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왜 항상 냉동식품을 냉장실에 넣을까?
남자들이 요리나 집안일에 백치라고 하지만, 웬만한 여자보다 능숙한 남자들도 적지 않다. 그것은 그들이 그 일들을 목적으로 삼아 집중해본 적이 있고 그럼으로써 학습이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단 한 번이라도 그 방향으로 뇌세포를 제대로 쓰고 나면 그들도 어렵지 않게 배운다. 남자들의 특성상 일일이 사소한 일에 판단력을 발휘할 수 없다면 생각이 필요 없을 정도로 능숙해지면 되는 것이다.
앞으로 여자들은 스스로가 덜 힘들기 위해서가 아니라 남자들을 위해서 그들이 일상생활에서 능숙해지도록 학습할 기회를 주어야 한다. 이제 남자들이 권위 하나만으로 가정에서의 역할과 정체성을 규정할 수 있는 시대는 지났다. 우리 세대는 어릴 때 내내 밖에서 일을 하다가 잠깐씩 집에 있는 시간에도 신문이나 TV만 보던 아버지들이 바보라는 걸 눈치챌 수 없었지만, 요즘 아이들은 다르다.
예전의 아버지들은 가족의 일원으로서 참여는 못 하더라도 일종의 생활비를 대는 ‘스폰서’로서 인정과 존경을 받았지만, 이제 더 나은 삶의 질을 원하는 사람들은 남자에게서 그보다 많은 것을 원한다. 그들은 삶을 함께하지 않는 가족원을 심정적으로 인정할 수 없게 된 것이다. 과거에 가정의 경제를 홀로 지탱한다는 자부심으로 남자 정체성을 충족받았던 남자들은 이제 어디에서도 인정을 받을 수 없는 위기에 봉착했다. 요즘 들어 중년 남자들이 부쩍 소외감을 느끼게 된 것도 이와 관련이 있다.
기존 사회에서 나고 자란 요즘의 남자들은 성능에는 큰 편차가 있을지언정 모두가 ‘돈 버는 기계’와 다름없다. 그들의 미래를 위해 이제부터 여자들은 ‘냉장고에 물건을 넣을 때 포장에 한글로 표기되어 있는 보관 방법을 읽어보는 것도 남자다운 일’이라고 알려주는 것을 시작으로, 그들을 변화시킬 필요가 있다.
남자는 좌절하면 못난이가 된다.
심리학에서는 남자들이 여자 파트너를 자기 자신을 반영하는 거울로 본다고 해석한다. 예를 들어 여자가 ‘나 힘들어’ 하고 말하면, 남자는 ‘너는 자기 여자를 힘들게 하는 못난이야’ 하는 말로 받아들이고, 불행한 표정을 짓고 있으면 ‘너는 자기 여자 하나 행복하게 해주지 못하는 무능한 놈이야’ 하는 뜻으로 알아듣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자신 때문에 여자가 고통스러워할수록 남성 정체성에 상처를 받는다. 남자에게는 그것이 우리 여자들이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고통스러운 것이라서 그 정신적 고통을 피하기 위해 여자에게 잘못을 돌린다. 그러면 상처받은 여자는 더욱 남자에게 상처가 될 만한 반응을 하게 되어 있다. 한마디로 상처의 악순환인 것이다.
극단적으로 말해 남자는 자신이 진짜 남자라고 느낄 때에만 사람 구실을 한다. 우리가 알고 있는 모든 훌륭한 남자들은 훌륭한 사람이기 이전에 ‘자칭 진짜 남자’인 것이다. 능력 있는 수컷이라는 자신의 정체성에 상처를 입은 남자에게 인륜이나 도덕 같은 건 통하지 않는다.
무능력한 남편일수록 집안일을 절대로 돕지 않는다는 사실도 같은 맥락이다. 혼자 생계를 책임지는 아내가 녹초가 되어 돌아와 밥을 하고 청소를 할 때까지 실직 가장들은 집안일에 손가락 하나 댈 수가 없다. 왜냐하면 ‘집안일’이라는 여자 영역의 일은 그렇지 않아도 상처받은 남성 정체성에 소금을 뿌리는 일이 되기 때문이다. 밖에서 다른 맹수에게 물려 상처를 입고 동굴로 들어온, 성질만 난폭해진 짐승을 대하는 여자들의 결정은 둘 중 하나다. 냉정하게 동굴을 떠나 다른 건강한 수컷을 찾거나, 그 성질머리를 받아주며 상처를 치료해주거나.
- 어쨌거나 남자는 필요하다 남인숙 저 | 자음과모음(이룸)
저자가 오랫동안 여러 나이대의 다양한 남자들에게 설문조사와 취재 인터뷰를 한 자료와 각종 국내외 심리학 서적과 사회과학 서적이 제공해준 이론으로 틀을 보강한 에세이를 토대로 하였고 중국 고전소설인 『금병매』를 패러디하여 쓴 짧은 소설을 각 챕터마다 집어넣어 보다 구체적인 캐릭터와 상황을 설정해 남녀 간에 일어날 수 있는 다양한 일화를 풀어놓았으며 그 뒤에 남인숙이 상세하게 왜 이런 해프닝이 일어날 수밖에 없었는지 그들의 심리를 분석하고 설명해주는 새로운 형식을 시도했다...
남인숙
소설가, 에세이스트. 1974년 서울 출생. 숙명여대 국문학과 재학 시절부터 방송작가, 자유기고가, 시나리오 작가로 활동했다. 출간 이후 80만 부 이상이 판매되며 여성 에세이 분야의 새로운 트렌드를 주도한 베스트셀러 『여자의 모든 인생은 20대에 결정된다』(2004)를 비롯하여 『여자의 모든 인생은 20대에 결정된다 : 실천편』(2006), 『여자, 거침없이 떠나라』(2008), 『여자의 인생은 결혼으로 완성된다』(2009), 『여자, 그림으로 행복해지다』(2010) 등 2030 여성을 위한 에세이를 펴내어 독자들의 뜨거운 지지와 공감을 얻었다. 또한 그녀의 여성 에세이는 중국과 대만, 베트남, 몽골에 번역 출간되었고 특히 중국에서는 150만 부 이상의 판매고를 보이며 자국 위주의 중국 출판계에서는 드물게 비소설 분야의 베스트셀러 1위 기록을 세우는 등 여자에게 솔직하고 현실적인 조언을 전해주는 멘토의 지침서로서 언어와 문화의 한계를 극복하고 동시대 아시아 여성들의 필독서로 자리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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