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3월 17일부터 2018년 3월 16일까지 꼭 일 년. 오직 밴에서의 삶을 산 사람들이 있다. 2010년까지 뮤지컬 배우로 활동하다 작가로 전업한 김모아와 브라운아이드걸스, 어반자카파, 남태현 등의 뮤직비디오를 찍은 뮤직비디오 감독 허남훈이다. 밴라이프 시작 6개월 전부터 코펠에 밥을 해먹고, 살림을 줄이고, 집을 없애며 밴에서의 일 년을 준비한 이들은 꼬박 네 번의 계절을 그렇게 밴에서 났다. 디지털 노마드의 삶. “버킷리스트를 체크리스트로” 바꿔보자는 생각을 늘 해왔던 이들의 지난 일 년은 꿈을 향한 집중과 실천의 결과물이었다.
밴라이프가 질문에서 시작되었다고 말할 만큼 이들에게 질문은 아주 중요한 것. 두 사람은 어떻게 살고 싶은가, 왜 이렇게 사는가, 원하는 것을 하려면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가를 끊임없이 질문하고 그에 대한 답을 하나씩 찾아왔다. 따라서 자신들의 삶의 형태가 남들과 조금 다른 이유는 질문을 조금 더 많이 했기 때문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결혼식을 하지 않은 것도, 밴라이프를 해본 것도 말하자면 굳이 커피를 손으로 갈아서 내려 마신다거나 다음 단계를 당연하게 생각하지 않는 이들의 생활 방식이 그대로 담긴 선택. “이런 질문을 저희 자신에게 하는 것처럼 책을 읽으신 분들도 하셨으면 좋겠다”는 김모아 작가는 자신들처럼 삶의 다양한 면을 보여주는 사람들을 더 많이 보고 싶다고 말했다. 삶은 단 하나의 모습이 아니기 때문이다.
굉장히 짠하고, 그래요
지금 인터뷰 하는 곳이 난지한강공원 야구장 주차장이에요. 서울에 계실 때 자주 이용하던 곳인가요?
허남훈 : 자주 이용하던 곳은 따로 있어요. 오늘은 교통 때문에 이쪽으로 정했는데요. 서울에 있을 때는 잠원지구를 많이 이용했어요. 서울에 오는 시간은 대부분 일 때문이고, 밴라이프를 하는 일 년 동안은 지방에 가 있는 편이었거든요. 일하는 곳들이 그쪽에 많아서요.
밴라이프가 거의 끝났어요. 어제는 어떻게 보내셨어요?
허남훈 : 저희 밴라이프는 2017년 3월 17일에 시작해서 2018년 3월 16일까지였어요. 365일 되는 날이 3월 16일이었고요. 오늘처럼 인터뷰가 있기도 하고 그래서요. 천천히 헤어지는 중이에요.(웃음) 저희한테는 굉장히 짠하고, 그래요.
요즘 기분이 어땠는지 궁금했어요. ‘헤어지는 날 슬플 것 같다’는 대목도 있었거든요.
김모아 : 제가 많이 힘들어할 것을 둘 다 예상했어요. 6개월 때부터 ‘이곳은 우리가 계속 머물 곳이 아니다, 헤어질 준비를 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서로 많이 했어요. 그래서 사실은, 6개월에서 8개월 사이에 많이 울고요.(웃음) 지금은 조금 담담해진 편이에요. 물론 물리적으로 멀어지면 그날은 어떨지 모르겠지만요. 허 감독은 항상 무언가를 할 때 저한테 다음을 연습하게 해주거든요. 제가 그걸 잘 못하고, 가라앉는 스타일이라서 6개월 됐을 때부터 많이 준비를 시켰어요. 사실 밴라이프의 하이라이트는 여름이거든요. 그렇게 한창 밝고 화사할 때 헤어지는 준비를 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허남훈 : 계획을 많이 하는 편이에요. 밴라이프를 결심하고 일 년 전부터 준비를 했거든요. 6개월 전부터는 전에 살던 집에서도 코펠로 밥을 해먹고 그랬어요. 준비를 한 덕분에 밴에 들어오고 나서도 적응하기 수월했던 것 같고요. 지금도 마찬가지로, 밴라이프가 끝날 것을 준비 안 하고 떠나거나 새 집에 가면 적응하기 힘들 것 같아서 밴 안에서부터 준비를 했죠. 애초에 밴라이프를 할 때도 마지막 날짜를 정해놓았기도 했고요.
