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을 트렁크 하나에 담을 수 있을까?’
40여 년간의 한국 생활을 정리하고 발리로 떠난 이가 있다. 흘러가는 대로 사는 자유로운 인생을 붙잡는 단 하나의 장애물은 바로 ‘물건들’이었다고 말하는 이숙명 작가. 20여 년간 소비하고 소유해 왔던 물건들을 하나하나 처분하고 단 두 개의 비키니 장에 꼭 필요한 물건만 남겼다. 한국을 떠나기로 마음먹고 물건들을 처분하며 그것들에 스며든 추억과 ‘나’라는 사람을 마주할 수 있었다고.
사소하지만 소중했고 소중하지만 보내야 했던 물건들에게 건네는 작별 인사를 『사물의 중력』 에 담았다. 정든 물건들과 이별하는 그녀만의 방법에 대해 직접 들어보았다.
먼저 책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제목은 자연과학이지만 내용은 생활 공감 유머 에세이입니다. 우리는 살면서 많은 물건을 소유하고, 그중 어떤 것들은 우리에게 도구 이상의 의미로 남습니다. 그 물건들을 향한 이끌림이 생활의 기쁨이 되기도 하고, 돈을 벌고 사회생활을 하는 원동력이 되기도 하지만 지나치면 오히려 인생이 물질에 끌려다니는 꼴이 돼버리죠. 그런 이끌림에 대해서 쓰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책을 준비하는 동안 서울 살림을 정리하고 외국에 나와 살게 되면서 본의 아니게 미니멀리즘이 가미되었죠.
물건이든 사람이나 관계이든 삶에서 무언가를 덜어내는 건 늘 용기가 필요한 일인 듯합니다. 작가님께서도 서울에서의 삶을 아예 정리한다는 건 쉽지 않은 결정이었을 텐데요, 이전의 삶과 이후의 삶을 비교해보면 어떠신가요?
무척 쉬운 결정이었습니다. 자식이 딸린 것도 아니고 직장이 있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한 번 가서 살아볼까? 아님 말고.’ 하는 마음으로 가볍게 떠났습니다. 마침 살던 집 계약이 끝났는데 새로 집 알아보기가 귀찮더라고요. 한 달 50만 원이면 수영장 있고 정원 있고 조식 나오고 청소를 해주는 동남아 호텔에 살 수 있는데, 그것도 호텔 어플로 구경하고 1분 만에 예약할 수 있는데, 게딱지만한 빌라 하나 구하자고 공기도 나쁜 서울 시내를 한 달 내내 뒤지고 다니는 짓을 또 해야 되나, 생각하니 답이 쉽게 나왔죠. 물건만 처분하면 되는 상황이었습니다. 물론 결정하고 나서는 ‘어휴 저 놈의 물건들만 없었으면!’ 할 정도로 처분에 속을 썩긴 했지만요. 삶은 별 변화가 없습니다. 저는 서울에서도 거의 매일 집에만 있고, 컴퓨터로 혼자 일하던 사람이라 일상은 엇비슷하고요, 주된 변화라면 기후가 좋아서 몸과 감정이 덜 고달프다는 겁니다.
누사페니다에서 구매하거나 발견한 인생템이 있으신지 궁금합니다. 다시 한국으로 들어올 때 꼭 챙겨오고 싶은 물건이 있으신가요?
전혀 없습니다. 발리라면 공예품이나 농산물이라도 있을 텐데 여긴 어업 조금 하다가 갑자기 다이빙 관광지로 부흥 중인 척박한 섬이라 살 게 없답니다. 과일도 대개 다른 섬에서 수입해오는지라 싸지 않고요. 음... 다시 생각해보니... 역시 없네요. 저절로 쇼핑을 끊을 수 있습니다.
