소외의 극치일 수 있음을 우려하면서, '진정한 지식과 정보는 오직 사랑과 봉사를 통해서만 얻을 수 있으며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서서히 성장하는 것'임을 갈파한다. 또한 단순히 비판에서 멈추지 않고 오늘의 문명에 대한 근본적 성찰로 이어진다. 그는 소나무보다 훨씬 많은 것을 소비하면서도 무엇 하나 변변히 이루어내지 못하고 있는 우리의 삶을 반성하면서 자연을 오로지 생산의 요소로 규정하는 현대 문명의 폭력성을 질타한다. 이러한 근본적 성찰의 밑바닥에 가로놓여 있는 것은 사람들 사이의 관계와 연대에 대한 옹호이다. 그는, 화사한 언어의 요설이 아니라 수많은 사람들의 삶으로써 깨닫고 가르칠 수 있을 뿐이라고 말한다. 20년 수형 생활을 통해 얻은 가르침과 동양고전을 통해 유연한 세계 인식의 틀을 설명한 『담론』은 부제 그대로 그의 마지막 강의록이다. 공부는 머리로 하는 것이 아니라 가슴으로 하는 것이고, 가슴에서 끝나지 않고 발까지 이어질 때 비로소 세계와 자기 자신을 변화시키는 공부가 된다고 설명한다. 그리고 사람은 다른 가치의 하위 개념이 아니며, 사람을 키우는 일이야말로 그 사회를 인간적인 사회로 만든다고 역설한다. 책 속 곳곳에 세계와 인간에 대한 깊이 있는 성찰과 가르침이 그득 담겨 있다. 그 밖에 다른 저서로는 『손잡고 더불어』『나무가 나무에게』 『강의: 나의 동양 고전 독법』『청구회 추억』, 『다른 것이 아름답다』(공저), 『여럿이 함께』, 『한국의 명강의』(공저), 『느티아래 강의실』(공저) 등이 있다. 역서로는 『외국무역과 국민경제』, 『사람아 아! 사람아』, 『노신전』(공역), 『중국역대시가선집』(기세춘 공역, 4권)이 있다. '더불어숲' (http://www.shinyoungbok.pe.kr) 홈페이지에서 저자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를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