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뷔 43년. ‘글을 쓰는 것보다 글을 쓰지 않는 것이 더 힘들다면 글을 쓰라’고 얘기하는 작가 박범신. 그 자신이 그랬기 때문에 작가는 지금도 왕성한 창작열로 작품을 쓰는 중일 터다. 쓰지 않으면 힘들기 때문에 써야 한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이다. ‘박범신에게 궁금한 거의 모든 것에 대하여’ 이야기 나누기 위해 모인 100여 명의 독자들과 함께 작가는 집요함, 결핍, 불안, 자기 구원의 욕망 등에 대해 단단한 목소리로 말했다.
예스24와 문학동네가 함께한 소설학교 4편은 박범신 작가였다. 지난 6월 9일 정동에서 만난 박범신은 “오랜만에 서울에 왔다”고 활짝 웃으며 인사했다. 작가는 현재 논산에 거주하고 있는데, “남들이 짐작하듯 늙어서 유유자적하고, 무위자연하려고 내려간 것은 아니고요. 열심히 소설을 써보려 하니까 환경을 바꿔야겠더라고요.”라고 부연했다.
최근작 『주름』부터 시작해 『소금』, 『은교』, 『고산자』, 『촐라체』 등 그는 대표적인 다작 작가다. 산문집까지 꼽는다면 그 수는 훨씬 많아진다. 환경을 바꿔가면서까지, 노년에 홀로 사는 환경을 만들면서까지 쓰는 이유가 무엇일까.
“안 쓰면 굉장히 우울해져요.”
작가의 변이었다.
“글을 쓰면 놀라울 정도로 내 자신을 장악하게 됩니다.”는 작가는 다른 무엇도 아닌 글로써 자신을 통제한다고 말했다. 그가 홀로 논산으로 간 이유도 같았다. 불편한 상황을 감수하며 소설을 쓰려는 노력의 일환이었다.
“평생 그렇지만 은퇴 후 어떻게 문학적으로 나 자신을 긴장시킬 것인가 고민했어요. 데뷔43년 동안 지속적으로 쓸 수 있었다는 것은 지속적으로 내적 분열 상태에 있었다는 뜻입니다. 매우 안정되고, 행복했다면 글을 쓸 수 없었을 거예요. 지속적으로 불편하고, 불안하고, 행복해지지 않는 것이 글을 쓰게 했습니다.”
결핍에 예민한
돈이 없던 시절에는 돈이 없어 불안했다. 그 힘으로 글을 썼다. 그러나 금전적 문제가 해결되어도 불안함은 사라지지 않았다. ‘천당과 지옥’을 오가는 것, ‘추락과 상실’을 매시간 반복하는 것을 작가는 ‘내적분열의 상태’로 표현했다.
“불안정한 상태는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추동력이 있어요. 심리적으로 매우 안정되어 있으면 소파에 가만히 앉아있을 텐데, 불안정하면 몸이 앞으로 나가요. 추락과 상실을 반복하게 되면 자연히 앞으로 나가는 에너지가 생겨요.”
글을 쓰는 내내 그런 상태였다면 작가란 필시 편안한 직업은 아니다. 사람들의 응원을 받고, 책이 많이 팔리고, 이름을 알렸지만 작가는 늘 허무하고 외로웠다. 상처 받기 쉬운 예민함이 그를 늘 결핍의 상태에 있게 했다.
“문학은 행복에서 오는 건 아닌 것 같아요. 글을 쓴다는 건 자기 구원의 욕망에서 비롯된 것이거든요. 여러분도 다 아름답고, 멀쩡하게 앉아있지만 상처에 예민하거나 상처를 오래 간직하는 사람들일 거예요. 결핍에 예민한 사람들이 문학을 지향하게 되는 거죠. 저도 마찬가지였어요.”
어린 시절, 작가는 자나 깨나 동구 밖에 나와 강경, 논산 사이의 넓은 들판을 지나가는 기차를 바라보았다. 너무 멀어서 낮에는 잘 보이지 않는 기차를 보기 위해 어린 작가는 어두운 밤에 동구 밖에 쭈그려 앉아 기차 불빛을 바라보았다. 가장 큰 소망은 저 큰 기차를 타고 먼 곳으로 가는 것이었다.
