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영 “내일은 내일에게 맡겨”
내일은 내일에게 맡겨, 그냥 오늘을 잘 살아’라고 말해주고 싶어요. 내일이 걱정되고 지금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생각될 때, 주문처럼 ‘그래, 내일은 내일에게’라고 말하면 굉장히 마음이 편해져요 (2017. 12. 08.)
글ㆍ사진 임나리
2017.1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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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김선영이 『내일은 내일에게』로 돌아왔다. 『시간을 파는 상점』, 『특별한 배달』, 『열흘간의 낯선 바람』에 이은 다섯 번째 청소년 소설이다. 인터뷰 내내 하나의 이미지가 떠올랐다. 텅 빈 방안에 홀로 남겨진 소녀. 아이를 짓눌렀을 차가운 공기와 두려움이 떠올라 연신 눈시울이 붉어졌다.

 

소녀의 이름은 ‘연두’. 열일곱의 아이 곁에는 부모가 없다. 낮고 허름한 동네에서, 새엄마와 이복동생 ‘보라’와 함께 살고 있다. “애초에 너라는 아이는 계획에 없던 거였어” 새엄마는 거침없이 말했고, 종종 매질도 했다. 학교에서는 친구도 없이, 있는 듯 없는 듯 지내고 있다. 다 큰 어른조차 감당하기 힘든 현실. 그 속으로 아이를 밀어 넣어야 했던 김선영은 “지금의 청소년들도 연두, 너를 보며 힘을 냈으면 한다”고 편지를 띄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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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대의 나를 위로해주고 싶었다


연두는 참 단단한 아이인 것 같아요. 저라면 연두처럼 못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요.

 

아이들이 어렸을 때부터 시련을 겪으면 생각이 상당히 많아져요. 생각이 깊어지고 무게가 생기죠. 어린 나이지만 곰삭는 게 생기기 시작하는 것 같아요. 사실 연두는 눈물이 정말 많은 아이잖아요. 어마어마하게 여린 거예요. 만약 연두가 울지 않았다면 살 수 있었을까 싶기도 해요. 많이 울었기 때문에 견뎌나갈 수 있었던 것 아닐까 싶죠. 눈물이 숨통이나 탈출구처럼 됐다고 할 수 있는데요. 인생에서 죽음이나 상실을 뛰어넘는 시련은 없잖아요. 그렇다 보니까 작은 일들은 아무렇지 않은 거예요. 그래서 단단해 보이는 거죠. 시련 자체가 아이를 단단하게 해주는 것 같고, 자신이 선택하는 것 같기도 해요. ‘내가 단단해야지만 이 세상을 살 수 있겠구나’ 생각하는 거죠. 주어진 상황 속에서 ‘어떻게 살아야 할까’를 끊임없이 생각하는 아이 같아요.

 

“이 소설은 어른이 된 내가 십대의 ‘나’를 위로해 주고 싶은 마음에서 시작되었다”고 하셨어요. 연두가 작가님을 닮기도 했죠?


저도 어렸을 때 아버지가 돌아가셨어요. 아홉 살 때였어요. 몇 년 동안 앓으셨고, 밖에 나가서 들어오지 않으셨고... 일종의 불화죠. 현실과의 불화 때문에 어머니 옆에 안주하지 않으셨던 것 같아요. 그 시대의 아버지들은 불화할 수밖에 없었어요. 일제강점기와 6.25 전쟁을 겪으면서 굉장히 큰 시련을 받았잖아요. 현실에서 뭐가 그렇게 중요하고 소중하겠어요. 그 사람이 겪는 상실감이 있고, 아버지를 이해하지 못하는 건 아니에요. 그런데 어머니도 같은 시기를 지나오셨거든요. 그렇지만 불화조차도 표현하실 수 없는 거예요. 그보다 자식이 훨씬 더 중요했던 것 같아요. 저는 어머니의 그런 단단함을 보고 자랐어요. 저희 집이 딸만 다섯인데, 어머니가 혼자 다 키우셨어요. 그 모습을 보면서 ‘엄마 때문에 열심히 살아야겠다, 저렇게 열심히 나를 키우시니까 공부라도 열심히 해야겠다, 책이라도 열심히 봐야겠다’라는 생각을 굉장히 많이 했어요.

