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대에 서는 배우들을 인터뷰할 때면 대부분 작품을 끼고 합니다. 배우가 2~3개 공연을 작업 중이더라도 개별 제작사를 통해 인터뷰가 성사되면 그 작품 위주로 기사도 풀어나가는 거죠. 당연히 배우가 출연하는 해당 공연은 미리 봐둬야 하고요. 그런데 기자는 뮤지컬 <빨래>에 나오는 배우를 인터뷰할 예정이면서 그 배우가 출연하는 또 다른 작품 <록키호러쇼>를 먼저 챙겨봤습니다. <빨래>의 솔롱고는 어울릴 것 같은데, <록키호러쇼>의 브래드는 전혀 예상이 안 됐거든요. 바로 뮤지컬배우 진태화 씨 얘긴데요. 대학로의 끝과 끝을 오가며 전혀 다른 모습으로 무대에 서고 있는 진태화 씨를 한 카페에서 직접 만나봤습니다.
“초반에는 정체성의 혼란이 좀 있었죠. <록키호러쇼> 연습하다 <빨래> 공연하러 오면 분위기가 완전히 다르니까 낯설고, 체력도 달리고. 정신 바짝 차려야겠더라고요(웃음). 공연 올리기 전까지가 가장 힘들잖아요. 지금은 재밌어요.”
두 작품의 객석 연령층이나 반응도 많이 다르죠?
“너무 다르죠. <록키호러쇼>는 말 그대로 쇼라서 콘서트 같은 느낌이에요. 관객들과 함께 하는 부분도 많고. <빨래>는 훨씬 다양한 연령층의 관객들이 오시죠. 두 작품 다 관객들과 호흡하지만, <빨래>가 관객들의 호응에 더 많은 영향을 받긴 해요. 메시지가 있고, 눈물과 웃음이 있는 작품이라서 관객들이 집중해주시면 저희도 더 많이 보여드리게 되더라고요.”
2016년 뮤지컬 <드라큘라>의 조나단 하커로 연기를 시작해서 <도리안 그레이>, <나폴레옹>, <록키호러쇼> 등 대극장 작품을 주로 하셨잖아요. <빨래>에는 어떻게 참여하게 됐나요?
“대극장 작품으로 데뷔했지만 많은 경험을 해보고 싶었어요. 선배들이 소극장 공연의 매력을 말씀해 주셨고, <빨래>는 워낙 유명하고, 솔롱고는 남자배우라면 모두 희망하는 역할이고요. 그런데 소극장의 문이 쉽게 열리지 않더라고요. 사실 <빨래> 19차에 지원했다 서류에서 탈락해서 오디션 자체를 보지 못했어요. 그 뒤로도 6개월 정도 오디션에서 다 떨어져서 자존감이 많이 낮아졌는데 다행히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를 하게 됐고, <빨래>까지. 정말 좋은 작품들을 만나서 감사하죠.”
그런데 10년 넘게 공연되는 작품인 데다 역대 솔롱고도 쟁쟁해서 부담이 컸을 것 같아요.
“<빨래>뿐 아니라 초연이 아닌 작품, 오래되고 인기 많은 작품들은 걱정이 많죠. 비교의 대상이 있으니까. 저는 오디션을 준비하면서 작품을 제대로 접했는데, 그래서 처음에는 오히려 부담이 덜했어요. 다만 유명세에 비해 솔롱고의 비중이 크지 않아서 놀랐죠(웃음). 남녀 주인공 따로 없이 모든 인물이 어우러지는 극이더라고요.”
무대에 많이 등장하지는 않지만 솔롱고가 쉬운 캐릭터는 아니잖아요.
“맞아요. 역할 자체에 걸려 있는 장치가 일단 외국인 노동자인데, 한국인이 외국인을 연기하는 거잖아요. 관객들은 제가 한국인이라는 걸 다 아시는데. 이 부분이 가장 어려웠어요. 그래서 톤이나 말투에 신경을 많이 썼죠. 한국에 살고 있는 몽골분들 영상을 많이 찾아보고, 저만의 대본을 따로 썼어요. 솔롱고가 5년 차인데, 그 정도면 한국어가 유창하더라고요. 다만 된소리 부분에서 외국인티가 나요. 그래서 저도 차용했죠. 저희 작품 이름이 ‘빨래’인데, 이걸 제대로 발음하지 못하고 ‘발래’ 이렇게 말해요(웃음). 그리고 전체적으로는 지금 ‘빵’ 역할 하는 (박)정표 형님이 솔롱고 출신이셔서 도움을 많이 받았고요.”
2년째 솔롱고로 무대에 서고 있는 조상웅 씨를 비롯해 내로라할 배우들이 솔롱고를 연기했는데, 진태화 씨만의 솔롱고는 어떤 매력이 있을까요?
