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D 리뷰 대전] 이 겨울 가장 따뜻한 빛의 위로
여기만 아니면 어디든 좋다고? 5월의 프라하는 12월의 프라하와 전혀 다른 도시. 수많은 나라와 도시 중에서도 다음 달에 들러야 딱 좋은 곳을 소개한다. 들고 떠나면 쓸모가 있는 여행책들, 하지만 계절의 풍경이 그려진다면 읽기만 해도 오케이. 마음대로 날아가지 못하는 모두의 마음을 담아 그냥 수다 한 판!
글ㆍ사진 박형욱(도서 PD)
2017.0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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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끝 오로라.jpg

 

계절은 겨울이다. 내뱉는 숨마다 하얗게 설렘이 번지고, 여민 외투 속 온기가 유난히 고마운 겨울이다. 한없이 날카롭고 차갑기만 할 것 같아도 보드랍고 포근하게 어둠을 덮어주는, 한참을 차분히 고요한가 싶다가도 따듯한 불빛과 반짝이는 노래로 금세 축제가 벌어지는 겨울이다. 기대와 두근거림, 원망과 지루함의 날을 지나 이제는 긴 그림자 마지막 한걸음만을 남겨놓은 이 계절을 보내기가 못내 아쉬워 다시 먼 겨울의 한가운데로 떠나본다.

 

오로라를 찾아간 이들이 있다. 어둡고 시린 풍경 속에서 거짓말 같이 나타난다는 가장 찬란하고 따뜻한 빛을 만나러 간 이 여행자들은 하늘길을 내달아 그곳에 다녀오는 대신 캠핑카를 타고 유럽 15개국을 거치는 모험을 선택한다. 불편하고 괴롭고 불안했을 길 위의 시간은 그저 마음으로만 짐작하고 공감할 수밖에. 아마도 그 고통이 자연의 놀라운 선물과 마주한 순간을 훨씬 더 황홀하게 만들어주었으리라 예상해볼 뿐이다.

 

오로라를 만나러 가는 길, 만나고 돌아오는 길. 그들은 하늘로 18,000km, 땅 위로 10,000km, 15개 나라를 겪는다. 빛을 향하는 여정에 수많은 장면이 생겼다가 사라진다. 이국까지 가슴에 품어 가지고 간 낯선 이들의 호의가 무색하게 얼어붙은 땅은 여행자의 바쁜 걸음을 더디게 하고 먹고 자는 일은 어느새 피할 수 없는 매일의 숙제가 되고 만다. 돌아보면 더 아찔했을 고비들을 함께 짚어가는 동안 여기 마음에도 간절함이 자란다. 마침내 오로라. 불행의 손을 잡고 우연하게 찾아온 첫 번째 만남은 당황스러우면서도 경이롭다. 꿈은 아닐까? 시야를 가득 채운 푸른 물결을 눈에 담고 있는 그 때까지도 제 눈을 의심하게 만드는 풍경이다. 이미 알고 있어도 순간이 거듭되더라도 줄지 않는 감동이 있다.

 

빈곤한 인간의 언어로는 도저히 오로라를 표현할 수 없다는 저자에 따르면 그것은 펼쳐진 신의 치맛자락이며 바람에 흔들리는 비단 커튼이다. 땅에서 솟아오른 듯 하늘에서 내린 듯, 천지간을 잇는 기둥이다. 현상을 정확하게 분석해낸 아귀가 척척 들어맞는 해석으로는 이해하고 싶지도 설명하고 싶지도 않은 신비다. 네모난 틀 안에 들어찬, 한 손에 올려진 하늘을 본다. 더 가까이 두었다가 다시금 멀리 본다. 어떻게 해봐도 눈을 속이기가 쉽지 않아 차라리 감아본다. 서늘한 공기 속으로 초록 바다가 춤을 춘다.

 

집을 나선 길. 계절은 아직 겨울이다. 어둠이 남은 새벽, 별은 총총하고 저기 회색 숲 너머로 먼 나라의 초록이 보이는 듯하다. 코끝까지 단단하게 채워 닫아둔 훈기를 한 모금 내어준다. 섞여 들어오는 바람이 생각만큼 설지 않다. 이제 겨울을 배웅하러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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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형욱(도서 PD)

책을 읽고 고르고 사고 팝니다. 아직은 ‘역시’ 보다는 ‘정말?’을 많이 듣고 싶은데 이번 생에는 글렀습니다. 그것대로의 좋은 점을 찾으며 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