 

연두의 목표는 “고3이 끝날 때까지 내 몸속에 있는 눈물을 말려버리는” 건데요. 작가님도 다르지 않으셨다면서요?


얇은 막이었죠. 건드리면 터지는 거예요. 선생님들이 말을 못 시킬 정도로요. 제가 고3 때 어머니께서 뇌졸중으로 쓰러지셨어요. 저희 자매에게는 엄마밖에 없는데. 그때 ‘내가 어른으로 자랄 수 없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 시기에는 아침에 한약을 달여서 어머니께 드리고 나서 학교에 늦게 갔어요. 온 몸에는 한약 냄새가 나고, 제가 늦게 올 아이도 아니니까, 선생님도 아셨죠. 그래서 크게 혼내지 않으시고 ‘이리 와, 왜 이렇게 늦었어?’라고 물어보곤 하셨어요. 그런데 저는 그때부터 울기 시작하는 거예요. 엄마가 아프셔서 늦었다고 이야기해야 하는데, 그 말을 못하는 거예요. 그렇게 여렸어요.

 

슬픔이 목울대까지 차있었던 게 아닐까요? 말을 꺼내려고 하면 눈물부터 나오는 거죠.


톡 건드리기만 하면 우는 거예요. ‘아버지는 언제 돌아가셨니?’라는 말만 들어도 그랬어요. 돌아가신 지 10년이 넘었는데도. 제가 슬픔을 각인시키는 강도가 남들보다 세지 않았을까 싶어요. 나만 아버지가 없는 것도 아니고 나만 가난한 건 아니잖아요. 그런데 굉장히 예민하게 받아들였던 것 같아요. 그 예민함 때문에 결국 작가가 된 거죠. 혼자 유난을 떤 거고요. 한편으로는 그렇게 유난을 떨지 않았으면 어떻게 견딜 수 있었겠나 싶기도 해요. 연두도 굉장히 유난을 떠는 거죠. 겉으로는 굉장히 잔잔하고 얌전하고 단단해 보이지만, 속은 늘 그런 상태인 거예요.

 

이 아이가 가장 두려워하는 건 혼자 남겨지는 일이에요.


연두뿐만 아니라 누구나 그런 것 같아요. 혼자 사시는 분들도 마찬가지고요. 혼자 사는 게 좋기는 하지만, 끝끝내 혼자 남겨질까 봐 두려운 거잖아요. 현대인의 삶이 자꾸 파편화되고 개인주의화되다 보니까 혼자 되는 걸 지향하면서도 두려워하는 것 같아요. 그건 어마어마한 필요와 어마어마한 불필요가 같이 있는 것과 마찬가지예요.

 

그렇죠. 혼자 남겨지는 건 누구나 갖고 있는 근원적인 공포일 거예요.


맞아요. 소설에서 고양이 ‘네로’도 그랬죠. 계속 혼자 길고양이 생활을 하다가 ‘얌이’라는 친구를 만나서 사랑했는데, 어느 순간 ‘얌이’가 보이지 않았던 거예요. 그래서 스스로 죽게 되는데요. 저는 달리는 자동차에 뛰어드는 고양이를 진짜로 봤어요. ‘동물도 자살을 해? 어떻게 자살을 할 수 있지?’ 싶었는데, 고양이도 그런다고 하더라고요. 너무 놀라웠어요. (소설에 등장하는) 다리 밑에서 죽은 텐트남도 결국 외로움 때문에 죽은 거죠. 고독사잖아요. 벨기에 겐트 공원에서 죽은 소년도 그래요. 소설 속에 기사로 넣었는데, 복지 시설을 나와서 텐트에서 지내다 죽었어요. 그런데 이틀이 지날 때까지 아무도 발견을 못한 거죠. 연두도 그런 세상을 계속 보면서 공포에 떠는 거죠. 가난한 것도 두렵지 않고, 엄마한테 맞는 것도 두렵지 않고, 저이가 새엄마인 것도 두렵지 않아요. 사랑하는 사람이 떠나는 게 가장 두려운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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넌 멋진 어른이 되어 있을 거야!


