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호박 : 안녕하세요, 저는 단호박입니다.
그냥 : 안녕하세요, 그냥입니다.
김하나 : 두 분 앞은 보이시나요?
단호박 : 네, 잘 보입니다.
김하나 : 왜 이렇게 꽁꽁 싸매고 나오셨어요?
그냥 : 사실 제가 익명성 뒤에 숨는 걸 굉장히 좋아하는 사람 아니겠습니까? 오늘도 얼굴을 드러내기가 너무 부끄러워서 절대 못 나온다고 했더니 단호박 님께서 같이 분장을 해주셨어요.
단호박 : 사실 저도 이 선글라스가 너무 탐나서(웃음)...
그냥 : 저는 눈에 뵈는 게 없으니까 마음이 한결 편한데요. 단호박 님은 어떠세요?
단호박 : 저도 눈에 뵈는 게 없는데요. 이 상태로 한 번 진행을 해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단호박 : 저희가 오늘 무대에 오른 이유는 청취자 여러분을 대신해서 두 작가님께 질문을 드리기 위해서인데요.
그냥 : 맞습니다. 아주 엄중한 사명을 띠고 무대에 올라왔어요. 아시겠지만, 저희가 공개방송을 참가 신청을 받으면서 두 작가님께 궁금한 내용을 질문으로 남겨주십사 부탁을 드렸습니다.
단호박 : 네, 그래서 2부는 여러분이 남겨주신 내용을 저희가 질문 드리는 방식으로 진행하게 될 거고요. 정말 많은 분들이 정성을 들여서 질문을 남겨주셨어요.
그냥 : 정말 다양한 질문들이 있었고, 재기발랄한 질문들이 참 많았습니다.
단호박 : 첫 번째 질문은 ‘옙티’ 님께서 남겨주셨어요. ‘두 분은 책 읽을 때 자세가 어떠신가요?’ 하셨어요. 옙티 님은 가벼운 책은 소파에 반쯤 누워서 보고, 두껍고 무거운 책은 독서대에 받쳐서 책상에서 읽는 편이라고 하시네요. 두 분에게 가장 이상적이고 편한 책 읽는 자세가 무엇인지 대답을 해주시겠어요?
김하나 : 저는 이상적인 자세는 결코 편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책을 읽고 있으면 저희 집의 고양이 네 마리 중에 한 마리가 무릎 위로 올라올 때가 가장 이상적이기는 한데요. 그때는 고양이가 턱을 괴면 팔도 움직일 수가 없고요. 더울 때는 너무 더워져요. 그렇지만 올라와 주신 것을 고마워하면서 불편하고 이상적으로 책을 읽는 걸 제일 좋아하고요. 그리고 지금은 제가 단호박 님이 공동 운영하시는 서점에서 『백래시』 책을 샀잖아요. 800쪽짜리 책을 사서 저희 집 거실에서 읽고 있는데요. 저는 이렇게 두꺼운 책이 하루에 몇 페이지씩, 지금은 하루에 100~150 페이지를 읽고 있는데, 그럴 때가 참 좋아요. 어떤 느낌이 드냐 하면, 옛날에 사랑채에서 글공부할 때 서한이 있고 위에 책이 놓여 있고 한 장씩 넘겨보는 느낌 있잖아요. 그게 좋아서 아침에 문을 열면 거실에 놓인 두꺼운 책에 내가 읽을 페이지가 표시돼 있는 거죠. 그 하루의 분량을 읽어나가는 시간이 오래 걸리잖아요. 그렇게 그 책을 소화해 나가는 걸 좋아합니다.
오은 : 저 같은 경우에는 등을 기댈 수 있는 곳이 있으면 돼요. 벽이나 의자 뒤나. 하지만 등을 기댈 수 있어야 되니까 의자도 등받이가 없는 의자 같은 경우는 곤란한 거죠. 왜냐하면 저는 책을 읽을 때 그 책을 쓴 사람 혹은 책에 나오는 주인공에게 뭔가 기대게 되거든요. 그래서 벽까지 있으면 두 번의 기댐이 있어서 마음이 편안해지고, 저 자신을 발견하는데 도움이 되는 것 같다는 생각을 늘 하고는 했습니다.
