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쟁이 꽃할배 빌 브라이슨이 영국 시골로 간 까닭은?
기자로, 여행 작가로, 때론 오지랖 넓은 아저씨로 수많은 이야기와 재미를 선사해준 빌 브라이슨이 『빌 브라이슨 발칙한 영국산책』 두 번째 이야기를 가지고 돌아왔다. 단언컨대 영국 시골처럼 독특하고 아름다운 곳은 없다고 말하는 브라이슨. 왜 그는 하필이면 영국 ‘깡촌 체험’을 결심한 걸까?
글ㆍ사진 채널예스
2016.0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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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설게만 느껴졌던 영국이라는 나라가 꽤 멋진 나라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이 느낌은 한 번도 사라지지 않았다.”

 

영국 시민권을 따기 위한 시험을 치르고 나서 며칠 뒤에 출판사 담당자를 만났다. 다정하고 인정 많은 래리 핀레이(Larry Finlay)와 내 다음 책에 대해 의논하면서 점심 식사를 함께했다. 래리는 내가 메이미 아이젠하워(Mamie Eisenhower, 아이젠하워 대통령의 부인)의 자서전이나 캐나다를 주제로 한, 터무니없고 상업성이 떨어지는 책을 제안할 것이라는 불안감에 사로잡혀 살다 보니 항상 나보다 선수를 치며 제안하곤 한다.

 

“그런데, 선생님이 『빌 브라이슨 발칙한 영국산책』을 발간하신 지 어느덧 20년이나 됐더라고요.”
“정말요?”

 

아무 노력을 기울이지 않아도 세월이 그렇게 차곡차곡 쌓인다는 사실이 정말 놀라웠다.

 

“속편을 쓰실 생각은 없으신가요?”

 

래리는 가벼운 어조로 물었지만 눈동자 속 홍채가 있어야 할 자리에 파운드화 부호가 반짝이고 있었다.
나는 잠시 생각해봤다.

 

“사실, 시기가 적절하긴 하네요. 아시겠지만 엊그제 영국 시민권을 취득했거든요.”

 

래리의 눈동자에서 빛나던 파운드화 부호가 더 반짝이며 빛을 내더니 살며시 흔들리기 시작했다.

 

“선생님, 미국 시민권을 포기하셨다고요?”

“아뇨. 가지고 있죠. 영국 시민권과 미국 시민권을 둘 다 가지고 있을 겁니다.”

 

그러자 래리가 갑자기 앞서 나가기 시작했다. 그의 머릿속에서 마케팅 계획이 착착 세워지고 지나치게
크지 않은 아담한 크기의 지하철 홍보 포스터가 그려지고 있었다.

 

“새로운 조국을 탐사하실 수도 있겠네요.”

“예전에 갔던 곳에 가서 똑같은 이야기만 쓰기는 싫고요.”
“그럼 다른 장소로 가세요.”

 

래리도 수긍했다. 그는 아무도 가보지 않았음직한 장소들을 검색하더니 이렇게 말했다.

 

“가령 보그너레지스 같은 곳이요.”

 

나는 흥미롭게 래리를 바라봤다.

 

“이번 주에만 보그너레지스라는 지명을 두 번째 듣네요.”
“어떤 계시가 아닐까요?”

 

그날 오후 집에 돌아온 나는 어디 한번 보기나 하자는 심산으로 오래돼서 너덜너덜해진 영국 지도책 『AA 컴플리트 아틀라스 오브 브리튼(AA Complete Atlas of Britain)』을 꺼냈다(얼마나 오래된 책인지 오래전에 완공된 런던 외곽 순환 도로 M25도로가 완공을 열망하는 점선으로 표시돼 있었다). 다른 것들을 다 떠나서 일단 영국에서 직선거리로 가장 먼 거리에 있는 지역들이 어디인지 궁금했다. 학습서에 나와 있는 대로 랜즈엔드에서 존오그로츠는 분명 아니었다(학습서에 나와 있는 내용을 그대로 공개하자면 다음과 같다. ‘영국 본토에서 가장 긴 거리는 스코틀랜드 북쪽 해안에 있는 존오그로츠에서 잉글랜드 남서쪽에 위치한 랜즈엔드다. 이 거리는 1,400킬로미터다’).

 

지도책을 펼쳐놓고 자로 재보니 놀랍게도 자는 마치 휜 컴퍼스 바늘처럼 존오그로츠와 랜즈엔드에 비스듬히 걸쳐졌다. 자로 재어본 결과 영국을 가장 길게 잇는 직선거리 가장 위쪽 지점은 지도상 북쪽 왼편에 있는 스코틀랜드의 케이프래스(Cape Wrath)였다. 그리고 아래쪽 지점은 정말 재미있게도 보그너레지스였다.

 

래리가 옳았다. 이건 계시다. 아주 짧은 시간 동안 나는 내가 새로 발견한 경로를 따라(이 길의 이름이 브라이슨 길로 알려졌으면 좋겠다. 내가 그 경로를 발견했으니까!)