첫 장의 제목부터 의미심장한 것 같아요. ‘저지대의 아이들’인데요. 연두와 보라의 처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줘요.


저지대를 가보면 진짜 우울해요. 예전에 서울에도 타워팰리스 옆에 비닐하우스 집들이 있었잖아요. 아주 극명하게 대비를 이뤘죠. 양극화가 굉장히 심각한 사태이고, 그게 우리 아이들한테도 고스란히 오는 거예요. 펜스를 쳐서 아이들이 지나가지 못하게 하잖아요.

 

통학로를 차단하는 일들이 있죠.


네, 말도 안 되는 거예요. 어떻게 사람들이 이럴 수 있나, 하는 생각이 들죠. 주공아파트에 사는 아이들과 민간아파트에 사는 아이들의 학군을 다르게 해달라고 요구하기도 하잖아요. 뉴스에 빈번하게 나와요. 장애인 시설이 생기는 것도 반대하고요. 이건 정말 총체적인 문제예요. 그들과 같이 가야 되는 거거든요.

 

‘이규’라는 인물이 생각나요. 시각장애인인데, 그와의 첫 만남에서 연두가 두려움을 느끼기도 했어요. 함께하면서 생각이 달라졌고요.


계속 연두가 놀라잖아요. ‘어떻게 이렇게 밝지? 안 보이는데 두려움이 없을까?’ 하고요. 제가 그랬거든요. 어렸을 때 친척집에 갔는데 오빠가 시각장애인학교에 그네 타러 가자는 거예요. 허락도 없이 그래도 되냐고 그랬더니 오빠가 괜찮다는 거예요. 그네를 타다가 시각장애인 아이들이 다가오는 걸 봤는데, 제가 두려워했던 건 ‘나는 저 아이들을 볼 수 있는데 저 아이들은 나를 못 보잖아, 그렇다면 나를 어떻게 이야기해줘야 할까?’라는 거였어요. 소설에도 그 이야기가 나오는데요. 사실은 그 사람들이 우리를 두려워할 텐데, 현실은 거꾸로 우리가 두려워하잖아요. (관련 시설이) 들어오지 못하게 하고요. 그런 이야기도 하고 싶었어요.

 

소설 속에서 사회적인 문제를 언급하시는 이유가 있나요?


청소년 아이들도 우리 사회의 일원으로서 같이 사회를 만들어갈 사람들이니까 분명히 알아야 된다고 생각해요. 늙음도 알아야 되고, 죽음도 알아야 되고. 그래서 제 소설에는 항상 할머니가 나와요. 네 현재 상태가 유한하다는 걸 잊지 말라는 거죠. ‘나는 곧 늙는다, 죽는다, 스스로를 어찌하지 않아도 죽을 수 있다’ 그걸 잊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강연에 가서도 늘 이야기를 해요. ‘그러면 지금 네가 얼마나 빛나는 줄 알겠니?’라고요.

 

강연이나 특별수업을 통해서 아이들과 계속 만나시잖아요. 작품 활동에도 영향을 미칠 것 같은데요. 어떤가요?


구체적인 에피소드를 주지는 않아요. 아이들은 듣는 입장에서 일면만 보여주거든요. 그런데 아이들을 만나고 나서 제 생각이 달라지죠. 좋은 글을 더 많이, 부지런히 써야겠다는 생각을 많이 하게 돼요. 소설 쓰기에 있어서 소재가 되거나 저를 자극하는 것은 뉴스예요. 신문 스크랩을 굉장히 많이 하는 편인데, 신문을 보면 이야기가 막 생겨요. 신문기사의 엄청난 수혜자죠. 『시간을 파는 상점』도 신문 기사에서 시작된 아이디어였어요. 해외토픽 단신을 스크랩해 놨다가, 나중에 시간에 대한 이야기를 써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아이들이 자꾸 죽는 걸 보면서 ‘시간 때문에 죽는 거구나, 시간에 대한 생각을 달리 하게 해서 죽음을 멈춰봐야겠다’는 생각으로 쓰게 됐고요.

