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옥토 X 이훤] 보고 있는 것을 믿기 어려워하면서
친구이자 동료인 이옥토 작가와 이훤 작가가 사진과 우정, 겉과 겹, 그들이 지나온 응시에 대해 이야기 나눴습니다.
글: 이훤 사진: 이훤, 이옥토
2025.0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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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훤


어떤 사진은 보자마자 누가 찍었는지 알아차리고 만다. 지문처럼, 그 작가의 영혼이 거기 조금 묻어나오기 때문이다. 유수의 작가들이 쓴 책의 표지에서, 전시장의 벽에서, 독자들이 펼치는 책장과 책장 사이 책갈피에서 이옥토의 이미지는 발견된다. 그는 사진 뿐 아니라 글과 영상, 종이를 벗어난 여러 물성으로 집념 있게 자기 언어를 확장해 왔다.


이옥토는 대상의 가장 취약한 상태를 포착한다. 환상처럼. 어쩌면 존재했고 어쩌면 존재하지 않았을 순간처럼 가만히 보게 된다. 핏기를 뺀 듯하지만, 선연하게 생동하는 그 장면들은 처음 보는 순간 같고 그 앞에서 이따금 낯선 마음이 찾아온다. 지금 내가 무얼 보고 있지? 무얼 느끼고 싶지? 이미지 앞에서 길 잃으며 우리는 새 눈을 갖게 된다. 어떤 사진은 독자로 하여금 다시 결정하게 한다. 질문하고 의구하는 동안 우릴 먼 곳까지 데리고 간다. 좋은 문학이 하는 일과도 닮았다. 사진이 구체적으로 성취하는 파동이기도 하다. 

 

이옥토의 카메라 앞에 선 피사체들은 끈질기게 현존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어디부터 경계이고 바깥인지. 어디까지 세계이고 비세계인지. 그 사이를 오가는 동안 독자들은 피사체가 되었다가 베일이 되었다가 유령이었다가 한다. 어느 자리에서든 유령이나 베일이 되어 봤던 자들은 덕분에 안도한다. 존재 방식의 외연은 그런 식으로 짙어지고 선명해지기도 한다. 


이옥토의 작업을 애호한지도 여러 해가 지났다. 나는 그가 다음에 무엇을 만들지 관심이 많고, 우리는 평소 나눠온 대화처럼 경어 대신 평어로 이야기 나누기로 했다.   

 

 

안으로 깊숙하고 넓은 도자기

 

이훤 (이하 훤): 동료이자 친구로서 이 인터뷰를 의뢰받아 기뻐. 늦었지만 한강 작가님의 『채식주의자』와 박완서 작가님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리커버 에디션 작업도 축하해. 요즘 어떻게 지내? 

 

이옥토 (이하 옥토): 엄청 많은 메일을 주고받고 책에 진심인 분들과 일하고 있어. 출판계 동료들과 일하다 보면 묻게 돼. 어떻게 이런 사랑을 가지고 일을 할 수 있지? 내가 사진을 그들처럼 사랑하나? 자문하면, 삶을 영위하는 수단 정도거든. 열과 성을 다해 책을 사랑하시더라고. 진짜 사랑은 눈에 보이는 거구나, 생각하며 지내.

 

훤: 모이면 모일수록 그 사랑이 더 짙어지고.(웃음) 근데 그게 보인다는 사실이 좋아. 사랑을 모아 써두면 책이 되고 찍어 두면 사진이 된다는 것이. 옥토는 인물사진을 어떻게 시작하게 됐어? 

 

옥토: 사진을 시작한 몇 가지 이유가 있는데, 지금의 룸메이트인 정아가 그중 하나야. 중학교 때 처음 만났거든. 내 눈에 친구가 너무 아름다운데 스스로 그리 생각하지 않는 거야. 아무리 말해줘도 받아들이지 못하다가 DSLR을 사서 최대한 내 시선에 가깝게 사진으로 담았어. 그때 좋아해 주는 모습이 큰 계기가 됐어. 그러니까, 자기 눈이 아닌 다른 이의 시선에 담아 전할 수 있다는 게 좋았어. 타인을 경유하면 좀 덜 매몰차게 볼 수 있게 되잖아. 

 

훤: 맞아. 몰랐던 표정을 알게 되기도 하고. 