김하나 : 누워서 읽지는 않으세요?
오은 : 누워서 읽을 때, 예전에는 괜찮았는데 요새는 어깨가 결리고 팔이 저려서 요즘 앉아서 읽는 편이에요.
김하나 : 저도 누워서 읽는 걸 참 좋아했었는데요. 계속 누워서 읽다 보니까 목주름이 생겼어요. 그런데 제일 좋아하는 건 늘 누워서 읽는 거죠.
단호박 : 그렇죠. 누워 읽는 게 제일 편하죠.
불현듯 : 누워서 읽다가 잠들 때.
김하나 : 아, 그게 제일 좋죠.
오은 : 너무 좋죠. 하지만 아침에 일어나면 책이 조금 망가져있어요. 구겨져 있거나 침이 조금 흘러있거나 그럴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때가 제일 좋은 것 같아요. 왜냐하면 그 책에 나온 내용이 꿈에서 연결이 될 때가 있어요. 물론 그게 책의 내용과 완벽하게 일치하지는 않지만 뭔가 내 방식대로 다음을 상상한 거죠. 그런 게 좋더라고요.
그냥 : 다음 질문은 ‘노공공다히’ 님께서 보내주셨어요. 김하나 작가님께 여쭤보셨는데요. ‘타인을 인터뷰할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점은 무엇인가요?’라고 남겨주셨습니다.
김하나 : 저는 그것인 것 같아요. 여러분, 꽃이 공장에서 찍어내는 조화는 다 똑같이 생겼지만 생화는 벚꽃이 그렇게 많이 피어 있어도 완전히 똑같은 두 송이의 꽃은 세상에 없죠. 그런 것처럼 어떤 저자가 나왔을 때 ‘이 저자만의 독특함은 무엇일까’, ‘이 저자가 다른 저자와 차별화되는 점은 무엇일까’, 그래서 그 다른 지점을 많이 찾아내려고 해요.
오은 : 역시 멋진 인터뷰어입니다.
그냥 : 이번 질문은 ‘리오다요’ 님께서 해주셨어요. 그런데 질문 드리다 보니까 굉장히 궁금해져요. 저희가 지금 소개해 드리는 질문 중에, 본인이 쓴 질문이 있다 하시는 분 계세요?
단호박 : ‘리오다요’ 님, 오셨어요?
그냥 : 와, 세 분 다 계세요!
일동 : 안녕하세요. 감사합니다!
그냥 : ‘리오다요’ 님께서 ‘두 작가님들께서 글을 쓰실 때 리추얼 같은 게 있으신지’ 궁금하시대요.
김하나 : 오은 시인은 일요일만 쓰시죠?
오은 : 일요일만 쓰는 게 원칙이었어요. 직장생활 할 때는 토요일은 건너가는 날, 일요일은 하루 종일 글 쓰는 날로 정해서 결혼식이 있어도 아주 친하지 않으면 가지 않았어요. 축의금 봉투만 부탁하고. 하루 종일 앉아 있어야 뭐라도 한 편을 쓸 수 있었으니까요. 그런데 요새는 일요일도 바쁜 날이 많아서 시간이 나면 인근에 보이는 카페에 들어가요. 그리고 타자를 치기 시작해서 글을 만들어내려고 하는 것 같아요. 그런데 문제는 저의 리추얼이 뭐냐 하면 ‘딴 짓’이에요. 웹서핑도 해야 되고 인터넷 서점 들어가서 신간도 봐야 되고, 이런 걸 하다 보면 정작 글을 쓰는 시간은 한 시간 중에 10분 남짓 밖에 안 되는 거예요. 사실 글쓰기 전에 딴 짓 하는 시간이 많이 달콤한데 이 시간을 줄여야 되나 싶기도 하고요. 그런 고민에 요즘 휩싸여 있습니다.
김하나 : 그건 정말 다 그렇군요. 저의 리추얼은 뭐냐 하면, 저는 주방이 깨끗해야 글을 쓸 수 있습니다. 왜 그런지는 모르겠는데요. 저희 집의 요리 담당은 따로 있기 때문에 그 분이 요리를 하시는데, 뒷정리는 제가 하기로 이미 약속이 되어 있어요. 그런데 글을 쓰기 전에 설거지가 다 되어 있고 주방 상판이 깨끗하고 가스레인지도 깨끗하게 되어 있어야 왠지 글을 쓸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에 주방을 정리하다 보면 해가 져요. 그러면 점점 조바심을 내면서... 그러고 난 뒤에 또 딴 짓을 해요.
