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클리, 박은태, 한지상, 윤형렬, 최재림, 이영미, 장은아, 함연지. 이 작품의 주요 배역에 캐스팅된 배우들의 이름을 보니 대번에 ‘노래 잘하는 배우들은 다 모였구나!’라는 생각이 듭니다. 바로 6월 7일 프리뷰 공연을 시작으로 서울 샤롯데씨어터에서 개막하는 뮤지컬 <지저스 크라이스트 수퍼스타>인데요. <지저스 크라이스트 수퍼스타>는 <오페라의 유령>, <캣츠>의 주옥같은 넘버를 만든 앤드루 로이드 웨버의 또 하나의 대표작으로, 고음역대의 난이도 높은 노래와 강렬한 록 샤우팅 창법이 관객들을 매료하죠. 그래서 이 작품에 캐스팅됐다는 것은 우선 그 배우의 가창력이 입증된 것이고, 이 무대를 통해 숨은 매력까지 드러내며 그야말로 수퍼스타로 빛날 수 있는 기회를 잡았다는 얘기이기도 합니다. 그 대열에 선 이 남자, 중저음의 보이스가 매력적인 윤형렬 씨인데요. 섹시한 유다로의 변신을 꾀하고 있는 그를 압구정동의 한 카페에서 만나봤습니다.
“지저스의 유다는 남자배우들이 다 꿈꾸는 배역인데, 직접 연습해보니까 정말 재밌어요. 대사가 없는 뮤지컬(sung-through)이라서 그렇게 진한 느낌이 있을까 싶었는데, 여운이 강하더라고요.”
‘노래 잘하는 배우들은 다 모였구나!’ 싶던데, 연습실 분위기는 어떤가요?
“다들 무척 열심히 해요. 2013년에 했던 분들은 설렁설렁 할만도 한데 그렇게들 열심히 하세요. 처음 참여하는 저로서는 자극을 받죠. 연습하는 모습만 봐도 두 명의 예수와 세 명의 유다가 모두 달라요. 개성도 색깔도 다르고, 디테일한 콘셉트나 동선 등도 조금씩 달라서 무대마다 색다른 재미가 있을 것 같아요. 특히 유다 같은 경우, 일단 (최)재림이는 저보다 두 살 어린데 젊고 패기가 있다고 할까요? 날것의 느낌, 위험한 느낌도 있고. 어떤 의미로 받아들이실지 모르겠는데 제가 볼 때는 굉장히 위험한 유다예요(웃음). (한)지상이 형은 워낙 잘하시니까. 소년 같은 느낌도 있잖아요. 유다의 고뇌나 그런 면이 보일 때 재림이나 저한테는 없는 안쓰러운 면도 있어요.”
윤형렬 씨는 포스터에 ‘섹시한 유다’로 소개돼 있던데, 뮤지컬 <아가사> 때 로이를 생각하면 충분히 가능할 것 같습니다(웃음).
“제가 쓴 건 아니지만 그렇게 맞추려고 노력하고 있어요(웃음). <아가사>의 로이와는 또 다른 섹시함을 보여드려야 할 것 같은데, 제 숙제죠. 음악적으로는 그동안 제가 해왔던 것과 달리 록 뮤지컬이잖아요. 유다는 사실 쉬운 노래가 없어요. 음도 높고, 정말 힘들거든요. 제 목소리만 듣고 중저음 보이스만 생각하실 텐데, 그런 면에서는 신선할 것 같아요.”
원래 가수로 데뷔했고, 꾸준히 음반도 발표하고 계시니까 노래가 어려울수록 희열을 느낄 것 같은데요?
“그런 것도 있죠(웃음). 그동안 다른 작품들은 희열을 느꼈는데 이 작품은 희열을 느끼다가는 큰일 날 것 같아요, 워낙 어려워서. 그런데 피가 끓는 건 있어요. 전주만 들어도 좋더라고요.”
이번에 유다도 그렇지만 <셜록홈즈> <아가사> 등에서 굳이 선과 악으로 나누자면 악역에 가까운 배역을 맡아왔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만나니 딱 모범생 같은데요(웃음).
“그런 얘기 많이 들어요. 좀 반듯한 이미지라고. 칭찬이라고 생각해요. 실제 성격도 악하지는 않아요(웃음). 기본적으로 까불까불한 성격도 아니고요. 평소에 드러내지 못한 부분을 무대에서 할 수 있으니까 좋죠. 이번에는 특히 대사가 없어서 상징적으로, 뉘앙스로만 풀어야할 때가 많아서 잘 만들어가야 할 것 같아요.”
음색 때문에 캐릭터가 치우치는 면이 있는 것 같은데, <아가사>의 로이를 보니 로맨틱 코미디물도 어울릴 것 같아요. 목소리가 대극장용이라서 소극장 공연도 안 해 보셨죠(웃음)?
“목소리가 무거워서 가벼운 역할은 안 어울린다고 생각하는 분들도 있겠죠. 목소리가 장점이 될 수도 있지만 단점이 될 수도 있더라고요. 로맨틱 코미디를 해보고 싶긴 해요. 항상 힘이 들어가는 역할만 해서 밝은 역할을 해본 적이 없거든요. 얼마 전에 최수형 형이 <쓰루더도어>를 하는데 정말 웃긴 거예요. 형이 자기를 아예 포기했더라고요(웃음). 저도 저를 내려놓을 수 있는, 밝고 웃기는 역할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멋있는 척 안 해도 되는 역할이요.”
