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모든 일이 그렇지만 지휘자가 정확히 무엇을 하는지, 우리는 알지 못한다. 없으면 뭔가 문제가 생기니까 앞에 세워 놓았겠거니 짐작할 뿐, 아는 지휘자 이름을 대 보라면 금난새와 정명훈 이후로 막히기 일쑤다. 잘 모르는 세계이자 어렵게 느껴지는 클래식을 대중에게 친절한 클래식으로 만들기 위해 젊은 나이로 열심히 활동 중인 안두현 지휘자를 만났다.
안두현 지휘자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바로 러시아로 유학길에 올랐다. 차이콥스키 음악원 지휘과를 졸업하고 한국으로 돌아와 마제스틱 청소년 오케스트라 상임 지휘, 신한 오케스트라 상임 지휘 등을 거쳐 현재는 양평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상임 지휘를 맡고 있다. 지휘 외에도 클래식 해설가, 칼럼니스트 등으로 활동 중이다.
인터뷰 진행을 함께한 정은현 대표는 현재 클래식 연주자 매니지먼트사 툴뮤직을 설립, 안두현 지휘자 외에도 넓은 인맥으로 클래식계의 대중화에 관심을 가지고 참여하고 있다.
안두현 지휘자(왼쪽)와 정은현 툴뮤직 대표(오른쪽)
지휘를 하기로 결심하다
한국에서 지휘자가 되는 과정은 잘 알려져 있지 않은데요, 처음에 지휘를 하겠다고 결심한 계기가 있었나요?
어렸을 때부터 클래식을 좋아하긴 했는데, 전공으로 할 거란 생각은 하지 못했어요. 고등학교 1학년 때 광화문 교보문고에서 『지휘자와 오케스트라』라는 책을 봤어요. 대중적인 책도 아니고 클래식 애호가들이 볼 만한 책이었어요. 게오르그 솔티(1912년 출생, 시카고 심포니 오케스트라, 런던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지휘)가 베토벤 교향곡 지휘를 하는데 10년 전 지휘랑 10년 후 지휘의 녹음 본을 비교해 보면 녹음 시간이 다른 거예요. 10년 동안 이 사람의 음악적 변화가 어땠는지를 그 녹음 길이로 설명하는데, 그 순간부터 지휘자가 막연히 멋있는 사람이 아니라 지휘자가 음악을 만드는 사람이었구나, 하고 굉장히 인상이 깊게 남았어요. 그 책 보고 지휘자 되어야겠다 결심했어요, 진짜로. 결심한 뒤부터 작곡 레슨을 받았죠.
그럼 고등학교는 인문계로 들어가신 거예요?
네, 인문고등학교 나왔어요. 지휘과를 들어가려고 했는데 사실 우리나라에 지휘과가 거의 없어요. 당시 다니던 교회에서 성가대를 지휘하시는 분이 제가 음악 하겠다고 하니까 한국에서 배우지 말고 그냥 외국으로 바로 가서 배우는 게 나을지도 모르겠다, 하시는 거예요. 워낙 지휘과는 자리도 없고 하니까. 막연하게 러시아 음악을 좋아해서, 유학은 러시아 쪽으로 알아보게 됐죠.
유학생이 되기로 결심한 계기가 있었나요?
그 당시 저도 빨리 외국에 유학 가고 싶다는 열망이 있었어요. 고등학교 때, 수업시간에 날씨가 좋아서 창가를 본다고 고개를 들었는데 모든 학생들이 똑같은 포즈로 똑같이 앉아서 똑같이 공부를 하는 거예요. 선생님이 엄해서 졸지도 못하던 수업이었거든요. 색깔있는 다른 사람이 되고 싶었고, 개성이 존중되는 곳에서 공부하고 싶었어요.
바로 차이콥스키 음악대학으로 들어가신 건가요?
차이콥스키 음악원은 아예 엄두를 못 냈어요. 어렸을 때부터 열망하는 학교였지만 제가 지휘를 한 번도 배운 적이 없었기 때문에 다른 학교에 가서 작곡시험 치고 합창지휘과에 들어갔어요. 솔직히, 크게 많은 걸 배우지는 못해서 이러다 내가 제대로 된 지휘를 못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2년차 됐을 때 등록만 해 놓고 안 나갔어요. 다른 도시에 유명한 교수님들 찾아다니면서 지휘를 배웠어요.
