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이나 버스를 타면 혼자 하는 취미 생활이 있다. 저마다 한 세계인 사람들의 작은 행동, 읽고 있는 책, 졸고 있는 모습을 관찰하거나 통화 내용, 나란히 앉은 사람이 주고받는 이야기를 채집하는 것을 즐긴다. 영화란 결국 사람 이야기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최근 버스 안에서도 생각의 씨앗 하나를 얻은 적이 있다. 30대 중반의 젊은 엄마가 아이 둘을 데리고 버스에 올랐다. 마침 출입문 곁, 60대로 보이는 아주머니의 옆 자리가 비어 있었다. 젊은 엄마는 잽싸게 자리를 잡고 앉더니 두 아이를 챙겼다. 더 어린 여자애를 무릎에 앉히고는 바싹 자리를 좁혀 예닐곱 되어 보이는 아들을 불러 앉혔다. 그냥 서서 가겠노라 고집을 부리던 아이가 고개를 푹 숙인 채 그 좁은 자리에 겨우 엉덩이를 걸쳤다. 나였다면, 좀 더 젊은 사람이었다면 ‘졌다’ 마음속으로 이렇게 외친 뒤 그냥 자리를 양보하고 말았을 상황이었다.
먼저 앉아 있던 아주머니를 슬쩍 훔쳐보니 얼굴에 복잡한 감정이 고스란히 드러나 있었다. 그냥 일어서자니 몸이 피곤하고, 손자 손녀 또래 아이에게 너무 야박하게 굴 수가 없으니 바싹 당겨 앉기는 해야겠고, 재빨리 자리를 확보한 한 젊은 엄마가 불편을 끼쳐 죄송하다는 말 한 마디쯤 해주면 좋겠는데 전혀 그럴 생각이 없어 보이니 은근히 화가 나기도 하는 여러 겹의 마음이 읽혔다. 그런데도 젊은 엄마는 두 아이만 챙기고 있었다. 아이의 풀어진 목도리를 여미고, 두 어른 틈에 낀 아이를 자리에 더 깊이 앉히려 마음을 썼다. 옆 자리, 먼저 자리를 잡고 앉아 있던 아주머니가 전혀 눈에 안 보이는 듯 굴었다. 사랑의 단면을 확인하는 기분이었다. 대부분의 사랑은 맹목적이다. 주변 사람을, 세상을 내가 사랑하는 이와 그 밖의 그림자로 나눈다. 사랑에 빠진 사람은 시야가 좁아진다.
지난겨울, 서울특별시의회의 한 의원이 지휘자 정명훈의 높은 연봉을 지적해 논란으로 이어진 적이 있었다. 정명훈은 시민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서울시립교향악단을 지휘하며 고액의 연봉을 받고 있었다. 사람들은 지휘자 정명훈이 그 정도의 연봉을 받을 만한 사람인가, 클래식 음악이 그렇게 많은 돈을 들일 만큼 중요한 것인가 따지고 논박했다.
그러한 논란에서 나는 엉뚱하게도 사랑의 밝은 면을 재확인하고 기운을 얻은 적이 있다. 서울시립교향악단 상임작곡가 진은숙이 쓴 장문의 글을 읽었기 때문이었다. 그 글은 아무리 높은 연봉이라 할지라도 그만한 가치를 창출한다면 기꺼이 쓰일 수 있다고 말하고 있었다. 지휘자 정명훈이 지금 한국에 얼마나 필요한 존재인지 간곡한 마음으로 전하는 음악 이야기였다. 그 글 속에는 사랑에 빠진다는 것의 본질, 사랑한다고 말하려면 갖추어야 할 품성이 잘 정리되어 있었다. 나는 한 대목을 두어 번 새겨 읽다가, 마침내는 그녀가 쓴 ‘음악’이란 단어를 ‘사랑’으로 바꿔 읽기도 했다.
