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후회 없이 살고 있나요?
죽음을 통해 삶을 보여주는 다큐멘터리 <목숨>의 이야기가 책으로 출간됐다. 호스피스 병동의 1년을 기록하며 여든 분 정도의 임종을 지켜본 이창재 감독은 『후회 없이 살고 있나요?』에서 화면에 담기지 않았던 순간들을 들려준다. <목숨>이 그러했던 것처럼 『후회 없이 살고 있나요?』에서도 그는 죽음의 언어로 삶의 의미를 전했다.
지난 19일 오후, 아트하우스 모모에서 이루어진 독자들과 이창재 감독의 만남은 특별했다. 『후회 없이 살고 있나요?』에 담긴 메시지는 <목숨>을 타고 전해졌고, 영화가 상영되는 동안 극장 안에는 눈물과 슬픔을 삼키는 소리들이 가득 찼다. 나와 당신과 우리 가족의 모습일지 모르는 평범한 생의 마지막을 바라보며, 사람들은 저마다의 죽음을 그리고 있었다.
화면 속의 그녀처럼, 이제 고생은 모두 끝났고 행복해질 일만 남았다고 생각하는 순간에 죽음은 불쑥 모습을 드러낼까. 살아있는 것이 더없는 고통으로 느껴질 때 ‘이제 그만 내 숨을 거두어 가 달라고’ 그녀처럼 신 앞에 간청하게 될까. 18년을 함께한 아내를 두고 떠나야 하는 그와 같이, 사랑하는 가족을 남겨두고 떠나게 될 수도 있으리라. 그런 순간이 온다면, 그가 그러했듯, 삶의 끝자락을 움켜쥐려 안간힘을 쓸 수도 있을 터다.
알 수 없는 미래를 향해 대답 없는 질문을 던지는 동안 <목숨>은 막을 내렸다. 그리고 우리를 생의 저편으로 인도했던 한 사람, 이창재 감독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의 곁을 지키고 있는 이는 정목 스님이었다. 추천사를 통해 『후회 없이 살고 있나요?』은 “죽음을 봄으로써 삶을 사랑하게 하는 귀하고 값진 책”이라고 이야기했던 정목 스님은, 이 날 독자들을 대신해 이창재 감독에게 삶과 죽음에 관한 질문을 던졌다.
정목 스님 : 『후회 없이 살고 있나요?』의 제목에는 어떤 의미를 담아놓으셨나요?
이창재 감독 : 삶을 잘 살기 위해서 우리의 마지막 종착지인 죽음을 한 번 직시해 보자는 의미도 있고요. 제가 호스피스에서 봤던 많은 분들이 마지막에서야 ‘그렇게 했어야 했는데’ 하고 아쉬워하시더라고요. 그렇게 삶의 마지막 단계에 왔을 때에야 비로소 깨닫는 부분들을 지금 이 시간에 우리가 깨달을 수 있다면, 훨씬 더 가치를 지향하면서 살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저희보다 앞서 이곳을 떠나신 분들의 바람들 혹은 그 분들이 마지막 순간에 원했던 무언가를 정리해 보자는 생각도 했고요. 그 분들이 우리한테 남겨주시는 이야기는 ‘우리처럼 마지막에 가서 후회하지 말고 현재를 후회 없이 살아봐야 한다’는 것이 아니었을까 싶어요.
정목 스님 : <목숨>을 찍기 전에는 선방에서 공부하시는 비구니 스님들의 모습을 담아서 <길 위에서>를 만드셨잖아요. 이전에는 신과 인간의 사이를 이어주는 무당의 삶을 <사이에서>에 담으셨고요. 대중적이지 않은 주제라고 할 수 있는데, 이런 이야기들을 선택하시는 이유가 있으세요?
이창재 감독 : 마치 저세상은 밤과 같고 현세는 낮과 같이 느껴지곤 하는데요. 그런 온실 같은 우주에 대해서 관심이 있었던 것 같아요. 연극하는 무대와 같은 이곳의 빛이 거두어지면 실제 본질을 볼 수 있는데, 그게 저의 관심사였던 거죠. <목숨>을 만들면서 ‘누가 죽어가는 모습을 보러 오겠냐’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어요. 그런데 저는 ‘과연 마지막이 정말 마지막인지’ 묻고 싶기도 했거든요. ‘누구나 예외 없이 마지막을 맞이하는데 그렇다면 삶을 사는 이유는 뭘까’ ‘마지막의 뒤에는 어떤 피안이 있을까’ 이런 질문들을 해야 중심을 가지고 살 수 있지 않을까 싶었어요. 그렇지 않으면 그때그때의 파도를 따라서 흔들리면서 살지 않을까요.
정목 스님 : 불가에서는 삶을 있는 그대로 보기 위해서 해골을 앞에 놓고 무덤 위에서 관찰 수행을 하기도 하죠. 그건 삶이라는 게 허망하고 아무 볼일이 없다는 의미가 아니에요. 우리가 행복하다고 알고 있는 것은 사실은 헛것이라는 이야기죠. 지금 만져지고 보여지는 것이 진실이라고 알고 있지만, 우리가 진실이라고 여기는 것은 너무나 위태롭잖아요. 확정되어지지 않은 것을 붙들고 진실인 걸로 알면서 한 생애를 살다 보니까, 그것 때문에 고통을 겪게 되는 거예요. 진실을 보지 못하니까 삶이 왜곡되고, 관계가 잘못되고, 삶을 바로 보지 못하고 그 바깥의 다른 세상을 추구하게 되는 거고요.
누구에게나 죽음은 갑자기 찾아온다
정목 스님 : <목숨>을 촬영하는 동안 여든 분 정도의 임종을 지켜보셨는데요. 삶과 죽음에 대해 어떤 생각이 드셨는지 궁금해요.
