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그들의 눈을 보며 힙합에 대해 물었다. 힙합의 어떤 매력에 빠지게 됐는지, 힙합이란 세계가 작동하는 원리와 규칙은 무엇인지, 힙합은 어떠한 특별한 힘을 가지고 있는지, 힙합은 다른 음악과 어떻게 다른지, 젊음이 힙합에 열광하는 이유는 무엇인지, 무엇보다 힙합이 당신의 삶을 어떻게 바꾸었는지에 대해 물었다. 때로는 원론에서 각론으로 들어가고 추상에서 구체를 건져올렸다. 하지만 어떨 때는 래퍼 개인의 특수한 경험이나 특정한 작품을 통해 깨달음을 얻기도 했다. 나는 이 책을 쓰며 힙합과 더 가까워졌다.(8쪽)
도끼, 더콰이엇, 빈지노, 팔로알토, 제리케이, 스윙스, 허클베리피, 산이, 딥플로우, 제이제이케이, 타이거JK, MC메타. 힙합 저널리스트 김봉현은 내로라하는 국내 힙합 아티스트들을 만나 인터뷰했다. 힙합의 매력에 대해 묻고, 힙합을 꿈꾸게 한 그들 삶에 대해 들었다. 『밀리언달러 힙합의 탄생』은 그들과의 인터뷰를 모은 책으로, 이 열두 명의 이야기가 닮은 듯 다른 언어로 공명하며 삶의 방식으로써의 힙합을 다시 생각하게 한다. 김봉현이 끌어낸 이들의 진지한 이야기를 통해 힙합이라는 예술이 어떻게 세계의 수많은 사람들이 열광하는 문화로 자리매김했는지 엿볼 수 있다.
지난 11월 23일 저녁, 연남동 저스트리슨에 마련된 『밀리언달러 힙합의 탄생』 북토크 자리에는 책의 저자 김봉현과 함께 래퍼 허클베리피와 팔로알토가 자리해 그들이 생각하는 힙합과 힙합 아티스트로서의 고민을 솔직하고 진지하게 나누었다.
얼마나 재미있는 것을 추구하느냐
두 번의 ‘서울힙합영화제’를 기획하기도 했던 김봉현은 “3회를 하게 되면 오리지널 작품을 올려야겠다. 내가 그런 것을 만들어봐야겠다, 는 생각”으로 다큐멘터리를 기획한다. 미국의 힙합 다큐멘터리 영화 <아트 오브 랩(Something from Nothing: The Art of Rap)>에서 영감을 받아 국내 힙합 아티스트와 힙합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다큐멘터리를 구상하던 중 출판사와 협력해 책까지 출간하게 되었다.
“노파심에 말씀드리면 다큐와 책 내용이 겹치는 부분도 있지만 안 겹치는 부분도 많습니다. 단편적으로 이 책에는 허클베리피가 인터뷰이의 한 명으로 등장하지만 다큐에는 저와 같이 호스트로 출연을 합니다. 저는 창작자가 아니니까 놓칠 수 있는 부분이 있을 것이고, 그래서 허클베리피와 함께 인터뷰를 했습니다. 다큐 개봉하면 많이 보러 와주세요.”
책에 대한 자부심을 전한 김봉현은 “많은 사람들이 알지 못하는 것들을 밀도 있게 담았다”고 말했고, 함께 자리한 허클베리피 역시 “인터뷰를 다니면서 엄청 많이 배우고 깨달았다”고 전했다. 인터뷰를 통해 힙합에 대한 이야기를 나눔으로써 “연대가 생기는 느낌”이었다는 것이 허클베리피의 이야기였다. 특히 허클베리피는 오랫동안 가까이 지낸 팔로알토에 대해서도 인터뷰를 통해 새롭게 알게 된 면모가 있었다고 고백했다.