 
옥토: 인물사진을 계속해 나가는 데 두고두고 힘이 됐어.

 

훤: 옥토처럼 찍을 수 있는 사람은 옥토밖에 없으니까. 왜, 그런 작업 있잖아. 보자마자 아, 그 사람이 만들었네, 하고 알아차리게 되는. 나는 둔하고 느려서, 하나씩 걸쳐보면서 어디 천착하고 싶은지 알게 됐거든. 옥토는 처음부터 지금까지 자기가 누군지 아는 사람 같았어. 

 

옥토: 돌이켜 보면, 절대적으로 혼자였던 시간이 길었어. 미술 공부를 하기 오래전부터, 아예 혼자였어. 심지어 가족들도 들어오지 않는 그런 방에서 시간을 많이 보내느라 자기 응시가 길었던 것 같아. 자책도 했지. 나는 왜 이럴까. 돌이켜 보면 나는 안으로 넓어진 거야. 입구가 작은데 안으로 깊숙하고 넓은, 기형적인 도자기 모양이더라고. 그런 건 잘 울리잖아. 입구를 통 쳐도 안에서 둥 하고 울리고. 내부에서 나는 소리가 크게 들렸던 것 같아. 

 

훤: 그랬구나. 

 

옥토: 그 당시에는 이 모든 시간이 너무 너무 고문이라고 생각했어. 그런데 이상하게 그 고통이 또 인간을 만들더라고. 슬픔과 괴로움, 고독 이런 것들도 사람을 만들어. 그걸 인정하기가 어려웠던 것 같아. 

 

훤: 아름다운 이야기야. 한편 그런 생각도 들어. 혼자 긴 시간을 보냈다해서 전부 자신을 정확하게 이해하지는 않잖아. 그 시선이 굴절되기도 하고.

 

옥토: 나도 어딘가 굴절됐을 걸, 상한 부분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을 거야. 유리 같은 물질도 투과율이 100프로가 아닌데, 뭐.

 

혼자 있을 때 ‘죽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만 그걸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잖아? 그래서 질문을 수정했어. ‘다른 거 뭐 하고 싶어?’ 오랫동안 죽음과 쉼을 구분하지 못했어. 죽어야 쉴 수 있는 줄 알았어. 

 

훤: ‘죽고 싶다’를 ‘뭘 만들 수 있을까‘로 대체한 계기가 있었어?

 

옥토: 룸메이트 정아와 함께 생활하면서 살고 싶어졌어. 가장 크게 사랑하는 사람. 아무것도 없이 서울로 올라온 친구야. ‘나 없으면 얘 어떡하지.‘ 그런 생각을 어느 날 했어. 내가 아니면 안 되는 대상이 생겨버린 거야. 책임이 나를 삶에 묶어주는 리본 같아졌어. 


그 친구를 만난 이후에도 꽤 오랜 시간이 걸렸어. ‘살아서 할 수 있는 게 뭔데?’ 계속 물었고 그 친구를 만난 후에도 질문에 답을 찾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어.

 

 

표피에 대하여

 

훤: 옥토의 사진들 있잖아. 취약해 보이는데 선명하고 살아 있어. 가장 얇은 표피를 핀셋으로 떠 옮겨놓은 듯하달까. 한강 작가의 『채식주의자』 리커버로 쓰인 사진도 떠올라. 지금 옥토의 표피는 어떤 것들로 이루어져 있어?

 

옥토: 맞아. 예전에는 얇고 말랑말랑거리는, 반투과되는 대상에 집중했던 것 같아. 요즘은 굳은살 같은 것들, 손톱이나 털처럼 약해서 단단해진 것들에 집중하고 있어.

 

두껍고 딱딱해졌지만 여전히 투과되는 것들도 들여다봐. 예전보다 햇빛에 너그러워진 것 같아. 햇빛 알러지 때문에 볕이 강할 때 극도의 우울감을 느꼈거든. 노란빛, 주황빛도 싫었어. 긴 주파수의 사진을 싫어했고. 그러다 정멜멜 작가의 사진을 보고 웜톤 사진도 좋아하게 됐어. 주황이 이렇게 예뻤나. 생각하게 됐지.

 

훤: 정멜멜 사진 너무 좋지.