그러던 차에 우연하게 블라디미르 심킨이라고, 러시아 모스크바 필하모닉 부지휘자님을 알게 됐어요. 원래 제자를 둬 본 적이 없는 현직 지휘자였는데, 제가 지휘하는 걸 보시고는 가르쳐주시겠다고 하시면서 모스크바 필하모닉 리허설에 참가해서 볼 수도 있게 해주시고, 그러면서도 레슨비는 한 푼도 안 받으셨어요. 그분한테 많이 배우면서 차이코프스키 음악원 시험을 치게 됐죠.
대개 한국 클래식 전공자들은 어렸을 때부터 예중, 예고 순으로 밟는 정규 코스들이 있습니다. 러시아에서 만난 사람들은 어땠나요?
거기서 제가 만난 한국 학생들은 거의 다 말씀하신 예중 예고 코스를 밟는 사람들이었고, 저 같은 사람들은 간혹 몇 명 있었죠.
차이점이 있을까요?
좀 다른 거 같아요. 어렸을 때부터 하는 친구들은 부모님에 의해 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그중에서도 하고자 하는 의지가 있는 친구들은 굉장히 잘해요. 하지만 부모님에 의해 어쩔 수 없이 흘러가다 보니 음악을 하게 된 친구들도 많아요. 확실한 건 인문계나 음악이 아닌 계통을 하다 온 친구들은 자기가 뭘 원하는지 정확히 알아요.
같이 다닌 동문 중에는 누가 있나요?
피아니스트 임동혁 씨, 바이올리니스트 권혁주 씨랑 다녔어요. 동혁이는 2살 어렸는데 열여섯에 대학에 들어가서 저보다 선배였고, 혁주는 학년이 저보다 높긴 했는데 저랑 같이 수업을 들었어요.
출처 : 마제스틱 청소년 오케스트라
모스크바에서의 생활
모스크바에서 학교를 다니시면서 제일 힘들었던 건 뭔가요?
거긴 모든 게 힘든 곳이에요, 정말 열악해요. 모스크바에서 한 번 유학하면 어느 나라를 가도 편할 거예요. 2000년대 중반부터 모스크바 물가가 천정부지로 올라가면서 런던보다 물가가 높은 적도 있었고, 언어도 힘들었는데, 러시아 시험을 치고 일단 학교에 들어가도 외국인들은 졸업할 때까지 계속 러시아어 시험을 봐야 한다는 조건이 있었어요. 졸업 시험이 『안나 까레리나』를 읽고 그거에 대해서 쓰고 심사위원 앞에서 줄거리를 설명하는 거였는데, 정말 죽는 줄 알았어요(웃음).
좋았던 점은요?
그거 외에 나머지는 다 좋았어요. 항상 음악이랑 같이 살 수 있다는 게 행복했어요. 학교에 홀이 있는데, 러시아에서 가장 유명한 홀이에요. 예술의전당이랑 학교랑 같은 건물이라고 생각하면 돼요. 세계적인 연주자들, 오케스트라가 다 거기서 연주를 하는데 학생들은 공짜로 들어갈 수 있는 혜택이 있었어요. 간혹 사람이 너무 많아서 못 들어가면, 학교 구조를 아니까 연습실로 들어가는 뒷문으로 들어가 화장실 같은 데 숨어 있어요. 한두 시간 있다가 몰래 공연장으로 들어가고 그랬죠. 낮에는 막는 사람 없으니까 들어가서 리허설 하는 것도 보고요.
공연은 보통 얼마나 봤어요?
1,2학년 때는 거의 하루에 하나씩 봤어요. 그때 듣는 것만으로도 굉장한 공부가 되었죠. 교내 말고도 기숙사하고 학교 사이에 미술관도 많고 공연장도 많았어요. 러시아에서는 어느 예술가가 한 명 살았다 하면 그 건물이 박물관이 되고, 하우스콘서트나 살롱콘서트를 할 수 있게 피아노가 비치되어 있어요. 길을 걷다가 들어가서 바로 콘서트를 감상하는 거예요. 예술적인 환경이었죠.
워낙 학교에 세계적인 교수들이 많았어요, 로제스트벤스키(겐나디 로제스트벤스키, 1931년 출생, 스톡홀름 필하모니, BBC 교향악단 등 폭넓은 지휘 경력과 발레, 오페라, 콘서트 등 다양한 장르에서 활약했다.)도 학교에 있었어요. 소련 시절 때 러시아 오케스트라를 과시하려고 유럽에 보낼 때 같이 보내는 지휘자가 로제스트벤스키였어요.
중국에서 판다 들여오듯이 지휘자를 보냈네요(웃음).
