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을 위해 피를 파는 아버지
유머는 삶의 중요한 일부다. 공지영이 말했듯 웃음을 소중히 여기고 유머를 추구하며 느긋하게 오늘을 즐기는 것은 정의를 추구하고 불의와 맞서며 핍박받는 사람들을 위해 울어주는 것과 전혀 상치되지 않는다. 그러니 인생이 소중하다면 오늘도 웃어라. 늘 한없이 진지한 사람보다는 가끔 실없는 웃음이라도 흘리는 사람이 훨씬 더 행복한 인생을 살고 있는 거 아닐까.
2012.1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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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가 들면서 내가 깨달은 것 중의 하나는 젊은 시절 내가 그토록 집착했던 그 거대(巨大)가 실은 언제나 사소하고 작은 것들로 우리에게 체험된다는 사실이었다. 말하자면 고기압은 맑은 햇살과 쨍한 바람으로, 저기압은 눈이나 안개, 구름으로 온다는 것이다. 우리는 평생을 저기압 속을 걸어가고 있어, 라거나 고기압을 맞고 있어, 라는 말을 하지는 않는다. 우리는 실은 그 두 기압 중의 하나를 벗어날 수가 없고 일상에서 마주치는 우산이나 외투, 따뜻한 찻잔이나 장갑 등이 사실은 다 그 고기압과 저기압의 파생물이기도 한데 말이다.
-공지영, 『아주 가벼운 깃털 하나』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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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남자가 사는 법
-위화, 『허삼관 매혈기』
내가 ‘웃긴 사람’에게 약하다는 사실을 발견한 것은 불과 얼마 전이다. 아무리 비호감 얼굴과 몸매, 옷차림으로 무장해도 그가 웃긴 사람이라면 전부 호감으로 바뀐다. 기호나 취향이 달라도 웃기면 전부 용납이 된다. 싸가지가 없고 자기중심적이어도 웃기면 전부 용서가 된다. 정말 큰일이다.
언제부턴가 책도 웃긴 것을 찾기 시작했다. 알다시피 각 문화권별로 소설의 성격은 판이하게 다른데 나는 가볍고 아기자기한 로맨스가 주를 이루는 일본 소설보다도 역사와 인류라는 묵직한 주제들을 논하여 책을 다 읽은 후에도 5분쯤 가슴이 멍한 프랑스와 중국 문학 등을 선호했다. 그랬던 내가 언제부턴가 웃긴 책들을 찾기 시작했다. 처음엔 이런 내가 나도 적응이 안 됐다.
내가 왜 웃음 코드에 매료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집착하고 중요하게 여기던 것들이 실은 작고 사소한 것들로부터 시작되며 삶은 거대 담론이기보다 일상의 집합이고 또한 그 일상에서 우리를 움직이는 에너지는 다름 아닌 ‘유머’임을 깨닫게 되었는지 모른다.
쉽게 말해 그냥 하하호호 웃으며 사는 게 인간답고 행복하게 사는 지름길이며, 시종일관 진지하기만 한 사람처럼 매력 없는 사람은 없다는 걸 알아버린 것이다.
위화의 『허삼관 매혈기』를 좋아하게 된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다. 첫 번째는 중국 작가답지 않게 능청스러운 해학과 익살로 중무장했다는 것, 두 번째는 신파로 이어질 수밖에 없는 비극적인 이야기를 유머러스하게 풀어 울다 웃게 만들어준다는 것. 비극적인 이야기를 비극적으로 이야기할 수 있는 작가는 많다. 그러나 더 고차원 작가는 비극 속에서 웃음을 찾아 묘사한다. 따라서 위화가 왜 세계적 작가의 반열에 오른 대가인지는 이 소설만 읽어봐도 답이 나온다.
나는 실제로 위화를 만나 대화를 나눈 적도 있고 위화의 소설들을 원어로 여러 차례 읽었을 만큼 그의 광팬이다. 『살아간다는 것』, 『가랑비 속의 외침』 등 많은 작품이 있지만 내게 위화 최고의 소설은 『허삼관 매혈기』다. 지금도 내 책장 어딘가에는 위화의 친필 사인이 박힌 『허삼관 매혈기』가 꽂혀 있다. 내겐 그 무엇보다도 소중한 책이다.
