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희연 “삶을 정직하게 바라보겠다는 다짐“
나를 “찌르는 순간”을 줍기 위해 부지런히 여행을 떠난 안희연 시인의 여행 지도. 그리고 마음 지도.
글 : 신연선 사진 : 표기식
2025.05.29
작게
크게


2005년부터 2025년까지. 20년이라는 긴 세월에 걸친 여행의 순간들을 일컫는 말이 『줍는 순간』이라니, 이것 참 안희연 시인답다고 생각했습니다. 비행기 티켓이 두 개, 때로는 세 개까지 품에 있었다는 시인은 여행을 하며 만난 귀한 순간마다 “너무나 줍고 싶은” 열망으로 꼼꼼히 메모하고, 부지런히 사진을 남겼습니다. 카메라 세 대를 목에 걸고 다녔죠. 그렇게 나를 찌르는 순간을 잔뜩 주워서 돌아오고, 다시 그 순간을 찾아 떠나는 것이 시인의 시간이었습니다. 그러니 『줍는 순간』을 읽는 사람은 어쩔 수 없이 자신에게 여행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정의해보게 될 테지요. 무엇보다 안희연 시인은 이 책이 “내 여행을 기록하고 싶어지는 책이었으면” 하고 바랍니다. 저마다의 마음의 지도, 내 여행의 지도를 만드는 시간이기를 하고요. 


덧붙여, 안희연 시인이 책의 에필로그를 묘비명으로 끝낸 이유를 함께 생각합니다. 그것은 삶이라는 여행을 하는 동안 누구에게나 도래하게 마련인 끝을 생각하길 바라는 마음이 아니었을까 해요. 끝을 생각하는 일은 지금을 생각하는 일. 『줍는 순간』과 함께 이 여행의 최종 목적을 가늠해보면 어떨까요. 

 


삶의 형식으로서의 여행


삶에 대한 ‘가려움’”(26쪽)이라는 문장부터 이야기해보고 싶어요. 

가려움, 간지러움, 지겨움 혹은 무표정이 저에게는 다 비슷한 단어 같아요. 출렁임이 살아 있음과 동의어라는 생각이 있고요. 지금 너무 간지러운 상태야, 어딘가 긁고 싶어, 새로운 환경에서 생생하게 다시 살아나 삶에 대한 간지러움을 해소하고 싶어, 이런 생각을 평소에 되게 많이 하는 편이에요. 어딘가 간지럽지만 긁을 수 없는 구석이 분명히 있는데 그것을 시원하게 감정적으로 해소하고 새로운 장면을 보면서 실감하고 싶은 마음이 큰 거죠. 말하자면 죽어 있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많이 하는 것 같아요. 

 

무표정한 순간이 일상 속에서 수시로 찾아오게 마련이잖아요. 

저도 직장 생활을 하니까, 많은 시간 정해진 루트 안에서 움직여야 해요. 그런데 시를 쓰고, 글을 쓸 때는 어떤 규칙이나 정제된 시간 안에 놓여 있을 때보다 정해진 윤곽을 벗어나는 순간이 더 좋거든요. 일종의 ‘샛길’인데요. 어딘가 멀리 가야만 샛길을 갈 수 있는 건 아닌 것 같아요. 그냥 평소 가던 길이지만 안 들어가본 골목을 가보는 식으로, 조금 다른 길로 돌아가면서 발견되는 새로운 장면들 있잖아요. 그렇게 윤곽을 흐트러뜨리는 작업을 늘 하고 싶은 거죠. 

 

여행이 본격적인 샛길이라고 한다면 시인님은 여행뿐 아니라 평소에도 샛길을 많이 찾으시는군요. 감정적으로도, 물리적으로도 말이에요. 