그렇죠, 판다네(웃음). 그 시절은 어쩔 수 없었던 거 같아요. 그런 사람들 사이에 있다 보니까 나는 그 정도까지는 못 해도 뒤처지지 않으려고 계속 뭔가 하게끔 만드는 원동력이 있었어요. 지휘를 어떻게 하면 잘할까, 테크닉을 어떻게 하면 더 늘릴까 이런 생각보다는 왜 작곡가가 이렇게 썼을까 하면서 관련 역사랑 문학도 찾아보는 환경이었어요. 교수님들 자체가 학구적이셔서 구사 언어가 다섯 개에 복싱 선수도 하시고 물리학 박사까지 따신 분도 있고, 환경이 그러다 보니까 지휘도 철학적으로 들어가려는 시도를 많이 했어요.
모스크바에는 몇 년 동안 계셨어요?
8년 정도 있었는데 중간에 군대를 가서 3년 휴학을 했어요.
지휘자의 직장
군악대에 지원하셨죠?
지휘로 가려면 장교가 되어야 하거든요. 그렇게 할 순 없으니까 악기를 배운 뒤 시험을 쳐서 군악대로 들어갔죠. 유포니움 같은 경우에는 전공자가 거의 없어서 작곡과랑 지휘과 사람들이 이 악기로 지원을 많이 해요. 지금 생각해 보면 악기뿐만 아니라 다른 것도 시킬 수 있겠구나 싶어서 뽑힌 것 같아요. 군항제, 군대 축제 같은 거 하면 국군방송에 생방송으로 나갈 때가 있어요. 그럼 저는 중계차 들어가서 카메라 무슨 악기 나옵니다, 몇 번 카메라, 지금 저 악기 비춰 주세요, 이런 거 하고 그랬죠.
모스크바에서는 세계에서 유명한 지휘자 다 만나고 다녔는데 군대 와서는 중계하고 있었네요(웃음). 국내에서 음악 하신 적이 없었으니 인맥도 없으셨을 텐데요, 러시아에서 오신 뒤로 어떻게 일을 구하게 됐는지 궁금합니다.
지금은 정은현 대표님도 클래식계의 마당발이다 어쩌다 하고 놀리시는데 처음에는 진짜 인맥이 없었어요. 군대에서부터 걱정을 엄청나게 했죠.
졸업하고 나서 집에 있는데 친한 군대 후임이 청소년 오케스트라 오디션 공고가 났다고 지원해보라고 하더라고요. 어딘지도 모르고 처음부터 시작하는 마음으로 지원서를 넣었어요. 상임지휘자 한 명 뽑는데 지원자가 스무 명이었어요. 최종 면접에 들어갔는데 저 빼고 두 분은 나이도 많으시고 활동도 많이 하셨던 분이었어요. 저는 무조건 이 오케스트라를 최고로 만들겠습니다, 아이디어를 총동원해서 해보겠다고 막 얘기를 했죠. 그게 처음 시작이에요.
요새 취직하기 어려운데 한 번만에 됐네요.
어머니가 기도를 많이 해주셨어요. 너는 잘 될 거라고 해주셨는데 저는 ‘엄마가 음악에 대해 뭘 알아.’ 하며 불안해했죠(웃음). 이 오케스트라를 최고로 올려놓겠다는 각오로 열정을 많이 쏟았어요. 청소년 오케스트라 중에서는 가장 유명한 곳 중의 하나가 되었다고 생각해요. 아마추어 청소년 오케스트라로는 최초로 예술의 전당 콘서트홀에 선 오케스트라가 되었고, 처음 뵙는 지휘자들도 마제스틱 얘기하면 다들 아세요.
그걸 시작으로 다른 오케스트라도 섭외가 들어왔어요. 오케스트라가 매일 연습하는 게 아니기 때문에 지휘를 여러 개 맡을 수도 있거든요. 작년까지만 해도 제일 많이 했을 때는 여섯 개 하다가 집중하고 싶어서 이번에 몇 개를 놓게 됐네요.
출처 : 마제스틱 청소년 오케스트라
한국에 온 지 한 4년 됐죠. 요새 젊은 지휘자가 많긴 하지만 대중들한테 안두현 지휘자 나이 대의 지휘자가 두각을 나타내는 경우는 잘 없습니다.
개인적으로 지휘자가 음악만 잘해서 되는 건 아니라고 생각해요. 단원들과의 심리전도 해야 하고. 연습할 때는 저랑 다른 페르소나를 바꿔 끼고 가야 해요. 청소년 오케스트라 할 때는 제압을 해야 하니까 소리를 지를 때도 있어요. 프로페셔널 같은 경우에는 호칭은 정중하게 서로 선생님으로 하되 이끌어나가는 처지에서 따끔하게 이야기를 해야죠.
