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작 특집] 원작을 탁월하게 영화로 옮긴 영화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
영화는 원작 소설의 의미를 전혀 바꾸지 않았다. 단편은 행복한 순간만을 보여주지만, 그것은 언젠가 닥칠 미래의 비극을 생각하지 않겠다는 적극적인 의미에서의 도피였다. 과거가 아닌, 미래에의 망각.
2013.0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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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작의 맛을 그대로 살리는 것과 각색을 하는 감독의 의도에 따라 새로운 주제나 의미를 끌어내는 것. 어느 것이 더 낫다고 딱 잘라서 말할 수는 없다. 때에 따라서, 작품에 따라서 때로는 감독이 누구인지에 따라 결과는 너무나 다르다. 피터 잭슨의 <반지의 제왕>은 최대한 원작의 이미지를 그대로 구현하면서 찬사를 들었다. 원작의 팬들은 변화나 창조적 해석보다는 전통적인 각색을 원했다. 스탠리 큐브릭의 <샤이닝>은 원작자인 스티븐 킹에게 강력한 비난을 들었다. 그 영화는 내 이야기가 아니라며 독설을 퍼부었다. 하지만 스티븐 킹이 직접 각본을 쓴 TV판 <샤이닝>은 너무나도 지루했다. ‘원작 파괴자’라는 말을 듣기도 했던 스탠리 큐브릭이 만든 <샤이닝> <롤리타> <시계태엽 오렌지> 등은 하나같이 걸작이다. 감정을 말로 설명하고, 시대의 공기를 구체적으로 묘사했던 소설은 느낌과 정서를 이미지로 그려내는 영화가 되면서 뉘앙스가 달라지는 경우도 많다.
소설을 영화로 옮길 때, ‘장편과 단편 어느 것이 유리한가’도 마찬가지다. 장편소설을 2시간 남짓의 영화로 만들 때는 많은 세부를 들어내야만 한다. 반대로 단편이라면 더 많은 이야기와 장면을 만들어내야만 한다. 그래서 장편이 영화화되면 원작의 의미를 제대로 살리거나 구현하지 못했다는 비판을 종종 듣는다. 세부를 들어내면서 영화는 집중을 하는 경우가 많아진다. 다만 문자와 영상의 상상력은 다를 수밖에 없다. <원 데이>에서 원작이 보여주던 시대의 풍경은 희미해졌지만, 수 십 년에 걸친 남녀의 ‘하루’는 더욱 예민하게 그려진다. 단편을 확장하면 이야기 자체도 달라지는 경우가 많다. 아사다 지로의 <러브 레터>를 각색한 <파이란>은 중국에서 온 여인과 위장결혼을 하고, 죽은 그녀에게 편지를 받는다는 기본 설정 이외에 거의 모든 것이 새롭게 만들어졌다. 추가된 세부 덕분에, 그녀의 캐릭터가 선명해지고 3류 건달의 비극적인 운명이 더욱 투명하게 그려진다. 단편을 영화화할 때는, 시나리오 작가나 감독의 의도에 따라 완전히 새로운 이야기, 주제로 바뀔 수도 있다.
영화는 원작 소설의 의미를 전혀 바꾸지 않았다
『조제와 호랑이와 물고기들』은 다나베 세이코의 단편이다. 두 다리를 쓰지 못하는 장애인 여성이 보통 남자와 사귀는 이야기. 단편에서는 그들이 사랑하고, 섹스를 하는 짧은 순간밖에 나오지 않는다. 미래는 생각하지 않겠다며, 단지 지금만으로 행복하다고 생각한다. 어딘가 쓸쓸하지만 평화로운 상태에서 단편은 끝난다. 영화는 원작 소설의 의미를 전혀 바꾸지 않았다. 단편은 행복한 순간만을 보여주지만, 그것은 언젠가 닥칠 미래의 비극을 생각하지 않겠다는 적극적인 의미에서의 도피였다. 과거가 아닌, 미래에의 망각.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은 원작을 탁월하게 영화로 옮겨낸다. 의미를 그대로 확장시키면서, 모든 것을 ‘영상’으로 전해준다. 이누도 잇신이 감독한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로 데뷔한 시나리오 작가 와타나베 아야는 ‘두터운 골격을 압축시켜 놓은 원작’에서 조제와 츠네오의 긴 이야기들을 끄집어낸다. 그리고 원작에서 ‘죽음’으로 도피했던, 상상하기 싫었던 미래의 이별까지 그려낸다. 그럼에도 그것은 결코 비극이 아니다. 영화가 시작되면 조제와 츠네오는 바다 속처럼 꾸며진 러브호텔에서 사랑을 나눈다. 조제는 담담하게 이야기한다.
