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대인을 향한 러시아인들의 증오심을 비난하다
수상님께 예브게니 옙투셴코를 소개하려 합니다. 옙투셴코는 1933년에 태어난 러시아 시인입니다. 그리고 스탈린이 세상을 떠난 1953년, 옙투셴코는 스무 살이었고 시인으로서 성년을 맞았습니다. 옙투셴코는 니키타 흐루쇼프의 체제에서 억압이 완화된 데서 혜택을 누리며, 더 큰 자유를 열망하는 스탈린 이후 세대를 대표하는 시인의 목소리가 되었습니다.
글ㆍ사진 얀 마텔
2013.04.26
작게
크게
캐나다 수상 스티븐 하퍼 님에게,
수상님도 실수하신 적이 있습니까?
캐나다 작가 얀 마텔이 보냅니다.

하퍼 수상님께,

정치는 타협의 예술이라고 말합니다. 워싱턴이나 중동 등 어디에서든 두 정치인이 악수를 나누며 환히 웃는 사진이 신문에 실리면, 대립하던 양쪽이 조금씩 양보해서 합의에 이르는 돌파구를 마련하고는 서로 축하하는 모습일 가능성이 큽니다. 경쟁하던 집단들이나 개인들이 서로 이야기를 나눈 끝에 효과적인 타협을 이루어내면 사회적 평화를 이루어낼 수 있습니다. 완강히 버티면서 어떤 식으로도 상대와 협상하지 않는 사람들은 끝없는 사회적 마찰의 원흉이 되고, 그들이 바랐던 평화마저 얻기 힘듭니다. 타협은 일반적으로 열린 대화의 결실이고 그로 인해 상대와 더욱 가까워지기 때문에 사회적 화합만이 아니라 인간관계를 구축하는 데도 도움이 됩니다. 이런 관계의 향상은 타협의 가능성을 높여주기도 하지만 애초에 적대감을 자극했던 차이까지 줄여줄 수 있습니다. 정치에서 생산적인 타협은 부수적인 문제들을 동시에 해결해주기도 합니다.

북아일랜드를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이른바 ‘북아일랜드 문제’*는 1960년대 말에 시작되어, 삼십 년 동안 신교도 통합론자들과 구교도 민족주의자들이 치열하게 싸우며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상대를 죽였습니다. 일부는 적대행위에 적극적으로 가담했고 일부는 방관자였을 뿐입니다. 상대를 향한 증오심은 극한으로 치달았습니다. 하지만 느리지만 부단한 노력으로 분쟁 당사자들이 1998년 ‘굿프라이데이 협정’(Good Friday Agreement)을 맺었고, 북아일랜드는 평화를 되찾았습니다. 타협으로 북아일랜드 문제가 종식되었고. 시간이 지나면서 이제는 평화가 사회구조의 일부가 되어 문제의 근원이 사라지기를 바라는 수준에 이르렀습니다. 굿프라이데이 협정이란 타협으로 인해 부수적인 문제들까지 하나둘 사라지고 있는 것입니다. 좋은 정책이란 그런 것입니다.

그런데 타협은 수상님의 방식이 아닌 듯합니다. 하기야 수상님은 일찌감치 정치에 입문했기 때문에, 기업가로 일하며 양보의 가치가 무엇인지 터득할 만한 중요한 경험을 얻지 못했지요. 수상님은 캐나다 시민연맹 회상을 수년 간 지냈지만, 그곳은 보수적인 시민단체에 불과합니다. 따라서 ‘대화’의 중요성을 배우기에 적합한 단체가 아닙니다. 수상님은 자신의 원칙과 이데올로기를 고수하며, 국가가 수상님의 의견을 받아들이기를 기대하며 마냥 기다리십시다. 하지만 솔직히 말해서, 수상님의 바람대로 될는지 의심스럽습니다. 수상님은 사 년째 수상직에 계시지만, 야당이 분열되고 자유당이 국민에게 신뢰를 얻지 못한 덕분입니다. 더구나 수상님은 연속해서 두 번이나 소수 정부를 힘겹게 끌어가고 있으며, 여론조사에서 수상님의 장래는 그다지 밝지 않습니다.