『허삼관 매혈기』 속 주인공 허삼관은 누에 공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다. 그는 본인만큼이나 웃기고 뻔뻔한 아내와 세 아들을 둔 가장이기도 하다. 여기까지만 들으면 평범한 남자이지만 그의 부업은 놀랍게도 매혈이다. 즉 살기 위해 피를 판다는 얘기다. 그는 아내를 위해, 아들들을 위해 오늘도 피를 판다. 아내에게 생활비를 주기 위해, 아들들을 배불리 먹이기 위해 본인은 고단한 길을 걷고 또 걸으며 피를 팔러 떠난다.
허삼관은 피를 팔러 가는 날이면 아침을 먹지 않고 몸속의 피를 늘리기 위해 ‘배가 아플 때까지, 이뿌리가 시큰시큰할 때까지’ 물을 마신다. 피를 뽑기 전에는 절대 오줌도 누지 않는다. 오줌보가 터질 때까지 오줌을 참으며(대체 피와 무슨 연관이길래) 피를 뽑고 난 뒤에는 반드시 보혈과 혈액 순환을 위해 볶은 돼지간 한 접시와 데운 황주 두 냥을 마셔주는 치밀함도 선보인다.
국공합작과 문화혁명으로 이어지는 중국의 거친 현대사의 물결 속에 오로지 ‘먹고살기 위해’ 자신이 가진 유일한 것을 파는 남자의 매혈기는 코끝이 아릴 정도로 눈물겹다. 허삼관은 피를 팔아 아들들에게 국수를 먹이고 피를 팔아 아들의 병원비를 댄다. 돈이 급할 때는 한 번 팔면 석 달은 쉬어야 하는 나름의 규율을 어기고 사흘 걸러 피를 팔고 또 판다.
역사의 폭력 앞에 속수무책인 이름 없는 기층민의 삶이 위화의 펜을 만나 흐드러지게 피어났다. 배운 것도 가진 것도 없는 가장일지라도 가족을 위해 쓰러지기 직전까지 피를 뽑을 수 있는 강인한 사람이 바로 우리 주변에 즐비한 이름 없는 그들, 아버지인 것이다. 물론 알레고리를 밑바닥 가득 깔고 장면 장면은 배꼽 달아나는 웃음으로 버무렸다. 그의 책을 읽으며 고통과 절망도 웃음으로 대하다 보면 삶이 시트콤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웃음은 배신하지 않는다
소설 속 베스트 장면은 바로 그동안 애지중지 기른 아들 일락이가 ‘다른 씨’였음을 알게 된 이후다. 일락이가 의붓자식이었음을 알게 된 허삼관은 아들을 대놓고 미워하면서도 다친 그를 위해 자신의 몸은 아랑곳하지 않고 피를 팔기도 한다. 한바탕 욕지거리를 퍼붓다가도 일락이가 웃을 때면 자신을 닮았다고 자위하기도 한다. 일락이가 미워서 일락이만 따돌리고 국수를 먹으러 가기도 한다.
“가고 싶으면 가, 이 자식아. 사람들이 보면 내가 널 업신여기고, 맨날 욕하고, 두들겨 패고 그런 줄 알 거 아냐. 널 11년이나 키워줬는데, 난 고작 계부밖에는 안 되는 것 아니냐. 그 개 같은 놈의 하소용은 단돈 1원도 안 들이고 네 친아비인데 말이야. 나만큼 재수 옴 붙은 놈도 없을 거다. 내세에는 내 죽어도 네 아비 노릇은 안 할란다. 나중에는 네가 내 계부 노릇 좀 해라. 너 꼭 기다려라. 내세에는 내가 널 죽을 때까지 고생시킬 테니…….” 일락이 눈에 승리반점의 환한 불빛이 들어오자 아주 조심스럽게 허삼관에게 물었다. “아버지, 우리 지금 국수 먹으러 가는 거예요?” 허삼관은 갑자기 욕을 멈추고 온화한 목소리로 대답해주었다. “그래.” | ||
웃음은 우리를 배반하지 않는다. 매일 웃는다면 웃을 일만 생긴다는 진부한 속담은 진리다. 웃으면 복이 오고, 웃는 얼굴엔 침도 못 뱉는다는 것도 완벽한 진실이다. 유머는 삶의 중요한 일부다. 공지영이 말했듯 웃음을 소중히 여기고 유머를 추구하며 느긋하게 오늘을 즐기는 것은 정의를 추구하고 불의와 맞서며 핍박받는 사람들을 위해 울어주는 것과 전혀 상치되지 않는다. 그러니 인생이 소중하다면 오늘도 웃어라. 늘 한없이 진지한 사람보다는 가끔 실없는 웃음이라도 흘리는 사람이 훨씬 더 행복한 인생을 살고 있는 거 아닐까.