딱 일 년, 마지막 날짜를 정한 이유는요?
허남훈 : 사실 2년, 3년 더 살 수는 있지만 우리에게도 마지막이라는 시간은 정해져 있잖아요. 그런 이유였고요. 또 다른 재미있는 삶을 계획하고 있어요. 밴라이프 하면서도 많은 생각을 하게 됐고, 많은 교훈을 얻었거든요.
막상 지내보니 일 년이란 시간이 어떻던가요? 짧게 느껴졌을 것 같아요.
김모아 : 이런 얘기를 많이 했어요. 일 년을 십 년처럼 산 것 같다고요. 물론 우리가 살 평생을 생각하면 일 년이 짧을 수도 있죠. 하지만 그렇게 이야기 했던 건 하루하루를 엄청 꽉 차게 보냈기 때문이에요. 과장이 아니고요. 저희는 정말 십 년처럼 산 것 같아요. 그런 의미에서 일 년이 짧다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물론 일 년이라는 시간 자체는 짧지만 다시 돌아가서 첫 페이지부터 보면 정말 많은 일과 여행, 삶의 흔적이 있어요.
허남훈 : 저도 일 년이라는 시간이 짧지만 길게 느껴지기도 했는데요. 밴에 살면서 가끔은 일 년이 짧다는 생각을 했어요. 처음 저희가 일 년을 계획했을 때도 분명히 짧을 거라고 생각하고 시작을 했고, 그래서 하루를 꽉 채워 살기도 했지만요. 짧죠. 길다고 하면 거짓말이고요. 아쉽긴 해요. 한 번 봄이 지나가면 그 봄을 다시 볼 수 없으니까요. 다시 한 번 계절을 맞이하면 우리가 아쉬워했던 걸 채울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은 분명히 있어요.
이번 겨울이 너무 추운 겨울이었어요. 그 생각이 먼저 들던데요.
허남훈 : 그런데 정말 안 힘들었어요. 지금 바닥 엄청 따뜻하죠? 그래서 괜찮았어요. 여름과 겨울이 가장 궁금하실 텐데요. 둘 다 굉장히 잘 보냈어요.
어떻게 살고 싶은가
책을 정리하고 보니 새롭게 발견하게 되는 것도 있었을까요? 그 순간에는 알아채지 못하는 것들이 있는 법이잖아요.
김모아 : 밴라이프 다이어리를 365일 썼어요. 뒷부분에 사람들한테 많이 받았던 질문을 정리했잖아요. 그런 걸 하나씩 보다 보니 너무 감사한 거예요. 안 그래도 이렇게 살아볼 수 있었던 게 행운이었는데 말이에요. 밴라이프를 할 수 있는 직업이었고, 밴라이프를 할 수 있게 도와준 부모님도 있었고, 지인도 있었으니까요. 축복이었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어요. 저희가 휴게소에 서기만 하면 어느 곳이든지 들었던 말이 “나도 은퇴하면 밴에 사는 게 꿈이다”라는 말이었거든요. 그 말을 들을 때마다 너무 많이 울었어요. 이렇게 젊은 시기에 이런 생활을 하고 있다는 게 죄송스러웠어요. 누군가는 평생 꿈으로 가지는 것을 지금 하고 있는 거잖아요. 그런 현실감을 가까이서 세세하게 느꼈던 것 같아요.
그 미안함이라는 감정은 어떤 건가요?
