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이스 글릭 저/정은귀 역 | 시공사
2020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다는 소식으로 처음 접해본 시인. 『아베르노』를 가장 좋아하지만, 『협동 농장의 겨울 요리법』의 마지막 시 <노래>를 오래 기억하고 있다. 첫 연에서 내세운 이미지를 끝연에서 약속을 지키듯 매듭짓는 마음(『예술가의 일』의 루이스 글릭 편을 참조). 그녀에게 상상력이란 약속을 지키는 행위 같았다. 첫 연에서 마지막 연까지 이어지는 크나큰 포물선. 시야가 드넓은 곳에 있을 때에 나는 몇 번이고 지그재그로 그려질 수밖에 없는 그녀 특유의 호(弧)를 가늠해 보았다. 13권의 시집이 정은귀 선생의 노력으로 출간돼 있다.
유디트 샬란스키 저/박경희 역 | 뮤진트리
지구상에서 사라져 버린 것들 중 열두 가지를 목록화하고 재현해 둔 에세이. ‘투아나키’라는 이름의 섬, 카스피해의 호랑이에서부터 키나우의 월면학에 이르기까지. 부재하는 것들의 존재감을 우리는 어떻게 감각할 수 있을까. 말해진 적 없는 것들은 말해본 적 없는 방식으로만 드러내 보일 수 있다. 상상력은 필수적인 요소가 된다. 그녀는 상상력을 부재가 온전히 현현되어야만 할 때에 사용한다. 이것이 어떤 종류의 애정인지 모를 수 없으므로 그녀의 수고와 기쁨이 고스란히 내게 온다. 레테와 므네모시네가 협업을 하려 할 때에 이런 책이 태어나지 않을지.
니컬러스 에번스 저/김기혁, 호정은 역 | 글항아리
하미나 작가와 소멸된 언어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몇 달 후, 그녀가 이 책의 출간을 알려주었다. 멸종 위기종 언어를 답사를 통해 만나는 여정이 기록돼 있다. 9장의 시의 언어에 대해 다룬 부분은 홀려서 읽었다. 잊히지 않는 것 중 하나는, 소멸되었다고 공표된 언어를 사용하는 이가 나타나는 예시였는데, 소멸된 줄 알았던 네팔의 쿠순다어를 쓰는 화자 세 명의 이야기를 간략히 소개된 대목이었다. 이들이 나란히 서 있는 사진을 오래 들여다보았다.
박혜수 | 작가
리서치와 수집을 기반으로 작업하는 작가. 방대한 수집들이 빼곡하게 산적된 채로 그것들이 통합되고 중첩된 그녀의 작업은 어마어마한 환기력이 있다. 한 작가의 행보를 지켜보는 마음으로 살아간다는 것, 앞으로도 계속 지켜보고 싶은 애정으로 살아가리란 것, 이런 류의 동시대적 기쁨을 내게 처음 알려준 작가이다. 『묻지 않은 질문, 듣지 못한 대답』(돌베개)이라는 제목으로 작업노트를 출간했다.
<Time is not yours> | 음악
세이수미 (Say Sue Me)
요즘은 작업을 한답시고 방에 있을 때에 음악 같은 건 듣지 않는다. 그럴 때 듣던 음악은 방해가 되지 않는 선 안에 놓여 있어야 했다. 요즘은 이동을 할 때에 음악을 듣는다. 볼륨을 크게 하고서. 한 곡만 반복해서 닳도록 듣는다. 요 며칠 자전거를 탈 때에는 세이수미를 들었는데, 내가 90년대의 방구석 어딘가에 두고 온 음악을 되찾아 듣고 있는 기분이었다. 시간에 관해 말하는 많은 노랫말 중에서 이 노래가 가장 나를 적중했다.
* 김소연 시인 프로필 사진 ⓒ이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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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것들의 목록
출판사 | 뮤진트리
아무도 모르는 사이에 죽다
출판사 | 글항아리
아베르노
출판사 | 시공사
협동 농장의 겨울 요리법
출판사 | 시공사
시골 생활
출판사 | 시공사
일곱 시절
출판사 | 시공사
아킬레우스의 승리
출판사 | 시공사
아라라트 산
출판사 | 시공사
내려오는 모습
출판사 | 시공사
새로운 생
출판사 | 시공사
목초지
출판사 | 시공사
습지 위의 집
출판사 | 시공사
맏이
출판사 | 시공사
신실하고 고결한 밤
출판사 | 시공사
야생 붓꽃
출판사 | 시공사
묻지 않은 질문, 듣지 못한 대답
출판사 | 돌베개
예술가의 일
출판사 | 작가정신

김소연
시인. 시집 『극에 달하다』, 『빛들의 피곤이 밤을 끌어당긴다』, 『눈물이라는 뼈』, 『수학자의 아침』, 『i에게』, 『촉진하는 밤』과 산문집 『마음사전』, 『시옷의 세계』, 『한 글자 사전』, 『나를 뺀 세상의 전부』, 『사랑에는 사랑이 없다』, 『그 좋았던 시간에』, 『어금니 깨물기』 『생활체육과 시』를 출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