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 건너편에서 7년 만에 소설 한 편이 출간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뿐인데, 가슴이 콩닥콩닥 뛰고 있다. 아마도 이런 두근거림은 나뿐만이 아니리라. 특히 그는 나에게 은인이나 다름없는 작가이기도 하다. 그가 쓴 에세이의 서문을 읽고 저 멀리 스코틀랜드의 외딴 섬으로 향하는 비행기 티켓을 끊었고, 그때의 경험은 책바를 운영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더불어 소설마다 각종 술을 유의미한 존재로 만들어내니, 그저 감사한 마음으로 읽을 수밖에. 그렇다. 무라카미 하루키다. 아쉽게도, 난 일본어를 ‘오겡끼 데스까’ 정도밖에 말하지 못한다. 그래서 신간에 관한 글을 쓰려는 것은 아니다. 아무래도 신간에 대한 소식으로 한동안 주목받지 못할 것 같은 전작 『1Q84』다.
살다 보면, 꿈인지 생시인지 분간이 안 될 때가 종종 있다. 그럴 때면 지금 여기가 현실임을 증명시켜주는 무언가가 있어야 한다. 예로부터 우리는 맨살을 손으로 꼬집어서 고통을 통해 현실을 자각했고, 크리스토퍼 놀란의 영화 <인셉션>에서는 각자의 토템을 통해 현실과 꿈의 세계를 구분했다. 어둑어둑한 밤, 밖에 나가서 하늘을 보면 환한 달이 우리에게 인사를 건넨다. 우리의 시야에서 달은 종종 모습을 바꾸곤 하지만, 의심할 여지 없이 개수는 하나다. 즉, 달이 하나라는 것은 현실을 의미한다. 그런데 달이 두 개인 세계가 있다. 바로 『1Q84』의 세계이다. 2009년에 발간된 이 책은 1Q84란 세계 속에 우연히 들어간 여자 주인공 아오마메와 천부적인 재능을 가진 문학소녀 후카에리를 만나 기묘한 사건에 휘말리게 되는 남자 주인공 덴고의 현실과 환상의 경계를 넘나드는 이야기다.
아오마메는 청탁을 받아 사람을 죽이는 킬러다. 물론 아무나 죽이는 것은 아니다. 여성에게 폭력을 가했거나 큰 상처를 입혔던 남성들이 대상이다. 그러던 어느 날, 그녀는 평소처럼 청탁을 받고 한 사람을 죽인다. 그녀에게는 사람을 죽인 뒤에 실천하는 일종의 ‘의식’이 있다. 집에 들어가서 잠들기 전에, 고조된 신경을 풀기 위해 알코올을 섭취해야만 한다. 더불어 함께 밤을 지새울 남자를 발견할 수 있다면 금상첨화다. 그녀는 어느 호텔의 바에 들어간 뒤 주위를 둘러보며 잠자리를 함께할 남자를 물색한다. 이들은 중년의 나이에 머리카락이 약간 남아 있고, 두상이 숀 코네리와 같이 아름답고 섹시해야 한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같이 잘 때 성적으로 덤덤하지 않아 보여야 한다. 그녀는 자신의 파트너를 찾기 위해 남자들이 마시는 칵테일을 지긋이 살펴본다. 어느 사람의 칵테일 취향은 성적 취향을 알아내기 위한 적합한 수단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바텐더가 메뉴와 물수건을 들고 오자 남자는 메뉴는 볼 것도 없다는 듯 스카치 하이볼을 주문했다. “원하시는 브랜드가 있습니까?” 바텐더가 물었다. “딱히 원하는 건 없어. 아무거나 괜찮아요.” 남자는 말했다. 조용하고 침착한 목소리였다. 간사이 사투리가 슬쩍 잡힌다. 그러더니 남자는 문득 생각난 듯 커티삭이 있느냐고 물었다. 있다고 바텐더는 말했다. 나쁘지 않아, 아오마메는 생각했다. 그가 선택한 게 시바스 리걸이나 까다로운 싱글몰트가 아닌 점이 마음에 들었다. 바에서 필요 이상으로 술의 종류에 집착하는 인간은 대개의 경우 성적으로 덤덤하다는 게 아오마메의 개인적인 견해였다. -1권, 123쪽
아오마메는 하룻밤 상대로 ‘커티삭 하이볼’을 주문하는 이 중년 남성을 선택했다. 그리고는 남자의 주목을 받기 위해 동일한 위스키 브랜드인 ‘커티삭’을 온더록스 스타일로 따라 주문한다. 커티삭Cutty sark은 스코틀랜드의 블렌디드 위스키 중 하나로, 깔끔하고 부드러운 맛을 느낄 수 있는 술이다. 19세기 영국의 초고속 범선에서 이름을 따왔는데, 최초 유래는 로버트 번스의 시에서 마녀가 입고 있던 짧은 속옷을 가리키는 단어였다. 위스키와 범선 그리고 속옷을 가리키는 단어가 동일하다니 신기하기만 하다. 커티삭 하이볼은 커티삭을 베이스로 하여 얼음과 함께 소다수(또는 토닉워터, 진저에일)를 채운 칵테일이다. 보통 1:3정도의 비율로 섞기 때문에, 알코올 도수가 약 10도 정도로 맥주보다 약간 높은 편이다.
앞서 그녀의 생각에도 나왔듯이, 커티삭은 매우 보편적인 위스키라고 볼 수 있다. 가격이 부담 없을 뿐 아니라, 정말 깔끔하고 부드러운 맛이기 때문이다. 특히 소다수로 채워진 커티삭 하이볼은 가볍게 첫 잔으로 시작하거나, 책을 읽으면서 마시기에 모두 적절한 선택이다. 만약 내가 무인도에서 매일 마실 수 있는 술을 하나만 선택하게 된다면, 수많은 걸출한 후보들 중에서 커티삭 하이볼이 단연 유력한 선택으로 떠오를 것 같다. 맛을 떠나 그만큼 질리지 않는 특징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래서 아오마메가 보기에도 보편적인 위스키를 선택한 사람은 역설적으로 성적으로 무언가 기대될 수 있는 여지가 있었다. 실제로도, 그녀의 가설은 적중했다. 그 남자는 아오마메를 실망시키지 않았다.
커티삭 하이볼
재료
커티삭 위스키, 소다수(혹은 진저에일, 토닉워터), 레몬 혹은 라임
만들기
1. 기다란 하이볼 글라스에 잘 얼려진 얼음을 넣는다.
2. 커티삭을 1.5oz(45mL) 따르고, 3~4배의 비율로 소다수(혹은 진저에일, 토닉워터)를 채운다.
3. 느끼고 싶은 풍미에 따라 레몬 혹은 라임을 얇게 썰어 넣는다.
정인성(Chaeg Bar 대표)
바와 심야서점이 결합해 있어 책과 술을 동시에 즐길 수 있는 공간인 책바(Cheag Bar)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가뜩이나 더운 날, 누군가와 갈등이 생긴다면 스트레스가 생길 수밖에 없겠죠. 이 뜨거운 더위와 갈등을 식혀주는 책 한 잔을 소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