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하나의 측면돌파] 여자들이 이야기하는 전쟁은 전혀 다른 것
<에스책방 책읽아웃>이 소개하는 이주의 책’은 여러분과 함께 읽고 싶은 책을 골라서 소개해 드리는 시간입니다. 오늘은 세 권의 책을 준비했습니다.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 『아홉 살 마음 사전』, 『언어 공부』입니다.
글ㆍ사진 임나리
2017.1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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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 저/박은정 역 | 문학동네


여성의 목소리로 전쟁을 기록하다.

 

지난 5일, 스웨덴 한림원이 올해의 노벨문학상 수상자를 발표했죠. 일본계 영국인 작가 가즈오 이시구로가 선정됐는데요. 역대 노벨문학상 수상자들의 작품도 다시 주목 받고 있습니다.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도 그 중 하나인데요. 2015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이 작품은 제2차 세계대전에 직접 참전했거나 전쟁을 목격한 여성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작가인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는 벨라루스의 저널리스트인데요. 200여 명의 여성들을 만나 인터뷰를 하고, 그 이야기를 모아 논픽션 형식으로 담아냈습니다.


작가는 “우리는 전쟁에 대한 모든 것을 ‘남자의 목소리’를 통해 알았다”는 사실을 지적합니다. 그리고 “여자들의 이야기는 전혀 다른 것이고, 또 여자들은 다른 것을 이야기한다”고 말하죠. 전쟁에서 어떤 기술이 사용됐고 어떤 장군이 활약했는지, 영웅이라 일컬어지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 이들을 죽이고 승리를 거뒀는지, 혹은 어떻게 패배했는지에 대한 이야기는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는 건데요.

 

그녀들은 무용담을 자랑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정반대입니다. “옛날 일을 떠올릴 수가 없어요. 생각조차 하기 싫어요”라며 만남을 거부한 이도 있었고요. 어렵게 인터뷰에 응한 이는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조국 앞에 내 할 바를 다했지만, 내가 전쟁터에 나갔다는 사실이 슬퍼. 내가 전쟁을 안다는 사실이……”


그녀들은 관념이 아닌 경험으로써 알고 있습니다. 전쟁이 얼마나 많은 이들의 삶을 뭉개고 할퀴면서 지나가는지 말이죠. 그 생생한 증언 앞에서 작가는 생각합니다. “사람은 어떻게 다른 사람을 죽여도 된다는 정신 나간 생각과 의기투합할 수 있는가? 심지어 죽일 의무가 있다는 생각까지 하다니.”

 

이 책은 우여곡절 끝에 세상에 나왔습니다. 출판사에서 출간을 거절당했고, 2년이 지난 후에야 책으로 만들어졌는데요. 그마저도 검열 당국에 의해 일부 내용이 삭제된 상태였습니다. 사실 출판사와 검열 당국이 내세운 논리는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전쟁이 지나치게 사실적으로 묘사되어 있다, 그래서 추악하게 보일 뿐, 위대한 승리의 이야기와는 거리가 멀다’는 거였습니다. 그들은 공산당의 위대한 사상이 등장하고 그에 경도된 여성들이 영웅으로 그려지길 원했던 거죠. 하지만 작가는 ‘나는 위대한 사상 같은 건 좋아하지 않는다, 평범한 작은 사람을 사랑하기 때문이다’라고 응수하면서 자신이 원하는 것은 ‘진실들’ 뿐이라고 답합니다. 1985년 첫 출간 당시에 삭제됐던 내용들 중 많은 부분은 2002년에 복원되어 재출간됐습니다.

 

영웅이 되길 강요 받았던 이들은 아직 어린 소녀이거나, 이제 막 아가씨가 된 여성들이었습니다. 자식 걱정에 애간장 태우는 엄마도 있었죠. 출산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엄마는 아이를 데리고 전쟁에 뛰어들어야 했습니다. 그녀들이 전쟁터에서 버려야 했던 것은 무엇일까요. 전쟁이란 어떤 시간과 공간으로 기억될까요.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는 남성들이 말하는 전쟁 이야기, 그 속에는 없는 목소리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아홉 살 마음 사전』


박성우 글/김효은 그림 | 창비


아이와 함께 읽는 ‘어린이 감정 표현 사전’

 

다음으로 소개해 드릴 책은 『아홉 살 마음 사전』입니다. 마음을 표현하는 말 80개를 가나다순으로 정리한 책인데요. 각각의 말이 가진 의미를 알려주고, 어떤 상황에서 쓸 수 있는 표현인지 가르쳐줍니다. 예를 들면, ‘야속해’라는 말은 “풀도 빌려 가고 삼각자도 빌려 갔던 친구가 내게 가위를 빌려주지 않을 때의 마음”이라고 정리되어 있어요. ‘외로워’라는 표현은 “비밀 이야기를 들어 줄 친구가 없”을 때 쓸 수 있다고 하고요.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춰서 쓰여진 만큼, 쉽게 공감하면서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추상적인 단어들은 그 뜻을 설명하기가 쉽지 않잖아요. 특히 마음을 표현하는 말들 중에는 그런 단어들이 많은데요. 그래서 ‘다행스러운 게 뭐예요?’, ‘서럽다는 게 어떤 거예요?’ 이런 질문을 받으면 금방 대답이 나오지 않죠. 사전을 펼쳐서 읽어주자니 그 뜻풀이가 더 어려운 경우가 대부분이고요. 떠오르는 대로 설명해주자니 미진한 느낌을 떨치기 힘듭니다. 그럴 때 필요한 게 바로 이 책이 아닐까 싶어요. “다행스러워, 라는 말은 깜빡 잊고 숙제를 안 했는데 선생님이 숙제 검사를 하지 않을 때 사용하는 표현이야”라고 알려줄 수 있거든요. ‘서러워’라는 말은 ‘언니가 말하는 것은 다 사 주면서 내가 말하는 것은 하나도 사 주지 않을 때 할 수 있는 말’이라고, 가르쳐주면 되겠네요.