“한 음악가의 능력에 대한 평가는 보는 사람 자신이 얼마만큼 음악적 역량이 있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어떤 피아니스트가 피아노를 치면 일반 청중들은 그저 잘 친다고 생각하지만 직접 피아노를 치는 사람들은 더 자세하게 평가할 수 있고 그 곡을 직접 쳐본 사람들은 더 정확하게 알 수 있다. 그리고 어떤 분야든지 자기 영역을 깊이 파고드는 사람들만이 볼 수 있는 세계가 따로 있다.” |
사랑하면 이룰 수 있는 높다란 경지를 보여주는 동시에 스스로를 엄중히 단속하게 만드는 구절이었다. 사랑을 키우고 확인하는 과정은 고되지만, 더 멀리까지 조망할 수 있게도 해준다는 이야기로 들렸다. 맹목이 사랑의 어둠이라면 높은 안목은 사랑의 빛이자 힘인 셈이다.
처음에는 영화를 만들기 위해, 가벼운 마음으로 커피 공부를 시작했다. 그런데 투자자를 만나지 못해 제작 기간이 하염없이 길어졌다. 후닥닥 속성으로 끝낼 생각이었던 커피 공부 기간이 덩달아 길어졌다. 그러다 보니 언제부터인가 영화를 찍을 수 없어 괴로운 순간에, 속 털어놓을 이 없어 외로운 순간에 나는 커피를 내리고 있었다. 원두를 갈고, 가루 커피 위에 가느다란 물길을 내 주변을 차분히 적시고, 방울방울 커피를 추출하면서 그렇게 영화를 만들지 못하고 흘려보내야 하는 시간들을 견뎌냈다.
이국적인 러시아 공사관을 배경으로 클래식한 슈트와 드레스, 다양한 커피 도구들이 등장하여
동서양이 공존하는 색다른 사극으로 새로운 볼거리를 제공하는 영화 <가비>
(자료제공 시네마서비스)
나는 그때 외로웠으나 돌아보면 그건 외로워서 오히려 더 좋은 시간이었다. 물론 많은 사람을 만나고 신나게 일하며 행복을 느끼는 것도 좋다. 하지만 행복으로 가득 찬 마음에는 그 이외의 감정이나 생각이 채워질 수 없다. 반면 홀로 외로워 텅 빈 마음은 처음엔 쓸쓸하더라도 시간이 흐를수록 충만해진다. 그처럼 빈 곳엔 채울 것이 많기 때문이다. 한적한 외로움 속에서 나는 찬찬히 스스로를 돌아보며 깊이 생각할 수 있었고, 커피에 대한 사랑도 차곡차곡 쌓아나갈 수 있었다. 홀로 남아서, 외로워서 완벽한 순간이었다.
ⓒ 이정민(물나무)
그 시절 내게 커피는 좋은 각성제로서 본연의 임무를 충실하게 수행해주었다. 하지만 어떤 이들은 내 기나긴 커피 공부를 잘 이해하지 못했다. 전업을 해서 커피 전문점을 차려보면 어떻겠느냐는 농담이 오갔다. 내가 내린 커피가 맛있다는 표현을 그리 한 것에 어깨가 조금 으쓱해지기도 했다. 하지만 공부까지 해가면서 커피를 마시는 자세에 은근한 딴지를 거는 이들도 없지 않았다. 단지 기호품일 뿐인 것에 대한 유별난 관심이나 호들갑을 이해하기 어렵다는 사람도 있었다. 그럴 때마다 내게 커피는 무엇인지, 깊어지는 커피 사랑의 이유는 어디에 있는지를 헤아려보곤 했다.
ⓒ 이정민(물나무)
앞으로의 글들은 그런 헤아림의 조각들이다. 언변이 좋지 못한 사람이 예상 밖으로 길어진 커피 공부 과정을 거치면서 함께 내린, 쓰고 시고 달콤한 커피 한잔의 이야기다. 커피에 대한 해박한 지식, 새로운 정보 대신 내 마음을 내려 담았다.