오은 : 노동을 했으니까 보상을 받아야 하거든요. 그게 쉬는 거고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시간을 보내는 게 필요하니까.
단호박 : 이 방송을 듣고 김하나 작가님을 맡고 계신 편집자 분이 문자를 보내실 것 같아요. ‘작가님, 지금 부엌 청소하고 계시죠? 빨리 쓰세요’ 하면서(웃음).
김하나 : ‘그러고 있을 때가 아닙니다’ 하고요(웃음).
단호박 : 네, ‘dfyang’ 님이 보내주신 질문입니다. 혹시 이 자리에 계신가요?
일동 :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톨콩 : 정말 너무 좋네요. 이 질문을 주신 분들은 그냥 인터넷의 바이트의 세계에 계신 게 아니라 제가 이렇게 표정을 볼 수 있고 고개를 끄덕여주시니까 정말 너무 다르네요.
단호박 : 저희가 이럴 때가 아니고, 저 분한테 질문을 받아보죠.
오은 : 좋네요!
청취자(dfyang) : 안녕하세요. 절판이나 기타 사유로 인해 소장하지 못해서 마음속에 아쉬움으로 남은 책이 있으신가요? 제가 또 이런 책을 보면 조바심이 나는 사람 중 한 명인데요. 두 분은 어떠신가요?
그냥 : 감사합니다.
단호박 : 감사합니다. 두 분, 대답을 해주시죠.
김하나 : 저는 조바심이 날 때는 있지만, 그래서 구하려고 하다가 못 구하면 잊어버려요. 왜냐하면 그것은 저와 인연이 아니구나 생각하거든요. 언젠가 인연이 올 수도 있죠. 말씀을 듣고 제가 가지고 있는, 절판되기 전에 사서 뿌듯함을 가지고 있는 책을 떠올려봤는데요. 에피쿠로스의 『쾌락의 철학』이라는 얇은 책이 있어요. 그 책을 사자마자 절판이 되더니 중고도서가 가격이 확 올라가더라고요. 그래서 뿌듯해하고 있는 책이 있고요. 그리고 탐험가 스콧의 이야기를 담은 『남극일기』라는 책을 아주 어렵사리 구했어요. 절판도니 책을 구했다고 아주 기뻐했는데, 제가 동거인과 살림을 합쳤더니 그 책이 두 권이더라고요. 그래서 지금 집에 그 두 권이 있습니다.
오은 : 제가 등단을 2002년도에 했는데 저는 한 2004년부터 시집을 읽기 시작했어요. 그때 시집을 읽으면서 가장 좋았던 시인선이 『세계사 시인선』 이에요. 당시에는 학생이었으니까 책을 제 마음대로 구입할 수 있는 형편이 안 되잖아요. 그래서 서점에 가서 한 권 한권씩 모았는데 그 『세계사 시인선』 이 다 절판이 됐어요. 그때 만났던 시인들이 사실 지금의 오은을 있게 해준 분들인데, 제가 감사의 의미로 이름을 한 번 읊겠습니다. 김정란, 노혜경, 박서원, 함기석, 이승훈, 성미정, 박상순, 이수명. 물론 이 중에서 일부는 타 출판사에서 다시 복간이 되기도 했지만 대부분의 시집들은 여전히 절판된 상태예요. 그리고 이 중에 노혜경 시인은 부산 분이어서 여러분도 아시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에 말씀드립니다.
김하나 : 그런 걸 생각해 보면 참 아름답지 않나요? 절판이 되고 난 뒤에는 나랑은 만날 수 없었을 텐데, 내가 자라오던 시기에 그 책이 나와 있었음으로 인해서 나의 세계를 형성하고 그러고 난 뒤에는 영원히 사라지거나 또는 어느 정도 멈추게 되면 그 인연이 점점 더 고맙게 느껴지기도 하죠.