 

그런데 왜 『아홉 살 마음 사전』일까요? 다섯 살이나 일곱 살이 아니고요. 책을 쓴 박성우 시인의 말에 따르면, 아홉 살 이전까지 아이들은 보는 대로 물어본다고 해요. 아홉 살 즈음이 되면 마음에 대해 물어보기 시작하고요. 물론 경험으로 아는 이야기죠. 박성우 시인의 딸이 아홉 살 되던 때에 쓰여진 책이거든요. 시인은 ‘눈에 안 보이는 것을 눈에 보이게 써주면 되겠다’는 생각으로 『아홉 살 마음 사전』을 썼다고 합니다. 책에 실릴 표현들을 직접 고르고 설명을 달았는데요. 아이들이 읽으면서 지루함을 느끼지 않도록 쓴 문장과 함께 그림이 수록되어 있어요. 김효은 작가의 작품들인데요. 부드러운 선과 색감으로 이루어져 있어서 따뜻한 느낌을 안겨주고요. 어린이의 마음을 직관적이고 감각적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 책은 아이들이 자신의 마음을 더 다양하고 세밀하게 표현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그 결과 다른 사람과 원활하게 의사소통을 할 수 있도록 이끌어주는데요. 부모님이 함께 읽으면서 자녀의 감정을 헤아릴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우리 아이는 이런 순간에 이런 마음을 가지겠구나’ 하고 말이죠. 책에 따르면 “우리 집이 케이크처럼 달콤하게 느껴지는 마음”이 ‘행복해’라고 해요. 반대로 ‘불행해’는 “엄마와 아빠가 싸우고 있”을 때, 또는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는데 엄마와 아빠 누구도 들어 주지 않을 때”의 마음이라고 합니다.


『언어 공부』


롬브 커토 저/신견식 역 | 바다출판사


16개 국어를 구사하는 통역사의 외국어 공부법.


여러분과 함께 읽고 싶은 책, 그 마지막은 『언어 공부』입니다. 독학으로 16개 언어를 배운 통역사의 이야기가 담겨 있는데요. 외국어 공부법에 대한 내용이지만 학습서라기보다는 교양서에 가깝습니다. 작가는 언어를 학습하며 겪은 에피소드를 들려주면서 여러 나라의 말들이 얼마나 비슷하고 다른지, 또 효과적으로 공부하는 방법은 무엇인지 알려줍니다.

 

일단, 한 사람이 16개 언어를 구사하는 게 가능한지 의문이 생기는데요. 작가 롬브 커토가 가장 많이 받은 질문 역시 이것이었다고 해요. 그녀는 “가능하지 않다. 최소한 각 능력이 똑같지는 않다”고 대답했다고 합니다. 모국어처럼 자유롭게 쓸 수 있는 언어가 있는가 하면, 정독하는 데 긴 시간이 필요한 언어도 있다는 거죠. 그리고 언어를 배우는 데 있어서 타고난 능력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언어를 성공적으로 배우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것은 흥미와 그를 뒷받침하는 동기, 인내심, 성실성이라고요.

 

사실 롬브 커토는 고등학생 때까지 외국어 낙제생이었다고 해요. 관심은 많았지만 성적은 좋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대학교에 지원할 때 자연과학을 목표로 했다고 하고요. 실제로 화학을 전공했어요. 그런데 대학 졸업 후에는 외국어 선생님이 됐거든요? 물론, 여기에는 나름의 사연이 있습니다. 롬브 커토는 1909년에 헝가리에서 태어났는데요. 그녀가 대학을 졸업한 1930년대 초반에 심각한 경기 침체가 이어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꾸준한 돈벌이를 찾아야 했고, 외국어를 가르치며 살기로 결심한 거죠.

 

처음에는 학생들보다 불과 한두 과 정도 먼저 공부한 실력으로 배짱 좋게 수업을 진행했다고 하는데요. 끊임없는 관심, 열정, 끈기로 점차 외국어 능력자가 되어갔습니다. 세계대전 당시에는 공습 대피소에서도 러시아어를 공부했다고 하네요. 결국 전쟁이 끝난 후 시청에서 러시아어 통역을 맡게 됐고요. 이후 부다페스트가 국제회의의 도시로 발전하면서 “현대적 통역사의 1세대”가 됐습니다.

 

롬브 커토는 2003년, 아흔넷의 일기로 세상을 떠났는데요. 생전에 이야기하길 “공부라는 것이 버거운 짐이 되기는커녕 마르지 않는 즐거운 샘이 되어주었”다고 했습니다. 실제로 여든여섯의 나이에도 히브리어를 공부했다고 하네요.

 

이 책의 초판이 1970년에 출간됐으니까, 다소 오래된 책으로 느껴지는 것도 사실인데요. 하지만 롬브 커토가 들려주는 외국어 학습법이 낡은 것은 아닙니다. 독학으로 언어를 학습하며 터득한 통찰력과, 경험자만이 들려줄 수 있는 구체적인 공부법이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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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나리

그저 우리 사는 이야기면 족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