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ll me maybe」로 하룻밤 새 팝스타가 된 칼리 래 젭슨의 새 앨범은 성공을 만끽하는 여유와 한 층 더 성장한 감각 모두를 기분 좋게 아우른다. 애써 증명하기보다 앨범 커버의 정의처럼 '그가 처한 상황과 분위기, 타인과의 관계'로부터의 감정을 솔직하고 자연스럽게 풀어내고 있다. 빅 히트의 부담에 연연하지 않겠다는 자세다.
< Kiss >로 선보인 바 있는 1980년대 신스 팝 DNA가 앨범의 중추다. 이를 더욱 구체적으로 배양한 이를 배양한 열두 트랙은 일렉트로 팝, 뉴웨이브, 알앤비 등 형형색색 모습에 깊이 있는 멜로디라인과 튼튼한 훅을 보유하고 있다. 「Run away with me」부터 「Emotion」, 「I really like you」를 지나 「Gimmie love」로 이어지는 앨범 초반부의 흐름은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다. 상업적 성공과 더불어 송라이팅에서 장족의 발전을 이뤘다. 특히 진한 색소폰 연주로부터 출발하는 댄스 팝 「Run away with me」는 성공적인 1번 트랙이자 깊은 만족감을 선사한다.
일관성 있으면서도 몰개성하지 않아 듣고 즐길 곡이 많다. 흡인력 있는 신스 팝 「Gimmie love」와 발랄한 「Boy problems」는 통통 튀는 칼리 래 젭슨 보컬 스타일이 빛을 발하고, 폴라 압둘, 자넷 잭슨 또는 마돈나 시대의 발라드 유산 「All that」이나 밀레니엄 시대 아이돌 팝을 연상케 하는 「Making the most of the night」은 그 시절의 향수를 자극한다. 톰 행크스의 열연으로 화제가 된 메인 싱글 「I really like you」는 비록 「Call me maybe」만큼은 아니더라도 재치있는 가사와 후렴으로 오래 사랑받을 곡이다.
구성과 아이디어만 따지자면 최근 메인스트림 솔로 아티스트들의 유행인 1980년대 활용의 틀에포함되어있기도 하지만, 그의 세계에는 메인스트림보다 얼터너티브 록 또는 인디 팝적인 성향이 목격된다. 뱀파이어 위켄드의 프로듀서 로스탐 배트맹글리가 선사한 몽환의 세계 「Warm blood」나 기타 리프의 반복에 뿌연 사운드를 얹은 「Let's get lost」 등에서 주류 팝과는 다른 독특함을 맛볼 수 있다. 이는 그녀가 명성을 얻기 전부터 직접 곡을 쓰며 스타일을 확립했던 싱어송라이터라는 사실을 입증하는 결과다.
보통의 원 히트 원더 가수들은 엄청난 성공의 중압감을 이기지 못해 부진하거나 아류만을 반복하는 경우가 많다. 칼리 레이 젭슨은 예외다. 상큼한 에너지가 듬뿍 담긴 목소리와 좋은 곡을 쓸 수 있는 재능, 여기에 성공을 받침 삼아 더 성숙한 단계를 이루려는 목표 의식이 있다. < Emotion >은 준비된 자에게 찾아온 행운이 무한한 가능성으로 기분 좋게 뻗어 나가는 장면이다.
2015/09 김도헌(zener1218@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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