맞아요, 실제로도 똑같은 길로 다니는 걸 안 좋아하고 새로운 골목에 들어가 보는 걸 너무 좋아해요. 그러다 길을 뺑뺑 돌기도 해요.(웃음) 이사를 했는데요. 얼마 전에도 안 가본 길로 가고 싶더라고요. 집이라는 목적지는 정해져 있지만 그 목적지까지 가는 수십 갈래의 길을 다 경험해 보고 싶었어요. 그래서 새로운 길로 가보았는데 길이 막혀 있어서 다시 돌아와야 했어요. 그런데 그 작업도 너무 즐거웠어요. 탐색의 시간이니까요. 제게 목적지에 빠르게 도착하는 것은 별로 중요한 일이 아닌 것 같아요. 좀 느리고 헤매도 탐색하는 쪽이 더 재미있고요. 

 

여행을 떠나는 이유를 “저를 찌르는 순간”(11쪽)을 줍기 위해서라고 했어요. 그 말이 “무언가를 ‘보기’ 위한 여행이 아니라 ‘흐르기’ 위한 여행”(154쪽)이라는 대목과 연결되더라고요. 삶의 한 형식으로서의 여행이라는 것은 어떤 것인가, 곰곰 생각하게 됐어요. 

여행을 하지 못한다고 여행을 할 수 없는가,라는 물음에서 도착한 답변이 삶의 형식이 곧 여행이라는 문장이었다고 생각해요. 팬데믹 시기에는 여행할 수 없었잖아요. 물리적으로 내가 움직이면 방역선이 허물어지는 거니까 어떻게든 책임을 다하기 위해 갇혀 있어야 했던 시간이었는데요. 그때 이토록 좋아하는 여행을 포기해야 하는지, 지극히 본질적인 물음을 마주하게 됐어요. 그 과정에서 찾은 답이었어요. 생각해보면 우리는 매일 집을 나섰다 돌아오는 여행을 하고요. 아침에 시작해서 밤에 도착하는 여행을 해요. 이처럼 순간 순간이 여행이라는 생각에 다다르니 여행이라는 것을 내 삶의 형식으로 삼으면 되겠더라고요. 그렇다면 매 순간이 여행이 되는 거고, 매 순간 새로운 경로가 마련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죠. 멀리 가지 않아도 내가 여행자의 마인드로 살아간다면 충분히 삶을 여행이라는 형식으로 만들 수 있다고요. 그러면서 글쓰기라는 백지 안으로의 여행으로 몸을 틀 수 있게 됐어요. 

 

여행길이 막히기 전에는 의식하지 못했던 생각이었나요? 

다니기 바빴거든요.(웃음) 어떤 시절에는 비행기 티켓이 세 개쯤 있기도 했어요. 한 개만 있어도 불안했고요. 티켓이 두 개나 세 개 있으면 최상의 행복을 누릴 수 있는 사람이었죠. 꼭 멀리만 간 건 아니고요. 당일 여행이라도 여행 일정을 늘 가지고 살아왔던 것 같아요. 그만큼 좋아했어요.  

 

멈추었기 때문에 비로소 재정의 되는 의미가 있었던 거군요. 

저는 그랬어요. 실제로 2020년에 러시아 여행을 준비하고 있었거든요.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전시를 보려고 비행기와 숙소를 다 마련했는데 갈 수 없게 됐어요. 한 차례 연기를 했다가 결국 취소를 했는데 너무 암담하더라고요. 이제 여행을 못 한다고 생각하니까 진짜 답답했어요. 그렇다고 몇 개월 뒤면 갈 수 있는 것도 아니었잖아요. 그저 막연하게 기다려야 하는데 제게 너무나 중요한 여행이라는 것에 공백이 생기니까 여행을 재정의할 수밖에 없었던 것 같아요. 여행이 워낙 제 삶에 중요한 부분이었기 때문에 더 열심히 새롭게 의미를 찾았어요. 

 



여행자의 낙관 


시인님의 흥미로운 여행 방식이 재미있었어요. 현지에서 영화 보기 같은 것 말이죠. 언어나 영화의 배경을 전혀 모르더라도 그 자체가 여행이더라고요. 그밖에 여행에서 꼭 하는 것이 있으세요? 