단원과의 심리적 싸움도 학교에서 배우나요?
정식으로 배우진 않아요. 선생님이 지휘를 직접 시키고 이런 상황이라면 이러면 안 된다는 식으로 예를 드는 게 있긴 해요.
지휘가 가르쳐주고 싶어도 가르쳐주기가 모호한 직종의 하나에요. 아바도(클라우디오 아바도, 베를린필하모니 오케스트라 음악감독. 다양한 레퍼토리 연주로 유명하다) 가 배웠던 사람이 스와로브스키(한스 스와로브스키, 1899년 출생, 비엔나 오페라 종신감독 역임. 비엔나 음악 아카데미에서 지휘 교수를 맡아 주빈 메타와 클라우디오 아바도, 이반 피셔 등 내노라하는 지휘자를 배출했다)인데, 아바도는 그 교수에게 아무것도 배운 게 없었다고 얘기를 했어요. 사실 저도 학교를 나와서 지휘를 해보니까 제가 해왔던 걸 싹 바꿔야 하는 순간이 와요. 배운 것과 저랑 안 맞는 순간이 있어요.
한국에서 지휘를 한다는 것
클래식은 어렵다, 아는 사람들만 즐긴다는 인식이 있습니다.
대중화에 있어서 공연만으로는 클래식 대중화를 감내하기 쉽지 않은 것 같아요. 지금 하고 있는 클래식 연주자의 개개 공연은 애호가들 사이에서야 좋지만 대중화에 힘을 미치는 공연은 조성진 쇼팽 콩쿨 우승 같은 폭발력 있는 이슈 정도지, 많은 사람을 포괄하려면 공연만으로는 부족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클래식을 아는 사람들만의 울타리를 쳐내고 열려있는 사고가 확산이 될 때 대중화가 이루어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도 지금은 많은 음악가들 사이에서 그런 생각이 확산되고 있는 거 같아요.
대중을 위한, 사람을 위한 음악
‘대중을 위한 공연’을 여러 번 진행하셨습니다. 설명과 함께 듣는 클래식이라든지, 그런 공연은 어떠셨나요?
제가 봤을 때도 그냥 나와서 말만 하는 해설 공연은 지루하더라고요. 제가 해설했던 것 중에는 <하루키, 미야자키 하야오를 만나다>라는 공연이 있었는데, 새로운 감각, 젊은 해설을 해보고 싶어요. 저는 영상이랑 사진을 많이 써요. 클래식과 연관되는 영화의 멋진 장면을 같이 보여준다거나, 그러면 사람들의 호응도 좋아지고 하죠. 하지만 보수적인 분들은 이런 시도나 렉처 콘서트에 대해 탐탁치 않게 여기는 경우들도 있죠.
그만큼 울타리가 좁다는 의미로 생각하면 될 것 같습니다. 그 울타리를 넓히려는 이유는 뭘까요?
제가 좋아하는 음악이 저는 자신 있거든요. 클래식은 접하기 어렵지만 정말 특별한, 기쁘고 슬픈 이 미묘한 감정들을 다 표현해 낼 수 있는 음악이에요. 이게 들리는 순간 정말 황홀한데, 많은 사람이 이런 음악이 있다는 것조차 모른다는 게 너무 아쉬워요. 더 많은 사람이 이런 좋은 음악이 있다는 걸 알았으면 해요.
앞으로 클래식 음악을 대중에게 쉽게 전달할 수 있는 유명한 인물을 꼽고 싶은데, 그게 안두현 지휘자가 될 수 있다고 봅니다. 지휘자로서 클래식 대중화를 위해 어떤 작업을 하고 있는지 묻고 싶습니다.
얼마나 성공적일지 모르겠지만 확실한 건 음악하는 사람 입장에서 보는 게 아니라 사람들 입장에서 봐야 한다고 생각해요. 내가 좋아하는 음악을 추천하는 게 아니라 그 사람들 입장에서 좋아하는 방식으로 알려줘야 한다는 거죠. 지금 유행하고 트렌드가 되는 건 이용해보고 싶어요. 미디어랑 SNS도 한 방법이 될 수 있겠고, 지원이 이루어진다면 미디어파사드처럼 영상을 건물 외벽에 쏴서 음악 표현을 한다든지, 새로운 시도를 해보고 싶죠.
이제까지 클래식의 대중화를 위한 시도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요?