“보이지 않는 곳, 산 너머, 벽 너머로 가보는 것이 어린 시절의 가장 큰 꿈이었어요. 생각해보니 저는 그런 것 같아요. 벽 너머, 어둠 너머, 언덕 너머, 산 너머가 궁금하고, 가보고 싶고, 그곳이 그리워서 글 쓰는 것을 지금까지 하고 있는 게 아닌가 생각합니다. 가난한 시절에는 가난을 넘어서고 싶고, 부자유했을 때는 그것을 넘어 자유롭고 싶었고요. 요즘은 나이를 먹어서, 제가 꿈꾸는 것은 거의 생전에는 이룰 수 없는 꿈이에요.”
작가는 초월의 세계,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 현상 너머, 죽음 너머의 세계가 궁금하다고 했다. 인간의 보이지 않는 내면, 가닿을 수 없는 초월적 세계에 대해 욕망하는 마음으로 가득 차 있다고 말이다.
“그것을 ‘갈망’이라고 해요. 1993년 절필 이후 3년을 쉬다가 이후에 쓴 소설은 대부분 ‘갈망’이라는 말을 많이 쓰고 있어요. 초월의 세계에 대한 욕망을 제 나름대로 말하는 거죠.”
갈망 3부작
『촐라체』(2008), 『고산자』(2009), 『은교』(2010)는 박범신 작가의 ‘갈망 3부작’으로 잘 알려져 있다. 가닿을 수 없는 어떤 것을 갈망하는, 그것을 궁금해 하고, 그리워하는 작가의 욕망이 담긴 작품들이다.
영화로 제작되어 많은 사람들에게 잘 알려진 작품 『은교』는 노작가가 어린 소녀를 열망하는 이야기를 다룬다. 이 작품을 쓴 이후 사람들이 자신을 ‘위험한 노인’이라고 여긴다며 농담으로 작품과 갈망에 관한 이야기를 열었다.
“노인의 머릿속에는 열일곱 살 처녀는 늘 열일곱 살 처녀인 줄로만 알고 있어요. 사실 노인이 욕망하는 것은 열일곱 살 처녀의 육체가 아니에요. 불멸의 젊음을 욕망한 거죠. ‘젊음’을 빼도 상관없어요. 불멸을 욕망한 거예요. 영원히 늙지 않는, 영원히 변하지 않는 사람, 영원히 그곳에 그대로 머물러 있는 사람 말이죠.”
그 손등 위의 맥박은,
울근불근,
아주 고요하면서도 힘차게 뛰고 있었다. 네 심장이 뛰고 있는 것 같았지. (중략)나는 보고 느꼈다. 내가 평생 갈망했으나 이루지 못했던 로망이 거기 있었고, 머물러 있으나 우주를 드나드는 숨결의 영원성이 거기 있었다. ( 『은교』, 93쪽)
작가는 희망을 말하지 않았다. 원하는 것은 영원히 가질 수 없을 것이라고 했다. 『고산자』, 『촐라체』 역시 근본적으로는 이룰 수 없는 꿈에 대한 비애를 담은 소설이라고 작가는 말했다.
“깊은 그리움, 그것으로 문학을 하는 것이고요. 그런 의미에서 여러분도 저와 같은 길을 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박범신에게 궁금한 거의 모든 것
이야기를 마친 작가 박범신은 마이크를 독자들에게 넘겼다. 좋은 날, 편안하게 대화를 나누자고 제안했다. 독자들은 준비한 듯 질문을 쏟아냈다.
현재 문학동네 카페에 연재 중인 소설을 읽고 있습니다. 초월적인 것에 관심이 많다고 하셨는데, 아직 그 소설이 마무리 되지는 않았지만 현실에 더 가까이 가고 싶어 하는 소설 같았습니다. 이 소설을 통해 하고 싶었던 말씀이 있다면 들려주세요.