원작에 없는 대사이지만, 원작의 조제라면 능히 했을 말이다. 원작에서도 츠네오가 떠난다면, 그 후에도 조제는 살아갔을 것이다. 영화의 마지막은 전동 휠체어를 타고 다니는 모습의 조제였다. 츠네오는 마작판에서 한 노파가 끌고 다니는 유모차 이야기를 듣는다. 그 안에 돈이 숨겨져 있을 것이라는 농담. 마작으로 밤을 새우고 새벽에 돌아가던 츠네오는 노파 그리고 조제를 만난다. 사람들의 눈이 두려워서, 새벽에만 유모차를 타고 나왔던 그녀를 본다. 장애인인 조제는 약하다. 보통 사람들은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근원적인 두려움이 그녀에게는 있다. 하지만 조제는 강하다. 의자에 앉아 요리를 하고는, 바닥으로 마치 다이빙을 하듯 쿵! 하며 뛰어내린다. 조제의 다이빙은, 의지다. 처음 츠네오를 만났을 때, 조제는 칼을 휘두른다. 친해진 츠네오에게, 암시장에서 권총을 사고 싶다고 말한다. 그녀는 강해지고 싶다. 자신이 약하다는 것을 뼈저리게 알기에 어떻게든, 칼과 총을 통해서라도 강해지고 싶어 한다.
자신이 약하다는 것을 알기에, 사랑하는 사람이 생긴다면 무엇과도 대적할 만큼 강해질 수 있다고 믿었다. 강한 척 하다 보면, 조금씩 조금씩 강해질 것이라고 믿었다. 츠네오가 조제를 사랑하게 된 이유는, 그 원초적인 생명력 때문이었다. 결코 포기하지 않는, 그녀의 강한 의지. 생각해도 소용없는 일은 생각하지 않는 츠네오는 끌리는 대로 조제에게 다가간다. 미래 같은 것은 생각하지 않고. 하지만 그들은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 조제는 사강의 소설을 너무나도 좋아한다. 그 소설에 이런 구절이 있다.
조제는 츠네오를 만남으로써 세상을 바라보고, 나설 수 있게 됐다. 조제에게는, 사랑만이 유일한 통로였고 힘이었다. 하지만 츠네오는 지친다. 비겁하고 나약해진다. 반면 할머니의 말처럼 자신이 ‘망가진 것’임을 알고 있고, 자신을 바라보는 츠네오의 사랑이 영원하지 않음도 조제는 알고 있다.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은 사랑이라는 것의 무거움을 말한다. 처음부터 조제와 츠네오는 달랐다. 츠네오는 생각할 수 없는 것을 생각하지 않지만, 조제는 생각하지 않아도 될 것을 이미 알고 있다. 오랜 세월 상처받은 사람만이 알 수 있는 직감. 사람을 불신하는 것이 아니라, 그 한계를 너무나도 잘 알고 있는 것. 이 세상이, 사랑이 얼마나 잔인한 것인지 알고 있다. 그래도 츠네오를 만나 호랑이를 봤고, 떠난 후에는 전동 휠체어를 타고 홀로 살아간다. 츠네오와 만났던, 잠시의 ‘영원한 행복’을 통해 조제는 한걸음 나아간 것이다.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은 긍정한다. 그녀의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바라본다. 사랑은 잔인하지만, 그 사랑 때문에 살아갈 힘을 얻은 조제를 한껏 응원한다.
