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12일 금요일 오후 4시, 마포구립 서강도서관에서 예스24 어린이 글쓰기 특강 첫 번째로 이정록 시인과 함께하는 동시 창작 교실이 열렸다. 교과서에 실린 「콧구멍만 바쁘다」로 유명한 이정록 시인은 올해 세 번째 동시집 『지구의 맛』을 내기도 했다.
여름방학을 맞아 강의실에는 동시를 어떻게 쓰는 것인지 궁금해 모인 40여 명의 아이와 부모님이 가득 찼다. 1부에서는 이정록 시인이 좋은 글을 쓰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려주고, 2부에서는 아이들이 직접 도화지에 시를 써보는 시간을 가졌다.
전교 꼴등이 우수한 학생이 되기까지
이정록 시인은 윤동주 문학대상, 김달진 문학상, 김수영 문학상을 받는 등 동시집 외에도 다양한 수상 경력으로 글솜씨를 인정받은 바 있다. 그러나 아이들 앞에서 이정록 시인은 어렸을 때 공부하는 게 너무 싫었다고 고백해 아이들의 흥미를 자아냈다.
“여섯 살에 제가 초등학교를 갔어요. 원래는 여덟 살에 들어가는 게 맞죠. 그런데 선생님은 어렸을 때 아마 바닷물고기였던 것 같아요. 조기교육을 받았어요(웃음). 우리 부모님이 감자 먹여서 키도 못 컸을 때인데 학교를 보냈으니까 공부를 잘하기는커녕 3학년까지 내내 꼴등을 했어요. 수업시간에 간혹 손을 들었는데, 몰라서 뭘 물어보려는 게 아니라 ‘선생님 뒷간 가도 돼요?’ 말하려고 손들었어요.”
심지어 4학년 때까지도 이정록 시인은 원고지가 뭔지 몰랐다. 원고지 다섯 장을 가득 채워오라는 말에 오른쪽 아래 적힌 20X10만 보고 200을 써야겠구나 싶어 다섯 장에 가득 숫자 ‘200’을 채워갔다고 했다.
“다음 날 아침 자신만만한 얼굴로 학교에 갔는데 선생님이 나를 막 때리는 거예요. 대나무 뿌리로 만든 막대기로. 아팠냐고요? 맞아요, 엄청 아팠어요. 그때 선생님을 생각하면서 분노의 시를 낭독하도록 하겠습니다. 주먹을 꽉 쥐여주세요.”
채찍 휘두르라고
말엉덩이가 포동포동한 게 아니다
번쩍 잡아채라고
토끼 귀가 쫑긋한 게 아니다
꿀밤 맞으려고
내 머리가 단단한 게 아니다
(이정록, 「아니다」)
이정록 시인은 그 당시 선생님들이 자신을 멍청하다고 구박하고 무시하는 게 슬펐다고 회상했다. 하지만 중학교에 들어갈 때까지 공부는 시인의 몫이 아니었다. 심지어 도서관은 딱 한 번 갔었다고 회상한다.
“글짓기 대회에 나가본 적도 없고 도서관도 딱 한 번 가봤어요. 도서관에서 책 빌려주던 1년 후배 얼굴 한번 보려고 갔었어요. 무슨 책을 빌려야 할지 몰라서 옆에 있던 아이가 『소공녀』를 보길래 따라서 빌렸어요. 그런데 읽어도 무슨 말인지 몰라서 금방 갖다 주면 안 읽은 거 같으니까 읽은 척 가지고 있다가 내고 그 이후로 도서관은 안 갔어요. 공부도 못 하는 데다 도서관도 안 가니까 초등학교 때 생활은 엉망진창이었어요.”
하지만 초등학교 5학년을 다닐 나이에 중학교를 들어가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스승의 날을 맞아 스승의 은혜에 감사하는 글짓기를 하라는 시간에 이제까지 선생님들에게 당했던 설움 때문에 감사하다는 말을 쓸 수 없어 오히려 선생님을 미워하는 이야기를 솔직하게 썼다고 한다.
“선생님 미워하는 이야기를 쓰니까 다른 친구들이 내 자리로 와서 재밌다면서 막 웃는 거예요. 그래서 남들은 여섯 장 쓰는데 나는 더 많이 썼어요. 그리고 냈어. 스승의 날 스승의 은혜를 써야 하는데 스승을 미워하는 내용을 쓰면 학교에서 상을 탔겠어요? 못 탔겠죠?
하지만 상을 줬어요. 입선이라는 상을 국어 선생님이 나를 위해 만들었어요. 노트도 연필도 없고 상장 하나만 주는 상. 복도를 지나가는데 선생님이 내 어깨에 손을 턱 얹고 싹 웃는데 얼음이 싹 녹는 느낌이었어요. 내 마음속에 있는 미움과 서러움을 녹여주신 거야. 네가 선생님을 미워하는 마음을 알아, 이런 뜻으로 손을 얹고 상처 준 선생님을 대신해 나에게 작은 상장을 주겠다는 마음이었겠죠.”