‘꽃잎보다 붉던’이란 소설을 연재중입니다. 최백호의 노래를 듣다 구상했어요. <길 위에서>라는 곡인데요, 2절에 ‘꽃잎보다 붉던’이라는 가사가 나와요. 죽기 직전의 삶을 부른 노래예요. 굉장히 슬프더라고요. 한 노인 부부가 서서히 머릿속에 떠올랐어요. 남편은 치매에 걸려 죽고, 여자 주인공 역시 치매에 걸렸습니다. 슬픈 이야기죠. 그러나 이것을 죽음의 이야기라고 생각하진 않아요. 러브스토리를 쓰려고 한 거예요. 여자는 오랫동안 남편을 사랑하지 않았지만 남편이 치매에 걸린 뒤 5년 동안 깊이 사랑하게 되죠. 남편은 평생 아내를 사랑해서 헌신하고 인내하지만 치매에 걸린 후 아내를 괴롭혀요. 아내는 자신을 괴롭히는 남편의 본심을 보면서 남편을 사랑하게 되죠.
사랑은 상대의 그늘을 보는 거지 가진 것을 보는 건 아닌 것 같아요. 요즘은 상대가 가진 것을 보죠. 상대가 미모인가, 돈이 있나, 대학은 어디 나왔나, 집안은 어떤가, 이런 것을 다 보잖아요. 가진 것을 보고 사랑하면 가진 것이 사라졌을 때 사랑은 깨져요. 얼마 못 가요. 그렇게 사랑하면 안 돼요. 상대와 내가 수평을 이루는 것, 그 과정을 현재 쓰고 있습니다. 이 작품은 사랑이라는 게 뭘까, 어떻게 하는 것이 사랑을 지켜가는 걸까, 이런 얘기를 쓰고 있어요. 사랑의 불완전성을 말하고 싶었고요. 그렇지만 어떻게 사는 동안 그것을 완성해갈 수 있는가에 대해 스스로 질문해보는 소설입니다. 10월 쯤 책이 나오지 않을까 싶어요.
억울하거나 화나는 일이 있으면 글로 풀 때가 있어요. 처음 글을 쓸 때 어떤 마음이셨는지요?
가난해서 부모님이 대학을 가지 말라고 하셨는데 한 동네 살던 매형 어른이 대학을 가지 않으면 먹고 살기 힘드니 꼭 가라고, 교육대학을 가라고 해요. 당시 2년제였고, 등록금도 쌌으니까요. 그렇게 전주교육대학을 갔죠. 22살에 초등학교 선생으로 발령을 받았어요. 무주에서도 가장 오지로 발령이 났죠. 전기도 안 들어오는 곳이었어요. 5시만 되면 어두워지는데 라디오조차 없으니 너무 외로웠어요. 하숙방에 들어오면 아무것도 없었어요. 뭐랄까, 유배된 느낌, 소외된 느낌이었어요. 좌우간 억울하거나, 버림받거나, 가난하거나, 감옥을 가거나, 이러면 작가가 되기 아주 좋은 조건이에요.(웃음)
예민한 젊은이였으니까 무척 외로웠죠. 처음엔 서울로 대학을 간 친구들에게 편지를 보냈어요. 한 친구는 제가 보낸 2미터가 넘는 두루마리 편지를 지금도 가지고 있어요. 원고지 300매 분량의 편지를 여자도 아닌 남자 친구에게 썼다니 미쳤죠.(웃음) 얼마나 외로웠으면 그랬겠어요. 친구들은 답장을 보내지 않았어요. 보내도 엽서 한 장 정도였죠. 자존심이 상해서 부치지 않을 편지를 노트에 쓰기 시작했어요. 어느 때는 예쁜 여자를 상상해서 편지를 길게 썼고요. 분하고 억울한 일을 엄마한테 이르는 편지도 쓰고요. 방학이 되자 친구가 놀러와 숨겨놓았던 그 노트를 읽었더라고요. 그 친구가 말했어요. “너 알고 봤더니 소설을 쓰는구나.” 그때 소설이라는 말이 마치 화인처럼 발등에 지져지는 것 같더라고요. 나의 정체성을 만나는 순간이었죠. 다음날 시골 문방구에서 제일 좋은 노트를 두 권 샀어요. 그걸 안고 돌아오는데 가슴이 정말 두근거렸어요. 누가 봤으면 눈빛이 아마 번쩍번쩍 했을 거예요. 책상에 앉아 노트 표지에 이렇게 썼어요. 소설. 어제까지는 의미 없는 넋두리를 썼는데 오늘부터는 이름이 붙은 거죠. 소설을 쓰면 더 밝은 세상으로 나갈 수 있을 것 같더라고요. 소설이라는 말이 하늘에서 내려준 동아줄 같았어요.