나에게 엽서 보내기와 현지의 영화 보기는 꾸준히 하고 있어요. 저는 여행이 끝나는 게 늘 아쉬웠어요. 여행지에서 생생하게 했던 경험이 금방 휘발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 있기도 했고요. 그래서 여행에서 돌아와 일상에 휩쓸려 모든 걸 잊을 때쯤 내가 나를 위해 보낸 엽서가 도착한다는 것이 정말 낭만적이고 좋았어요. 엽서를 보낼 때 내가 경험했던 장소가 현재와 보이지 않는 실로 연결이 되는 순간이거든요. 그래서 여행에서 돌아오면 항상 우체통을 기다리게 됐죠. 


예전 산문에도 썼지만 엽서라는 게 정말 허약한 아이예요. 빗물에 글자가 지워질 수도 있고, 결국 도착하지 않을 수도 있죠. 실제로 못 받은 엽서들도 많거든요. 어쨌거나 도착하는 행운을 점쳐볼 수도 있고요. 미래의 나를 위한 선물을 과거의 내가 보낸다는 게 저한테는 중요했어요. 여행이 끝나는 아쉬움을 달래주는 동시에 앞으로 살아나갈 시간에 있어 과거의 시간이 의미 없지 않았다는 것을 재확인하도록 하니까요. 너무 좋은 이벤트예요. 여러분도 꼭 해보시면 좋겠어요. 

 

여행지에서의 시인님은 엄청 잘 웃고, 잘 울고, 노래도 잘 하는 사람 같아요.(웃음) 평균보다 더 많이, 최대한으로 살아보려고 애쓰는 사람 같은 거죠. 어떤 순간도 허투루 지나치고 싶지 않아 하는 사람 말이에요. 

접촉면을 많이 만들고 싶어요. 내가 삶과 어느 정도의 면적으로 만나는가, 하는 것이 제게는 무척 중요해요. 어떨 때는 손가락으로 정도의 면적으로 만날 수 있겠지만 때로는 손바닥 정도의 면적으로도 만날 수 있잖아요. 저는 가능하면 풍부하게 경험하고 싶어요. 시를 쓰기 때문일지도 모르겠어요. 시를 쓰려면 여러 각도에서 부딪힌 감정적 경험이 되게 중요하거든요. 그 감정 안에서 충분히 살아봐야 해요. 단순하게 “나는 슬프다”고 하면 슬픔이 잘 전달되지 않죠. 어떤 모양으로 슬픈가? “난간에 매달린 물방울 모양으로 슬프다”고 하면 더 구체적으로 그 슬픔의 장면을 상상할 수 있게 되잖아요. 그러니까 저한테는 그런 표면적의 넓음이 너무 중요해요. 제 글을 읽는 분들이 ‘이 사람은 이 정도 깊이까지 들어가 그 감정을 경험했구나, 이 정도 넓이로 세상을 만나고 있구나’ 하면서 함께 경험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있어요. 

 

우연의 도미노 놀이에 대한 생각도 참 좋았어요. 사실 여행을 할 때면 대개 계획대로 되기를 바라기 마련인데요. 우연에 맡기는 여행이 가져온 행운이 존재한다는 것도 소중히 기억하면 좋겠다고 비로소 생각하게 됐어요. 

돌아보면 언제나 모든 여행이 행복했어요. 같은 여행이 없고, 저마다 특별한 의미가 있었죠. 그것이 나를 깨우고 가르치고 성장시켰다는 것을 돌이키며 깨달아요. 막상 그때는 모르더라도 말이에요. 그래서 낙관의 태도가 여행을 통해 쌓였어요. 그것은 비관하지 않아서 하는 낙관은 아니고요. 비관적인 순간들을 통과했지만 결과적으로 모든 것을 낙관으로 정의하는 것이에요. 그럴 수 있는 에너지를 여행을 통해 정말 많이 얻었어요. 

 

그 태도가 삶의 비극을 마주할 때도 힘이 되겠죠.  