허남훈 : 버킷리스트를 체크리스트로 바꾼다는 생각은 꽤 오래 전부터 했어요. 바라는 것들을 미루지 말고 실천해보자, 시간을 앞당겨보자, 는 생각을 많이 했죠. 2013년 배낭여행도 그런 거였고요. 그때부터 꿈을 현실화하기 위해 애를 써왔어요. 버킷리스트는 어떻게 보면 지금 당장은 하기 힘든 일이잖아요. 밴라이프도 그렇죠. 비싼 차를 지금 사서 갖고 있을 수도 없고요. 하지만 저희는 지금, 밴라이프를 하고 싶어서 방법을 찾기 시작한 거예요. 오래 고민하다가 각자 가진 능력을 활용해서 캠핑카 제조업체의 문을 두드려 협찬 받게 됐죠. 새 차를 공장에서 받은 날, 바로 주유소로 갔거든요. 주유를 하시는 분이 차를 둘러보시더니 샀냐고 말을 걸더라고요. 이후에도 많은 분들이 물어보셨어요. 꿈이라면서요. 그럴 때마다 마음이 무겁더라고요. 저희 입장에서는 너무 황송한 프로젝트일 수도 있고 그렇잖아요. 많은 분들이 너무 동경하는 프로젝트여서 여러 가지 생각을 많이 하게 됐어요.
미루지 말고 해보자, 라는 생각으로 차근차근 준비했지만 우리가 운이 좋았다, 는 자각도 분명히 있는 거군요.
김모아 : 책으로 하고 싶었던 얘기도 이게 최선이야, 이렇게 살아봐, 디지털 노마드로 살아보세요, 라는 권유는 아니었어요. 밴라이프를 하게 된 계기는 질문이었거든요. 이건 질문으로 시작한 프로젝트였어요. 특히 허 감독은 질문을 많이 하는 편인데요. 어떻게 살고 싶은가, 죽기 전에 하고 싶은 일을 지금 하면 안 될까, 왜 해외여행만 다녔을까, 같은 질문이 섞여서 이 프로젝트가 된 거거든요. 무엇보다 어떻게 살고 싶은지를 스스로 자문하는 프로젝트였고요. 인생의 다음 챕터로 넘어갈 때 ‘이것을 했으니 당연히 저것을 해야지’가 아니라 과연 진짜 이것을 하고 싶은지 물어야 하는 거죠. 그러려면 어떻게 살고 싶은지를 알아야 하고요. 이런 질문을 저희가 저희 자신에게 하는 것처럼 책을 읽으신 분들도 하셨으면 좋겠다는 생각이었어요. 삶의 다양한 면을 보여드리고 싶었고, 그런 분들을 더 많이 보고 싶은 것 역시 저희의 꿈이에요.
그런 삶을 살기에 무엇보다 서로가 굉장히 좋은 파트너였던 것 같아요. 파트너로서의 장점을 서로 얘기해보면 어떨까요?
허남훈 : 굉장히 큰 장점이 있어요. 올해로 만난 지 15년 됐고요. 지금도 느끼는 것은 100이 있다면 서로가 딱 50씩이라는 건데요. 저희는 각자 역할이 분명해요. 일하는 방식도 그렇고요. 밴라이프도 그렇죠. 둘이 같이 운전면허를 땄지만 운전은 제가 담당하고요. 음식이나 빨래, 청소는 직접 담당하면서 완벽한 업무분담을 하게 됐죠. 각자 성향에 맞는 걸 자연스럽게 정한 것 같고요. 그런 것들을 서로 완벽하게 이해했어요. 그래서 더 무사히 365일을 잘 마무리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김모아 : 저는 여행, 음식을 제외하고는 새로운 것을 하는 걸 많이 두려워하는 편이에요. 오래 걸리고요. 반면 허 감독은 돈보다 시간을 아끼자고 오래 전부터 얘기하던 사람이죠. 시간은 더 벌 수도, 되돌릴 수도 없는 거라고요. 일이 끝나고 일상으로 돌아왔을 때 집에서 보내는 짜투리 시간에도 여행을 다니면 얼마나 좋을까, 라는 질문도 많이 했어요. 그러다보니 파트너로서는 자꾸 정체하고, 안주하려고 하는 저를 움직이게 하는 큰 장점이 있는 사람이죠. 제가 모터가 없는 차라면 파트너는 모터가 되어주는 것 같아요. 좀 더 많은 것을 보게 하고, 경험하게 하고요. 저희가 팀이라면 팀의 주춧돌 같은 사람이에요.