소설 작법에 대해 질문하고 싶어요. 처음부터 끝까지 이야기로 만들어지지 않으면 글이 써지지 않더라고요. 글을 쓰실 때 끝까지 어느 정도 구상을 하고 쓰시는지 아니면 쓰면서 구성을 해나가는지 궁금합니다.
저도 소설이라고 이름을 붙이고 나니까 진도가 안 나가더라고요. 어떤 이름이 붙어있는 글쓰기라는 건 그것을 구조화하는 것을 요구하거든요. 그래서 쓰기가 굉장히 두렵고 무서워지죠. 알다시피 오늘날 소설은 무한히 열린 구조예요. 소설이라는 게 정해져있는 규칙이 없어요. 소설 안에 희곡이 담길 수도 있고, 시도 담길 수 있고, 시처럼 처음부터 끝까지 다 쓸 수도 있어요. 반드시 두 인물이 필요한 것도 아니고, 예전처럼 기승전결이 반드시 필요한 것도 아니에요.
중요한 것은 그 안에 어떤 것을 담아내고 싶은가 하는 것에 대한 절실한 욕망을 품는 게 제일 중요하다고 봐요. 형식은 쓰면 쓸수록 늘어요. 너무 완벽한 구성으로 완벽하게 구조화해서 담아야겠다는 마음에 눌리는 것은 좋은 방법은 아니에요. 가장 중요한 것은 무슨 말을 하고 싶은가 하는 것이죠. 세상이 주입한 생각을 버리고 정직해질 준비를 해야 해요. 진실로 말하고 싶은 것이 저 밑, 창자벽에 깔려있는데 대부분 ‘이런 얘기를 쓰면 나를 어떻게 볼까’하는 생각 때문에 두루뭉술하게 보편적인 상상력 범위 내에 있는 이야기를 써요. 그러면 안 돼요. 그보다 더 밑으로 내려가 똥물이 줄줄 흐르는 창자벽에 있는 말들에 대해 정직해지는 마음의 준비를 하는 게 제일 중요하다고 봐요. 나만 알 수 있는 고유한 내 생각을 끄집어내려고 하는 집요함 같은 게 중요하죠. 형식은 두 번째예요. 놀라운 기술을 구사해서 좋은 그릇에 담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것은 시간이 좀 걸리죠. 많이 읽고, 많이 쓰다보면 저절로 형식을 알게 돼요. ‘소설 잘 쓰는 법’에 관한 책을 많이 읽을수록 손해예요. 자신만의 본질적인 말만 훼손될 뿐이죠. 마음속에 있는 상상을 찾아내려고 하는 집요함, 그게 중요해요. 쓰다보면 머지않아 형식은 균형을 맞추게 될 거예요. 남과 다르게 보려는 노력, 나의 고유한 말을 찾아내려는 욕망을 크게 갖는 게 좋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어요.
고유어가 많아서 단박에 읽지를 못했어요. 사전을 찾아가며 읽게 되더라고요. 그렇게 하시는 이유가 궁금합니다.
가끔 낯선 낱말이 나오죠? 직업적인 습관인데요. 글쎄요. 작가가 독자들이 모르는 낱말 한두 개 정도는 써먹어야 하지 않나요?(웃음) 문학을 하는 사람의 공통된 특징은 언어에 대한 사랑이죠. 남의 말을 무심코 흘려듣는 사람은 글 쓰는 사람 중에 별로 없을 거예요. 특이한 표현이 나오면 귀가 번쩍 뜨이잖아요. 막내가 어렸을 때 “아빠, 다리가 반짝반짝해”라고 해요. 다리가 저리다는 뜻이었어요. 놀라운 표현이라고 생각했어요. 수십 년이 지났는데 지금도 안 잊어버려요. 어머니는 그랬어요. “나 죽으면 제사상에 아무거나 놓지 말고 투구 대가리 높은 이팝에다 수저 꽂아도 자빠지지 않게 고깃국 한 그릇 놓아다오.”라고요. 투구 대가리라는 건 고봉밥을 말하죠. 수저 꽂아도 넘어가지 않을 정도로 고기가 많이 들어간 국을 원하신 거고요. 질기고 오랜 가난을 단 한 문장으로 말하신 거예요. 절실하게 나오는 한 문장은 잊을 수가 없어요. 가장 좋은 문장은 절실하게 나오는 문장이거든요. 어둠 속에 홀로 떨어져있을 때 우리가 자신도 모르게 ‘엄마’라고 부른다면 그 ‘엄마’는 어떤 과학도 이길 수가 없어요.