 

계기가 된 사건이 있었죠? 선생님이 ‘너, 내일 보자’라고 했는데 아이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던...

 
저희 동네에서 일어난 사건이에요. 죽은 아이는 저희 아들의 중학교 동창이었고요.

 

많은 충격을 받으셨을 것 같아요.


저희 아들한테 소식을 들었는데, 너무 충격 받았죠.

 

아드님도 힘든 시간을 보냈을 것 같습니다.


너무 놀랐죠. 야자 끝나고 집에 왔는데 입을 꾹 다물고 자기 방에 들어가 있더라고요. 무슨 일이 있다는 게 느껴졌어요. ‘무슨 일이 있구나, 왜?’라고 물었더니 대답을 안 해요. 그러다가 엄마, 하고 저를 부르더라고요. ‘엄마, 친구가 죽었어’ 그러는데... 제가 문설주에 기대 있다가 푹 주저앉았어요. 진짜 내 아들이 어떻게 된 것 같았어요. 너무 마음이 아팠고요. 제가 2010년 겨울에 이 소설(『시간을 파는 상점』)을 쓰기 시작했는데, 그 시기에 매일 청소년들의 자살 소식이 보도됐어요. 2010년, 2011년에요. 이 땅에 사는 엄마로서 고민을 안 할 수가 없었죠. ‘왜 우리 아이들이 그렇게 죽어가야 되지? 이유가 뭘까?’ 그러다가, 각자의 사연은 다 다르겠지만, 근본적인 이유는 똑같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러다가 아들의 친구가 죽었다는 이야기를 듣게 된 거예요.

 

그 아이는 내일이 다가오는 걸 견디기 힘들었던 거죠?


선생님이 ‘내일 이야기하자, 오늘은 그냥 가’ 이렇게 이야기했는데, 이 친구는 내일이 너무 두려웠던 거예요. 그런데 시간은 흘러가는 거고, 내일 아침에 선생님한테 혼난다고 해서 그 시간에 영원히 멈춰 있는 게 아니잖아요. 아이가 이런 생각을 했다면 살 수도 있었을 텐데, 그래서 시간에 대한 이야기를 써보자고 마음먹었어요. ‘조금만 견뎌 봐, 지나가면 흐릿해지고 괜찮아지고 그러면 살 수 있어’라고 말해주고 싶었던 거죠. 그 소설을 쓸 때 소원은 딱 한 가지밖에 없었어요. 한 명이라도 살릴 수 있으면 써야겠다, 라는 거였죠. 그런데 제법 많은 아이들이 비슷한 고백을 들려줬어요. ‘선생님은 소원을 이루셨어요’라고 말해주는 편지도 받은 적이 있어요.

 

정말 뿌듯하셨겠어요.


네, 작가가 되기를 잘했구나, 생각했어요. ‘아버지 없이 가난하게 산 것도 잘한 거구나, 안 그랬으면 작가가 되지 않았겠구나, 가장 낮은 곳에 있는 사람들을 이렇게 마음 아프게 생각하지 않았을 수도 있겠구나’ 싶었고요. 출신 성분이 좋았다면 나 잘난 맛에 살았겠죠. 그런 상황이 되어 본 사람들은 알아요. 그렇게 살아왔기 때문에 아는 거예요. 저도 그런 것 같아요. 너무 마음이 아프고, 전국에 있는 연두들에게 힘내라고 말해주고 싶었어요. 그렇게 너를 담금질하고 자라면 정말 멋진 어른이 되어 있을 거라고, 언젠가는 그늘에서 사는 친구들에게 도움 줄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을 거라고, 이야기해주고 싶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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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은 내일에게 맡겨


연두에게 미안한 마음을 갖고 계신 것 같아요. 극한의 상황으로 몰아붙여서 그럴까요?