춤을 출 수 없을 때 춤을 추는 게 진짜 삶이다
-니코스 카잔차키스, 『그리스인 조르바』
조르바는 내 마음속 ‘매력적인 캐릭터’ 1위다. 벌써 몇 년째 1위 자리를 굳건히 지키고 있는데 내려올 생각을 안 한다. 누군가 조르바보다 더 매력적인 캐릭터를 선보이면 좋으련만 아직은 조르바 할아버지가 최고의 남자다.
작가 카잔차키스는 책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힌두교도들은 ‘사부’라고 부르고 수도승들은 ‘아버지’라고 부르는 삶의 길잡이를 한 사람 선택해야 했다면 나는 틀림없이 조르바를 택할 것이다. 주린 영혼을 채우기 위해 오랜 세월 책으로부터 빨아들인 영양분의 질량과, 겨우 몇 달 사이에 조르바로부터 느낀 자유의 질량을 돌이켜볼 때마다 책으로 보낸 세월이 억울해서 나는 격분과 마음의 쓰라림을 견디지 못한다. | ||
알렉시스 조르바는 표면적으로 보면 찌질한 가난뱅이다. 평생 가진 것 없이 천지를 떠돌며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살아온 남자다. 그는 악기를 연주하기도 했고, 광산에서 일하기도 했으며, 볶은 호박씨 장사를 하며 생계를 유지하기도 했다. 나이도 나이지만 무엇보다 고생에 찌든 삶이 그의 얼굴을 폭삭 늙은 호박처럼 만들어놓았다. 학교 문턱은 밟아본 적도 없고 만고풍상을 겪으며 오직 체험으로 모든 깨달음을 얻은 사나이. 한마디로 그는 진창을 구르며 ‘꼴리는 대로’ 살아온 거침없는 야생마 같은 남자다.
그렇다, 나는 그제서야 알아들었다. 조르바는 내가 오랫동안 찾아 다녔으나 만날 수 없었던 바로 그 사람이었다. 그는 살아 있는 가슴과 커다랗고 푸짐한 언어를 쏟아내는 입과 위대한 야성의 영혼을 가진 사나이, 아직 모태인 대지에서 탯줄이 떨어지지 않은 사나이였다. | ||
반면 조르바가 두목이라 부르는 화자 ‘나’는 평생 책 속에 묻혀 진리를 탐구하며 살아온 샌님이다. 그는 본질은 모른 채 죽어 나자빠진 글 속에서 삶을, 사랑을. 진리를 찾으며 그것들의 그림자만 보고 산 책벌레다. 그런 ‘나’와 조르바가 우연히 크레타로 가는 배 안에서 만나 죽이 맞아 함께 탄광 사업을 벌이기로 하고 종래에는 보기 좋게 망해버린다는 이야기다.
그런데 정말 재미있는 장면은 모든 것이 끝나버린 후부터다. 작가인 카잔차키스가 어떤 의도로 그런 장면을 그렸는지는 모르겠으나 조르바와 나는 사업이 망해버려 희망이 훌훌 날아가버린 그 시점에 덩실덩실 춤을 춘다. 춤을 출 수 없는 때에 이르러서야 춤을 추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시인 고은이 노래한 ‘노를 젓다가 노를 놓치는 순간 비로소 넓은 물을 들여다보게 되는’ 원리인 셈인가.
인생이란 가파른 경사도 있고 내리막길도 있는 법이지요. 잘난 놈들은 모두 자기 브레이크를 씁니다. 그러나 두목, 나는 브레이크를 버린 지 오랩니다. 나는 꽈당 부딪치는 걸 두려워하지 않거든요.……(중략)……밤이고 낮이고 나는 전속력으로 내달으며 신명 꼴리는 대로 합니다. 부딪쳐 작살이 난다면 그뿐이죠……(중략)……기왕 갈 바에는 화끈하게 가자 이겁니다. | ||
가장 중요한 것은 지금 이 순간 웃는 것
조르바는 어디서나 춤을 추고 마음에 드는 여자는 절대 놓치는 법이 없으며 성공과 실패에 얽매이지 않는 ‘절대 자유’를 추구하며 살아간다. 그에겐 재산이나 지위를 잃는 것보다 웃음을 잃는 것이 더 큰 실패이기 때문이다.