이창재 감독 : 생각하는 것보다 우리한테 남아있는 시간이 많지 않을 수도 있다는 걸 깨닫게 됐어요. 호스피스에 오신 분들 중에 20대 청년도 있었고 여든에 가까운 어르신도 계셨는데요. 다들 이야기하는 게, 죽음이 갑작스럽다는 거예요. 모두에게 죽음은 갑작스럽게 오더라고요. 그러니까 현재 시간의 밀도를 훨씬 더 높여야 될 것 같아요. 호스피스 병동에서는 가족들이 새롭게 탄생하기도 하는데요. 죽음을 수용하신 분들조차 자신 옆에 가족이 있었다는 걸 발견하는 순간 무너져요. 죽음이라는 건 개인의 문제인데 이별이란 건 관계의 문제잖아요. 만약 우리가 내일이라도 떠날 수 있는 거라면, 지금 훨씬 더 사랑해야 될 것 같아요.
정목 스님 : 『후회 없이 살고 있나요?』 안에서 “우리는 살아온 대로 죽어간다. 기적 같은 마무리는 머릿속에서나 존재할 뿐이다. 자기가 살아온 모습 그대로 죽어간다”고 이야기하셨어요.
이창재 감독 : 우리가 드라마나 영화에서 보는 임종과 실제 겪으실 임종은 다르리라고 봐요. 내가 호스피스에서 본 임종도 달랐거든요. 단 한 분도 유언을 하신 적이 없었어요. 임종 직전이 되면 순환기 쪽에 마비가 오면서 머리에 충분한 산소 공급이 안 되기 때문에 말을 할 수가 없거든요. 그러니까 현재 우리가 묶여있는 여러 욕망들과 인연의 타래들을 풀지 못하면, 마지막까지 풀지 못한 문제로 남는 거죠. 기적처럼 갑자기 선해지거나 지혜로워지거나 사랑을 베풀게 되는 일은 거의 없다는 거예요. 그래서 지금 이 순간에 내려놓고, 손을 잡고, 사랑 고백을 하는 시간들을 가져야 한다는 걸 말씀드리고 싶어요.
정목 스님 : 책에서도 말씀하셨지만, 미국이나 유럽에는 호스피스 병동이 많은 데 비해서 우리나라는 숫자도 적고 사람들의 인식도 부족한 것 같습니다. 호스피스에서 직접 임종을 목격하신 입장에서 독자들에게 어떤 이야기를 해주고 싶으세요?
이창재 감독 : 모든 사람이 호스피스에 가야 한다고 말하고 싶지는 않아요. 다만 깨어있는 채로 죽음을 맞이할 것인지 아니면 진통제나 수면제에 취해있는 채로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죽음을 맞이할 것인지 선택할 수 있다면, 그건 가치의 문제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저는 살아있는 동안에 내세에 대한 확신을 가지는 게 필요하다고 생각하는데요. 그래야 보낼 수 있고 떠날 수 있어요. 정목 스님께서도 책에서 “내일은 준비할 수 없지만 내세는 준비할 수 있다”고 하셨는데, 내세를 준비한다는 건 마음가짐일 거예요. 흐트러진 마음으로 갑작스러운 충격처럼 마지막을 맞을 수도 있지만, 하루하루 완결된 마음을 가진다면 내세가 조금 더 멋지게 준비된다고 생각해요. 훨씬 덜 후회스럽기도 할 거고요.
이창재 감독은 정목 스님과의 대담을 마치며 ‘육신이라는 차를 운전 중인 영혼이라는 운전자’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고속도로를 주행하다 계기판에 연로게이지 경고가 뜨거나 고장신호가 점멸하기 시작하면 속도를 줄여 천천히 갓길에 정차를 하는 게 옳습니다. 그러지 않고 액셀을 더 밟는다면 차는 물론 운전자도 위험해지는 건 당연합니다. 한데 우리는 시속 100km로 액셀을 밟다가 마치 급정지하듯 죽음을 맞이합니다. 만약 차가 육체고 운전자가 영혼이나 마음이라면 어떨까요? 우리는 차도 운전자도 동승자도 다 함께 위험해지는 선택을 하고 있는 건 아닐까요? 우리는 때가 되면 액셀에서 밟을 떼듯 삶의 속도도 줄이며 죽음을 준비하고 받아들여야 합니다.
(『후회 없이 살고 있나요』 중에서)
『후회 없이 살고 있나요?』에 실린 글 속에서 정목 스님은 이야기했다. “언제든지 죽음이 닥쳐올 수 있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순간 우리는 겸손해질 수 있습니다. 죽음은 우리 인생에서 가장 큰 스승이자 가장 큰 공부입니다” 죽음에서 배우는 삶의 목적과 방향, 그것이야말로 『후회 없이 살고 있나요?』가 독자들에게 던지는 화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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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회 없이 살고 있나요? 이창재 저 | 수오서재
죽음을 코앞에 두고서야 비로소 자신에게 있어 가장 소중한 것들을 돌아보게 되었다는 말기 암환자의 말처럼, 사랑하는 이들과 함께하는 것이 얼마나 행복하고 소중한 것인지를 깨닫게 만드는 이야기. 통증 조절과 죽음의 단계, 호스피스 정보에서부터 이별을 준비하는 자세, 생의 마지막 순간을 아낌없이 내어준 이들이 전하는 삶의 비밀, 전 세계에서 항암제를 가장 많이 쓰는 나라이자 호스피스 이용률 최하위에 달하는 우리나라 실태 분석에 이르기까지. 삶의 질과 삶의 의미를 사색하게 만드는 기적 같은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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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나리
그저 우리 사는 이야기면 족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