클래식이라고 생각하는 것도 베토벤이 200년 훨씬 전에 쓴 걸 연주하고 있지만 시대가 변하면서 연주도 계속 변해요. 베토벤이 처음 교향곡을 작곡했을 때보다 지금은 오케스트라 편성도 더 많아지고 훨씬 감각적이고 세련됐거든요. 그런 변화가 있는 것처럼 클래식을 받아들이는 방식도 새로운 시도가 있어야 하는데 보수적으로 안 좋게 보시는 분들이 꽤 많죠. 일부는 지휘자가 방송에 나오고 해설콘서트 여는 게 딴따라 같다고 싫어하지만 레너드 번스타인은 클래식 지휘자이면서도 뮤지컬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에 나오는 노래를 작곡했지만 욕하지 않잖아요. 그런 부분에서 금난새 선생님의 시도를 높게 평가해요. 한국 클래식 대중화의 가장 큰 일조를 한 분이죠.
제 생각으로는 다양한 시도를 안 좋게 보는 건 클래식의 가치가 훼손되기보다는 일종의 우월성 같아요. 우리의 음악은 너희 음악과는 달라, 우린 우월하다는 느낌인 거죠. 클래식이 다른 음악이 보여주지 못하는 세계를 보여주는 건 사실이지만, 음악이 다를 뿐이지 우월의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지금 맡고 계신 양평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에 대한 얘기를 좀 해보죠. 언제부터 시작하셨나요?
작년에 정식 프로페셔널 오케스트라로 출범했고, 7월에 취임 연주를 하면서 본격적으로 활동하게 됐어요. 양평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는 양평군을 통해 양평문화원이 직접 운영하고 있어요. 군에서 시립교향악단같이 운영하는 오케스트라로는 거의 최초라고 알고 있고, 국가의 세금으로 운영하는 공립 오케스트라인데다 실력 있는 단원들이 모여서 애정이 많고 더 잘 만들어 보고 싶어요.
협연자들도 굉장하다고 들었습니다.
앞으로 협연할 협연자들이 피아니스트 유영욱 선생님, <호로비츠를 위하여>에 나오신 김정원 선생님, 바이올리니스트 조진주, 권혁주 씨, 그 외에도 이야기가 나오고 있는 협연자분들이 많아요. 3,40대 젊은 나이의 대학 교수님들도 흔쾌히 협연을 허락해주시고 있어요.
양평 필하모닉에서 구상하는 시리즈가 있나요?
지금 하는 시리즈는 하우스 콘서트가 있는데, 보통 하우스 콘서트 하면 피아노 독주나 트리오 정도지만 오케스트라 공연을 하우스 콘서트 규모로 하고 있어요. 170여 명 들어가는 공간에서 큰 공연장 가서만 볼 수 있다고 생각하는 협주곡 공연을 바로 코앞에서 들려드리는 공연이죠. 양평문화원이 보유한 호송홀에서 진행합니다.
팝 피아노 콘서트 시리즈는 지금 구상 중에 있어요. 금년은 양평 필하모닉을 대외적으로 많이 알리는 게 목적이고 내년부터 본격적으로 시리즈를 만들어서 보여드리려고 합니다.
오케스트라 말고 개인적인 올해 계획은 뭔가요?
10월에 대구 MBC교향악단과 같이 공연할 예정입니다. 클래식 입문서라고 할 만한 책도 출판을 준비하고 있고요. 진 빠지는 책 말고, 다른 사람들이 했던 건 하고 싶지 않아요. 출판사도 잡혀서 빠르면 올해 말이나 내년 초에 나올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지휘자님에게 음악이란 뭘까요?
<라디오스타> 식으로 대답하면 음악은 인생이에요. 저를 살아있게 하는 친구 같은 존재이자, 제가 살아가면서 세상을 바라볼 때 세상을 표현할 수 있는 거울 같은 존재. 그러면서도 음악이 사람을 넘어서면 안 된다고 생각해요. 사람이 먼저죠. 만약 저한테 가족이 생긴다면 가족을 항상 먼저로 놓겠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사랑하는 사람이 없는데 음악을 한다면 결국 남는 건 자기 만족과 과시뿐이거든요. 모두가 함께할 수 있는 중심을 가지고 음악을 해야 결국에는 주변 사람들도 그 음악을 사랑해주는 것 같아요.
안두현 지휘자의 그런 인간적인 향기가 사람들에게 매력적으로 다가오기 때문에 이렇게 마당발이 되지 않았나 싶어요. 휴머니스트 음악인이자 매개자로서의 역할을 잘하고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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