허남훈 : 제가 우리 팀의 리더인가요?(웃음)
글을 모두 김모아 작가님이 썼잖아요. 허남훈 감독님은 어떤 글이 제일 마음에 들던가요?
허남훈 : 마지막 글이 제일 좋아요. 우선 작가로서 김모아 작가의 필력을 사랑하고요. 그것들을 전적으로 지지하고 있어서요. 저는 오히려 이 책을 김모아 작가의 책이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숟가락을 얹었다고 생각해요.(웃음) 마지막 글은 실제로 제가 많이 하는 질문이기도 하고요. 저는 세상을 떠날 때까지 물음표를 달고 있을 것 같거든요. 이런 물음표를 많은 분들에게도 던지고 싶어요. 밴라이프 좋아요, 가 아니라 저희는 이런 선택을 해봤는데 여러분도 각자 질문을 해보시고 거기서 나오는 몇 가지 답들을 실천해보시면 좋겠어요, 라는 거니까요.
여행은 삶이었다. 삶이 여행이었다. 굳이 선 긋고 싶지 않았던 ‘여행과 삶’은 실제로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자신을 여행하고 자신을 사는 것이었다.(중략)
요즘은 우리 커플이 서로에게 끊임없이 달아두었던 물음표를 우리가 만나는 사람들에게 돌릴 때가 많다. 느닷없이 왜냐고 묻고 싶을 때가 많다. 당신은 누구인지 당신은 왜 지금 그 집에서 살아가고 있는지 어떻게 살고 싶은지 하염없이 이야기 나누고 싶다. 특히, 이 책을 끝까지 읽어준 당신과 함께.
- 326쪽
너무 충분해
밴라이프를 결심했을 때 주변으로부터 제일 많이 들었던 말이 뭐였어요?
김모아 : 너네 미쳤다(웃음)였어요.
허남훈 : 왜냐하면 정말로 집을 없앴으니까요. 시작 전에는 다양한 계획을 하게 되잖아요. 저희도 베이스캠프는 있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은 분명히 했어요. 그러다가 집을 없애기로 결정했는데 이 이야기를 주변에 하면 대부분 미쳤다고 하시더라고요.(웃음) 그래도 대단한 것 같다는 응원이 제일 많았어요. 해낼 것 같다는 믿음도 많이 주셨고요.
부모님의 응원을 보면서 마음이 참 좋았어요. 두 분이 그런 삶을 살아왔기 때문에 그런 지지가 가능했을 거란 짐작은 할 수 있지만 그럼에도 지지가 안 되는 가족이 있게 마련이니까요.
김모아 : 저희도 의외였어요. 허 감독 부모님께는 미리 알렸었고, 미리 차도 보셨는데요. 저희 부모님께는 얘기를 안 했었어요. 그러다가 부모님 집에 차를 갖고 간 거예요. 가서 설명을 했더니 의외로 엄마가 “너무 좋겠다!”고 하시더라고요. 집에 자주 오라는 말씀도 하시고요. 사실은 걱정했었어요. 부모님들이 아무리 지지한다고 해도 차에 산다는 게 일반적인 형태는 아니니까요. 나이도 있는데 걱정하실 것 같았거든요. 그런데 너무 많이 응원해주셨어요.