그렇죠. 그래서 몸도 많이 아팠어요. 저는 마음이 위장에 있다고 생각하는데요(웃음). 문제가 생기면 그 부분이 딱 멈추는 것 같아요. 딱딱하고 뭉치고 밥도 제대로 못 먹어요. 연두 이야기를 쓸 때도 너무 힘들었어요. 연두에게 이입했다가 밥을 먹으면 속이 너무 안 좋은 거예요. 몸이 전체적으로 안 좋았어요. 하물며 연두는 어떻겠어요. 정말 미안했죠.

 

그래도 ‘이상’ 아저씨가 있어서 다행이에요. 연두가 알바하는 카페의 주인이면서, 가장 따뜻하게 연두를 감싸주는 인물이죠.


연두가 사람들을 대할 때 가장 중심을 뒀던 건 존중이었어요. 저 사람이 나를 존중 하는가, 그렇지 않은가. 어른들은 아이라는 이유로 존중하지 않으려고 할 때가 있잖아요. 넌 몰라도 돼, 라고 말하기도 하고요. 저는 어렸을 때 거기에 굉장히 불만이 많았던 것 같아요. 이상은 연두를 존중해주죠. 밀크티 한 잔을 주더라도 손잡이가 달린 도자기 찻잔에 담아서 주는데, 연두는 그걸 ‘너를 하나의 인격체로 존중하는 거야’라는 표시로 읽어요. 그리고 굉장히 중요시했던 것 같아요. 누군가를 존중한다는 건 말을 하지 않아도 느끼는 거잖아요. 연두도 다른 이들을 존중해요. 고양이도 존중하고 당집 할머니도 존중하죠. 멋진 아이예요.

 

연두를 통해서 아이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무엇인가요?


연두를 보고 조금 힘을 냈으면 좋겠어요. ‘연두도 살고 있잖아, 이런 상황이지만 한 번도 자신을 포기하려고 하지 않았잖아’라고 말하고 싶은 거죠. 그런데 우리 아이들은 너무 쉽게 포기해요. 성적 때문에 포기하는데, 학교와 집에서 포기를 시켜요. 소설에서 보라가 ‘엄마는 한 명도 많다’고 이야기하는데, 엄마가 있어서 살기도 하지만 엄마가 있어서 망치기도 해요. 현재 우리나라의 십대 아이들이 그래요. 아이가 스스로 자랄 수 있도록, 힘이 생길 수 있도록, 못 본 척하는 게 필요해요. 저는 그게 최고의 육아라고 생각해요.

 

아이들 곁에 ‘이상’ 같은 어른 한 사람만 있어도 달라질 텐데, 안타까워요.


그렇죠. ‘내가 너를 계속 지켜봐 줄 거야’라고 말해주는 사람만 있어도. 사실 이상이 연두에게 해주는 건 하나도 없잖아요. 연두가 당당하게 알바해서 대가를 받는 거고, 이상은 기쁘고 즐겁게 할 수 있게 해주는 것뿐이에요. 물론 그것만으로도 대단한 거지만, 그렇다고 이상이 연두의 보호자가 돼줄 수도 없거든요. 학비를 대줄 수 있는 사람도 아니에요. 이상도 (사회에서) 약자니까요. 중요한 건, 약자는 약자가 돕는다는 거예요. 고지대, 신지구의 아파트에 사는 사람들은 절대 저지대의 삶을 알지 못하죠.

 

너무 멀리 내다보면 막막해지기도 하는데요. 『내일은 내일에게』라는 제목은 ‘오늘을 버티는 것만으로도 훌륭해, 잘하고 있어’라고 말해주는 느낌이에요.


