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을 향해 망원렌즈를 들이밀다
연극 <망원동 브라더스>가 다시 돌아왔다. 찌질하지만 유쾌한 네 남자의 이야기는 오늘도 현재진행형이다. 한때 신인상까지 받았던 만화가 영준은 ‘요즘 누가 만화책을 읽어, 다들 웹툰으로 보지’라는 말을 들으면서도 꿈을 놓지 못하고, 기러기 아빠 축에는 끼지도 못해 스스로를 ‘펭귄 아빠’라 일컫는 김 부장은 ‘쨍 하고 해 뜰 날’을 기다리며 고군분투 중이다. 영준에게 만화를 가르쳐주었던 싸부는 “80년대 유명했던 스토리 작가”라는 빛 바랜 영광을 안고 살아간다. 공무원 시험을 준비 중인 삼동이는 고시원 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인물들은 저마다 다른 이유로 ‘내몰리듯’ 영준의 옥탑방을 찾아왔고, 8평짜리 방에서 복닥거리며 여름을 난다. 3년 전, 김호연 작가의 소설 『망원동 브라더스』가 처음 발표됐을 때의 모습 그대로다. 이야기는 원작 소설이라는 큰 틀을 벗어날 수 없는 운명을 타고났지만, 그 안에서 가능한 변주를 시도한다. 김호연 작가가 한 인터뷰를 통해 밝혔듯 “시즌마다 배우들이 바뀌고, 같은 역에도 더블 캐스팅이 되기 때문에 각 캐릭터가 다양하게 표현될 수 있다는” 점도 그 중 하나다. 닮은 듯 다른 모습으로 돌아온 네 남자와의 재회가 익숙하면서도 새롭고, 어김없이 반가운 이유다.
연극 <망원동 브라더스>에서 별다를 것 없이 이어지는 인물들의 일상 속에는 이곳의 현실이 압축적으로 담겨있다. 꿈꾸던 삶은 아득해 보이고, 가까이 다가섰다고 생각하는 순간 다시 멀어진다. 녹록지 않은 삶의 무게는 끈덕지게 따라붙는다. 높은 곳에 올라 눈 앞에 펼쳐진 세상을 향해 망원렌즈를 들이대고 줌인으로 쭉 끌어당기면 <망원동 브라더스>의 인물들이 보일 것만 같다. 안정적인 직장을 위해 한 평 남짓한 공간에서 젊은 나날을 흘려보내고, 가족들을 위해 가족들과 떨어져 홀로 고군분투하고, 열정을 가지고 열심히 해도 잘하지 못하면 가치를 폄하 당하는, 네 남자와 꼭 닮은 사람들이 지금 이곳에는 차고 넘친다. ‘멀리 내다보기 좋은 동네’라는 뜻을 가진 곳, 망원동에 있는 옥탑방에서 인물들이 바라보는 세상에는 객석의 관객들이 사는 것이다.
그래, 다들 그렇게 사는 거지
선화와 함께 자신의 옥탑방을 찾은 영준은 눈 앞에 펼쳐진 풍경을 보고 답답하다 말한다. 그러나 선화는 정겹게만 보인다고 응수한다. 그들의 상반된 감상은 <망원동 브라더스>를 지켜보는 관객의 마음과 다르지 않다. 어느 것 하나 뜻대로 되지 않는 네 남자의 팍팍한 현실을 보고 있노라면 짧은 한숨이 연거푸 새어 나온다. ‘당신도, 나도, 산다는 게 참 쉽지 않구나’ 싶어서다. 하지만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꿋꿋하게 살아나가는 인물들과 함께 울고 웃다 보면 ‘그래, 다들 그렇게 사는 거지’라는 생각이 든다. 선화가 말했듯, 우리 사는 이야기가 정겹게 느껴지는 것이다.
그러나 삶이란 가까이에서 바라보면 비극인 법이다. 마냥 철없어 보이는 <망원동 브라더스>의 남자들도 언제까지나 유쾌할 수만은 없다. 주머니는 가벼워져만 가고, 캄캄한 앞날에는 볕 들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한껏 신경이 날카로워진 상태가 지속되자 네 사람의 갈등도 깊어간다. 말 못 할 고민을 속으로만 삭일 뿐 쉽게 털어놓지 못했던 그들은 한 데 엉켜 살면서도 ‘함께’ 살아가지 않은 것이다. 이대로 네 남자는 혼자인 채로 삶을 이어가게 될까, 갈등의 꼭대기에서 어떤 선택을 할까. 결말은 직접 확인하시기 바란다. 공연은 8월 21일까지, 마포아트센터 플레이맥에서 계속된다.
임나리
그저 우리 사는 이야기면 족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