맞아요. 시를 쓸 때도 저는 웃기고 싶고, 명랑하고 싶은데 계속 울고 있어요.(웃음) ‘기승전물속’이고요. 그런 제가 싫었던 적도 많아요. 다르게 쓰고 싶고요. 그렇지만 그 순간들 속에도 한 줄의 문장이 가진 낙관이라는 게 있다면 그것은 정말 여행에서 배운 게 맞아요. 삶을 바라보는 태도 자체를 가르쳐준 게 여행이었으니까요. 이렇게 많은 삶이 있고, 각각의 삶이 중요하고 의미 있다는 사실을 지금은 알거든요. 저는 시를 통해서 각자가 품고 있는 이야기들이 오롯하게 감각될 수 있도록 언어로 통로를 열어주는 거라고 생각해요. 왜냐하면 어떤 감정이 있어도 언어화 되지 않을 때가 많잖아요. 그러다 좋은 책을 보거나 시를 읽으면서 ‘이게 내 마음이었는데’ 하고 감정을 발견하고 줍잖아요. 때문에 저는 여행을 통해 그런 장면을 최대한 경험하고, 제가 접한 삶의 여러 경로를 상상으로나마 들어갔다 나오면서 비관 쪽으로 흐르려고 하는 사람들을 낙관 쪽으로 돌려 세우는 문장을 쓰려고 하는 거예요. 여행에서 구체적인 삶을 보았기 때문이죠. 

 



혼자 있을 때 짓는 표정을 상상하며


고독의 행성에서 우리가 할 일은 자기 자신이 되는 것이다”(108쪽)라고 했어요. 그리고 시인님은 내가 나이기 위해서 떠나야 한다고 말하는 것 같더라고요.  

자기 자신이 된다는 것은 사실 아주 어려운 일이고, 어쩌면 환상에 가까운 일일 수도 있을 것 같아요. 다만 자기 자신이 된다는 것 역시 내가 나에 이르는 여행 같거든요. 실제로 여행을 하다 보면 좋은 순간은 드물어요. 너무 힘들고 버겁고 짜증나는 순간이 훨씬 많잖아요. 내가 되어 가는 과정도 비슷하다고 생각해요. 스스로 만족하고 나를 좋아하게 되는 순간은 별로 없어요. 늘 후회하고 반성하게 되죠. 그걸 내면화 하는 시간은 더 많고요. 그 사이에서 진자 운동 하면서 자신을 완성해 가는 것이 사는 과정 같아요. 그런 여행의 과정을 통해 삶에서 죽음까지의 시간을 종합해 나가는 것이 여행의 최종 목적이라는 생각을 해요. 


어떤 사람도 자신의 얼굴을 못 보죠. 자신의 초상을 그리려면 거울을 보거나 타인과의 관계 안에서의 나를 보거나 이 사회 안에서의 자기 인식을 받아들이거나 할 텐데요. 그렇게 자신의 얼굴을 그려 나가는 과정에 있어 나는 언제나 부분만을 생각할 수밖에 없잖아요. 마지막에 가서야 내가 어떤 삶을 살았는지, 내게 남은 것과 잃어버린 것이 무엇인지 생각하며 결국 하나의 얼굴이 그려질 수밖에 없을 거예요. 저는 그것이 자신의 최종적인 얼굴 혹은 진짜 내가 되는 일에 가깝지 않을까 생각했던 것 같아요. 

 

시인님은 특별히 여행에서 무엇을 배웠다고 생각하세요? 

한 문장으로 정리하기 어려울 것 같은데요. 사람을 정말 많이 배웠어요, 사람. 추상적인 표현이지만 그래요. 특히 ‘인간이 무엇으로 사는가’라는 정말 거대한 질문을 마주한 여행이 인도 여행이었거든요. 누구나 삶의 목적이 있고 저마다 살아가는 방식이 있다는 것은 아주 단순한 문장이잖아요. 각자의 삶이 있다, 고유한 삶이 있다, 각자의 시간이 있다. 그런데 이 단순한 문장을 그야말로 육체로 받아들인 시간이 인도에서의 시간이었어요. 

 

여행을 거듭하면서 갖게 된 삶의 태도나 여행이 바꾸어놓은 성격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삶이 우리에게서 늘 빼앗아가기만 하는 것은 아니다”(187쪽)라는 문장을 보면서 남다른 태도를 엿보기도 했어요. 

