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석영 “만년문학은 부딪치고 깨져야”
소설가 황석영은 “만년문학은 안정을 추구하는 게 아니라 갈등과 모순, 실험 등으로 부딪치고 깨지는 것”이라 말하며 곧 철도원 3대에 얽힌 이야기를 발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글ㆍ사진 손민규(인문 PD)
2015.0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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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6일 예스24 소설학교 1회로 황석영 작가와 독자 30여 명이 만나는 시간을 보냈다. 이날 행사는 예스24와 문학동네가 함께 기획했다. 일행은 서울 합정에서 모여 경기도 양평에 위치한 황순원 문학촌 소나기 마을을 답사했다. 황순원 문학촌이 양평군에 자리 잡은 이유는 그의 대표작인 『소나기』의 무대가 양평으로 나와서다.

 

예스24 소설학교 1회는 황순원 문학촌에서는 자유 관람 및 황석영 작가의 특강으로 이루어졌다. 황석영 작가 강연과 함께 신수정 문학 평론가와의 대담 및 황순원 문학촌장이자 문학평론가인 김종회 경희대 교수의 환영 인사, 독자와 질의응답으로 이뤄진 2시간 동안에는 문학계 전반에 관한 다양한 이야기가 흘러나왔다.

 

먼저 황석영 작가는 최근 ‘인문학 부흥’으로 보이는 사회 분위기를 진단했다. 겉으로는 인문학 부흥처럼 보이지만 철학과와 사회학과 등 인문학이 폐과되는 게 현실이라고 황 작가는 이야기한다. 이런 분위기 속에 소설 경시 풍조도 심해지는데, 신자유주의 분위기가 교육까지 깊게 개입하며 상황이 악화되었다는 분석. 예전만 해도 초등학교 학생이 세계 명작을 읽으면 흐뭇하게 바라보는 풍토가 있었지만 요즘은 쓸데없다고 학원이나 가라고 하는 게 지금의 대한민국 모습이라고 한다.

 

소설 경시 풍조와 관련해 황 작가는 세 가지 일화를 들었다. 첫째 일화는 군부 독재 시절의 한 대통령 이야기다. 그 대통령은 소설책을 안 읽는다고 고백했는데, 소설책을 읽으면 마음이 약해지기 때문이라고 했다. 황 작가는 대체 그가 생각한 정치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물으며, 정치란 슬퍼하는 사람의 눈물을 닦아줘야 하는 게 아니냐고 반문했다. 둘째 일화는 386세대 이야기다. 386세대에게 요즘 읽은 한국 소설이 뭔지를 물었더니, 사회과학 책 읽을 시간도 없는데 소설 읽을 시간이 어디 있느냐는 답이 돌아왔다. 문학은 동시대인의 생각과 살아가는 모습인데, 그것도 모르면서 어떻게 사회를 바꿀 것인지 황 작가는 의문스럽다고 밝혔다. 셋째 일화는 정치가들이 거짓말을 했을 때, 반대편에서 공격하기로 “소설 쓰지 마!”라고 하는 장면이다. 소설과 거짓말이 곧 동의어가 된 시대지만 소설이란 거짓이 아니라 가상의 진실이라는 게 황 작가의 신념이다.

 

이어 그는 문학의 위기에 관해서도 의견을 냈다. 인터넷, 휴대폰 때문에 소설을 덜 읽는다는 진단은 핑계라고 일축했다. 오히려 미국이나 유럽에서는 문학 서적을 빌려서라도 보는 횟수가 증가했다. 사회나 학교에서 콘텐츠를 요구하기 때문이다. 더 근본적으로는 문학으로써 인간은 무수히 많은 체험, 특히 깊은 체험이 가능하기에 더 많이 읽힐 수밖에 없다.

 

황석영 소설가는 살면서 크고 작은 사건을 많이 겪었다. 방북 때문에 한국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독일에서 망명생활도 했고 7년 형을 선고받고 복역하기도 했다. 이렇듯 평탄하지 않았던 인생이지만, 소설을 많이 읽은 사람은 이런 고비를 극복하는 힘이 있다고 말한다. 황석영 소설가가 표현했듯 ‘자기 자장’이 생긴다는 의미다.

 

최근 그는 『황석영의 명단편 101』을 펴냈다. 이번 작업과 관련해서는 “많은 작품을 읽어야 해서 힘들었지만 젊은 피를 수혈받아 회춘한 기분”이라고 말했다. 한국문학사가 20세기 말과 21세기 초까지를 포괄해서 간추려볼 기회가 없었는데, 『황석영의 명단편 101』은 1990년대 이후 작가만 30명을 포함했다. 이렇게 한 것은 다분히 의도적이었는데 당대성과 현대성에 주목하기 위해서다. 