허남훈 : 꽤 오래 전부터 저희한테 익숙해져서 이렇게 사는 것에 대해서는 많이 이해하시는 편이에요. 부모님들께 저희의 삶을 진지하게 이야기 드리기도 했고요. 막연하게 이거 재미있을 것 같아서 살아보려고요, 가 아니었던 거죠. 결혼식도 마찬가지예요. 남들 다 하니까 안 하고 싶어요, 가 아니었어요. 이런 것들이 우리 삶에서 굉장히 중요한 지점이 될 것 같다, 꼭 필요할 것 같다, 라는 이야기를 오랫동안 부모님들한테 하다보니까 조금씩 이해를 하시고, 받아들여졌던 것 같아요. 이런 과정이 필요한 것 같아요. 혹시 저희처럼 밴라이프를 하시려는 분들도 시간을 두고 하시는 게 여러 가지로 탈이 없지 않을까 싶어요. 어찌 보면 꿈만 같은 거잖아요. 하지만 저희도 오래 계획하고 한 거니까요. 앞으로의 삶도 그럴 거예요. 저의 버킷리스트는 영화 같은 삶인데요. 지금도 그걸 실현하기 위해 여러 고민을 하고 있어요. ‘욜로’가 아니에요.
밴라이프 전과 후, 생각이 달라진 부분도 있나요?
허남훈 : 일단 자원에 대한 생각이 달라졌어요. 화장실만 해도 그래요. 보통 우리가 버리는 것을 우리가 확인하지 않잖아요. 물도 그렇고, 안 보이게 다 사라지잖아요. 저희는 그런 것을 짊어지고 지냈던 거예요.
얼마나 소비하느냐를 확인하는 건 무엇을 소비하고, 소비하지 않느냐를 고민하게 되는 일과 닿아 있는 것 같아요. 삶의 규모를 정확하게 파악하는 좋은 기회가 됐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김모아 : 가끔 저희끼리 “우리한테 이 공간 너무 충분해”라는 이야기를 했었어요. 하나도 안 불편한 거죠. 이만한 집이어도 될 것 같았어요. 물건을 들일 때도 잘 생각하게 됐고요. 원래도 그런 편이었지만 밴에 살면서는 공간이 제한적이다보니 이게 정말 필요한 건지 세 번 물을 것을 열 번 정도 물었던 것 같아요. 여기 있는 것들은 그렇게 해서 거의 일 년 동안 변하지 않고 있던 것들이에요. 장도 많이 볼 필요가 없었죠. 조금만 움직이면 또 장을 보면 됐으니까요. 한편 확고해진 부분은 이렇게 살아도 될 것 같다는 생각이에요. 정말로 여행과 일과 삶의 경계가 없는 삶이 앞으로도 저희가 원하는 삶이거든요. 그런데 밴에서 일을 하다가 산책할까 싶어 나가면 모래사장에서의 여행이 됐어요. 그런 순간들이 많이 쌓여서 진짜 이렇게 살아도 되겠다는 생각이 확고해졌죠. 그게 가장 큰 결실인 것 같아요.
그 말이 너무 좋네요. “너무 충분해.”
김모아 : 사람들도 흔히 물어봤어요. 그래도 불편하거나 많이 싸우거나 하지 않았느냐고요. 저희는 싸운다기보다 삐치는 수준인데요. 가까이 있으니까 더 빨리 풀어요. 약간의 땐땐한(웃음) 공기를 가지면서 시간을 갖다가 또 풀고 그랬죠. 이 정도 공간, 이 정도 삶이 정말 충분하다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매일의 날씨를 확인하는 습관’이 생겼다고도 했잖아요. 나를 둘러싼 환경과 아주 가깝게 지낸다는 점에서 밴라이프가 굉장히 매력적이더라고요. 도시에 있다 보면 종일 바깥 날씨도 모른 채 하루를 보낼 때도 있잖아요.
허남훈 : 정말 좋았어요. 저희는 비를 좋아해요. 오는 순간 소리가 나죠. 곧바로 들려요. 한 방울부터 소리가 들려요. 타닥타닥하고요. 바람이 엄청 부는 날은 차가 흔들려요. 제주도 같은 곳에서는 약간 멀미가 올 정도였어요. 그런 점이 참 좋죠. 비 오는 걸 워낙 좋아하니까 그런 날은 바로 와인을(웃음) 땄죠.
