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읽아웃] 정신을 번쩍 차리고 읽게 되는 글
시작은 책이었으나 끝은 어디로 갈지 모르는 코너죠. 삼천포 책방 시간입니다.
글ㆍ사진 임나리
2019.0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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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적인 동시에 정치적인 에세이  『삶을 똑바로 마주하고』 , 글자로만 지적 능력을 측정하는 것이 얼마나 편협한 일인지 알려주는 책  『글자로만 생각하는 사람 이미지로 창조하는 사람』 , 단호박이 세 번 놀란 여행에세이  『지금이 아니면 안 될 것 같아서』 을 준비했습니다.

 


그냥의 선택 - 『삶을 똑바로 마주하고』
최현숙 저 | 글항아리

 

최현숙 저자는 구술생애사 작가예요.  『할배의 탄생』 ,  『천당허고 지옥이 그만큼 칭하가 날라나』  등을 썼고 공저로  『이번 생은 망원시장』 이 있습니다. 천주교인으로 사회운동을 했고, 결혼 후에 자신이 레즈비언임을 자각한 뒤 이혼해서 관련 활동들을 했습니다. 민주노동당 여성위원장과 성소수자위원회 위원장을 지낸 이력이 있고요. 이후에는 요양보호사, 독거노인 생활관리사 등 노인 돌봄 노동을 하면서 그분들의 생애를 받아 적는 작업을 했습니다.


『삶을 똑바로 마주하고』 는 저자의 경험을 바탕으로 쓴 글들을 엮은 에세이집인데요. 여성으로서의 삶과 우리사회가 그 삶에 가하는 억압, 나이듦에 대한 이야기, 노인의 삶과 문제, 가난 등 다양한 주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부제가 ‘사적이고 정치적인 에세이’인데요. 저는 이 책을 읽으면서 ‘개인적인 것과 정치적인 것은 분리될 수 없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됐습니다.


예를 들면, 올해 예순셋이 된 최현숙 저자는 성장과정에서 굉장히 가부장적인 것들을 경험했고 아버지에 대한 반항으로 유년시절을 보냈어요. 그 시기에 많은 여성들이 그러했듯, 결혼을 함으로써 비로소 거리를 둘 수 있었고요. 이런 사람이 여성에게 씌워지는 굴레에 대해서 이야기할 때, 그것은 개인적인 고백이기도 하지만 사회적이고 정치적일 수밖에 없는 거죠. 저자가 만나는 노인들이 증언하는 가난한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개인적인 경험일 뿐이지만 동시에 사회적인 문제이고, 그것에 대해 발언하는 건 정치적인 것이니까요.


『삶을 똑바로 마주하고』 라는 제목도 너무나 ‘찰떡’이에요. 저자가 삶을 대하는 태도가 그렇거든요. 피하지 않고 직시하는 거예요. 자신이 속 시원해질 때까지 꿰뚫어 보고요. 계속 회의(懷疑)를 하면서 자신의 행동과 감정 밑바닥에 무엇이 있는지 파고듭니다. 정신을 번쩍 차리고 읽게 되는 글이에요. 올 한 해의 시작을 이런 책으로 여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톨콩의 선택 - 『글자로만 생각하는 사람 이미지로 창조하는 사람』
토머스 웨스트 저/김성훈 역 | 지식갤러리

 

원제는  『In the Mind's Eye』 예요. 표지에는 “생각은 언어로 표현되는 순간 죽어버린다”고 쓰여 있고요. 미국도서관협회 선정 심리학과 뇌과학 분야에서 ‘베스트 오브 베스트 도서’로 꼽힌 책이에요. 토머스 웨스트라는 사람이 썼고요. 우리가 팟캐스트 하면서 그런 이야기를 많이 했잖아요. 글자만이 지식을 가지고 있고, 글자를 많이 읽은 것으로 지식이나 교양의 양을 측정한다고 하는 것이 얼마나 편협한지에 대해서 이야기를 했었는데요. 그것을 조금 더 집대성해서 보여주는 책이에요.


저자 스스로도 난독증을 가지고 있고 난독증을 가진 뇌를 연구했다고 하는데요. 대부분의 사람들의 두뇌는 좌측이 비대하게 되어 있대요. 좌뇌와 우뇌가 담당하는 바가 완전하게 분리가 되어 있지는 않고 조금 다르다고 하는데, 연구에 따르면 난독증을 가진 두뇌가 비교적 더 대칭을 띈다고 합니다. 난독증인 사람들이 조금 더 우뇌적인 것을 활용한다고 볼 수 있다는 거죠. 우리는 글자를 잘 못 읽거나 문장을 잘 해독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보고 무식하다, 게으르고 멍청하다는 식으로 낙인을 찍어버리잖아요. 그런데 이 사람들이 가진 능력이라는 게 굉장히 흥미로운 특징들이 있는 거예요. 훨씬 더 창의적이기도 하고요. 생각지 못했던 거대한 패턴을 읽어내기도 하고, 쉬운 산수 문제는 헷갈려하고 어려워하지만 복잡한 수학 문제로 넘어갔을 때는 훨씬 더 처리를 잘하기도 하고요.