연두의 경우에는 계속 혼자 되는 것에 두려움을 느끼지만, 그건 아직 벌어진 일이 아니거든요. 혼자 되지 않았는데 계속 혼자 될 걸 두려워해서 현실이 공포스러운 거죠. 저는 ‘그건 그때 가서 걱정해도 돼’라고 말해주고 싶어요. 너의 스무 살도 걱정하지 말라고 하고 싶고요. ‘열일곱의 오늘을 잘 살면 스무 살도 괜찮을 거야, 스무 살의 오늘을 잘 살면 서른 살도 괜찮아질 거야’라는 거죠. ‘내일은 내일에게 맡겨, 그냥 오늘을 잘 살아’라고 말해주고 싶어요. 내일이 걱정되고 지금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생각될 때, 주문처럼 ‘그래, 내일은 내일에게’라고 말하면 굉장히 마음이 편해져요. 다만 전제 조건이 하나 있죠. 지금 충실하라는 것. 오늘의 시간을 충실히 사는 사람에게만 적용되는 말일 거예요. 그렇지 않으면 내일 더 안 좋아질 수도 있죠.

 

연두를 단단하게 만드는 또 한 가지가 있다면, 책이 아닐까 싶어요.


책을 좋아하거든요. 휴대폰도 없고 TV도 없는 아이인데, 사실 연두한테는 그런 결핍이 엄청난 풍요예요. 반대로 우리 아이들은 풍요로워서 결핍인 상태죠. 기기와 문명과 먹거리가 너무 풍요로워서, 결핍으로 채워질 수 있는 것들을 못 채우고 있는 거예요. 그러니까 삶에는 마이너스만 있는 게 아니에요. 마이너스 사건이 벌어지면 반드시 플러스 결과를 줘요. 연두가 굉장히 부정적인 상황에 놓여 있지만 그게 안 좋게만 작용한 건 아니거든요. 그 결과 단단해졌고, 철이 들었고, 속이 깊어졌고, 배려할 줄 알게 됐고, 넓게 볼 수 있게 됐잖아요. 반대로 정말 안온한 상황에 있는 아이들은, 겉으로 보기에는 플러스 요인이 많은 것 같지만, 결핍으로 인해 채워질 수 있는 부분들은 없는 거죠. 그게 더 영혼이 가난할 수도 있어요.

 

학창시절부터 문학에 꿈을 품으셨지만 상황이 여의치 않았다고요. 결혼 이후에 첫 소설을 쓰기 시작하셨다고 들었습니다. 작가님을 보면서 용기를 얻는 아이들도 많을 것 같아요.


요즘 청소년 아이들은 기대 수명 연령이 120세예요. 아이들한테 ‘몇 년 남았어?’라고 물어보면 100년도 넘게 남았다고 대답하죠. 고3도 101년이 남은 거잖아요. 저는 아이들에게 ‘너희 앞날은 100년이나 남았으니 조급해 하지 마’라고 이야기해요. 그리고 스스로를 파악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해줘요. ‘선생님은 중고등학교 때 내가 뭘 할 때 가장 즐거워했는지, 뭘 할 때 가장 잘했는지 알고 있었어’라고 하면서 ‘그래서 마흔 살에 그 일을 직업으로 삼아야겠다고 생각하고 소설을 쓰기 시작한 거야’라고 말해요. 50살에 해도 되니까 20살에 하려고 하지 말라는 거예요. 40살에 해도 되니까 30살에 하지 말라는 거고요. 60살에 시작해도 40년이 남아 있어요. 대신, 스스로를 파악하고 있어야 하죠. 내가 가장 재밌고 좋아하는 일이 뭔지 알면 딴 일을 하면서도 거기에 계속 관심을 갖고 있거든요. 계속 하게 되거든요.


 


 

 

내일은 내일에게 처방전김선영 저 | 특별한서재
주인공 연두는 십대 시절 김선영 작가와 많이 닮았다. 스무 살이 되기 전에 몸속 눈물을 말려버리는 것이 목표인 것도 실제 김선영 작가가 십대 시절 늘 가졌던 생각이다.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연두처럼 툭하면 우는 일밖에 없었고, 나는 무사히 어른으로 자랄 수 있을까, 라는 불안한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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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은 내일에게 #김선영 소설가 #어른이 된 내가 십대의 나 #연두
1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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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2.08

요즘 마음이 조급해지는 바람에 조금 힘들었는데, 이 인터뷰를 읽고 나니까 마음이 조금 편해지네요! 책 주문해놨는데 빨리 읽어보고 싶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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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나리

그저 우리 사는 이야기면 족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