커피는 인생을 참 많이 닮았다. 떫고, 쓰고, 달콤하고,…… 우리가 인생에서 겪고 있는 다양한 맛들이 녹아 있다. 인생의 다양한 순간순간, 장면장면에서 우리의 감정은 당황스러울 만큼 우리도 알지 못하는 방향으로 흘러가고 작용한다. 그리고 그런 수많은 순간을 함께하는 커피. 커피와 함께하는 인생의 순간들을 그저 돌아보고 흘려보내듯 이야기해봤다. 그러니 커피 한잔을 대했을 때처럼 이 책을 가볍게, 큰 의미 두지 않고 그저 편안히 음미해주면 좋겠다.
산악인 조지 리 맬러리(George Leigh Mallory)는 에베레스트 산을 처음 대했을 때의 심정을, “무한한 상상력으로 꿈에 그렸던 것보다 훨씬 높은 하늘에 에베레스트의 봉우리가 나타났다”고 표현했다. “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상을 볼 것이다”는 카피 문구의 에베레스트 예찬 버전인 셈이다. 글을 쓰면서, 나는 골 깊고 봉우리 높은 산 하나를 접한 기분이 들었다. 영상으로라면 단 한 컷으로 그려낼 수 있을 어떤 순간과 상황을 글로 풀어 쓰기란 쉽지 않았다. 시간이 오래 걸렸다. 적합한 명사와 넘치지 않는 형용사, 걸러내지 않아도 될 부사를 엮어 한 문장을 만드는 과정, 이야기를 쌓아가는 과정은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높은 산봉우리를 오르는 것과 같았다.
하지만 영화를 만들 때는 느낄 수 없던 자유도 있었다. 영화는 절대 자본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전 과정에 금전의 입김이 스며 있으며, 영상의 완성도 역시 대개 돈의 액수가 결정한다(막대한 예산을 쏟아 부어 망한 작품이나 소액 투자금으로 큰 성공을 거둔 영화 같은 특별한 경우는 이 자리에서 논외로 하자). 그런데 문자는 달랐다. 원래 계획보다 더 길어진 문장, 더 디테일한 설명, 더 근사해 보일 법한 문구 등을 맘껏 써도 예산 초과라 비난하는 이가 없었다. 멋졌다. 영화를 만들 땐 느끼지 못한 자유를 아마 나는 과하게 누렸던 것 같다. 문장을 다지고 깎아나가는 과정보다는, 속에 있는 말을 맘껏 외치는 자유만 취한 듯도 싶다. 송구할 따름이다.
장윤현(영화 감독)
1997년 영화 <접속>으로 데뷔해, 지금까지 영화감독이라는 이름으로 살고 있다.
하지만 나는 영화감독이라기보다는 수수한 회사원에 가까운 모습이다. 외모나 옷 입는 취향, 일상의 습관 모두 평범하다. 한눈에 영화감독인 것을 알 수 있을 만큼 문화인다운 풍모도 없고, 촬영 현장에서의 카리스마가 풍문으로 나도는 사람도 아니다. 재기발랄함, 날렵하고 세련된 감각, 이런 것들하고도 거리가 멀다. 나는 그냥 단순 무식하게 꾸역꾸역 앞만 보고 가는 사람,지름길로 가지 못하고 언제나 돌아가는 사람, 다만 오래 꾸준히 파고드는 사람이다. 그건 영화를 만들 때도 그렇고, 커피를 공부할 때도 마찬가지이다.
나는 커피에서 삶을 발견했다. 그리고 다시 사람을 발견했다. 내 주요 관심사는 ‘사람’이다. 끊임없이 사람을 관찰하고, 사람에 대해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커피에서 발견한 사람들의 모습을 오래도록 생각하게 되었다. 그건 때로 고통스럽지만 행복한 일이었다.
가끔은 삶이 엇나간다는 생각에, 상처 받아 숨고 싶을 때가 있었다. 그때마다 날 위로한 건 한잔의 커피였다.
작품으로는 <접속>(1997), <텔 미 썸딩>(1999), <썸>(2004), <황진이>(2007)…… 그리고 <가비>(2012)가 있다.
발칰
2012.08.27
gda223
2012.05.12
etjmcp25
2012.0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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