김모아: 정말 이 공간 자체가 저희한테 낭만이었어요. 비 오면 비가 쏟아지고, 해가 쨍쨍하면 햇빛이 쏟아지고요. 첫눈 오는 날 썬루프를 열었더니 눈이 막 쏟아지는 거예요. 이 안에 누워서 눈 맞고 그랬어요. 자연과 가깝게 지낼 수 있어서 정말 좋았어요.
많이 보다는 깊이
국내 여러 곳을 다녔는데요. 특히 좋았던 곳은 어디예요?
허남훈 : 많은 분들이 엄청 많이 다녔겠다고 생각하시는데요. 밴라이프를 계획할 때도 많은 곳을 다닐 계획은 하지 않았어요. 진짜 살아보는 것처럼 지내고 싶었거든요.
김모아 : 저는 원래 잘 우는데요. 경주에서는 매일 울었어요. 밴과의 헤어짐을 가장 많이 느끼던 곳이 경주였기도 했고요. 경주라는 도시가 참 이상했어요. 과거를 늘어놓고 지금을 돌아보게 하는 곳이었어요. 가족 생각이 많이 나더라고요. 제게 가장 가까운 가족은 허 감독이니까 허 감독 생각도 많이 하고요. 헤어짐에 대한 많은 생각을 하게 했던 것이 경주에서의 5일이었던 것 같아요. 실제로 죽은 사람들이 묻혀 있는 곳이잖아요. 고분을 보면서 예쁘다고는 하면서도 지금 살아 있는 사람들이 지금은 없는 사람들을 보러 다니면서 마치 여행처럼 즐기고 있다는 것도 조금 독특하게 느껴지기도 했고요. 과거의 사람이 현존하는 사람들이 누릴 수 있는 뭔가를 남겨 놓은 것이 너무 좋기도 했고 그랬어요. 그래서 많이 앓았던 것 같아요.
허남훈 : 완도도 정말 좋았어요. 처음 간 곳이기도 한데요. 저희는 여름을 더 좋아해요. 따뜻한 곳, 남쪽을 좋아하거든요. 수목원이 정말 좋아요. 산책하기도 좋고요. 그곳은 살 수도 있을 것 같다고 둘이 많이 얘기했어요.
많은 곳을 다닐 계획은 하지 않았던 이유는 뭔가요?
김모아 : 여행하듯 살고 싶다고 한 것은 여행을 갔을 때 그곳에 사는 사람처럼 살아보고 싶다는 말이었거든요. 그래서 관광지가 아닌 곳, 시장 같은 곳에 가서 뻥튀기 파는 분과 잡담 나누고 경운기 가는 것도 보고 그랬어요. 살듯 있고 싶었어요. 많이 보기보다는 깊이 보고 싶었어요. 그러기에는 일 년도 턱없이 부족했죠.
허남훈 : 일단 어느 곳에 갈 때도 면사무소 같은 곳을 찍고 가고 그랬어요. 지역 시장에 가고요. 관광지를 찾아가지 않았어요. 많은 분들이 환상적으로 생각하시는데요. 저희는 그렇게 생각하고 시작하지 않았어요. 멋진 곳, 멋진 전망, 아름다운 풍경을 생각하실 텐데요. 그런 게 없지는 않았지만 일 년 동안 엄청 여유가 있어서 여행만 하고 다닌 건 아니에요. 밴라이프는 저희의 삶이자 여행이고, 일의 터전이었으니까요. 밴라이프를 하면서 깨달은 건, 진짜로 머릿속에서 상상했던 건 아무것도 아니라는 거였어요. 부딪치고 경험해보니까 느끼는 게 정말 달랐어요. 그래서 어떤 면에서는 이 경험에 대한 답을 다 드리고 싶진 않아요. 그것은 저희만의 답이니까요. 다만 추천하고 싶고, 중간에 포기해도 된다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여행과 생활의 균형을 많이 이야기하고 있죠.