제일 크게 달라진 건 용감해진 거예요. 여행을 할 때는 매 순간 두려움과 싸워야 하거든요. 모든 선택에 대한 책임을 다 제가 져야 하죠. 이따금 혼자 다니는 여행자들과 2-3일 정도 같이 움직인 경우는 있었지만 대개는 혼자 여행을 했으니까요. 오롯이 제가 선택하고 책임을 져야 했는데요. 다양한 경험을 하면서 용기라는 감정이 용수철처럼 계속 튀어나오는 저를 만났어요. 어느 도시에서 갔더니 용감한 내가 톡 튀어나오고, 거기까지가 끝일 줄 알았는데 다른 도시에 가면 더 용감한 내가 튀어나오더라고요. 


또 정말 많은 삶의 모양이 있다는 것을 배웠죠. 어떤 과정을 거치거나 에피소드를 겪었기 때문이 아니에요. 장소 이동을 하거나 그저 기차역에만 서 있어도 정말 한 명 한 명이 고유한 삶의 자리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라는 것을 느껴요. 그 한 사람 안에 있는 이야기가 얼마나 많겠어요. 제가 워낙 기차역에 앉아 있거나 광장에 가서 그냥 앉아 있는 것을 좋아했는데요. 그 많은 사람들을 보는 것만으로 저한테 큰 공부가 됐어요.

 

홈리스를 보고 한동안 그 장면에 머물기도 하고, 어떤 연인을 한참 관찰하기도 하더라고요. 어쩌면 그냥 지나칠 수 있는 장면일 수 있는데 시인님은 그러지 않았어요. 사람을 잘 배우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말씀을 들으니까 정말로 여행을 하면서 사람을 관찰하고, 사람 안에 있는 이야기를 상상하는 연습을 많이 했다는 생각이 드는데요. 여행을 할 때 내 앞에 있는 저 사람은 어떻게 태어나서 어떤 여행의 끝에 이르게 될까를 아주 구체적으로 상상했어요. 한 사람 한 사람 상상하다가 유독 더 시선이 많이 머물게 된 분들은 책에도 초대할 수 있었죠. 그냥 스쳐 지나가지 않고 말이에요. 

이것은 시를 쓸 때도 정말 많이 배운 것이에요. 저는 시를 쓸 때 항상 이 사람이 혼자 있을 때 짓는 표정을 상상하면서 쓰거든요. 제 시가 어딘가에 다다른다면 그건 어떤 사람이 혼자 있을 때 숨고 싶은 공간이라고 생각하는 거예요. 그것을 ‘존재론적 고독의 장소’라고 표현하는데요. 지극히 안전하고, 다른 사람에게는 보여주지 않는, 온전히 자기 표정을 지을 수 있는 공간을 저는 시의 공간이라고 생각하고요. 시를 쓸 때면 그런 공간이 한 사람 한 사람한테 다 있을 테니까, 내가 보는 저 사람은 언제 그곳에 가고 싶을지 그리고 몇 번이나 그곳에 갈지 상상하면서 썼어요. 




목숨이 다할 때까지 쓰기


일본의 ‘반환원’을 방문하면서 그곳이 “내가 꿈꾸는 시의 모든 것을 갖춘 공간”(283쪽)이라고도 하셨는데요. 어떤 의미인가요? 

사람들은 저마다 자기 궤도가 있잖아요. 그러니까 저는 제 열차를 타고 제 생명을 다 하면서 어느 종착지로 가는데 그것은 다른 누군가도 마찬가지예요. 다른 열차를 타고 다른 삶의 방향과 속도와 온도로 자기 궤도를 가는 거죠. 그런데 타고 있는 열차의 바깥 풍경이 같은 거예요. 저는 그것이 우리가 마주하는 시라고 생각해요. 결국 책을 쓰고, 시를 쓰고, 여행을 하는 이유가 그것이죠. 제가 목격한 풍경을 기록해서 언젠가 누군가가 이 장면을 보고 자기 장소를 상상하거나 우리가 다른 사람이지만 같은 풍경을 잠깐 보았구나, 하면서 어떠한 포개짐의 순간을 만났으면 하거든요. 그럴 수 있다는 것이 너무 좋아서 그 장면을 계속 상상하면서 글을 쓰게 돼요. 