 

옥토: 웜톤 세계관 최강자.(웃음)

 

훤: (웃음) 잘하는 작업자 볼 때 질투 나지는 않아? 

 

옥토: 따라하려 해도 가진 악기가 전혀 다른 소리를 내니까. 동료 창작자들이 나와 무척 다른 눈으로 세상을 조망하는 걸 보면, 각자 자기 빛으로 조명하는 세계가 있다는 사실에 안심해. 너무 다르기 때문에 좋고. 나는 내 걸 계속해 나가야겠다는 안도감이 들어.

 

 

 



일단 과일을 먹고 생각하기로

 

훤: 옥토의 사진으로 제작한 책갈피를 열렬히 아껴주시잖아. 이미지가 여러 물성으로 독자들 사이에 머문다는 게 기뻐.

 

옥토: 모든 평면 작업자들의 갈망일 거야, 물성화한다는 건. 작업이 실체를 갖추고 그것이 쓸모를 갖는 것도. 사람들이 쓰는 물건 어딘가에 내 사진이 꽂혀 있을 수 있다는 게 좋아. 작업할 때, 예술적 자아 상업적 자아가 충돌하지 않아. 살아남기에 용이한 작업자지.(웃음) 


책갈피는 유어마인드 대표 이로 님의 제안으로 처음 만들었어. 나라면 어떤 책갈피를 갖고 싶을까? 고민했다가 레진으로 떠 둔 꽃 사진으로 책갈피를 만들어 팔았어. 그다음에, 일단 과일을 먹고 생각하기로 했어. 사과를 얇게 썰었다가 그것도 만들기로 했는데, 향이 필요할 것 같았어. 향이 기억을 불러일으키잖아. 그래서 조향 작업을 시도한 게 나름 재앙의 시작이었지. 하지 말았어야 하는데. 너무 힘들어. 

 

훤: 직접 조향도 해?

 

옥토: 일반적인 데서 맡을 수 있으면 안 되잖아. 이 책갈피에서만 경험 가능한 무엇이길 바랐어. 그러다 방산시장에 가서 향 원액 오일을 사. 오일의 용매제가 될 수 있는 재료도 팔거든. 향료들을 사서 저울에 놓고 이리저리 시도하는 거야. 섞어보고 뉘앙스를 판단하며 수정하고. 전문가가 아니어서 그냥 내 감각대로, 편하게 작업해. 자신없기 때문에 더 편하게 하는 것 같아. 

 

훤: 너 진짜 대단하다.

 

옥토: 너무 감사하지, 예뻐해 주셔서. 예뻐해 주시지만 언제까지 할 수 있을지 몰라. 이것도 한 시절이겠지.  


ⓒ이옥토



기계는 뜨겁고 나는 차갑고 

 

훤: 네가 코로나 시절에 작업한 사진 시리즈 <What we came through>가 강렬해. 방 안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지. 그때 겪은 몸 마음의 통증을 사진으로 구현했잖아. 

 

옥토: 맞아. 밖에 나가는 것 자체가 고문이었어. 어렸을 때 앓았던 천식 때문에 마스크를 쓰면 말 그대로 호흡이 어려웠어. 건강이 점차 안 좋아졌고 인생 최저 몸무게로 내려갔지. 살아 있는 하루하루가 버거웠어.

 

훤: 뭔가 찍으려면 밖으로 나가야 하고… 건강 때문에 만남도 꺼려졌지. 거실에서 스스로를 찍을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잖아. 어떤 사진은 얼굴 전체에 물을 묻힌 키친타올을 밀착시켜 촬영하기도 했고. 찍는 과정까지가 사진의 일부였던 셈이야.

