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적으로 보니라는 가수를 처음 접했을 때를 떠올려본다. 일단 예쁜 외모에 놀랐고 풍부한 성량과 보컬 톤에 놀랐고 곡에 맞추어 자유자재로 변용하는 알앤비 싱어로서의 유연함에 놀랐다. 전작 < Nu One >은 위의 좋은 재료를 소박하게 잘 담아낸 사례였다. 부담감과 자신감 사이에서 탄생한 보니의 첫 앨범 < Love >는 또 다시 듣는 이를 목소리에 집중하게 만든다. 노래를 위한 노래에 의한 작품이라 하겠다.
소재의 측면에서는 특별히 새로울 것이 없다. 사랑이라는 주제하나로 열두 곡을 풀어내는데 때론 애절한 실연을 겪은 연인의 모습으로 분하기도 하고 상대를 다독이는 포근한 여인의 모습을 연기하기도, 권태에서 고민하는 모습도 내비친다. 목적과 의도에는 충실한 가사를 보이지만 무릎을 탁 치게 만드는 비유나 구절이 있는 것 또한 아니다. 오히려 「똥차라도 괜찮아」처럼 식상한 실소가 번지는 경우도 있다.
싱어송라이터로서의 자질 역시도 가능성을 보이는 수준에서 그친다. 「Umm」과 같이 절로 후렴구에 귀를 기울이게 하는 멜로디도 있지만 특기할만한 사례는 적다. 전반부부터 리듬감을 주며 예열을 시작하는 「Stalk you」정도가 눈에 띈다. 곡들마다 작곡가로서의 역량을 크게 피력하지도 않기에 섣불리 판단을 내리기엔 자료가 불충분한 것이 이번 신보이다.
말하자면 < Love >는 보컬에 팔 할 이상을 건 음반이다. 다양한 스타일의 알앤비 넘버가 산재하는 가운데 이를 하나로 집합시키는 것은 그의 노래이기 때문이다. 타이틀 곡 「One in a million」에서는 잘 만들어진 멜로디 위에서 마음껏 뛰노는 보니의 모습을 볼 수 있다. 가성으로 시작해 성량을 팽창시키다가 과도하지 않은 기교로 마무리하는 후렴구는 가히 최고의 순간이라 할만하다. 흔한 반복을 허용치 않는 구성에서 우리는 보니라는 가수의 탄력을 맛볼 수 있다.
사적인 사진첩을 들추어보듯 온갖 모습을 열두 곡에 감추어 두었다. 「Strawberry」의 통통 튀는 익살에서도 「잠시 길을 잃다 Part 2」나 「I love you」와 같은 차분한 발라드에서도 자신의 색을 잃지 않으면서 다양함을 구가하고 양적으로 질적으로 팽창한다. 「위험해 (Feat. 샛별)」과 같은 콜라보 트랙에서는 두 여성의 끌고 미는 줄다리기를 감상하며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재미를 제대로 즐길 수 있다.
정직하고도 든든한 알앤비 한상차림이다. 가창의 효과를 배가시키는 음악들과 프로듀싱 그리고 가수의 역량이 접점을 이뤘다. 스스로의 재능을 적재적소에 배치할 줄 안다는 점에서 보니는 한 앨범을 이끌어나갈 추진력을 보유한 셈이다. 분명한 매력과 기본기를 갖추면서 우리는 이 알앤비 가수에 대한 신뢰를 얻었다. 실로 오랜만에 풍성한 정식 요리 하나를 맛보았다.
2015/05 이기선(tomatoappl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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