앞날이 걱정된다고 했소? 난 어제 일은 어제로 끝내오. 내일 일을 미리 생각하지도 않소. 나한테 중요한 건 지금 이 순간에 일어나는 일뿐이오. 나는 늘 나에게 묻소. “자네 지금 뭐 하나?”, “자려고 하네”, “그럼 잘 자게”, “지금은 뭘 하는가?”, “일하고 있네”, “열심히 하게”, “지금은 뭘 하고 있나?”, “여자랑 키스하네”, “잘해보게. 키스할 동안 다른 건 모두 잊어버리게. 이 세상에는 자네와 그 여자밖에 없는 걸세. 실컷 키스하게.” | ||
진정한 행복이란 이런 것. 야망이 없으면서도 세상의 야망은 다 품은 듯이 말처럼 일하는 것. 사람들에게서 멀리 떠나, 필요로 하지 않되 사랑하며 사는 것, 크리스마스 잔치에 들러 진탕 먹고 마신 다음 잠든 사람들에게서 홀로 떨어져 별을 이고 물을 왼쪽, 바다를 오른쪽에 끼고 해변을 걷는 것. 그러다 갑자기 인생은 마지막 기적을 이루어 동화가 되어버렸음을 깨닫는 것. | ||
“나처럼 사는 거? 어려워요, 아주 어려워요. 바보가 돼야 하고 모든 걸 도박에 걸어야 하죠.”
바보가 되고 도박에 삶을 내건다 해도 그와 꼭 같은 자유로움과 행복을 안을 수만 있다면 좋겠다. 삶의 올가미에서 옴짝달싹 못 하는 자, 진지하고 진중한 삶에 넌더리가 난 자, 마지막으로 왜 웃음이 최고의 가치이자 최상의 사치인지 아직도 깨닫지 못한 자 모두 그에게 가라. 그의 독설이 당신을 자유롭게 할지니.
- 책은 언제나 내 편이었어 김애리 저 | 퍼플카우
작가 김애리는 ‘책’을 ‘내 편’으로 꼽는 데 주저함이 없다. 무라카미 하루키, 마르케스, 카잔차키스에서 산도르 마라이……. 고전부터 근래의 베스트셀러까지 100여 권의 책들이 작가를 통해 방황의 터널을 먼저 지난 선배로, 나의 미래를 걱정하는 부모로, 혹은 나보다 더 방황하고 있는 친구로 다시 태어난다. 이 책을 통해 독자들은 새로운 친구(책)를 소개받고, 잊고 지낸 친구(책)를 떠올리게 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김애리라는 청춘이 길어 올린 찬란한 ‘인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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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김애리
천 권의 책에 인생의 길을 물었던 김애리. 그녀는 거창한 결심을 이루기 위해서라기보다, 견디기 위해 책을 읽었다. 우울증에 시달릴 만큼 예민하고, 남부럽지 않은 직장에서 안정된 생활을 쫓던 그녀에게, 도통 익숙해지지 않는 이놈의 ‘삶’을 견디는 일은 다 커서 젓가락질을 다시 배우는 일마냥 멋쩍고 창피했다. 이토록 소심한 여자가 청춘을 견디고, 서른을 견디는 방법으로 택한 것이 독서다. 외로워도 슬퍼도 울며불며 책을 읽었고, 사랑 역시 책으로 배우기를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그렇게 서른이 되기 전에 천 권의 책을 읽었다. 청춘이라는 악몽 같은 시간을 오직 책으로 버텨낸 그녀의 열정은 2009년 겨울 서정문학상에 단편소설 「부에노스아이레스의 밤」이 당선되면서 새로운 국면을 맞았으며 이후 『책에 미친 청춘』, 『십대, 책에서 길을 묻다』, 『아까운 책 2012』(공저) 등을 펴냈다. 현재 언론진흥재단, 김영사 웹진 등에 칼럼을 연재하며 독서 에세이스트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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