 

『황석영의 명단편 101』은 한국 근대문학의 시작을 염상섭으로 잡았는데, 이는 기존의 이광수나 김동인을 꼽았던 것과는 다른 지점이다. 이런 점을 두고 한 매체에서는 황석영 작가의 고집이라고 비판하기도 했다. 사실은 이와 다르다. 염상섭을 첫 작가로 정한 것은 황석영 작가의 개인 취향이 아니라, 신수정 교수를 비롯한 『황석영의 명단편 101』에 참여한 모든 사람의 의견이었다. 근대적 자아가 태동한 시기는 3.1 운동이고 그 이전에는 식민지로부터 이식받아 주체적인 자아를 형성하지는 못했다는 지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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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강이 열린 장소가 황순원 문학촌이었던 만큼 황석영 소설가는 황순원 작가와의 개인적인 인연을 공개하기도 했다. 그가 <사상계>로 등단할 때 뽑아준 스승이 황순원이었다. 젊었을 때는 누구의 제자라는 말을 안 했던 황석영이었지만 이제 그는 이 자리에서 “황순원의 제자”라고 공개했다.

 

황순원의 문학에 대한 기존 평은 ‘동화적 감수성’, ‘순수의 미학’이었다.  『황석영의 명단편 101』은 이러한 평가와는 다소 다른 의견을 냈다. 황석영은 황순원의 문학을 동화적 감수성으로만 이해하지 않았다. 오히려 분단 이후로 남한 사회에 존재하는 모순이야말로 그의 작품을 관통하는 주제라고 설명했다. “많은 월남인이 북을 폄훼하고 남을 찬양했지만 황순원 작가는 남한의 잘못된 정치, 민중 생활을 비판적인 자세로 썼다”며 그는 황순원으로부터 남한의 분단 시대 문학이 시작된다고 봤다. 현실을 향한 비판적 자세를 놓치지 않은 황순원으로부터 분단 문학이 시작된다는 점은 “뜻 싶고 마음이 놓인다”고 황 작가는 심경을 털어놨다.

 

황석영 작가의 강연이 끝난 뒤 황순원문학촌 소나기 마을 촌장이자 문학평론가인 김종회 경희대 교수가 독자들에게 인사를 건넸다. “한국 문학에서 가장 뛰어난 작품, 작가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받는데, 김종회 교수는 “작가는 이청준, 작품은 『장길산』”이라고 답한다고 했다. 이어서 김 교수는 “황순원이 흠이 없는 항아리라면 황석영은 금 간 항아리”라며 “흠이 없는 항아리는 물을 나르는 데 필요하고, 금 간 항아리는 새어나간 물이 떨어진 곳에 이름 모를 풀, 꽃이 자라 많은 사람에게 문학의 향기를 전한다”라고 두 작가를 문학적으로 묘사했다. 한편 대담에 참석한 신수정 교수는 『황석영의 명단편 101』이 한국 근현대 문학사를 정리한 데 그치지 않고 “문학사로 보는 황석영론”이라는 의미가 있다고 평했다.

 

한편 황석영 작가는 한국 문학의 저력을 강조하기도 했다. 일본 문학과 중국 문학의 현재를 이야기하며 그는 일본 문학은 두 차례 경제 부흥을 거치며 본격문학과 대중문학 간 경계가 사라졌고, 이러한 배경 때문에 가라타니 고진의 근대문학 종언론이 나왔다고 지적한다. 중국문학은 여전히 검열에서 자유롭지 않기에 노신 이후의 중국 현대문학을 완전히 믿을 수 없다고 봤다. 이런 상황에 비교한다면 한국문학은 여전히 강력한 힘이 있다는 분석. 황 작가는 “1970년대 서사가 만개했다면 1980년대 광주를 겪은 뒤에는 서사가 가능하지 않다는 분위기였고, 지금은 다시 한 바퀴 돌았다”고 진단했다. 그는 역사가 나선형으로 전진한다는 데 동의한다고 밝혔다.