 

창작자로서 비관적인 생각이 들 때 보약처럼 올리비아 랭의 『이상한 날씨』 서문을 읽는다고 한 부분도 정말 좋았어요. 다시 해보려는 마음이었죠. 

쓰는 일이 지리멸렬할 때가 많아요. 스스로가 콩알처럼 느껴지는 순간이 있고요. 세상에 이렇게나 좋은 책이 많은데 굳이 하나를 더 보탤 필요가 있을까, 생각하게 될 때는 엄청 위축되기도 해요. 또 글을 쓴다는 건 마음의 극한에 다다랐을 때에만 나올 수 있는 표정이나 언어들을 포착하는 것인데요. 그것이 심리적으로 힘들 때가 많잖아요. 그래서 도망 다니기도 하는 것 같아요. 그렇지만 이것을 읽어줄 사람이 한 명은 있다고 생각하면 마음이 달라져요. 어떤 사람에게 정말 필요한 순간, 시의 반환원에 들어가야 하는 순간이 왔을 때 우연히 펼쳐 든 문장 하나가 절대적인 힘을 발휘할 수도 있잖아요. 그 문장이 크기 때문이 아니라 읽는 사람이 그것을 너무 간절하게 붙들기 때문에 말이에요. 그런 순간을 상상하면 저는 직무 유기를 하면 안 되는 거죠. 글 쓰는 사람이니까요. 그런 생각을 하면서 해야지, 한 사람이라도 더 붙들릴 수 있는 문장을 써야지, 이렇게 마음을 다시 고치게 돼요. 

 

잊기 위해, 사랑하기 위해, 나는 계속 써야만 합니다.”(94쪽)라는 문장을 읽으면서 생각했어요. ‘계속 쓴다’도 아니고 ‘썼다’도 아닌 ‘써야만 한다’는 것은 시인님에게 쓴다는 것이 필요조건 정도가 아니라 거의 충분조건처럼 자리하고 있는 게 아닐까, 하고요. 

맞아요, 필요충분조건이죠. 지금은 너무 감사하게도 많은 분들의 사랑을 받고 있잖아요. 가끔은 과한 행운이 나한테 온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는데요. 어쨌든 묵묵히 지금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고 싶어요. 언젠가 지금처럼 많은 분들의 환호를 받지 못할 때가 분명히 올 거라고 생각하지만 그럴 때에도 글을 써야만 한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그것은 삶을 정직하게 바라보겠다는 다짐이고, 내 감정을 아주 정확하게 알겠다는 결심이에요. 여행이 삶의 형식이 될 수 있듯 출간이 되지 않더라도 글쓰기는 저한테 삶의 형식이거든요. 출간이 되고, 많은 독자의 환호를 받는 것이 아니더라도 저는 목숨을 다할 때까지 글쓰기라는 삶의 형식을 포기할 생각은 없어요. 


말은 쉽게 휘발되지만 글은 달라요. 쓰면서 생각이 정리되고, 사고의 얼개도 생기잖아요. 표현을 고민하는 과정에서 지금 느끼는 바에 가장 가까이 다다르기 위해 노력하고요. 저는 이 과정이 모두 삶의 장면들을 무책임하게 흘려보내지 않게 하는, 잘 기록하고 되새겨 성찰적으로 생각함으로써 내가 나 자신에게 좋은 사람이 되는 과정이라고 생각해요. 나아가 이것을 타인에게까지 전달할 힘을 가질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것이겠죠. 그래서 글쓰기를 포기하고 싶지 않아요. 