 

옥토: 나뿐만 아니라 다수가 겪고 있는 고통이란 걸 알게 되니까, 확신이 들었어. 인간은 잊게 되니까. 언제 봐도 이 순간을 기억할 수 있도록 우리가 겪은 일들을 남겨야겠다. 살과 육체로 통과한 시절을 기록하고 싶었어

훤: 셀프 포트레이트는 어떤 식으로 작업하는지 궁금해. “팔을 꺾어 등을 매만져 요철을 확인하는 자세가 자꾸 떠오릅니다. 나는 타이머를 누르고 렌즈 앞으로 서둘러 달립니다”고 썼잖아. 통증을 직시하는 속력이라고도 생각했어. 찍는 사람인 동시에 찍히는 사람도 되는 거, 너무 수고스럽지는 않아? 빛도 직접 조정하고, 연출하고, 구도 잡고, 무엇보다 카메라 앞에 선다는 게

옥토: 그 수고스러움을 자처하는 건 극내향인이어서 그래. 남을 쓰면 편하지만, 그럼 만날 때만 찍을 수 있잖아. 혼자 나오는 사진을 찍을 땐 정교한 감각이 요구돼서 작업 시간이 늘어나. 가끔 셀프포트레이트 찍을 때 옷을 벗은 채로 혼자 배회하는데, 이상한 느낌이 들어. 어딘가 말초적인 느낌. 기계는 뜨겁고 나는 차갑고. 어느 정도는 뻔뻔함이 필요한 것 같아. 타인을 피사체로 쓴다면 내가 원하는 바로 그 감정을 부탁할 만큼 뻔뻔해져야 하는데, 감정적으로 너무 밀접한 작업이라 그러지 못했어. 

 
 ⓒ이옥토 


막과 겹을 연구하는 사람

 

훤: <Unlife> 전시 서문을 읽고 옥토는 여전히 경계에 있는 대상을 주목하고 있다고 생각했어. 특히 이 부분.


“…덮어쓴 것을 통해서만 유령과 풍경이 구분선을 갖게 되는 것은, 어떤 경우 베일이 내용물보다 실존에 밀접할지도 모른다는 가능성을 제시합니다.”


표피와 베일은 닮았지만, 베일은 분리될 수 있다는 점에서 다르지. 우릴 반투명하게 가렸다가 언제든 벗을 수 있는 얇은 막. 옥토에게 이 베일은 어떤 식으로 실감돼? 

 

옥토: 최근에 몸이 급격하게 안 좋아지면서, 아프면 실감하곤 해. 내가 이 몸에 갇혀 있다는걸. 원치 않게 계속 알게 되고. 잠들어 있을 때 살아 있는 것 같고 깨어 있을 때 죽어가는 느낌이야. 전시도 하고 친구들도 만나고 풍요로운데, 몸은 계속 좋지 않은 상태를 3-4주 동안 지났어. 고통이 커서 내가 여기 있다는 게 느껴져. 나를 빠져나갈 수 있는 문이 다 굳세게 잠겨 있다는 느낌. 

 

훤: 몸이 베일처럼 실감되는구나.

 

옥토: 맞아. 한편 내가 나를 잘 가꾸는 게 주변 사람들의 삶을 잘 가꾸는 것이기도 해. 그래서 간병인 보험을 드는 거잖아.  

 

훤: 그치. 둘을 뗄 수 없지. 한편 너는 여러 막을 드나드는 사람이기도 해. 시각 작업자이면서 텍스트도 다루잖아. 네 안에서 이미지 언어와 활자 언어가 어떻게 공존하고 있어?

 

옥토: 글을 쓰는 사람으로서의 정체성은 스스로 흐릿한 편이라고 생각해. 책을 펴낼 때 텍스트가 수반되기도 하고. 나를 정리하는 데 있어서 텍스트가 빠질 수 없어서 써. 나는 쓰는 것보다 읽는 게 더 즐거워.

 

훤: 그리 느낄 줄 몰랐어. 고민하면서 단어를 고르고 다룬다고 느꼈어. 정교하다는 점이 너의 사진과 닮았지. 옥토가 가진 언어를 아우르는 특징은 ‘반투명’같아. 여러 층을 쌓음으로 투명해지기도 하고 흐릿해지기도 하잖아. 

 

옥토: 반투과성 막을 얘기하곤 해. 어떤 문자는 들여보내고 어떤 것은 들여보내지 않고 하는 선택을 하면서. 첫 책 『사랑하는 겉들』을 냈을 땐 정말 무지하고 무구한 부분이 있었어. 그럼에도 그때 ‘겉’이라는 단어를 쓰기로 한 건 ‘내가 무언가 안에 손을 집어넣을 수가 없겠구나. 앞으로도 겁과 곁에 천착하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야. 막에 쌓인 무언가를 계속 마주하겠다고 예감했지. 벽에서 손을 떼지 않고 걷는 사람처럼 제목을 지었어.