 

끝으로 황 작가는 자신의 만년문학에 관한 포부를 공개했다. 그는 사이드를 인용하며 “만년문학은 안정을 추구하는 게 아니라 갈등과 모순, 실험 등으로 부딪치고 깨지는 것”이라 말하며 곧 철도원 3대에 얽힌 이야기를 발표할 예정이라고 이날 독자와 대화의 자리를 끝맺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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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석영의 한국 명단편 101황석영 편 | 문학동네
기존의 국문학사나 세간의 평가에 의한 선입견을 배제하고 현재 독자들에게 어떠한 의미를 던져줄 수 있을 것인가에 초점을 맞추어 선정된 작품들에는 유명한 작가의 지명도 높은 단편뿐만 아니라 지금은 거의 잊힌 작가의 숨은 단편들도 포함되어 있다. 또한 각 권의 말미에는 시대와 작품을 아우르는 문학평론가 신수정의 해설이 덧붙여져 독자들의 이해를 돕도록 했다.

#소설학교 #황석영 #예스24 #문학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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탱크

2015.03.18

항아리 얘기는 신수정 교수의 발언이 아니라 황순원문학촌 촌장 김종회 교수의 발언이었습니다. 수정하셔야 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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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민규(인문 PD)

티끌 모아 태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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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석영

1943년 만주 창춘(長春)에서 태어나 태어나 동국대 철학과를 졸업했다. 고교 시절인 1962년 단편 「입석 부근」으로 [사상계] 신인문학상을 수상했고, 1970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단편 「탑」이 당선되어 문학활동을 본격화했다. 베트남전쟁에 참전한 뒤 「객지」 「한씨연대기」 「삼포 가는 길」 『무기의 그늘』 『장길산』 등 문학사에 획을 긋는 걸작들을 발표하면서 한국을 대표하는 작가로 부상했다. . 1976년 전남으로 이주해 해남과 광주에서 집필과 현장문화운동을 병행하던 중 1979년 계엄법 위반으로 검거되고 당국의 권고로 1981년 제주도로 이주했다. 1982년 다시 광주로 돌아와 5월항쟁의 진상을 알리기 위한 각종 활동을 펼쳤다. 1985년 군사독재의 감시를 피해 출판된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의 저자로 나선 뒤 유럽과 미국, 북한으로 이어지는 긴 망명생활을 시작했다. 1993년 귀국하여 방북사건으로 징역 7년형을 선고받고 1998년 석방되었다. 1989년 베트남전쟁의 본질을 총체적으로 다룬 『무기의 그늘』로 만해문학상을, 2000년 사회주의의 몰락 이후 변혁을 꿈꾸며 투쟁했던 이들의 삶을 다룬 『오래된 정원』으로 단재상과 이산문학상을 수상했다. 2001년 ‘황해도 신천 대학살사건’을 모티프로 한 『손님』으로 대산문학상을 수상했다. 2000년대 본격적인 창작활동을 재개하여 장편 『오래된 정원』, 『손님』, 『심청』, 연꽃의 길』, 『바리데기』, 『개밥바라기별』, 『강남몽』, 『낯익은 세상』, 『여울물 소리』, 『해질 무렵』 역작들을 선보이며 소설형식에 대한 쉼없는 탐구정신, 식지 않는 창작열을 보여주고 있다. 프랑스, 미국, 독일, 이탈리아, 스페인, 일본, 스웨덴 등 세계 각지에서 『오래된 정원』, 『객지』, 『손님』, 『무기의 그늘』, 『한씨연대기』, 『심청, 연꽃의 길』, 『바리데기』, 『낯익은 세상』, 『해질 무렵』 등이 번역 출간되었다. 『손님』, 『심청, 연꽃의 길』, 『오래된 정원』이 프랑스 페미나상 후보에 올랐으며, 『오래된 정원』이 프랑스와 스웨덴에서 ‘올해의 책’에 선정되었다. 『해질 무렵』으로 프랑스 에밀 기메 아시아 문학상을 수상했다. 주요 작품으로 『객지』, 『가객』, 『삼포 가는 길』, 『한씨연대기』, 『무기의 그늘』, 『장길산』, 『오래된 정원』, 『손님』, 『모랫말 아이들』, 『심청, 연꽃의 길』, 『바리데기』, 『개밥바라기별』, 『강남몽』, 『낯익은 세상』, 『여울물 소리』, 『해질 무렵』 등이 있다. 또한 지난 100년간 발표된 한국 소설문학 작품들 가운데 빼어난 단편 101편을 직접 가려 뽑고 해설을 붙인 『황석영의 한국 명단편 101』(전10권)과 자신의 파란만장한 삶의 행로를 되돌아본 자전 『수인』(전2권)을 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