소설을 영화로 옮길 때, ‘장편과 단편 어느 것이 유리한가’도 마찬가지다. 장편소설을 2시간 남짓의 영화로 만들 때는 많은 세부를 들어내야만 한다. 반대로 단편이라면 더 많은 이야기와 장면을 만들어내야만 한다. 그래서 장편이 영화화되면 원작의 의미를 제대로 살리거나 구현하지 못했다는 비판을 종종 듣는다. 세부를 들어내면서 영화는 집중을 하는 경우가 많아진다. 다만 문자와 영상의 상상력은 다를 수밖에 없다. <원 데이>에서 원작이 보여주던 시대의 풍경은 희미해졌지만, 수 십 년에 걸친 남녀의 ‘하루’는 더욱 예민하게 그려진다. 단편을 확장하면 이야기 자체도 달라지는 경우가 많다. 아사다 지로의 <러브 레터>를 각색한 <파이란>은 중국에서 온 여인과 위장결혼을 하고, 죽은 그녀에게 편지를 받는다는 기본 설정 이외에 거의 모든 것이 새롭게 만들어졌다. 추가된 세부 덕분에, 그녀의 캐릭터가 선명해지고 3류 건달의 비극적인 운명이 더욱 투명하게 그려진다. 단편을 영화화할 때는, 시나리오 작가나 감독의 의도에 따라 완전히 새로운 이야기, 주제로 바뀔 수도 있다.
영화는 원작 소설의 의미를 전혀 바꾸지 않았다
『조제와 호랑이와 물고기들』은 다나베 세이코의 단편이다. 두 다리를 쓰지 못하는 장애인 여성이 보통 남자와 사귀는 이야기. 단편에서는 그들이 사랑하고, 섹스를 하는 짧은 순간밖에 나오지 않는다. 미래는 생각하지 않겠다며, 단지 지금만으로 행복하다고 생각한다. 어딘가 쓸쓸하지만 평화로운 상태에서 단편은 끝난다. 영화는 원작 소설의 의미를 전혀 바꾸지 않았다. 단편은 행복한 순간만을 보여주지만, 그것은 언젠가 닥칠 미래의 비극을 생각하지 않겠다는 적극적인 의미에서의 도피였다. 과거가 아닌, 미래에의 망각.
‘우리는 물고기야. 죽어버린 거야. 그런 생각을 할 때 조제는 행복하다. 츠네오가 언제 조제 곁을 떠날지 알 수 없지만, 곁에 있는 한 행복하고, 그것으로 족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조제는 행복에 대해 생각할 때, 그것을 늘 죽음과 같은 말로 여긴다. 완전무결한 행복은 죽음 그 자체다.’ (소설 중에서) | ||
‘거기가 옛날에 내가 살던 곳이야. 깊고 깊은 바닷 속. 난 거기서 헤엄쳐 나왔어. 그 곳은 빛도 소리도 없고, 바람도 안 불고 비도 안 와. 정적만이 있을 뿐이지. 별로 외롭지는 않아. 처음부터 아무 것도 없었으니까. 그냥 천천히 시간이 흐를 뿐이지. 난 두 번 다시 거기로 돌아가진 못할 거야. 언젠가 네가 사라지고 나면 난 길 잃은 조개껍질처럼 혼자 깊은 해저에서 데굴데굴 굴러다니겠지. 그것도 그런대로 나쁘진 않아.’ (영화 중에서) | ||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걸 보고 싶었어. 좋아하는 남자가 생겼을 때. 무서워도 안길 수 있으니까. 그런 사람이 나타나면 호랑이를 보겠다고. 만일 그런 사람이 나타나지 않는다면, 평생 진짜 호랑이는 볼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어.’ | ||
‘언젠간 그를 사랑하지 않는 날이 올 거야. 베르나르는 조용히 말했다. 그리고 언젠가는 나도 당신을 사랑하지 않겠지. 우린 또다시 고독해지고. 그냥 흘러간 1년의 세월이 있을 뿐이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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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김봉석
대중문화평론가, 영화평론가. 현 <에이코믹스> 편집장. <씨네21> <한겨레> 기자, 컬처 매거진 <브뤼트>의 편집장을 지냈고 영화, 장르소설, 만화, 대중문화, 일본문화 등에 대한 글을 다양하게 쓴다. 『하드보일드는 나의 힘> 『컬처 트렌드를 읽는 즐거움』 『전방위 글쓰기』 『영화리뷰쓰기』 『공상이상 직업의 세계』 등을 썼고, 공저로는 <좀비사전』 『시네마 수학』 등이 있다. 『자퇴 매뉴얼』 『한국스릴러문학단편선』 등을 기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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