 

브라이슨 길은 내게 ‘테르미누스 에드 퀨(terminus ad quem)’ 즉 도달점이 될 것이다. 그 길을 따라가되 가급적 전에 여행하며 방문했던 곳들은 피할 것이다. 길모퉁이에 서서 마지막으로 왔을 때보다 얼마나 더 나빠졌는지 투덜거리는 것은 대단히 위험한 행위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아무런 편견 없이 새로운 시각으로 여행지를 보기 위해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곳을 여행하리라 마음먹었다. 그렇게 나의 두 번째 영국 탐사가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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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 브라이슨 발칙한 영국산책 2빌 브라이슨 저/박여진 역 | 21세기북스
우리에게 신비로우면서도 낯선 영국 이야기를 맛깔나게 들려주던 밀리언셀러 작가 빌 브라이슨이 이번엔 영국 시골 마을로 여행을 떠났다. 계획대로 되지 않는 것이 여행의 묘미인 것처럼, 그 역시 수많은 사건 사고에 발을 동동 구르기도 하고 여전히 까칠한 본성을 숨기지 못해 버럭 소리를 지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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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 브라이슨

‘세상에서 가장 재미있는 여행 작가’라는 별명을 가진 그는, 미국 아이오와 주 디모인에서 태어나 영국에서 『타임스』와 『인디펜던트』의 기자로 일했다. 유럽을 여행하다 영국의 매력에 빠져 스무 살부터 20년을 거주, 미국으로 돌아가 15년을 살다가 다시 영국으로 돌아와 영국 시민권을 취득하고 제2의 국적을 갖게 됐다. 그는 2005-2011년 더럼 대학교 총장을 역임했으며, 왕립협회 명예 회원이기도 하다. 현재 영국에서 살고 있다. 브로드웨이의 베스트셀러인 『나를 부르는 숲』으로 잘 알려졌다. 미국 아이오와 주 디모인에서 태어난 이후 영국으로 건너가 [더 타임스]와 [인디펜던트] 신문에서 여행작가 겸 기자로 활동하다, 20년 만에 미국으로 돌아갔을 때는 뉴햄프셔 주 하노버 시에 정착했다. 영국 [더 타임스]로부터 '현존하는 가장 유머러스한 작가'라는 평을 듣고 있을 뿐만 아니라 세계의 여러 언론으로부터 호평을 받고 있다. 『나를 부르는 숲』은 뉴욕타임스에 3년 연속 베스트셀러에 올랐던 책으로, 빌 브라이슨이 미국 애팔래치아 트레일에 도전한 종주 기록을 담은 책이다. 애팔래치아 트레일은 한국으로 치면 백두대간에 해당하는, 미국 동부를 관통하는 2,100마일의 등산로이다. 아름다운 자연이 펼쳐지지만 곰의 습격이나 예상치 못한 기후 변화, 추위 등의 위험으로 가득 찬 대자연과 싸우며 6개월 이상 걸어야만 종주를 마칠 수 있다. 빌 브라이슨은 그저 집 근처에 애팔래치아 산맥이 있다는 이유로 애팔래치아 트레일 종주를 결심하고, 그 이후부터 자신이 종주를 해야 하는 이유를 찾아 합리화시킨다. 이유가 있어서 결심을 하는 것이 아니라 결심부터 하고 이유는 나중에 짜맞추는 것이다. 이렇게 시작한 종주 도전은 결국 무참하게 실패로 끝나고 마는데, 그 과정을 눈물나게 재미있게 그리고 있다. 애팔레치아 트레일을 종주하는 데 필요한 여러 가지 준비물이나 주의 사항 등의 정보는 물론이고, 아름다운 자연에 대한 묘사와 미국 역사에 대한 배경 설명, 등산로에서 마주치는 다양한 미국인들에 대한 묘사 등은 미국이라는 나라를 이해하는 데도 도움이 되는 책이다. 방대한 양의 과학 정보를 재미있게 풀어낸 과학 교양서 『거의 모든 것의 역사』, 오랜 지인이 편집장으로 있는 주간지 [Night & Day]에 연재했던 글들을 모은 『고독한 이방인(I'm a Stranger Here Myself)』을 비롯하여 『햇볕에 타버린 나라에서(In a Sunburned Country)』,『브라이슨의 성가신 단어 사전(Bryson's Dictionary of Troublesome Words)』, 『모국어(Mother Tongue)』,『잃어버린 대륙(The Lost Continent)』,『작은 섬에서 부친 편지(Notes from a Small Island)』,『여기도 아니고, 저기도 아니고(Neither Here Nor There)』,『빌 브라이슨의 아프리카 일기(Bill Bryson's African Diary)』, 『빌 브라이슨의 발칙한 미국학』, 『빌 브라이슨 발칙한 영국산책』, 빌 브라이슨 발칙한 여행기 시리즈부터 『바디: 우리 몸 안내서』, 『거의 모든 것의 역사』, 『나를 부르는 숲』, 『빌 브라이슨 발칙한 영국산책』, 『빌 브라이슨 발칙한 영어 산책』 등 빌 브라이슨 특유의 글맛과 지성이 담긴 그의 책들은 전 세계 30개 언어로, 1,600만 부 이상 판매되었고 국경을 초월하여 독자들의 뜨거운 관심과 지지를 받았다. 널리 격찬을 받은 저서 『거의 모든 것의 역사』는 어벤티스 상과 데카르트 상을 수상했고, 영국에서 출간된 이후 10년 동안 비소설 부문에서 가장 많이 팔린 책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