김모아 : 일단 여행만 할 정도로 여유가 있지도 않았고요. 저희는 욜로는 또 아니에요. 하고자 하는 바가 있으면 해야만 하는 일이 있다는 걸 충분히 알고 있고요. 그 균형을 잘 맞춰야만 꿈을 현실로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해요. 이렇게 살고 다음이 없는 게 아니잖아요. 이 삶을 저금도 열심히 했고요. 다음 여행, 다음 삶, 다음 챕터를 위해서 필요한 것들을 많이 생각했죠. 밴‘라이프’잖아요. 밴에서의 ‘삶’이니까 이곳을 집으로도, 사무실로도, 때로는 숙소로도 삼는 삶을 살아보자고 생각했던 거죠. 정말 균형 있게 살고 싶었어요. 여행만 하거나 지금을 탕진해서 미래를 생각하지 못하는 건 저희가 살고자 하는 방향도 아니었고요.
또 밴라이프를 해볼 생각이 있으세요?
허남훈 : 그럼요, 일단 밴라이프 외에도 재미있는 프로젝트가 몇 개 있어요. 말씀드릴 수는 없지만 그렇게 계속 재미있는 것들을 꿈꾸면서 살려고 해요.
이 순간, 삶의 어떤 문제로 고민하고 있는 분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들려주세요.
허남훈 : 사실 모든 건 쉬운 것부터 시작해요. 영어 공부를 하려면 단어를 하나씩 외우면 되고, 절약하는 생활을 하려면 티슈를 한 장만 쓰면 되고, 이런 건데요. 너무 뻔한 이야기예요. 저희는 가장 많이 생각하는 게 당연한 것들부터 실천하자, 거든요. 자연스러운 것, 쉬운 것부터 실천하는 거예요. 그리고 그것이 저는 시간을 아끼는 거고요. 우리는 돈 아끼려고 최저가 검색하고, 그러잖아요. 하지만 퇴근해서 집에 오면 그냥 시간을 보내요. 저는 그 시간을 돈보다 더 아껴야 한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런 철학이 버킷리스트를 체크리스트로 바꾼다는 개념이 된 거니까요. 저는 꿈만 꾸고 있는 것들을 실천하고 싶어요. 사소한 것도 기록을 해놓고 그것을 하기 위해 시간을 아끼고, 노력하고 있어요. 각자 그런 것을 찾아보시면 좋겠어요.
지금, 두 분이 하고 있는 질문은 뭔가요?
김모아 : 책과 밴라이프가 마무리 되면서 ‘가장 큰 수확은 뭘까?’라는 생각을 했어요. 이제는 어떻게 살 것인지 조금 더 현명하게 질문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이야기를 했죠. 지금은 우리 자신에게 ‘어떻게 살고 싶어?’를 더 심도 있게 질문하는 중이에요. 하고 싶은 것을 잡아채서 현실로 만들 수 있는 것들을 고르는 중이고요. 이 질문은 죽을 때까지 계속 하게 될 것 같아요.
허남훈 : 요즘 저에게는 ‘어떤 도움을 줄 수 있을까’가 가장 큰 질문이에요. 지금 계획하고 있는 것도 밴라이프 경험을 담은 다큐 제작이거든요. 다양하게 제가 할 수 있는 것들을 하면서 사회에 도움을 줄 수 있으면, 하고요. 그런 것들이 뭐가 있을까 계속 고민하는 중이에요. 저희의 프로젝트가 다른 분들에게 영감을 줄 수 있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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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하는 집, 밴라이프김모아 저/허남훈 사진 | 아우름
이곳에서 정말 ‘일상적인 생활’이 가능할까, 슬쩍 두렵기도 하다. 그러나 좁은 밴 안에는 생활에 필요한 기본적인 공간이 모두 갖춰져 있고, 이곳에서 이들은 꿈꿔왔던 새로운 삶을, 여행을 시작한다.
신연선
읽고 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