오은 : 그리고 복간이 된다고 하더라도 예전의 그때 그 책이 아니기 때문에 조금 아쉬울 때가 있는 것 같아요. 첫 번째 버전으로 보고 싶은 마음이 있는 거죠.
단호박 : 마지막으로 저희가 준비한 코너를 진행해야 할 것 같습니다. 저희가 두 시간 내내 책 이야기를 한 번도 하지 않는 건 결례가 될 것 같아서, 이번에는 ‘부산 시민에게 권하고 싶은 책’을 골라봤어요. 짧게 두 작가님께서 소개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불현듯 : 제가 가지고 온 책은 황현진 소설가가 쓴 『부산 이후부터』 입니다. 이 소설 시리즈는 단호박 님이 <삼천포책방>에서 『섬의 애슐리』 라는 책을 추천해 주셔서 알게 되었어요. 시리즈를 쭉 보다가 『부산 이후부터』 를 읽었는데 너무 좋아요. 중요한 것은 제목이 『부산 이후부터』 잖아요. 그러면 부산 이후의 삶일 것이냐, 하지만 이야기라는 것은 부산 이후에 시작되더라도 과거를 지향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죠. 그리고 재미있는 것은, 이 이야기가 처음 시작된 지점이 바로 수영구 근처라는 것입니다. 오늘 <책읽아웃> 공개방송이 수영구에서 열린다는 이야기를 듣고 이 책이 가장 먼저 떠올랐습니다. 거두절미하고 제가 첫 번째 단락만 조금 읽어드리겠습니다.
“지인의 말에 따르면, 구태식의 아버지는 늘 그렇게 운을 뗐다. 거기는 여기보다 살 만하다더라. 서울에서 원주, 원주에서 제천, 제천에서 경주, 경주에서 포항, 포항에서 부산으로. 살 만한 곳을 찾아 식구들은 군말 없이 아버지의 뒤를 따랐다. 아버지의 지인들은 대개 군대에서 알고 지내던 사람들이었다. 하던 일이 잘 풀리지 않을 때마다 병영 수첩을 뒤지던 아버지는 부산에 터를 잡고 나서야 전화 거는 일을 멈추었다.”
그렇다면 부산에서 더 이상 사건이 벌어지지 않느냐, 그건 아닌 것이죠. 그 이유를 생각하시면 좋을 것 같아서 저는 『부산 이후부터』 라는 책을 추천합니다.
톨콩 : 저는 ‘부산 시민에게 추천해 드릴 책’ 이야기를 들었을 때, 부산시민이 별종도 아니고, 따로 어떻게 책을 추천하지 싶어서 너무 막막했어요. 그런데 이렇게 제목에 부산이 들어가 있다니까 약간 반칙 같습니다만. 어떤 책이 떠올렸냐 하면, 부산 해운대 해수욕장 앞에서 태어난 작가가 한 명 있습니다. 김하나라고요(웃음). 그 작가의 책 『힘 빼기의 기술』을 보면 서문 제목이 ‘만다꼬’입니다. 제가 지금 화요일에 <별이 빛나는 밤에>의 생방송에 나가는데, 그 코너 이름이 ‘만다꼬’이기도 해요. 『힘 빼기의 기술』 은 제 책이니까 너무 반칙 같았지만, 떠오르는 게 그 책밖에 없어서 그 책을 이야기하려고 하고요. 지금 저 뒤에 와계신 저희 어머니 이야기도 있고 가족들 이야기도 있고요. 저는 제가 부산에서 태어났다는 게 너무 좋거든요. 부산에서 살 때는 하나도 좋지가 않았어요. 하지만 서울에 가서 한참 있다 보면 뭔가가 너무 갑갑한 느낌이 들고 그게 부산에 와서만 풀리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어린 시절에 부산의 바닷가 근처에서 살면서 받아들였던 수많은 것들이 저 책을 쓰는 데 많이 기여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고요. 그래서 책의 표지도 보면 물에 둥둥 떠서 수영하는 사람들이 있고, 그래서 저 책을 추천을 드리고 싶습니다. 반칙 맞습니다. 죄송합니다(좌중 웃음).
*오디오클립 바로듣기 https://audioclip.naver.com/channels/391/clips/106
임나리
그저 우리 사는 이야기면 족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