“상웅이 형은 제가 처음 본 솔롱고인데, 정말 귀엽고 애교 많고 재밌었어요. 저는 순수하다고 할까요? 한국인 나영이가 외국인 노동자에 불법 체류자를 사랑한다, 사실 돈이 있는 것도 아니고 문화 차이가 클 텐데 무엇에 끌린 걸까. 순수함일 것 같더라고요. 힘든 현실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고 끈기 있게 살아가고자 하는 솔롱고의 순수함에 마음을 연 게 아닐까 생각했어요.”
직접 무대에 서다 보니 솔롱고뿐만 아니라 <빨래>가 10년 이상 롱런하는 이유도 보이죠?
“네, 일단 작품이 좋고, 캐스팅을 타지 않는 작품이에요. 무대에 등장하는 인물의 연령대가 다양하고, 각각의 인물이 안고 있는 사연과 메시지가 있다 보니까 공감할 수 있는 관객 연령대도 넓고요. 실제로 온 가족이 오기도 하고, 노부부가 오시기도 해요. 어떤 분은 편지를 보내셨는데, 20대에는 나영이를 투영해서 봤는데, 30대가 된 지금은 희정 엄마 시선에서 새롭게 보게 된다고 하시더라고요. 저희는 분장이나 무대 프리셋도 배우들이 직접 해요. 극장도 같이 청소하고. 연출님이 공연이 진행되는 8개월간 함께 생활하면서 사람답게 살아가는 모습을 알아갔으면 좋겠다고 하셨어요.”
이 작품에서 주요 인물들은 힘들면 빨래를 하는데, 진태화 씨는 어떻게 하나요?
“저는 음악을 많이 들어요. 최근에는 소극장 두드릴 때가 가장 힘들었죠(웃음). 제가 그룹 배틀로 데뷔했는데, 그때는 아이돌이라는 환상이 너무 컸고 가수의 꿈을 좇느라 열정을 불태웠지만 힘들기도 했어요. 정산이라는 걸 받아본 적이 없거든요. 하지만 그때 활동했던 경험이 쌓여서 지금 이렇게 뮤지컬을 할 수 있게 됐다고 생각해요. 처음에는 창피해서 저를 소개할 때면 그냥 ‘진태화입니다’라고 했는데, 그래도 지금은 ‘진태화 배우’라는 말이 조금 익숙해지고 있어요.”
오디션을 많이 본다고 하셨으니까 하고 싶은 작품, 캐릭터가 있을 법 한데요.
“사실 제가 가수로서는 보컬 색이 진하지 않은 게 단점이었는데, 뮤지컬에서는 어떤 역할에나 입힐 수 있으니까 장점이더라고요. 작품을 보면 저와 어울리는 캐릭터가 다 있어요(웃음). 글쎄요, 저는 주연 욕심보다는 저와 어울리는 인물을 하고 싶은데. 예를 들어, 나중에, 만약, 제가 대성해서, 데뷔작을 다시 하게 되더라도 드라큘라보다는 조나단 하커를 하고 싶어요.”
진태화 씨의 ‘큰 그림’ 좀 더 파헤쳐 볼까요?
영상으로 직접 확인해 보시죠!
가수에서 이제 배우로서 무대에 서는 마음가짐을 마지막으로 들어볼까요?
“목표는 믿고 보는 배우예요. ‘진태화면 봐야지!’ 이런 배우가 되고 싶어요. 예전에는 뮤지컬하면서 빨리 팬들이 생기고 이름을 알리고 싶다고 생각했다면 이제는 그 배역에서 1등이 되고 싶어요. 요즘은 더블, 트리플 캐스팅이니까 다른 배우의 팬이더라도 어떤 인물에서는 또 다른 배우를 선택해야 하잖아요. 그때 무조건 진태화를 꼽을 수 있도록요!”
<빨래>의 솔롱고로, <록키호러쇼>의 브래드로 대학로의 끝과 끝을 오가며 변신을 거듭하고 있는 진태화 씨는 얘기를 나눌수록 솔롱고만큼이나 브래드, 브래드만큼이나 솔롱고에 어울리는 인물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한 사람이 이렇게 다른 모습으로 무대에 설 수 있다는 것을 직접 확인해 보시죠(웃음)! 그리고 진태화 씨가 참여하는 뮤지컬 <빨래>는 내년까지 이어지는데요. 이후 ‘찰리(또는 왕자)-찰리-앙리’로 언젠가 무대에 서는 모습도 기대하겠습니다.
윤하정
"공연 보느라 영화 볼 시간이 없다.."는 공연 칼럼니스트, 문화전문기자. 저서로는 <지금 당신의 무대는 어디입니까?>, 공연 소개하는 여자 윤하정의 <공연을 보러 떠나는 유럽> , 공연 소개하는 여자 윤하정의 <축제를 즐기러 떠나는 유럽>, 공연 소개하는 여자 윤하정의 <예술이 좋아 떠나는 유럽> 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