“어떻게 보면 가까운 사람이지만 이렇게 자세히 얘기 나누지 않으면 서로가 생각하는 힙합이 어떻게 다른지, 어떤 부분이 같은지 모르잖아요. 팔로 형과는 솔직히 최근에 듣는 음악 같은 게 달라서 어쩌면 생각의 공통점이 별로 없을 수 있겠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얘기를 하다 보니까 힙합이 다음 세대에게 안 좋은 영향을 끼치고 있는 것 같고, 그것에 대해 뮤지션으로서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는 말을 하더라고요. 그런 말을 들으면서 나와 일치하는 부분이 분명히 있구나, 깨달았어요.”
이에 대해 팔로알토는 “특히 한국에서는 힙합하는 사람들이 가져야 하는 태도 등에 대해 너무 많은 사람들이 잘못된 인식을 갖고 있다고 생각해요. 제가 생각하는 언더그라운드 정신은 아티스트로서 얼마나 음악에 대해 연구소에 있는 실험가의 자세로 임하느냐, 얼마나 새로운 것을 추구하고 재미있는 것을 추구하느냐예요.”라고 말하기도 했다.
리스펙이라는 의미
김봉현은 “너무 쉽게 판단하고, 이분법적으로 보는 것”에 대한 고민을 이야기했다. 쉽게 ‘퇴물’이라는 말을 사용하고 “계속 올라가지 않으면 실패로 치부하는” 일련의 평가에 대한 아쉬움이었다.
“타이거JK와 인터뷰할 때 허클베리피가 했던 말이 생각나는데요. 리스펙이란 건 과거에 누군가가 뭔가를 이뤘는데 지금은 그보다는 덜 좋은 걸 한다고 철회하는 건 아닌 것 같다, 내가 한때 누군가의 결과물이든 태도든 리스펙했다면 그 사람의 지금은 그보다 덜 멋있더라도 여전히 그를 리스펙한다, 고 했거든요. 이 말에 공감이 갔어요.”
팔로알토 역시 여기에 동의하며 “음악은 그 음악이 나온 시대를 대변하는 것”이라는 설명을 덧붙였다.
“3년 전에 나온 음악은 그때를 대변하죠. 왜냐하면 그 당시에 느끼는 감정을 음악으로 담으니까요. 그 당시에 공통적으로 나누는 정서나 철학이 될 수도 있고요. 그런 것들이 반영된다고 생각하는데요. 그래서 과거에 나온 명반은 들으면서 함께 시간여행을 해야 해요. 그 당시 음악 씬이 어땠고, 표현 기술이 어느 정도였는지 알아야죠. 가령 나스(NAS)가 ‘one love’라는 곡을 내기 전까지는 그런 식의 스토리텔링이 없었죠. 자기가 살던 커뮤니티의 이야기를 한 편의 드라마처럼 얘기했잖아요. 많은 음악들이 그래요. 리스펙이라는 의미는 그런 것 같아요. 그때의 그것을 우리가 존중해주고, 인정해주는 게 중요하지 않나 생각해요. 그것은 업적이기 때문에 말이에요. 그게 있었기 때문에 또 우리가 존재할 수 있었던 거라고 생각해요.”
도끼: 사람들이 힙합을 부정적인 음악이라고 말하는데 저는 한 번도 그렇게 생각해본 적이 없어요. 오히려 힙합은 모든 장르 중에서 가장 긍정적인 음악이에요. 항상 희망을 심어주니까요.
김봉현: 비기 가사에도 나오잖아요. “내 삶은 네거티브에서 포지티브로 가고 있어. 내 삶은 더 나아지고 있어.” 힙합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이 방향성을 보는 거죠.(44쪽)
질의응답
한 기업이 씬을 장악한다는 의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요?