예브게니 옙투셴코
[출처: 위키피디아]
이런 이유에서 수상님께 예브게니 옙투셴코를 소개하려 합니다. 옙투셴코는 1933년에 태어난 러시아 시인입니다. 그리고 스탈린이 세상을 떠난 1953년, 옙투셴코는 스무 살이었고 시인으로서 성년을 맞았습니다. 옙투셴코는 니키타 흐루쇼프의 체제에서 억압이 완화된 데서 혜택을 누리며, 더 큰 자유를 열망하는 스탈린 이후 세대를 대표하는 시인의 목소리가 되었습니다. (제가 한참 전에 보낸 『이반 데니소비치, 수용소의 하루』가 출간된 때가 이 시기입니다.) 옙투셴코는 스탈린 체제 하에서 살던 시인들이 목숨을 부지하려면 쓸 엄두조차 내지 못하던 시를 썼습니다. 제가 이번 주에 보내는 시집에 포함된 「바비 야르」가 대표적인 예입니다. 바비 야르는 우크라니아 키예프의 북쪽 끝에 있는 협곡입니다. 그곳에서 나치스에게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약 십만 명의 무고한 시민이 살해되었습니다. 집시들과 전쟁포로들도 희생당했지만 대부분이 유대인이었습니다. 옙투셴코는 유대인이 아니었지만 대학살의 현장에 소비에트 당국이 운동장을 건설하려는 계획을 반대하는 시를 썼습니다. 유대인들의 죽음을 애도하는 시이지만, 유대인을 향한 러시아인들의 증오심을 비난하는 시이기도 합니다. 유대인도 자신과 똑같은 인간이므로 유대인의 희생을 자신의 희생으로 명백하게 받아들이는 감동적인 시이며, 유대인을 지독히 적대시하는 땅의 시민의 쏟아낸 대담한 시이기도 합니다.


1972년 리처드 닉슨 대통령과 함께 [출처: 위키피디아]

옙투셴코는 1950년대와 1960년대에 동서유럽에서 큰 명성을 얻었습니다. 그는 서구 세계를 두루 여행했습니다. 위키피디아에서 그를 검색해보면, 1972년 리처드 닉슨 대통령과 담소하는 사진을 실려 있습니다(그 사진을 보면 오바마 대통령이 저에게 보낸 편지가 생각납니다. 미국 대통령들이 꾸준히 작가들에게 관심을 가졌다는 사실을 얼마나 많은 사람이 알고 있을까요?). 여하튼 옙투셴코를 두고 소비에트 당국은 이렇게 말하고 싶었을 겁니다. “봐라, 소련이 억압적인 사회가 아니라는 증거가 바로 옙투셴코다. 우리를 비판하는 위대한 시가 우리 땅에서도 발표된다. 옙투셴코는 우리 사회를 대표하는 전형적인 인물이다.”

그의 시는 소련 당국의 그런 바람을 얼마나 충족시킬까요? 이 얄팍한 책에서는 그런대로 만족시키고 있는 듯합니다. 「바비 야르」를 제외하면 정치적인 문제를 다룬 시는 거의 없으니까요. 미국이나 캐나다에서 발간되는 시집에서도 정치적인 문제는 거의 거론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전반적으로 목가적인 분위기를 띠어, 과거의 위성국가들이 없어도 세계에서 가장 큰 국가인 러시아의 대부분이 실제로는 농촌이라는 걸 떠올려줍니다. 대다수의 시가 상식과 실현가능한 인간성을 노래해서, 미국 시인 로버트 프로스트를 읽는 듯한 기분입니다.

그러나 옙투셴코가 그 자신과 타협을 한 것일까요? 소비에트 연방은 처음부터 끝까지 억압적인 국가여서, 모든 자유가 무지막지하게 박탈당하지는 않았더라도 끊임없이 감시를 받았습니다. 이런 국가에서 자유로운 시인이 탄생할 수 있었겠습니까? 옙투셴코는 많은 사람에게 비난을 받았습니다. 특히 러시아계 미국 시인이며 평론가인 조지프 브로드스키(혹시 이 이름을 들어보셨습니까?)에게는 불량한 사기꾼이고, 크렘린이 쥔 가죽 끈에 목이 매인 채 크렘린이 허락하는 정도까지만 짖어대고 으르렁대는 시인이라는 비난을 받았습니다.

물론 자신이 쓴 글 때문에 상대적으로 호된 대가를 치러야 했던 작가들이 있었습니다. 솔제니친이나 브로드스키처럼 강제로 추방당한 작가들이 있었고, 더 심하게는 소련의 감옥에 투옥된 작가들도 있었습니다. 옙투셴코도 자신의 조국이 시민에게 더 많은 자유를 허락하는 방향으로 변하기를 바라지 않았을까요? 그는 자신의 조국을 사랑했고, 조국이 지향하는 공산주의 이상까지 사랑했을지도 모릅니다. 또 영구 추방을 당해서 언어와 풍습과 음식이 다른 나라에서 평생을 지내야 한다는 생각에 그의 영혼이 오싹했을지도 모릅니다. 달리 말하면, 옙투셴코는 솔제니친이나 브로드스키와는 다른 방식으로 자신의 조국을 믿었던 것이 아닐까요?