훤: 그러니까 너는 쭉 막과 겹을 살피는 작업자였구나.

  ⓒ이옥토



보고 있는 것을 믿기 어려워하면서

 

훤: 옥토는 사진과 글은 서로 유격이 거의 없는 것 같아. 사슴의 곤두선 털이랄지, 만져질 것 같은 동물의 눈꺼풀이랄지. 가장 연약하고, 거의 휘발될 듯한 상태를 포착하잖아. 그것을 향해 네가 “기척들, 미세한 열감, 아른거리는 기운”이라고 쓴 게 좋았어. 

 

옥토: 이미지가 선행하지만, 텍스트가 이미지의 세계에 비해 더 넓지 않을까. 외래어도 외국어도 있으니까. 주의를 기울이면 의도한 느낌에 가 닿는 것 같아. 사전을 켜고 유의어를 많이 봐. 구성하는 한자를 들여다보기도 해. 떠오르는 한 단어가 영단어일 때도 있고 일본어일 때도 있어. 타국어를 여럿 통과하면서 느끼는 지점만큼이나 그것을 담는 언어가 달라져. 

 

훤: 찍을 땐 어떤 상태야? 보면서 텍스트가 떠오르기도 해? 

 

옥토: 벅차하면서, 보고 있는 것을 믿기 어려워하면서 찍어. 풍경사진 찍을 땐 안 그런데, 동식물 앞에서는 어떤 신성함을 느껴. 본능이랑 가까운, 인식의 최저점에 있는 것들과 맞닿는 느낌이었어. 뉴질랜드에서 찍은 사진이 특히 그랬어. 정반대에 위치해서 그런지 서식하는 동식물의 모습이 전부 달라. 천지창조 때, 여러 종이 태어난 광경 같아. 아우라 같은 걸 느꼈어.

 

훤: 후보정 작업은 어때? 

 

옥토: 촬영하는 동안 느낀 걸 최대한 떠올리며 작업해. 어느 색과 질감으로 봤는지 기억이 나거든. 공기 입자가 늘 선명하지 않잖아. 습기가 많으면 불규칙해지고 그레인이 끼기도 하는데, 카메라 성능이 좋으면 그런 부산물들이 사라져서 기기를 다운그레이드하기도 했어. 

 

훤: 나는 첫 시선이 내가 원하는 것이 아닐 때도 많아. 현장에서 담고 싶은 걸 담지만, 찍은 뒤에 후보정하며 계속 구도를 새로 고민해. 마치 다시 찍는 사람처럼.

 

옥토: 보는 눈 자체가 넓구나 훤은. 등대 같은 느낌. 나는 이미 크롭된 채로 봐. 신서유기에서 출연자들이 뒤집어쓰는, 시야가 좁아지는 콘 같은 거 있잖아. 그 상태로 보는 게 재밌어.(웃음) 훤은 카메라 안으로 확보해 오는 시야 자체가 큰 거지.

 

훤: 반대로 콘을 끼고 보는 사람은 확신이 있는 거고. 어떤 날의 나는, 포획하는 자기 자신도, 찍히는 대상도 계속 못 믿는 채로 돌아와. 그게 가끔 너무 지난해.

 

옥토: 근데 넓은 시야를 갖고자 하는 건, 오히려 시간성에 집중한다는 느낌이야. 그 프레임 안에 존재하는 모든 장면을 보고 싶어 하는 거잖아. 훤은 시간을 진짜 소중히 여기는 사람이구나. 예전에 훤의 작업을 보면서 그런 말 한 적 있잖아. 우리 시선의 높낮이에서 오는 차이가 재밌다고. 

 

훤: 맞아. “큰 새가 저공비행하는 것 같은 이미지들”이라고 네가 말해줬어. 

 

옥토: 훤의 눈높이가 여전히 훤의 사진을 만드는 중요한 부분 같아. 꼭 키 때문만은 아니고. 훤이 한국으로 돌아오기 전에는 떠 있는 사람처럼, 부유하는 사람 같은 이미지를 많이 찍었잖아. ‘발붙일 곳 없지만 이 모든 걸 보고 있어. 보는 것들이 곧 나의 팻말이고 행선지야.’하고 말하는 듯했지. 