그 이후로 이정록 시인은 그 선생님에게 보답하기 위해 삼촌이 쓰던 공부방에서 두꺼운 국어사전을 들고나와 국어 교과서에 있는 모든 단어를 찾기 시작했다. 다른 과목은 제쳐두고 국어책을 여섯 번, 일곱 번씩 읽어갔다고 한다. 국어 시간만 되면 질문마다 손을 들고 척척 대답하니 다른 친구들도 어떻게 아느냐고 신기해했다.
국어에 자신감이 생기자 다른 과목에도 눈이 갔다. 다른 교과서의 모든 단어가 다 국어사전 안에 있었다. 수학 교과서에 나오는 주기율, 반지름, 포물선 등 어려운 단어를 찾다 보니 성적은 자연히 올라갔다.
핸드폰은 가장 놀라운 기술
이정록 시인은 자신의 경험을 비추어 아이들에게도 국어사전을 열심히 찾아볼 것을 장려했다. 그러나 다른 어른의 말과는 다르게 오히려 스마트폰을 자주 이용하라고 말했다. 어른들이 오해하고 있을 뿐, 스마트폰은 무엇보다 학습에 효과적인 도구이기 때문이다. 아이들을 보고 말했지만, 부모님들에게 하는 말이기도 했다.
“핸드폰이 있는 친구들은 네이버나 다음의 국어사전 앱을 설치하세요. 국어사전 말고 다른 걸 찾아보고 싶다면 다른 사전도 설치하세요. 여러분이 가지고 있는 핸드폰은 지구상에서 가장 위대한 기술이 들어가 있어요. 하지만 여러분 부모님은 당신들이 핸드폰으로 나쁜 짓만 하기 때문에 여러분도 게임만 하고 나쁜 짓을 할 거로 생각해요. 여러분이 부모님의 생각을 바꿔줘야 해요. 아빠는 식은 피자와 같아요. 전자레인지에 돌려도 제맛이 안나요. 아빠를 버릴 수 없으니 생각을 바꿔주세요(웃음)”
사전을 보면 나비잠과 노루잠이 나온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나비잠은 어린아이가 두 손을 나비 촉수마냥 뻗고 깊이 잠든 상태이고, 노루잠은 초식동물인 노루가 잡아먹힐까 봐 깜짝깜짝 놀라는 것처럼 편히 못자고 일어나는 잠을 말한다. 이정록 시인은 이처럼 예쁘고 좋은 단어들이 나오는 사전을 많이 찾을 것을 권했다.
자연의 소리를 받아적는 사람
이정록 시인은 이어서 글을 잘 쓰는 사람, 좋은 글을 쓰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어린이들의 눈높이에 맞춰 알기 쉽게 설명했다. 자연이 얼마나 위대한지, 인간은 얼마나 작은지를 알려주는 실험 이야기였다.
“지금으로부터 18, 19년 전에 수원에 있는 농촌진흥청에서 재밌는 실험을 했어요. 시멘트로 완전히 밀폐한 공간에 뽕나무를 심어 놓고 뽕나무에 스트레스를 그래프로 확인할 수 있는 기계를 연결했어요. 하얀 가운을 입은 조교가 시간만 되면 막대기를 가지고 뽕나무를 막 때리는 실험이었어요. 처음에는 반응이 없다가 나중에는 조교가 흰 가운을 입고 막대기를 가지고 다가오기만 해도 뽕나무의 스트레스가 올라갔어요.”
“어느 날 한 열 시 넘어서 극심한 스트레스가 기록된 거예요. 다음날 회의 때 교수가 조교한테 왜 밤중에 뽕나무를 때렸냐고 야단쳤어요. 조교는 그런 일이 없다고 변명하다 그 시간에 복도를 지나갔다고 기억해 냈어요. 복도만 지나갔는데도 뽕나무가 반응한 거예요. 여러분 집에 있는 화초도 누가 물을 줬는지, 가지를 잘랐는지, 다 알아요. 그러니까 나무에 하트 그리고 누구누구는 사귄대요, 이런거 쓰면 안 돼요.”
“이게 지구예요. 지구에 사는 홍학들이 지구 반대편으로 날아가요. 왜? 자기가 사는 장소에 곧 건기가 찾아와서 먹을 게 없어진다는 사실을 아는 거예요. 2,000km 바깥에서 가야 할 장소에 곧 우기가 찾아온다는 걸 알아요. 인간은 알아요? 우리는 그렇게 못 해요.”
이 두 예시를 통해 이정록 시인은 인간이 만고의 영장이고 지구에서 최고라는 생각을 겸손하게 내려놔야 한다고 설명했다. 오히려 인간이 우월하다는 생각을 낮추고 자연의 소리를 받아적는 게 좋은 글이 될 수 있다는 말이었다. 자연의 소리를 음표로 만들면 모차르트, 색으로 표현하면 렘브란트와 피카소, 과학적으로 자연을 풀어낸 사람이 과학자가 된다고 말했다.
2부에서는 아이들이 직접 기존 동시에 제목을 붙여 보기도 하고, 흰 도화지에 그림을 곁들여 자신만의 이야기를 시로 풀어보는 시간이었다. 뒤에 앉은 부모님들도 덩달아 진지하게 자신의 이야기를 풀었다. 글에 자신이 생기자 아이들은 너도나도 손을 들고 자신의 시를 발표했다. 처음의 쑥스러운 모습과는 많이 달라진 분위기였다.
정의정
uijungchung@ye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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