제가 이런 의문에 대해 왈가왈부할 위치에 있지는 않습니다. 옙투셴코나 소비에트 역사에 대해서도 깊이 알지 못해 확실한 판단을 내릴 수는 없습니다. 그의 시를 즐겁게 읽을 수는 있지만, 그가 어떤 정치적 이념을 지녔는지에 대해서는 쉽게 단정 짓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옙투셴코가 소비에트 연방과 거래하며 타협했다는 이유로 비난받는 것만은 분명합니다. 그는 그런 타협의 대가를 치루고 있습니다. 수상님도 아시겠지만, 타협의 가치가 예술과 정치에서 같을 수는 없습니다. 타협한 예술가는 실패자로 낙인 찍할 수 있지만, 타협하는 정치인은 성공한 정치인으로 평가 받습니다. 정치가 타협의 예술이라면, 예술은 타협이 허용되지 않는 정치입니다. 그런 자유로움에서, 그런 개별성에서 예술은 샘솟기 때문입니다. 타협하고 순응하며 굴복하는 마음가짐은 창조적인 충동을 억누릅니다. 진정한 예술은 타협하지 않습니다. 위대한 예술가는 자신의 길을 고집하며, “내가 있어야 할 곳은 여기다. 이게 내 지향점이다. 받아들이든지 말든지, 맘대로 해라. 타협은 없다!”라고 소리칩니다. 예술의 세계에는 예술가들이 자신들의 입장을 설명해야 할 의회가 없고, 반드시 참석해야 할 질의응답시간도 없습니다. 예술은 타협을 인정하지 않는 사람들의 공간입니다.

따라서 수상님께 이런 질문을 드리고 싶습니다. 혹시 직업을 잘못 선택하신 게 아닙니까? 수상님께서는 혹시 예술가가 되려다가 좌절하신 게 아닙니까?

안녕히 계십시오.
얀 마텔 드림.


* 영국으로부터의 독립 문제를 두고 구교도와 신교도 사이에서 벌어진 갈등 및 폭력 사태.


예브게니 옙투셴코(Yevgeny Yevtushenko, 1933년 생)는 시인, 수필가, 소설가, 영화감독, 시나리오 작가, 배우 등으로 활약한 다재다능한 인물이다. 스탈린 이후의 세대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시인이며, 1962년에는 『타임』의 표지 모델로 선정되기도 했다. 지금은 털사 대학교와 뉴욕 시립대학교에서 러시아와 유럽의 시 및 영화를 가르치고 있다. 미국자유훈장과 오비드 문학상을 수상했다.


img_book_bot.jpg

각하, 문학을 읽으십시오 얀 마텔 저/강주헌 역 | 작가정신
이 책은 캐나다의 수상 스티븐 하퍼에게 보내는 편지로 이루어져 있지만 실은 세상 모든 지도자들에게 보내는 ‘얀 마텔적 충언'이자, 더 나아가 모든 독자들에게 전하는 문학 편지다. 짧은 편지들로 이루어져 있어 술술 읽을 수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한 번에 읽어 치울 수 있는 책은 아니다. 하루에 편지 한 통, 아니면 일주일에 편지 한 통도 좋다. 얼마나 많은 페이지를 읽느냐보다, 어떤 생각을 했는지가 더 중요하다. 마치 시를 읽듯이, 편지 한 통 한 통을 곱씹어 읽으며 고요한 사색의 시간을 가질 수 있는 책이다.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예브게니 옙투셴코 #시 선집 #바비 야르 #얀 마텔
1의 댓글
User Avatar

sh8509

2013.04.27

한 번 읽어보고 싶은 책이네요. 잘 읽었습니다.
답글
0
0
Writer Avatar

얀 마텔

1963년 스페인에서 캐나다 외교관의 아들로 태어났다. 캐나다, 알래스카, 코스타리카, 프랑스, 멕시코 등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으며 성인이 된 후에는 이란, 터키, 인도 등지를 순례했다. 캐나다 트렌트대학교에서 철학을 공부하고 이후 다양한 직업을 거친 뒤, 스물일곱 살 때부터 글을 쓰기 시작했다. 1993년 『헬싱키 로카마티오 일가 이면의 사실들』을 발표하며 데뷔했고, 이후 『셀프』(1996) 『파이 이야기』(2001) 『베아트리스와 버질』(2010)을 썼다. 전 세계 40개 언어로 번역, 출간된 『파이 이야기』로 2002년 부커상을 수상했으며 이를 계기로 세계적인 작가 반열에 올라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