 

훤: 정확해. 돌이켜 보면 이미지가 나의 공중이고 나의 땅이었어. 그게 ≪공중뿌리≫같은 시리즈로 남았고.

 

옥토: 여러 나라를 오가다 보면 불가피하게 생기는 클리셰도 있을 텐데, 훤은 필사적으로 자신한테도 안 느끼해지려고 애쓰는 것 같았어.

 

훤: 사진 안에서까지 들키고 싶지 않아서 자기 검열과 자기 응시 사이를 오갔어. 거기까지가 부유의 과정이었던 것 같아.

 

옥토: 작가들이 작품에서 자신을 소거할 수 없기 때문에, 나는 보는 행위를 너무 사랑해. 보기로 하는 충동이 죽고 싶은 마음을 능가할 때, 그럴 때 좀 행복하지. 그런 애정으로 다른 사람들 작업들도 보지. 에반게리온의 신지처럼. “도망치면 안 돼”, “직시해”, “똑바로 쳐다 봐.”(웃음) 그런 눈으로 자신이든 타인이든 끝까지 바라보게 돼.

 

 ⓒ이훤

 

 

새로운 낯 하나 

 

훤: 요즘 가장 즐거운 일은 뭐야? 

 

옥토: 새로운 색의 블러셔 사는 일. 원래 피부가 예민해서 서른 초반까지 화장을 할 수가 없었는데, 건강해지면서 바를 수 있게 됐어. 

 

볼에 바른 걸 눈두덩이에 바르기도 하고 이리저리 써. 볼을 붉히는 게 결국 얼굴 색을 인공적으로 바꾸는 거잖아. 그 요상한 행위가 너무 마음에 들어. 부끄럽거나 두근거려야 모세혈관으로 피가 모이고 발개지는 건데… 내가 결정할 수 있다니 신나. 화장을 하지 않는 선택도 좋지만, 새로운 낯을 하나 쓸 수 있다는 게 재밌어. 

 

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 있어?

 

옥토: 예전에 우리 만났을 때, 노트북 켜고 훤 사진 보면서 수다 떨고 그랬잖아. 이번엔 반대로 훤이 나의 작업을 면밀히 봐줬는데, 동료와 함께 살피는 건 역시 좋구나. 새삼 그때 내가 훤에게 좋은 걸 주었다고 알게 되서 안도가 되고, 훤이 나에게 이렇게 좋은 것을 줘서 되게 감사한 마음이야. 그때 나한테 고마웠겠다.(웃음)


훤: 긴 편지처럼 작업에 대해 주고받았잖아. 고해상도의 모국어로 사진 이야기 나눠서 덕분에 숨이 트였어. 꼭 필요한 대화들이었어. 신뢰하는 다른 눈이 있다는 건 참 고마운 일이야. 고마워, 그때도 지금도. 오늘 즐거웠어.

옥토: 응, 나도. 또 만나!

 


ⓒ이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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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훤

시인. 사진가. 장면을 만들고 잇는 사람. 두 언어를 오가며 생겨나는 뉘앙스와 작은 죽음에 매료되어 시를 쓰기 시작했다. 시집 『양눈잡이』 『우리 너무 절박해지지 말아요』, 시산문집 『청년이 시를 믿게 하였다』, 산문집 『고상하고 천박하게』 『눈에 덜 띄는』 『아무튼, 당근마켓』 등 여덟 권의 책을 쓰고 찍었다. ≪공중 뿌리≫ ≪We Meet in the Past Tense≫ 등의 전시를 가졌으며, 『정확한 사랑의 실험』 『벨 자』 『끝내주는 인생』 등의 출판물에 사진으로 함께했다. 조지아공대에서 기계공학을 공부하고, 시카고예술대학에서 사진학 석사를 마쳤다. 아침마다 잡초 뽑고 고양이 똥을 치우고 아내의 소설을 번역한다. PoetHwon.com, @__LeeHw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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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옥토

사진과 영상을 주 매체로 활동한다. 시울과 물집, 그리고 대상의 대상됨 이전에 집중하고 있다. 책 『사랑하는 겉들』, 『처음 본 새를 만났을 떄처럼』, 사진집 『이해 없이 사랑했던 순간들과 크고 작은 오만』을 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