 

그라나다에서 시인 로르카를 생각하는데요. 그 도시가 시인의 뿌리였음을 깨닫는 장면이 나오거든요. 혹시 안희연이라는 시인의 핵심을 이루는 장소도 있을까요? 여러 장소일 수도 있지만, 로르카의 그라나다처럼 특별한 장소가 있을지 궁금했어요. 

경기도 연천의 전곡이라는 곳은 휴전선 바로 근처의, 군부대가 많은 곳이고요. 연천보다는 조금 더 도심이고 서울이나 의정부보다는 외곽인 곳인데요. 거기서 유년 시절을 보냈어요. 때문에 저한테는 늘 외곽의 정서라는 게 있었던 것 같아요. 그러니까 경계인으로서 느끼는 감각 말이에요. 제가 안도 살피고 바깥도 살필 수 있는 사람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그런 경계 지점에서 성장했던 유년 시절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저는 항상 어딘가에 깊이 소속감을 느낀다거나 반대로 너무 많이 어느 곳을 벗어나 있다는 실감은 들지 않았어요. 항상 그 사이를 연결하는 존재처럼 느껴졌죠. 그런 점을 떠올려 보면 전곡이라는 장소가 저한테 의미가 있어요.

 

결국 책의 후반으로 가면 ‘일상의 모험가 되기’가 삶의 모토가 되었음을 밝혀요. 어디로도 떠나지 않는 모험가란 어떤 것일까요? 

바다에 풍덩 빠지는 것만이 바다를 사랑하는 방식은 아닌 것 같아요. 점차 물리적인 제약들이 생겨나고, 이제는 예전처럼 두세 달씩 여행할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해요. 시간도 없고, 배낭 여행은 못 할 거라는 것도 알죠. 그런 제 변화를 긍정하면서 일상의 모험가가 된다는 것은 어떤 풍경을 볼 때 그곳에 더 많이 머무는 자가 되겠다는 다짐이에요. 변했다는 사실 속에서도 많은 것을 주울 수 있고 느낄 수 있는 나 자신을 이해하고 그 안에서 용감해지자는 다짐이죠. 그래서 이제는 바다가 보이는 창을 깨끗하게 닦는 것도 소중히 해야 하는 일이라는 생각을 하게 돼요. 



* AI 학습 데이터 활용 금지

0의 댓글

이상한 날씨

<올리비아 랭> 저/<이동교> 역

출판사 | 어크로스

Writer Avatar

신연선

읽고 씁니다.

Writer Avatar

표기식

사진 작가.

Writer Avatar

올리비아 랭

비평과 자기 고백을 넘나드는 특유의 유려한 글로 ‘논픽션의 새로운 지평을 연 작가’라고 평가받는 영국의 비평가이자 에세이스트다. 제임스 설터, 리베카 솔닛 등 걸출한 작가들의 저술 환경을 지원하기 위해 예일대에서 제정한 윈덤캠벨문학상을 수상했으며, 2019년 영국왕립문학회 회원으로 선출되었다. 버지니아 울프의 삶과 작품을 조명한 첫 저작 『강으로To the River』(2011)와 술을 사랑한 작가들의 발자취를 좇는 『작가와 술The Tripto Echo Spring』(2013)이 각각 왕립문학회 온다치상과 고든번상 최종후보에 오르며, 문화·예술 비평가로서 크게 주목받았다. 이후 세 번째 책 『외로운 도시The Lonely City』(2016)가 전 세계 12개 매체에서 ‘올해의 책’으로 선정되고 17개국에서 번역 출간되며 영국을 대표하는 에세이스트로 자리매김했다. 이어 혼란한 시대를 제대로 목격하고 치유할 해독제로서의 예술에 주목한 『이상한 날씨Funny Weather』(2020), 모든 존재의 자유를 열망했던 논쟁적 인물들을 다룬 『에브리바디Everybody』(2021)까지 사유의 폭을 확장해왔다. 또한 첫 소설 『크루도Crudo』(2018)로 제임스테이트블랙 기념상을 수상하는 등 소설가로서도 많은 사랑을 받았다. 이 밖에도 [가디언] [뉴욕 타임스] 등 유수 매체에 기고하며 왕성한 필력을 선보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