언어감각에 대해 무심한 사람은 작가가 되기 힘들겠죠. 술집에서 놀다가도 멋진 말이 나오면 단번에 기억하죠. 낯선 낱말이 나오거나 신선한 비유가 나오면 아무리 취해도 이상하게 기억에 남아요. 언어에 대한 예민함, 그것은 모든 작가들이 가진 기본이라고 할 수 있죠. 사라지고 있는 언어를 되살려 쓰고 싶다는 욕망의 표현이라고 생각하셔도 되고요.
소설을 쓰기 위해 자신을 불편하게 한다고 하셨는데요. 행복하신지, 어떨 때 행복을 느끼는지 여쭙고 싶습니다.
저 행복해 보이나요? 환경적으로 저는 불행할 이유가 없어요. 예전처럼 가난하지도 않고, 아내에게 버림 받지도 않았고요.(웃음) 그런데 행복한 적은 별로 없는 것 같아요. 제가 불행해서가 아니라 상처받기 쉬운 상태에 있다고 볼 수 있죠. 작년 겨울이었어요. 집 앞을 산책하는데 한 중년 여자가 길에서 그렇게 소리를 내서 울더라고요. 떠올리면 지금도 가슴이 먹먹해요. 그 여자가 나를 불행하게 했어요. 왜 우는지 지금도 모르겠지만요. 제 단편들은 다 그런 것들이죠. 「우리들의 장례식」이라는 소설이 있어요. 직장에 다니며 야간에 대학원을 다니던 때였는데 피곤했는지 버스 안에서 졸았어요. 내릴 곳을 지나쳐 내렸는데 어딘지 모르겠더라고요. 달동네였어요. 눈도 푸슬푸슬 내리고요. 그런데 가다 보니까 하얀 나무 관이 골목길에 세워져있어요. 수업에 늦었지만 너무 이상하니까 나도 모르게 거길 간 거예요. 문 열린 부엌에서 중년 부부가 저녁을 먹고 있더라고요. 가난한 판잣집이었죠. 왜 나무 관을 이곳에 놓았느냐고 물었더니 방 안에 관이 들어가질 않아서 그랬다고 해요. 죽은 사람은 집 안에 있고 다음날 염을 해서 길에서 관에 넣으려고 한 거죠. 저는 분노로 치를 떨었어요. 세상엔 여전히 너무 많은 것들이 부족하고, 삶 자체가 슬픔으로 가득 차 있다는 거죠. 그것을 발견하고, 느끼고, 감정이입해서 나의 슬픔, 나의 상처로 할 수만 있다면 글감은 떨어지지 않아요. 세상에는 마음 아픈 일이 널려있어요.
결핍으로 글을 쓰라고 해서 내 자신이 불행해지라는 것은 아니에요. 삶에 대해 뜨겁게, 마음 아프게 볼 수 있는 순정을 가진다면 결코 글감은 부족해지지 않죠. 부족해지기는커녕 절박함에 시달리게 될 거예요. 글을 쓰는 사람은 타인의 불행에 대해 무감하지 않다는 기본적인 심성을 가지고 있어야 해요. 신문 한 줄에도 장편 소설이 얼마든지 나올 수 있어요. 예민하게 본다면 말이에요. 공감능력이 있어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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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름 박범신 저 | 한겨레출판
장편소설『주름』은 어느 일상적인 50대 중반 남자의 파멸과 생성에 관한 기록이다. 소설의 줄거리는 한 남자와 여자의 만남으로 시작된다. 어느 날 문득, 시인이자 화가인 천예린을 사랑하게 된 주조회사 자금담당 이사인 김진영은 그녀를 보는 순간 걷잡을 수 없이 빠져들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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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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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7.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