팔로알토: 여기에 대해 ‘팔로알토가 영혼을 팔았네’(웃음) 등 수많은 악플을 받았는데요. 이건 비즈니스에서 당연한 M&A 계약이거든요. 많은 분들은 저희가 상업적이어서는 안 된다는 평가를 하신 것 같은데요. 저는 처음부터 음악을 할 때 ‘2천 명까지만 내 음악을 좋아하면 좋겠어’ 같은 생각은 없었어요. 어쨌든 많은 사람들이 제 음악을 즐겨 들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입장인데요. 또 회사를 운영하는 입장에서 더 발전적인 방향을 모색해야죠. 그러니까 직장생활을 하셨거나 활동을 해보신 분들이라면 이해를 하셨으리라 생각해요. 다른 회사는 모르겠지만 저희 입장에서는 그 당시에 CJ와 함께 합병 계약을 하는 것이 좋다고 판단했고요. 거의 2년 정도 됐는데 하면서 전혀 불편한 점이 없었어요.
허클베리피: 추가하자면 이건 CJ와 전략적 제휴를 맺는 레이블이나 CJ를 욕할 게 아니고 그만큼 힙합에 공격적으로 투자를 못하는 다른 기업에 성토를 보내는 게 맞다고 생각해요. 왜 힙합을 CJ가 다 먹냐? 그만큼 CJ가 투자를 하는 거예요. 회사가 커질수록 이런 상황에 마주하는 건 진짜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거라고 생각하거든요. 제가 계속 하는 말인데요. 싫어하는 걸 싫어할 시간에 좋아하는 걸 좋아해달라, 이 말에 그런 의미가 담겨 있어요. 다른 그라운드도 생길 수 있게 공연도 가주고요. 그런 것들이 진짜 힙합 좋아하는 분들, 힙합하는 사람들이 해야 할 일들이라고 생각해요.
표현의 자유와 혐오에 대한 생각이 궁금합니다.
팔로알토: 솔직한 마음은 표현에 한계점을 두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하는데요. 저도 어렸을 때부터 수많은 마약에 대한, 섹스에 대한 폭력적인 음악을 들어왔어요. 지금도 듣고 있죠. 그런데 저는 그런 사람이 아니잖아요. 결국 선택의 문제라고 생각해요. 물론 매력적인 창작자가 이런 얘기를 했을 때 그게 젊은이들에게 영향을 끼칠 수 있죠. 하지만 그것도 개인의 선택 문제라고 생각하는데요. 다만 저는 가사로 어떤 얘기를 했을 때 영향 받는 사람들이 있을 수 있다는 점을 조금 더 고려하는 편이에요.
김봉현: 힙합이 장르적으로 가지고 있는 ‘keep it real’이라는 태도와 관련해 충돌할 수도 있는 부분인데요. 나는 진짜 게토에서 자라서 총알 날아다니는 환경에서 자라 내 진실한 삶에 대해 썼는데 내 노래가 폭력적이라고 한다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 이건 많은 래퍼들이 가지고 있던 고민이죠. 굉장히 복합적이고 구조적인 고민이 필요한 부분 같아요. 그런데 사실 저는 혐오 영역에 해당되는 것은 개선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편이에요. 시대적으로도 그렇고요. 여성, 소수자 등에 대한 혐오는 개선해야죠. 최근에 쓴 글 내용이기도 한데요. 제이지(Jay Z)의 이번 앨범을 들어보면 아시겠지만 인간으로서 진보하지 않았습니까. 딸을 낳은 후 비로소 여성의 눈으로 세상을 보게 됐다면서 랩 가사에서 여성을 다루던 방식에 대해 사과해요. 하지만 애매하죠. 힙합에서 딱 혐오만을 걷어내기도 어렵고요. 그 때문에 전체적으로 힙합이 위축되고 있다고도 생각해요. 과도기인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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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리언달러 힙합의 탄생 김봉현 저 | 김영사
힙합. 삶의 태도이자 방식으로서의 힙합. 그 멋과 맛, 무대와 일상, 베테랑의 작법과 영감의 원천들. 그리고 예술과 비즈니스 사이에서 독보적인 길을 낸 아티스트들의 이야기.
신연선
읽고 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