이 책에서 소개하는 모든 사람들이 난독증인 것은 아니지만, 난독증이나 학습장애 증상에 해당하는 것들을 가진 사람들의 이야기가 나와요. 예이츠의 경우를 봐도, 엄청난 시들을 많이 쓴 위대한 시인임에도 불구하고 예이츠가 난독증의 기운이 있었다고 하면 얼떨떨하게 느껴질지도 모르겠지만, 그 사람이 쓴 시의 문제가 아니라 편지를 쓸 때 보면 구두점이라든가 철자법을 제대로 구사하지는 못한다고 해요. 아주 흥미로웠던 점은, 아나운서들이 유창하게 이야기하는 언어적 능력과 굉장히 많은 이미지를 품은 시어들을 결합시켜서 심상을 창조해내는 능력은 다른 언어 능력이라는 거예요. 그래서 저자가 주장하는 바는 ‘우리가 지적 능력이라고 하는 것을 측정할 때 너무 편향되어 있는 게 아닐까’, ‘글자는 해독하기 힘들다고 하더라도 다른 수많은 능력이 있을 수 있는데, 그것을 측정할 수 있는 다른 것들이 필요하지 않을까’라는 문제제기를 하는 책입니다.

 

 

단호박의 선택 - 『지금이 아니면 안 될 것 같아서』
홍인혜 저 | 달

 

「루나파크」로 유명한 홍인혜 저자의 여행에세이인데요. 최근에 다시 출간됐어요. 저는 이 책을 읽으면서 세 번 놀랐어요. 저자가 여행을 시작한 시기가 스물아홉이라고 해요. 스물아홉 살에 직장인의 사춘기가 온 거죠. 어느 정도 연차가 쌓이고 나서 ‘내가 이걸 계속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하는 순간이었던 건데요. 제가 놀랐던 건 스물아홉 때 차장을 바라보고 있었대요. ‘나는 아직 대리인데’ 싶어서 첫 번째로 놀랐고요(웃음). 두 번째로 놀랐던 건, 끝까지 읽고 나서야 이 책이 2011년도에 처음 나왔었다는 걸 깨달은 거예요. 읽는 동안에는 그렇게 예전에 나온 책이라고 생각하지 못했었거든요. 요즘 나오는 퇴사 에세이들과 밀접하게 맞닿아 있는 게 많고, 그렇게 오래된 느낌이 나지 않고 트렌디해요.


세 번째는, 저는 개인적으로 여행 에세이는 제 타입이 아니라고 생각하거든요. 읽으면서 재미는 있지만 ‘나한테 그렇게 남는 게 있을까’ 싶은 마음으로 읽어요. 그런데 이 책은 놀랍도록 제 상황과 이야기가 많았어요. 이유를 생각해 보니까, 일단은 ‘연차가 쌓이기 시작하는 일하는 미혼여성’이라는 것에서 공통점이 많이 생기는 것 같아요. 그리고 서른 즈음이라는 시기에 알게 모르게 느껴지는 싱숭생숭한 마음이 너무 잘 느껴지더라고요. “이렇게 살 수도 없고, 이렇게 죽을 수도 없을 때 서른은 온다”는 최승자 시인의 시구가 있잖아요. 살고 죽고의 문제는 아닌데, 서른쯤 되면 ‘나 이렇게 계속 해도 되는 건가? 이렇게 마흔까지 살게 될까? 그렇게 살 수는 있나?’ 하는 마음이 서른 무렵에 드는 것 같아요.


마지막에 있는 문장을 보고 이 책의 정수라고 생각을 했었는데요. “당신의 몸이 학교에 있건 사무실에 있건 집에 있건 우리는 늘 새로운 경이를 원하는 사람들일 것입니다. 일상에 함몰되어 매일을 반복하기를 원하지 않는 사람들일 것입니다. 그 마음은 여행을 준비하는 것과 같겠지요. 우리 같은 마음으로 걸어가요. 우리 모두는 떠남을 준비하는 사람들이니까”라는 문장이었어요. 일상이든 여행이든 일상에 함몰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 똑같다는 게, 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많은 생각이 드는 지점이었습니다.

 

 

*오디오클립 바로듣기 https://audioclip.naver.com/channels/391/clips/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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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나리

그저 우리 사는 이야기면 족합니다.