프롤로그에 “내가 좋아하는 것으로 가득한 공간이 아니라 ‘내가 좋아하지 않는 것이 없는’ 공간을 갖고 싶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영점에서 다시 시작할 필요가 있었다.”는 문장이 무척 공감이 되었습니다. ‘이번 연휴에는 꼭 정리해야지’ 다짐했다가 정 때문에(?) 버리지 못 하는 게 꽤 많은 저로선 이럴 바엔 싹 비우고 다시 시작하는 게 더 빠르지 않을까 생각해본 적이 있었거든요. 저와 비슷한 생각을 하며 실천하지 못하는 독자들에게 조언을 해주신다면?
올 봄에 한국에 가서 언니 집에 묵었는데요, 언니가 딱 그 상황이었어요. 짐 정리를 해달라고 하더니 막상 뭔가 버리려 하면 이런 저런 이유를 대면서 못 버리게 하더라고요. 일주일 동안 그 집 식구들과 신경전을 벌이다가 결국 관뒀습니다. 사람은 생긴대로 사는 게 가장 편하지 않겠습니까? 저 같은 사람은 물건이 많으면 답답해서 견딜 수가 없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몸 쓰고 돈 쓰고 시간 써서 정리를 하거든요. 정 때문에 못 버린다는 건 그럭저럭 견딜 만하다는 뜻 아닐까요? 그럼 정리를 할 필요가 있나요? 그 시간에 돈을 많이 벌어서 그 물건을 모두 보관할 수 있는 큰 집을 사면 되지요. 쉽진 않겠지만 힘내세요! 화이팅!
조직을 벗어나 공간, 지역에 구애받지 않고 프리랜서로 글을 쓰고 계신데, 일과 일상 사이의 무게 중심을 어떻게 하면 잘 잡을 수 있을까요?
저도 방법을 알고 싶습니다. 그나마 책을 쓸 때는 매일 시간을 정해놓고 일을 하니까 괜찮은데 잡지 마감 같은 단타성 일은 한 장짜리 원고를 어쩔 땐 하루 만에, 어쩔 땐 사흘 만에 쓰니까 도무지 다른 일을 계획할 수 없습니다. 일상이 모두 파괴되죠. 그래서 이제부턴 시즌제로 일을 하려고 합니다. 일 년의 반은 일을 하고 나머지 반은 자기계발을 하려고요.
책에서 못다 한 이야기가 있으시다면?
책에 쓴 이야기기의 후속입니다만, ‘카메라병’이 재발하고 있습니다.
전작인 『혼자서 완전하게』 를 비롯해 신작 『사물의 중력』 까지 작가님의 글을 정말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벌써부터 다음 책이 궁금해지는데요, 계속 누사페니다에 머물며 글을 쓰시는 건가요? 앞으로의 계획이 있으시다면 얘기해주세요.
기획은 몇 가지 있는데 요즘 글 쓰는 게 너무 지겨워서 내년으로 미뤘습니다. 대신 다른 데 집중하고 있습니다. 몇 년 전에 수익성이 없어서 종이책은 못 내지만 재미있는, 혹은 의미 있는 콘텐츠를 모으자는 취지에서 전자책 출판사를 차렸는데요, 유일한 직원인 제가 개인사로 바빠서 한동안 손을 놓고 있었습니다. 거기서 오랜만에 새 책을 몇 권 내려고 작업 중입니다. 누사페니다에 좀 더 머물 거라 인도네시아어 공부도 합니다. 이렇게 지내다 보면 다시 내 얘기를 하고 싶어서 근질근질해지는 때가 오겠지요. 그럴 때 찾아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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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물의 중력이숙명 저 | 북라이프
속물적이라 해도 왠지 끌리는 물건 등 삶을 붙들어주었던 물건들을 정리하며 떠올린 순간과 나에게 가치 있는 것들로 완성해가는 삶에 대해 저자 특유의 유쾌하고 흡인력 있는 문체로 담아냈다.
출판사 제공
출판사에서 제공한 자료로 작성한 기사입니다. <채널예스>에만 보내주시는 자료를 토대로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