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맛있어서 도저히 표현할 단어가 없다고 생각하는 음식에 ‘마약’이라는 단어를 붙이곤 한다. 겨자 소스를 콕콕 찍어 코끝 찡해지도록 먹는 맛이, 처음엔 이게 뭔가 싶었다가 뒤돌아서면 곧 생각나고 이내 또 먹고 싶어지는 광장시장의 ‘마약 김밥’이 그렇다. 수성못 <부바스>의 ‘마약 옥수수’는 옥수수에 막대기를 끼워 돌돌 굽고 치즈 가루를 가득 뿌려 마무리한 것을 나이프로 슥슥 잘라 레몬을 뿌려 먹는 맛이 중독적이라 주말이면 주차할 곳 없이 줄을 선다.
이 빵집의 ‘마약빵’도 원래 이름은 평범하기 그지없는 ‘통 옥수수’다. 그 모양도 둥글넓적한 것이 그리 특별하지 않아 보인다. 그런데도 이 빵을 먹겠다고 비 오는 날, 눈 오는 날 마다하지 않고 길게 늘어선 줄이 끊일 줄 모르는 것을 보면, 이 빵에 무시무시한 ‘마약’이란 단어까지 붙여 부를 수밖에 없는 마성의 매력이 분명 한 빵집이다.
빵을 구워내기 무섭게 팔려 나간다. ‘불티나게’라는 말을 실감했다. 구워낸 철판이 채 식기도 전에 뜨끈뜨끈한 빵들이 기다리는 비닐봉지 속으로 연신 사라진다. 홈쇼핑 마감 찬스도 이것보다 더 긴장감 있지 못했다. 앞에서 모두 담아갈까 뒤에 선 사람들 절로 발이 동동거려진다. ‘마약빵’을 득템(!)하고 난 후에야 비로소 제 걸음을 찾았다.
‘갓맛’ 마다할 사람 있을까. 갓 지은 것에는 특유의 구수한 내음이 있다. 솥에서 갓 나온 밥 한 공기, 방금 지져낸 부침개 한 판. 모두 좋지만 갓 구운 빵만큼 자극적인 것 또 있을까. 그 냄새 이기지 못하고 한 입 베어 물었다. 입 안에서 호호 불어야 할 만큼 열기가 대단하다.
‘마약빵’은 속을 옥수수로 가득 채우고 옥수수 크림으로 한 번 더 덧발라 달콤하면서도 탱글탱글한 씹는 맛이 일품이다. 씹을 것 없이 부드럽게 호로록 넘어가는 ‘마약빵’이 무섭도록 중독적이다. 지나서는 길 다시 그 맛 떠올라 발걸음 머뭇거려지는, 그 이름 아깝지 않은 빵이다.
<삼송 베이커리>, 그 빵집에서 ‘마약빵’을 판다. 〈삼송 베이커리〉는 1957년 생긴, 대구에서 내로라하는 오래된 역사의 빵집이다. 그 이름도, 그 자리도, 그 주인도 처음과는 달라졌지만 조금 달라진 이름과 옮겨진 자리와 마지막 바통을 이어받은 주인 내외가 그 빵집의 전통과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이 빵집에서 파는 빵의 종류란 한 손에 꼽힐 정도다. 종류를 대폭 줄인 대신 그 맛을 지켜내기로 한 것이다. 튀기지 않고 오븐에 구운 ‘구운 고로케’는 속 재료가 풍성하고 기름 맛 없이 담백해 잘 구운 야채 호빵처럼 느껴졌다. 느끼해 손이 덥석 가지 않는 것이 크로켓 아니던가. <삼송 베이커리>의 ‘구운 고로케’는 식사대용으로 먹어도 괜찮겠다 싶을 정도로 그 맛 담담하다.
집으로 가는 길, ‘찹쌀모찌’ 한 봉지를 더 골랐다. 여섯 개들이 ‘찹쌀모찌’가 제법 묵직하다. 달달한 카스텔라를 소복이 묻혀 만든 ‘찹쌀모찌’에 그 빵집 고소한 냄새가 깊다. 쫀득한 ‘찹쌀모찌’ 두어 개에 시장했던 배가 금세 누그러든다. 깊은 겨울 밤, 따뜻한 아랫목에 숨겨놓았다가 배 깔고 엎드려 야금야금 먹고 싶은 쫀득함이 고스란하다.
‘팥 소보로’가 좋다. 겉의 소보로는 그 어디에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바삭한 맛이 한겨울 빙설처럼 사각거리고, 달콤한 팥소를 넣은 빵은 끝 맛까지 고소하다. 찹쌀이 갓 구운 피자 치즈처럼 쭉쭉 늘어나고, 팥을 더해 고소한 ‘크림치즈빵’은 또 하나의 별미다.
뜨거운 빵 한 덩이가 국밥처럼 후루룩 넘어간다. 언제든지 방금 구운 빵을 먹을 수 있는 <삼송 베이커리>는 내게, 따뜻함으로 기억된다.
이 빵집을 모르는 사람이라도 그냥 지나치기 드물지만, 대구에서 이 빵집을 모르는 사람은 더욱 드물다. 갓 구워내 뜨겁고 동그란 빵이란, 여름철 그 어디 부럽지 않게 열정적인 대구를 닮은 맛이 아닐까. 그 빵집이 대구를 더 뜨겁게 한다.
A 대구광역시 중구 중앙대로 395
T 053-254-4064 H 09:30-소진 시까지
[관련 기사]
- 부산역 빵집 신발원
-샤코탄 블루와 니세코의 별 헤는 밤(上)
- 어묵의 화려한 비상 삼진어묵 베이커리
- 쉘 위 스위츠 in 홋카이도
- 충남 지붕 없는 민속박물관 외암민속마을, 해미읍성
이슬기
10년의 부산, 스무 살에 내려와 돌아서니 30대의 경상도 여자. 여전히 빵집과 카페, 디저트를 사랑하는 얼리 비지터. 2010~2012년 ‘차, 커피, 디저트’ 부분 네이버 파워 블로거. 『카페 부산』 저자. kisli.co.kr
보라빛방울
2015.03.13
rkem
2015.03.13
감귤
2015.03.12
더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