연출가 이지나 선생님이 배우들 색깔을 잘 끄집어내잖아요. 이번에는 뭐라고 하시던가요?
“지나 선생님한테는 매일 혼나는 존재라서(웃음). 이번에 고민을 많이 하셨대요. 워낙 목소리가 강하고 모범생 이미지도 좀 있어서 유다를 할 때 위험한 면이 있다고요. 잘못하면 무미건조할 수 있고, 좀 틀면 이해를 못할 수도 있고요. <더 데빌> 때도 들었던 말인데, 저도 같이 느끼고 있어요. 잘 풀어내야죠. 선생님을 좋아하는 게 작품을 같이 하면 어떻게든 성장하게 해주세요.”
그런데 이렇게 모범적인 이미지와 달리 청소년기에는 가수가 되기 위해 일탈도 감행하셨다면서요?
“그 나이 때 가볼 수 없는 곳까지 가봤더니 다시 모범생 이미지가 된 것 같아요(웃음). 저는 음악을 하고 싶고 부모님은 반대하시니까 청소년기의 반항심이 더해져서 집을 나갔어요. 결국 자퇴를 하고 6~7개월을 놀았는데, 돈이 없으니까 밥도 굶고 무척 힘들었죠. 그때부터 이 얼굴이라서 나이 속이고 아르바이트도 안 해본 게 없어요. 그러다 깨달은 거죠. 이렇게 살면 안 되겠구나. 다시 집에 들어가고 기숙학원에서 스파르타로 1년 공부해서 검정고시, 수능보고 대학 들어간 거예요.”
남들 2년 동안 할 걸 1년 놀고, 1년 집중해서 하신 거네요(웃음). 말씀 안 하면 아무도 모를 것 같아요.
“그렇죠. 제가 그렇게 보인다는 걸 알게 된 지 얼마 안 됐어요. 많은 사람들이 탄탄대로로 살았다고 생각하더라고요. 그래서 조심해야겠다는 생각도 들었어요. 저는 그냥 하는 행동인데 건방지다고 생각하기도 하고. 사실 가수로도 2~3년 무명생활을 했는데, 모르는 사람들은 신인이 콰지모도로 데뷔해서 상을 받은 거잖아요. 그것만 봤을 때는 세상 쉽게 산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더라고요.”
그럼 무대의 모든 순간이 훨씬 더 소중하게 생각될 것 같아요.
“그럼요. 저는 중1때부터 꿈이 확실했어요. 음악을 하고 싶었거든요. 처음에 <노트르담 드 파리>를 할 때는 매순간이 정말 행복했어요. 가수를 할 때는 설 무대가 없었는데, 돈이 없어서 무척 힘들었는데, 이렇게 큰 극장에 매일 설 수 있고 돈도 받고요(웃음). 팬들에게 선물 차원으로 음반도 꾸준히 작업하고 있고, 최근에는 영화도 했지만 가장 중요한 건 무대라고 생각해요. 매회 라이브이고, 관객들과 소통할 수 있고. 무대에 꾸준히 서야 저도 발전할 수 있고, 그게 관객들에 대한 보답인 것 같아요.”
본인의 의지만큼 앞으로도 여러 분야에서 활발하게 활동하시지 않을까 싶은데, 스스로는 궁극적으로 어떤 무대에서 어떤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싶은가요?
“많은 나이는 아니지만 20대를 보내고 30대 중반을 향해 가면서 드는 생각인데, 욕심을 많이 버리게 되는 것 같아요. 어릴 때는 더 유명해지고 싶고, 이른바 뜬다고 하잖아요. 그런데 지금 뒤돌아보면 지나온 길에 빈틈이 너무 많지 않았나. 하나씩 채워가고 싶어요. 화려한 작품의 화려한 배역보다는 배우로서 밀도 있고 성장할 수 있는, 나를 다져갈 수 있는 일을 하고 싶어요.”
무대에서 윤형렬 씨의 노래를 듣고 있으면 속이 후련할 때가 있습니다. 거침없는 목소리로 막힘없이 내지르기 때문이겠죠. 그와 색깔은 다르지만 뮤지컬 무대에서 내로라할 노래꾼들이 다 모였으니 <지저스 크라이스트 수퍼스타>는 캐스팅만으로도 이목이 집중되는 건 확실한데요. 특히나 작품마다 조금씩 변화를 꾀하고 있는 윤형렬 씨가 얼마나 섹시한 유다로 변신할지 무척 궁금하네요. 개인적으로는 이 작품 다음에 그의 표현을 빌려 ‘스스로를 내려놓을 수 있는’ 코믹한 작품에 참여할 수 있기를 기대해 봅니다. 배우로서의 스펙트럼이 훨씬 확장되지 않을까요? 무대 위 윤형렬 씨에게서 모범생 이미지만 봐왔다면 <지저스 크라이스트 수퍼스타> 때 자세히 들여다보시지요. 이 남자, 세상 쉽게 살아오지 않았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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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하정
"공연 보느라 영화 볼 시간이 없다.."는 공연 칼럼니스트, 문화전문기자. 저서로는 <지금 당신의 무대는 어디입니까?>, 공연 소개하는 여자 윤하정의 <공연을 보러 떠나는 유럽> , 공연 소개하는 여자 윤하정의 <축제를 즐기러 떠나는 유럽>, 공연 소개하는 여자 윤하정의 <예술이 좋아 떠나는 유럽> 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